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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돈이란 뭘까? 그 끝없는 욕심...
어제 아차산 산행을 마치고 서울 강동에 있는 현대아산 병원 영안실에 안치된 어떤 지인의 문상을 다녀왔습니다. 실은 아차산 산행을 일요일에 하고자 마음에 두고 있었기에 일요일 한가하다는 청안님이 메모가 있어서 혹시나 하고 일요일 아침에 문자를 넣었더니 가능하다고 해서 아차산 산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묘법님과 보화님도 연락을 드려 봤으나 묘법님은 산사에 가셨고 보화님은 바쁘 다고 하셔서 셋이서 아차산 산행을 결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청안님이 김포를 출발해서 올 무렵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늘 다니던 손님의 기사였습니다.
"제가 하선생님께는 알려 드려야 도리일 것 같아서 전화를 드립니다만 어제 오전 6시(26일) 사모님께서 임종하셨습니다." "예???"
전화를 받은 연화심은 놀라 어안이 벙벙하여 말을 잇지 못하고 아이쿠, 아이쿠, 어후, 어후만 연거푸 내었습니다. 울먹울먹 어이 없는 표정과 낙담하는 모습이었 습니다. 저도 마찬가지 심정이었습니다.
연화심은 이대로 어찌 산행을 하나? 산행을 포기하자고 했지요. 사정을 말하여 우리집에서 식사나 같이 하고 양해를 구하자고 했지요. 그러나 우선 진정하고 생각해 보자고 했지요. 약속은 천금 같은 것이니... 그런데 청안님이 멀리 김포에 서 모처럼 시간을 내서 오고 있는 중이라 난감하여 일단 산행을 하고 나서 문상을 가기로 했지요. 그래서 그렇게 했습니다.
돌아가신 분과의 인연은 꽤 오래 되었습니다. 그 전의 인연은 차치하고도 지난 봄 5월 경 남원의 바래봉 철쭉 산행 후 연화심은 고인과 인연이 각별했습니다.
고인을 연화심이 예전부터 지속적으로 가끔 수기요법을 해 왔는데 어느 날 복부에 있는 딱딱한 물체를 발견하고 풀어보려고 노력했으나 이상하게도 안 풀려 병원에 가 보실 것을 누차 권했으나 잘 가지 않다가 혹시나 하고 병원에 갔는데, 이에 대해서 병원 의사들은 똥덩어리라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여 고인도 그렇게 여겼지만 연화심은 똥덩어리라면 풀어질 텐데 안 풀어지는 걸 보면 똥덩어리가 아니니 다시 검사해 보시라고 했지요.
만날 때마다 그러니 짜증스럽기까지 했는데 그의 남편도 그렇다면 병원에 가 보자고 해서 검진을 다시 해 보았으나 소견은 같았습니다. 그러나 정밀 검사를 요청해 산부인과 검사를 했는데 뜻밖에도 난소암이란 검진 결과가 나와 경악했 었지요. 그런데 난소 부근이라서 암이 발견되기는 어려운 곳이라며 의사도 놀라 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 후 수술을 하고 난 후 항암치료가 시작되었는데 그 때가 바로 5월 바래봉 산행 직후의 일이라서 그때부터 연화심은 일요일 한 번 안 쉬고 꼬박 항암치료가 끝나 완치 판정이 나올 때까지 매일 매일 고인에게 정성을 다하여 수기요법(手技 療法)을 해드렸습니다.
그 분의 연세가 77세여서 고령인데도 항암치료를 여섯 차례를 받았습니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따랐지만 그래도 견디어 낼 수 있었던 것은 돈의 힘이 한껏 작용했다고 생각됩니다. 어느 때는 새벽 4시에도 부르고 어느 때는 세 번 네번도 불렀지요. 시도 때도 없이 응했습니다. 수기요법만 받은 것이 아니라 쑥뜸이다. 보양이다 뭐다 하며 할 수 있는 것은 다했지요. 간호사도 1주일에 몇 번씩 다녀 가고 간병인까지 두게 되었으니 돈이 말도 못하게 들어간 것이지요.
그러나 그 집은 큰 거부는 아니더라도 자세히는 몰라도 언뜻 강남에 빌딩이 있고 지방에 있는 땅, 미국의 집 할 것 없이 우리가 보기엔 넉넉한 집이었지요. 1년에 혹서와 혹한을 피해 미국에 두 차례 지내고 올 정도이니 말입니다. 그러니 사투를 벌이는 마당에선 감당하고도 남음이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더구나 두 아들은 성가하여 미국에 사업을 벌이고 있으니 충분했지요. 그렇다고 재산을 팔아서 이에 충당한 것도 아니었으니 재산이 축난 것은 별로 없는 셈이었 지요.
그러다가 항암치료가 끝나고 완치 판결이 나오니 두 분 내외는 병이 다 나은 줄 착각했던 것 같았습니다. 좋다는 음식은 다 드셨지요. 물론 항암치료 중에도 줄 곧 그랬지만... 용봉탕이다 사골이다 별별 좋은 것은 다 드셔 영영과다를 염려하 게 되었지만 두 분 내외나 병원의사나 간호사나 간병인이나 도우미나 아무도 이를 염려하는 사람이 없었으나 연화심만이 이러면 안 된다고 식이요법을 행해야 한다고 이야기 했지만 막무가내였지요.
그런 중에 그래도 다행히 몸이 호전되고 기력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그동안 꾸준히 근육을 풀어 혈행에 도움을 준 수기요법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러나 몸이 회복되어 가니 돈이 아까워지기 시작했지요. 자꾸 끝도 없이 들어가는 돈이 그냥 샌다고 인식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남편되는 회장의 돈에 대한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짜증이 난 것입니다. 돈을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난 것입니다. 매일 돈타령을 하기 시작했지요. 회장도 고인도 돈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고 합니다. 돈 때문에 강박관념이 있었던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집을 팔아서라도 감당해야 되겠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지요. 부동산을 팔 정도로 많이 나간 것은 아니니 말입니다. 목숨이 달린 문제인데 두 양주는 현금이 금방금방 달아나는 것이 아까웠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많은 돈이 든 것은 고가의 약과 식품을 구하는데 대부분을 차지했던 것임 에도 마치 그것이 소소하게 들어가는 것에 원인이 있는 것처럼 말하니... 이를 듣는 간호사나 간병인도 도우미도 기분이 안 좋기는 마찬가지였지요. 세상살이는 서로 필요에 응해서 부르고 찾는 것이지 일방적인 것은 아니니 말입니다.
암치료 완치 판정을 받았을 때 환호하는 기쁨에 사례를 한다며 10만원을 보너스로 주더군요. ㅎㅎㅎ 연화심이 정중이 거절했지요. 그런 마음 쓰실 것 없다고 댓가를 안 받은 것도 아니니 정중히 거절했지요. 재차 권해도 받지 않으니 10만원 짜리 상품권을 하나 주더군요. 과공(過恭)은 비례(非禮)라 받아왔지요. ㅎㅎㅎ 제가 그 정도 재력이 있어 가족에게 장장 6개월이 넘게 쉬지 않고 헌신적으로 살펴 주었다면 보수를 넘어서 인정을 살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기사 과거 병원에서도 포기했던 사람을 정성을 다하여 살려서 회복시켰더니 찾아와 고맙다는 인사는 커녕 잠적한 일도 있으니 사람의 마음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그 때는 가엾은 마음에 돈까지 빌려주고 떼이었으니... ㅠㅠ
완쾌 후 3개월이 흐른 시점입니다. 지난 번 간병인과 도우미간의 알력에 대해서 올린 바 있지요? 문제의 도우미는 암완치 판정 바로 직전 간병인과 알력이 있어 스스로 물러났는데 마지막 간병인은 오늘까지 남았습니다.
그런데 얼마전 이야깁니다. 몸이 많이 좋아지자 매일 매일 돈타령에 두 부부 사이에 신경전이 오갔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수기요법도 거르기 시작하 더니 한 주에 세 번 다시 한 주에 두 번 받다가 급기야 부르지 않더군요. 무려 보름 가까이 부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뜻을 짐작하지만 저러면 안 되는데 싶었습니다.
지난 12월 23일 전화가 왔습니다. 목소리는 그래도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연화심이 달려갔더니 그 동안 몸이 완전히 악화되었다고 그러더군요. 몸이 퉁퉁 부었는데 그 집 식구들은 한결같이 음식을 잘 먹어서 몸이 살쪘다고 여기고 있더라는 이야깁니다. 심지어는 방문 간호사조차 살이 찐 건지 부은 건지 알 수 없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연화심이 기가 막혀 "이것은 살이 찐 것이 아니고 퉁퉁 부은 겁니다. 빨리 의사한테 보여서 조치를 받아야 합니다." 일단 수기요법을 한 다음 24일에도 예약을 했는데 24일 아침 병원에 간다고 예약을 취소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가셨거니 하고 있었는데 25일 낮에 전화 연락이 왔습니다. 마침 시간이 여의치 않아 밤 7시에 예약을 받아 갔는데 고인이 은행을 드시고 있더랍니다. 모두 열 개였다고 하네요. 그래서 연화심이
"그것 드시면 안 되시는데... "
하니 말랑말랑해서 괜찮다며 먹겠다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그러면 다섯 개만 꼭꼭 씹어서 드세요." 하니 옆에 있던 도우미 아주머니가
"나는 서른 개 먹어도 끄떡 없는데요?" " 아줌마는 건강하시지만 사모님은 환자잖아요." 옆에 있던 회장도
"은행을 많이 먹는 건 안 좋지." 하며 만류를 했으나 고인은
"식으면 딱딱해서 못 먹어요." 하며 기어코 다 먹더랍니다. 그러면서
"아들이 보고 싶으니 오라고 해라." 하니 회장이
"사업에 바쁜 애들을 무엇하러 오게 하냐 나중에 보면 되지..."
그리고 나서 잠시 후 수기요법을 하려 하니 가슴이 아프다며 통증을 호소하고 한편으로 배변을 호소해 부축하여 가려던 중 옷을 입은 채 배변을 보아 그 양이 상당했다고 합니다. 빨리 119를 부르는 등 소동이 일어났지요. 그 분비물을 연화심과 간병인이 다 치웠다고 하네요. 연화심이 회장님한테 그랬다고 하네요.
"혹, 병원에서 회복되었다 하더라도 퇴원하지 마시고 입원하세요."
119 구급차에 실려 간 것을 보고 연화심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돌아와 저한테 하는 소리가 "아무래도 회장님은 홀로서기 하셔야 할 것 같아."
25일 밤 구급차에 그렇게 실려갔는데 그 이튿날 아무 소식도 없기에 괜찮은 모양이다 하며 궁금해도 참고 있었는데 27일 아침 서두에서 말한 바와 같은 소식 을 듣게 된 것입니다. 참으로 허망하기 짝이 없더군요.
어제 문상을 하고 회장님을 뵈었는데 의외로 밝은 모습이어서 다행이라 생각 했는데 기사에게 들으니 어제는 하루 종일 자책하며 울었다고 하네요. 또 들으니 24일 병원에 가셨는 줄 알았는데 회장과 사모님간에 언쟁이 높았다고 하네요. 회장이 뭘 가느냐고... 내년 1월 4일에 가기로 하지 않았느냐고 하며... 이것이 다 병원에 가면 돈만 깨진다고 생각한데서 온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을 한탄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동안 그 어려운 항암 치료를 이겨내고 몸을 회복하던 중 식이요법에 관심이 없고 과다한 영양 보급과 돈 때문에 방심하면서도 고가의 좋다는 것은 다 드셨으니... 공진단, 차가버섯, 상황버섯... 거기에다 고단백 음식 과영양으로 혈관에 기름이 끼고 몸이 붓는 지경에 이르렀고 과한 식욕으로 급체하여 어이없게 죽음에까지 이르렀으니... 은행알이 최후의 식품이었지만 고기는 안 된다고 그렇게 이야기했건만 지금까지 연화심의 말은 안 듣고 주변의 말만 귀기울인 까닭이지요. 하기사 주변에는 의사 약사가 많았으니...
황혼의 나이에도 재물은 쌓고 쌓고 또 쌓으려는 욕심... 황금이 수미산만해도 욕망은 끝없으리... 욕망무한이나 욕망의 끝은 언제나 후회와 한탄 만 남는 법임을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상은 살아가는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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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무묘법연화경()()()
두 분 내외가 환상의 짝궁이었는데... 우리와 생각은 많이랐어도... _()_
돌아가셨군요. 지난 번 모임에서도 좋아졌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은데 끝까지 살펴야 할 것을 안일하게 생각한 것이 화근이었군요. 백우님 말씀을 들으니 인생사가 허망하기 그지 없군요. 갑자기 먼 산을 바라보게 만듭니다. _()_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_()_
매일 갔을 때는 스스로 잡고 일어설 정도였고 부면 보행도 가능할만큼까지 되어서 미국도 가시려고 했었지요. 그런데 대개는 웬만해지면 최초의 생각이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_()_
돈이 아무리 많아도 자기한테 쓰는 것도 아까울까요? 좀 이해가 안 되지만....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_()_
예전에 임파 말기암 환자가 있었습니다. 온 몸이 그야말로 통나무처럼 되어 목불인견이었습니다. 그런 중에 사업은 부도가 나 살 길이 막막하여 가지고 있던 자가용을 부인이 팔려고 하니 못 팔게 하더군요. 너무나 아까운 차라...
고인에 명복빕니다
오온이 허망함을 안다면... _()_
꾸준하게 회복이 잘 되셨는데, 보름정도 만에 악화되어 황망하게 떠나시니 어이없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
인생무상을 느끼게 됩니다. 그 동안 수고 많았습니다. _()_
한해가 저물어가는 막바지에 저도 제가 사랑하는 외삼촌을 떠나 보냈습 니다 외삼촌께서 뇌출혈로 여름에 쓰러지셨는데 많이 호전되었거든요... 식이요법을 하여야 하는데...그동안 고기 술 담배 를 하셨다네요. 안타까운 일 이였답니다 나무지장보살마하살_()_
중풍환자는 술는 금물이지요. 정말 그 습(習) 그 한 없는 욕망이란 끊기 어려운 모양입니다. 설사 죽는 한이 이어도...
+건강은 돈과명예나 어떤것과도 나눌수가 없는것입니다 늘 건강신경쓰새요~~
우선 순위에 재물 제일은 가장 위험한 발상이지요. 건강에 만전을 기해야겠습니다. 늘 건강하세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