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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
이중섭(1916-1956)
▼ 이중섭(李仲燮, 1916.4.10 - 1956.9.6) 한국의 서양화가. 작풍(作風)은 포비슴(야수파)의 영향을 받았으며 향토적이며 개성적인 것으로서 한국 서구근대화의 화풍을 도입하는데 공헌했다. 담뱃갑 은박지에 송곳으로 긁어서 그린 선화(線畵)는 표현의 새로운 영역의 탐구로 평가된다. 작품으로 《소》(뉴욕현대미술관 소장), 《흰 소》(홍익대학교 소장) 등이 있다. 호 대향(大鄕). 평남 평원(平原) 출생. 오산고보(五山高普) 졸업. 일본 도쿄문화학원[東京文化學院] 미술과 재학 중이던 1937년 일본의 전위적 미술단체의 자유미협전(自由美協展:제7회)에 출품하여 태양상(太陽賞)을 받고, 1939년 자유미술협회의 회원이 되었다. 1945년 귀국, 원산(元山)에서 일본 여자 이남덕(李南德:본명 山本方子)과 결혼하고 원산사범학교 교원으로 있다가 6·25전쟁 때 월남하여 종군화가 단원으로 활동하였으며 신사실파(新寫實派) 동인으로 참여했다. 부산·제주·통영 등지를 전전하며 재료가 없어 담뱃갑 은박지를 화폭 대신 쓰기도 했다. 1952년 부인이 생활고로 두 아들과 함께 도일(渡日)하자, 부두노동을 하다가 정부의 환도(還都)와 함께 상경하여 1955년 미도파(美都波)화랑에서 단 한 번의 개인전을 가졌다. 그후 일본에 보낸 처자에 대한 그리움과, 생활고가 겹쳐 정신분열병증세를 나타내기 시작, 1956년 적십자병원에서 간염으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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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_ 짧은 일화 모음
친구들이 그림 값을 받으면 모여든다. 그러나 그의 비판자는 그에게 돈을 쓰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되풀이 권한다. 그러나 중섭은 <저 사람들이 보고 있는데 어떻게 이걸 가지고 간단 말야>라고 말하고 상투적으로 대여섯 번 다방을 들락날락하면 빈 호주머니가 된다. ♥
영도에서 유일한 개털오버를 술집에 잡히고 술을 마시고 대한도기에 있는, 황염수, 김서봉의 방에 와서 오들오들 떠는 일이 있었다. 황은 <찾아오라>고 몇 푼 모아둔 것을 주면,
"그래. 그래. 꼭 찾아오겠다."
" 꼭 찾아와야 한다."
그러나 한참 있다가 술이 거나해져서 돌아오고 오버는 둔 채였다. ♥
중섭에게는 그림 자체가 문학과 매우 가깝다는 사실과 함께 문학쪽의 친지가 언제나 있어야 했다. 통영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유치환, 김상욱, 이영도가 있다. 화가들과 시인들은 한데 어울려 술을 밤새 마셨다. 결국은 술주정을 하다가 쓰러진 사람, 어디론가 뺑소니를 친 사람 사이에서 대좌하고 있는 것은 유치환과 중섭이었다. 김상욱도 그의 양철 지붕 두들기는 것 같은, 침과 거품이 함부로 튀어나오는 사나운 예술론을 외쳐대고는 사라졌다. 박생광은 벌써 쓰러져서 낙천적이고 조용한 잠에 빠졌다. 독신 유강렬도 그의 학원으로 돌아갔다. 결국 남은 친구들은 떠들고 소리치다가 쓰러져 있었다. 유와 중섭만이 먼동 틀 때까지 대작했다.
" 이 선생, 먼통이 트니 한잠 잘까요."
"그러죠. 눈을 붙입세."
두 사람은 자기자신을 과장해서 말하지 않는다. 유의 시는 묘사의 과장과 장식이 너무 많고 중섭의 황소 역시 쇠불알이 과장된다. 그러나 그들만이 남겨진 술자리에서는 담담한 표현 부족의 희열만이 있었다. 잠자리에서 유치환은 교장답지 않게 음탕하게 웃어제치면서, <이 형은 쇠불알이 그리고 싶어 소를 그리지요?> 라고 비밀을 토로하듯이 묻는다. 중섭도 그런 대답으로는 안성맞춤이다. <그럼요. 쇠불알 덕분에 소가 좋지요. 고 말랑말랑하고 맹당한 주머니에는…만물…삼라만상이 다 들어 있외다. 헤에>....중섭은 이렇게 지내면서도 전람회가 끝난 뒤 그림 값을 거둬가지고 통영에서 실컷 마신 다음 대구로 떠난다. 그 돈을 대구에 가서도 뿌릴 작정이다. 중섭에게 돈을 쓰지 말라고 충고하면 <바보, 너 같은 속물!>이 라고 격렬하게 말하는 일도 있다. ♥
음울한 명동에 중섭이 왔다는 뉴스는 이상한 자극이 되었다. 동료화가들은 그런 소식을 듣자 골목에서 드럼통 노천점 집에서 마치 잠복한 형사들처럼 중섭이 나타나는 것을 대기하고 있었다. 그날 밤 술을 마시고 중섭 일행은 위상학의 집으로 갔다. 가회동의 큰 집이었다. 상학은 운천에서 미군 부대의 전속 초상화를 맡아서 그렸기 때문에 부자가 되었다. 그래서 집을 산 것이다. 그러나 그 사실은 남에게 알려지기를 꺼릴 만큼 수치가 되고 있었다. 예술에 대한 죄의식이 있었다. 집은 넓은 정원이 있고 정원수가 가득하고 2층의 고급주택이었다.
"야! 집 크다"
"뭘"
"이런 집 팔아서 그림이나 실컷 그릴 일이지. 왜 이런 집을 차지하고 있지?"
중섭의 첫마디에 상학은 고통스런 충격을 받았다. 최영림, 장이석, 황율엽도 차근호도 중섭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 말에 기가 질린 상학의 침묵 때문에 중섭은 당황했다.
"술 좀 줍세"
상학은 양주를 꺼내오려다가 소주를 사오라고 했다. 찌개를 끓이고 안주를 푸짐하게 장만했다. 그들은 술을 마시고 거의 곯아떨어졌다. 이런 일이 있었던 훨씬 뒤에 위상학은 그의 예술적 갈등 때문에 자살해 버리고 말았다. ♥
1955년 2월 이중섭전 직전에 정신 분열증의 발작현상이 보였다. 그래서 태응이 중섭을 개인전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 있으라고 했다. 왜냐하면 <내 그림은 가짜야!>, <내 소는 스페인 투우야>, <남덕아, 네가 밉다>라고 외치는 것을 태응이 목격했기 때문에 전람회장에 나타나면 틀림없이 걸린 그림들을 부술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 1차 후퇴 당시의 전시에 대구에 온 서정주가 피해 망상의 정신착란증을 앓은 것과 비슷한 증세였다. 서정주는 김일성이 죽이려 하기고 하고 그의 친구들이 모함해서 죽이려 한다는 강박 관념으로 조지훈도 그를 보살피는 구상도 의심했던 것이다. 대구는 6.25전란 중 위대한 두 예술가가 깊은 병에 잠겼던 곳으로 기념된다. 대구의 개인전 역시 술뿐이었다. 그림 값이 들어오면 우우 몰려와서 탕진해 버리고 만다. ♥
1956년 9월 6일 오전 11시 45분 간장염으로 입원가료중 사망, 이중섭 40세. 적십자 병원 사체 안치실의 흑판에 씌여 있던 내용이다. ♥
화가 이중섭과 가깝게 지내는 친구가 병원에 입원을 했다. 그 친구는 병상에 누워서 이중섭이 문병 오리라 생각하고 내심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당연히 문병을 올 줄 알았던 이중섭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다. 올 사람들이 거의 병문안을 다녀가고 며칠이 지나서야 어슬렁어슬렁 나타나는 그를 보고 친구는 반색을 했다.
“이 사람아, 그렇지 않아도 자네를 무척 기다렸는데 왜 이제야 오는 건가?”
“미안해. 벌써 찾아오려고 했지만 빈 손으로 올 수 있어야지”
“이 사람아, 그게 무슨 소리야! 빈 손으로 오면 어때서, 난 자네가 오는 것만으로도 고맙다구”
궁색한 살림을 하고 있는 이중섭의 형편을 뻔히 아는 지라 친구는 그의 조심을 나무랬다. 이중섭은 쭈뼛쭈뼛하며 들고 온 꾸러미를 친구에게 멋쩍은 듯 내밀었다.
“이게 뭔가?”
“내 정성일세. 이걸 가지고 오느라고 오늘에서야 왔네. 별거 아니지만 받아주게나”
“뭔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고맙네”
친구는 받아 든 꾸러미를 풀어보고 눈이 동그래졌다. 그것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아니, 이게 무슨 그림인가?”
“천도(天桃)를 그린거야. 예로부터 이 복숭아를 먹으면 무병장수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니 자네도 이걸 먹고 툭툭 털고 어서 일어나게”
과일을 사다 줄 돈이 없어서 복숭아를 그려 온 이중섭의 우정이 참으로 아름답다. 역시 참 우정을 빛내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 그 마음에 있음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일화다. ♥
"중섭은 참으로 놀랍게도 그 참혹 속에서 그림을 그려서 남겼다. 판자집 골방에 시루의 콩나물처럼 끼어 살면서도 그렸고, 다방 한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서도 그렸고, 대포집 목로판 에서도 그렸고, 캔버스나 스케치북이 없어서 합판이나 맨종이, 심지어 담배갑 은박지에도 그렸다. 또한 물감과 붓이 없어 연필이나 못으로 그렸고 잘 곳과 먹을 것이 없어도 그렸고, 외로워도 슬퍼도 그렸고, 부산 제주도, 통영, 진주, 대구, 서울 등 친구의 집을 전전하면서도 그저 그리고 또 그렸다."
구상의 증언으로 우리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생활과 그림이 일치되는 삶을 살다간 이중섭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다. ♥
대구 향촌동 번화가에 있던 백록다방은 지금은 ○○○로 변한 이 다방은 이중섭이 담배 은갑지를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렸던 기억이 남아있는 곳, 경북여고 동기동창이 운영했던 까닭에 소위 <인텔리> 손님들이 많이 모여들었던것이다. 이중섭에 대한 기억은 또 다른 곳에서도 발견된다. 백록다방 바로 건너편의 대포집에서 술자리를 자주 가졌다. ♥
1955년 1월 18일부터 27일까지 미도파화랑에서 이중섭 작품전이 열렸다. 모두 45점이었다. 함께 월남한 김인호가 전시장에 나타났다. 중섭은 그를 은지화가 걸려있는 쪽으로 데리고 갔다. 꽃구름이 떠 가고 그 아래 한 사람이 죽은 듯이 누워 있는 그림 앞에서 중섭은 "인호형 오장환 알지? 죽은 오장환 말이야. 이 꽃구름, 장환이 좋은데 가서 살라고 그린거야"
했다. 중섭은 부산에서 떠돌때 시인 오장환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슬픔을 은지에 옮겨 그린 것이었다. 10일간의 전시기간중 은지화 철거소동이 있었다. 은지화에 그린 그림이 춘화라는 이유로 철거명령이 내려진 것이었다. 은지화에 그려진 그림들은 대부분 그리운 가족들을 그린 유희도였다. 원산을 떠나기 전 광석동 집에서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벌거벗고 뒹굴던 그 시절을 회상하면서 그려진 그림들이었다. 중섭은 철거소동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수 없어 죽음을 무릅쓰고 월남해, 이번에는 춘화라는 이유로 그림이 철거당하자 중섭은 맥이 빠졌다. 작품전은 10일 동안 계속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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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_ 이중섭 편지모음
세상에서 제일로 상냥하고(?) 나의 소중한 사람, 나의 멋진 기쁨이며 한없이 귀여운 나의 남덕군. 따스한 마음이 가득 담긴 9월 9일자 편지 고마웠소. 내 편지와 그림을 그토록 기뻐해줘서 ...... 나는 더없는 기쁨으로 꽉차 있소. 책방의 돈 문제는 아고리가 떠날 때는 완전히 해결이 될 테니 염려 마시오. 태현이의 공부에 대해서는 너무 신경을 쓰지 말아요. 아빠가 가면 ...... 꼭 공부에 재미를 붙이도록 지도를 해줄 테니까 ...... 남의 집 아이는 아빠가 지도를 해주는데 ...... 싶어 너무 성급하게 무리를 하면 소중한 당신의 몸만 해치게 되오. 즐겁고 밝게 그리고 천천히 한 가지씩 노는 것보다 아빠 엄마와 함께 있는 것이 즐거울 테니 ...... 그 때 조금씩이라도 좋으니 싫증이 나지 않도록 지도해주구려. 학교 공부란 생활해가는데 있어서 약간만이 필요할 따름이오. 전부가 아니잖소? 당신과 나의 소중하고 믿음직한 두 아이들은 반드시 훌륭한 정신을 갖고 인생을 살아갈 가장 훌륭한 자식들이라고 믿고 있소.무엇보다 귀여운 마음의 아내 남덕군, 더욱더 밝고 마음 편히 모든 일을 처신해주기 바라오. 당신을 가장 행복한 천사로 만들어 보겠소. 안정을 지켜서 어서어서 건강을 되찾아 주오. 아빠는 당신과 두 아이들을 가슴 가득 채우고 더욱더 힘을 내어 열심히 제작하고 있소. 이제 한고비만 참으면 되오. 바짝 힘을 냅시다. ♥ (1954년 9월 한가위 날)
내 마음을 끝없이 행복으로 채워 주는 오직 하나의 천사, 나의 남덕군, 내가 최고로 사랑하는 남덕군. 지난해 8월에 당신과 태현이와 아고리군 셋이서 히로시마로부터 도쿄로 가서 꿈과 같은 닷새 동안을 보내고 온 일을 지금 생각하고 있소. ...... 뭐니뭐니해도 당신과 함께 있고 싶소. 빨리 서류를 갖추어서 보내도록 정원진 소령님에게 협력을 빌어 ...... 이번에야말로 확실한 성과를 얻도록 해주시오. 어머님에게도 잘 부탁을 드려서 ...... 여러분의 도움으로 ...... 성과를 거두도록 해주시오. 오늘로 1년째가 됩니다. 1년 또 1년, 이렇게 헤어져서 긴 세월을 보내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일이오.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함께 있지 않아 선 안되오. 당신과 아이들을 만나고 싶어서 얼마나 마음이 들어 있는가를 생각해보구려. 힘을 내주시오. 꼭 확실한 성과를 거두도록 하시오. 답장 기다리오. ♥ (1954년 8월 초순)
한순간도 그대 곁에 있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군요. 나의 소중한 특등으로 귀여운 남덕. 그 후에 더위를 견뎌 내면서 어느 정도 건강해지셨어요? 태현이와 태성이도 더위에 지치지 않고 잘 놀고 있는지요. 나의 감격인 그들의 하나하나의 동작을 내 눈으로 보고 싶소. 하나하나를 뜨거운 마음으로 표현하고 싶소. 하루 빨리 만나고 싶어서 못 견디겠소. 아빠도 팬티까지 벗어 던지고 일에 열중하고 있소. 아침저녁 언제나 집 뒤의 바위산, 풀덤불 있는 맑은 물에 몸을 씻고 바위산 마루에 혼자 올라가 ...... 밝은 달을 향해 ...... 당신과 아이들에 대한 끝없는 애정과 훌륭한 표현을 다짐했소. 당신과 아이들 생각으로 가슴이 조여서 어제 저녁엔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오. 당신과 아이들이 정말 보고 싶소. 당신과 아이들과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 보고 싶다, 보고 싶다를 되풀이 하기만 할 뿐 속절없이 소중한 세월만 보내고 있지 뭡니까. 왜 우리는 이토록 무능력한가요? 나의 생명이요 힘의 샘, 기쁨의 샘인 더없이 아름다운 남덕군, 더욱더욱 힘을 내어 서로 만나는 성과를 기약하고 버티어 갑시다. 우리들 서로의 지성이 오래잖아 이루어져 하나로 맺어질 때까지 좌절하지 말고 노력하십시다. ...... 여러분들의 협력을 성과 있도록 힘써 주시오. 하루 빨리 소중한 당신과 아이들 곁에서 단 1년 만이라도 제작을 할 수 있다면 ...... 발표할 자신이 넘쳐 날 지경이오. 발표한 대가를 울궈 내기로는 만만이오. 나의 오직 하나의 소중한 당신만은 내 자신, 강력한 제작 의욕을 진심으로 믿고 확신하고 있겠지요. 당신만은 아고리군을 기대하고 모든 정성을 다해주리라 믿소. 나의 가장 사랑하는, 귀여운 당신 ...... '선은 재빨리' 란 속담을 잊지 말고 우리 네 가족만이 사랑하고 지켜 나갈 소중한 시간을 아끼고 지켜 나갑시다. 자, 힘껏 힘껏 서로 껴안읍시다. 내 따뜻한 뽀뽀를 받아 주시오. 강하게 강하게 껴안아 우리들의 소중한 아름답고 건강한 시간을 지키십시다. 큰 표현을 합시다. 꼭 한 주일에 한 번씩은 편지 주시오. ♥ (1954년 8월 14일)
오늘이 7월 13일이오. 영진군과 함께 친구가 빌려 주는 밝고 조용하고 제작에 는 안성맞춤인 훌륭한 집 이층으로 이사를 하오. 기뻐해주구려. 내일부터는 혼자서 서울에선 최초의 소품전을 위한 제작에 들어가오. 그립고 가장 사랑하는 남덕군, 진심을 다해서 한없는 응원을 부탁하오. '아고리군, 힘을 내라'고. 내일 다시 이사간 새 제작 방에서 기운 넘치는 편지를 쓰겠소. 아무 걱정 말고 안정에 유의해서 하루 빨리 건강을 회복해 주시오....... 당신의 건강 상태도 자세하게 알려 주시오. 발가락군, 태현, 태성, 남덕군에게 긴 뽀뽀를 보냅니다.
서울 특별시 종로구 누상동 166의 10 이중섭 선생
위에 쓴 주소로 답장을 보내 주시오. ♥ (1954년 7월 13일)
나의 소중한 최애의 남덕군, 그후 건강 상태는 어떠한가요? 며칠 전에 보낸 편지는 받았으리라 믿소. 대한미술협회전에 출품한 세 작품은 가장 좋은 평판을 받고 있소. 한국, 동아, 조선 세 신문에 아고리군의 작품이 최고 수준이란 호평이 실려 있소. 오는 두 시경 소품전의 작품 제작을 위해 친구의 집 이층으로 이사를 하오. 서울은 방 얻기가 힘들어 지금까지 고생을 했소 만 ...... 요행히 친구가 널찍한 자기 이층 방을 그냥 빌려 준다기에 오늘 이사를 하오. 이번 이사를 하고 나면 꼬박꼬박 편지를 내리다. 아무 것도 걱정 말고 정양에만 힘을 쓰면서 기다려 주구려. ...... 그럼 내일 신문과 사진과 자세한 것을 써서 보내리다. ♥ (1954년 7월 11일)
나의 가장 사랑하는 남덕군, 그동안도 건강한가요? 덕분으로 일주일쯤 전에 무사히 서울에 닿았소. 6월 25일부터의 대한미술협회와 국방부 주최의 미전에 세점(10호 크기의)을 출품했소.ㆍㆍㆍ 아고리의 작품 세점이 제법 좋은 평판인 것 같소, 첫날에 아고리의 작품을 사겠다는 사람이 있어, 한 점은 이미 매약(買約)이 되었다오. 미국 사람(미국의 예일대학 교수)이 아고리군의 작품을 칭찬하면서, 자기가 모든 비용을 내어 줄 테니 뉴욕으로 작품을 가지고 와 개인전을 하라고 권해줍디다. 2,3일 후 찾아가서 약속을 할 생각이오. 이번에 낸 작품이 평판이 아주 좋았으니까 서울에서의 소품전도 반드시 성공하리라고 친구들은 자기들 일처럼 기뻐하면서 하루 빨리 소품전 제작을 시작하라고 권해줍디다. 일주일 후에는 친구가 방 한 칸을 빌려 준대요. 쌀값도 다 해준다는 얘깁니다. 다시 없는 나의 남덕군, 태현이, 태성이를 위해서, 대제작(표현)을 위해서, 힘껏 버티겠소. 기어코 승리를 할 테니까 기대하고 그 때까지 안정에 유의하고 하루 빨리 기운을 내어 주시오. 아고리군의 평판이 좋다는 걸 어머니께도 전해주구려. ♥ (1954년 7월 4일)
나의 귀중하고 귀여운 남덕군, 4월 13일에 부친 편지 받았는지요? 조금은 속 태우지 않고 안심하고 있는지...... 원산, 부산, 제주도까지 헤매면서 온갖 죽을 고비를 넘어온 대향과 남덕의 애정은 더할 나위 없이 건강하게 단련되어 현재 태현, 태성이는 점점 늠름하게 자라나는 것이 아니겠소? 더욱 더 시야를 넓혀 유유히 세상을 바라보면서 나의 새로운 회화예술을 완성해 가겠소. 이제부터는 가난쯤은 두려워 하지 말고 용감하게 인생의 한복판을 매진해갑시다. 나는 언제나 생각하오. 나의 귀여운 남덕군은 화공 대향에게는 꼭 알맞은, 참으로 훌륭하고 멋진 아내라고. 이토록 들어맞는 귀엽고 참된 여인을 하늘은 대향에게 잘도 베풀어주었다고. 화공 대향은 실로 귀여운 남덕을 어떤 방법으로 사랑해야만이 남덕의 아름다운 마음에 대향의 애정이 가득히 넘칠는지 지금도 열심히 생각하고 있다오. 나의 품안에 포옥 안기는 자그마하고 귀여운 단 한 사람의 나의 아내여, 안심하고 나를 믿고 기다려봐주오. 우리들 부부보다 강하고, 참으로 건강한 부부는 달리 또 없을 게요. 대향은 남덕이를 믿고, 남덕이는 대향을 또한 믿고 있지 않소? 세상이 이처럼 분명한 사실이 또 어디 있겠소. 나는 지금 남덕이를 포옹하고 나의 큰 가슴을 울렁이고 있소. 어떤 일이 우리들 네 가족 앞에 부딪치더라도 조금도 염려할 것은 없소. 진실하고 귀여운 나의 남덕군, 대향은 게으른 사내 같지만 유유히 강해가고 있소. 화공 대향은 자신만만이오. 대향은 반드시 남덕을 행복하게 해보이겠소. 그대들에게로 갈 패스포드에 쓰기 위해 3, 4일 전에 찍은 사진이오. 보고 있으면 조용하고 여유 있고 자신에 넘치는 모습이라고 생각지 않소? 이 사진에 몇 번이고 입맞추어주오. 태현이, 태성이에게도 보여주구려. 어머님께도 한 장 드리고 곧 답장을 주오. 소중한 가락군이여, 당신의 깜박이는 귀여운 눈이며, 나의 커다란 손가락 등에 대하여 많이 써보내주기 바라오. 대향의 머리 속과 가슴에는 귀여운 남덕군의 일로 꽉차 있소. 당신을 힘껏 포옹하고 몇 번이고 입맞추오. 그럼 건강하오. ♥ (1953년 4월 중순)
나의 귀엽고 소중한 남덕군, 당신의 편지 무척 기다리고 있던 중 3월 3일자 편지 겨우 받았소. 당신의 불안한 처지 매일 밤 나쁜 꿈에 시달리며 식은땀에 흠뻑 젖은 당신을 생각하고 대향은 남덕군에게 그리고 어머님에게 정말 미안하고 면목이 없소. 3월 4일에 낸 내 편지에 부탁한......(새로운 서류 각각 한통씩) 그걸 받으면 당신에게 전화하고 열흘 이내에 부산을 떠나겠소. 더 빠를는지도 모르겠소. 얼마 안 있어 만나게 되오...... 이제부터는 애처, 애아를 위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길이 여러 가지 있으니까 염려하지 말고 나쁜 꿈과 식은 땀에 시달리지 않도록 충분한 섭생을 하시오. 지금까지 나는 온갖 고생을 해왔소. 사경을 넘어 분명히 아직도 대향은 살아남아 있으니까 이제 조금만 더 참으면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을 만난다는 희망과, 생생하고 새로운 생명을 내포한 '믿을 수 있는 새로운 방향'을 지시하고, 행동하는 회화를 그릴 수 있다는 희망으로 참고 견뎌왔던 것이오. 지금부터는 진지하게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의 생활 안전과 대향의 예술 완성을 위해서 오직 최선을 다할 작정이니 나의 귀엽고 참된, 나의 내심의 주인 남덕군, 대향을 굳게 믿고 마음 편하게 밝고 힘찬 장차의 일만을 생각하면서 매일매일을 행복하게 지내주시오. 나의 소중하고 귀여운 사람이여! 참 화공인 중섭 대향 구촌을 마음으로 열심히 기다리고 있어주시오. 나의 소중한 보배, 발가락군을 소중하게 아껴주시오...... ♥ (1953년 3월 중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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