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장 57절 – 66절
예수님 당시 제사장들은 대부분은 가난하고 힘든부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루살렘성전에서 봉사하는 주류의 제사장들을 제외하고는 가난하고 힘든 부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신앙이 지극히 형식주의화 되어 버렸고 경건의 모양만을 추구하는 그런 풍토였습니다. 특히 로마제국의 수탈과 핍박속에서 생활수단이 없는 제사장들은 더욱 어려운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레위처럼 제사장의 직분보다도 생활을 위해서 직장을 얻으려고 하는 그런 환경이었습니다. 오늘날은 신앙생활 잘하면 부자되고 세상에서 잘된다고 하지만 어느 시대나 경건한 자들은 부자와는 먼 삶을 삽니다. 가난하고 힘든상황속에서 중보기도자로 서는 그런 자들이 있었습니다. 시므온과 안나처럼 경건한 삶을 추구하고 하나님의 그 시대에 행하실 일을 보길 원하고 그 일을 보았을 때 그 일의 성취를 위해서 중보기도자로 서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을 금촛대무리라고 말합니다. 바로 성소에 24시간을 불을 밝히는 금촛대와 같은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부류의 인물중에서 사가랴의 아내 엘리사벳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중심적인 삶을 살라고 사가랴라는 이름을 받았는데 그 사가랴는 차례를 따라 성전에 들어갔습니다. 이 성전은 지성소가 아닌 성소입니다. 그는 분향하는 일을 했는데 그 때 주의사자가 나타나 엘리사벳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사벳과 사가랴는 잉태를 위해서 오랫동안 기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천사는 태어날 아들이 엘리야의 영으로 사역할 자라고 합니다. 하지만 사가랴는 믿지 못했습니다. 이미 두사람은 너무 늙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가능성이 제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잉태를 위해서 기도를 하면서도 실상은 기대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모양을 가지기 쉽습니다. 기대가 없는 기도는 우리에게 아무런 갈망도 주지 못합니다.
그 이후 엘리사벳이 잉태를 하였는데 그 부부는 숨어 있으면서 엘리사벳은 하나님이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라고 하는 부끄러움을 없게 해 주시려고 한다고 말합니다. 엘리사벳의 잉태는 표적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잉태처럼 표적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대화를 보면 엘리사벳이 경건한 사람이고 영적인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엘리사벳이 출산하고 아기가 팔일만에 할례를 받는데 그 때 이름을 지어 줍니다. 친척들은 아버지사가랴의 이름을 따서 사가랴라고 지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엘리사벳은 요한이라는 이름으로 아기이름을 짓고자 합니다. 요한은 비둘기라는 요나의 이름에서 비롯되며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 그리고 요한의 문자적인 의미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이름은 예언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자녀들의 마음을 아비에로 돌리는 평화의 사자이며 주님 앞에서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이며 하나님의 임재의 회복과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를 알리는 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