공자는 '인간의 본래의 삶은 직(直)으로 살아가는 것이요, 직이 없이 산다는 것은 요행이 형벌을 면한 것뿐이니라.(人之生也直 罔之生也 幸而免)<논어 옹야 17>'라고 하였다.
이 같은 공자의 말씀 가운데 핵심어는 '직'이다. '직'의 심층적 의미는 무엇일까? 동양 철학자 이상은(李相殷) 박사는 <동양적 인간형>이라는 글에서
'직'은 대인 관계에서는 정직·솔직의 의미이지만, 자기에 대해서는 무자기(毋自欺)의 뜻이다. '직'의 참된 의미는 무자기에 있다. 누구나 남에게 대해서 정직하기는 쉬우나 자기를 속이지 않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중략)……사실 동양 도덕의 근간은 무자기와 신독(愼獨)에 있지 않은가 한다.
라고 하여 '직'의 참된 의미는 무자기에 있음을 강조한 바 있다.
무자기―자기 자신을 속이지 말라는 말은 바꾸어 말하면, 어리석고 속된 우리 인간들은 스스로를 속이는 경우가 많다는, 인간의 보편적 속성을 지적한 함축적 의미가 내포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도 그의 <악령(惡靈)>에서 '인간이란 항시 다른 사람에게 기만당하기보다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한 바 있다.
'홀로 있을 때 도리(道理)에 어그러짐이 없도록 함부로 행동하지 말고 삼가야 한다.'는 뜻의 '신독'이라는 말도 사람은 홀로 있을 때, 스스로를 기만하기 쉽다는 인간의 보편적 속성을 지적한 말로 '무자기'와 내용상 의미가 서로 상통하는 말인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들 인생 세간에는 남의 이목을 피해 스스로를 기만하는 속물들이 너무나 많다.
한 홉도 안 되는 지식과 재능을 가지고 말로 팔아 먹으려는 자가 바로 이들이요, 자신의 무식과 무지를 끝까지 시인하지 않고 궤변을 늘어놓는 자기 호도(糊塗)의 족속이 바로 이들이요, 상대방의 옳은 지식과 이론을 무시하고 잘못된 지식과 이론으로 상대방을 깔뭉개려고 하는 동키호테적 당랑거철(螳螂拒轍)의 무리가 바로 이들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기만하고도 일말의 양심도 없는 지독한 독선자요, 철저한 위선자요, 기막힌 사기꾼이다.
십목소시(十目所視)라는 말이 있다. '열 사람이 보는 바'라 함이니, 다시 말하면 '여러 사람의 눈을 속일 수는 없다.'는 뜻의 말이다. 아무리 제깐에는 잔 머리를 굴려 스스로를 위장하고 기만해서 순간을 모면할지 모르나, 언젠가는 그 같은 행동이 거짓이었고, 진리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는 법이다.
스스로를 기만하지 말고 솔직 담백하게 살자. 자신의 무식과 무지를 끝까지 숨기려 하지 말고 솔직히 시인할 줄 아는 겸손을 배우자. 그렇게 사는 것만이 자신의 삶을 발전시키는 길이요, 인간 관계를 윤택하게 하는 길인 것이다.
낙금, 과찬의 말 때문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어느 曳引船의 도움으로 문단에 얼굴을 내밀고 글을 쓰면서 自愧心과 懷疑에 빠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글 재주도 없으면서 늙막에 이 무슨 짓인가? 과연 앞으로 남은 여생 동안 한두 편의 좋은 작품을 남길 수 있을까?'하고 말입니다. 고맙습니다.
첫댓글 겸손의 미덕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배우고 익혀야할 일이라 여겨집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정봉 형의 왕성한 창작욕에 감탄했어요. 이제 70이 넘어서야 제 글 제 목소리가 나오는 듯하네요. <선운사 마애불>도 잘 읽었어요. "무자기"야 말로 최고의 가치지요. 그보다 더 큰 것은 "道"지요. 한번 생각해봐요. 정봉 만세!
낙금, 과찬의 말 때문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어느 曳引船의 도움으로 문단에 얼굴을 내밀고 글을 쓰면서 自愧心과 懷疑에 빠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글 재주도 없으면서 늙막에 이 무슨 짓인가? 과연 앞으로 남은 여생 동안 한두 편의 좋은 작품을 남길 수 있을까?'하고 말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