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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글쓰기교육에 올인하는가?
유병률 / 딜리셔스 샌드위치 (Delicious Sandwich) pp.177~181,2008,웅진윙스
하버드대학의 교육목표는 세계적인 리더를 만들어내는 데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미국의 대통령부터 정치, 외교, 행정, 비즈니스……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하버드 출신들이 요직을 차지하고 있지요. 그런데 이 하버드대학이 하버드 출신을 배출하면서 가장 신경쓰는 분야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글쓰기’입니다. 작가양성소도 아니고, 그렇다고 졸업생을 모두 언론사 기자를 만들 것도 아니면서, 왜 글쓰기과목을 제대로 이수하지 않으면 졸업도 안 시켜주는 걸까요?
그것은 바로 이 명문대학이 목표로 하는 세계적인 리더의 양성을 위해 가장 필요한 자질이 글쓰기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역으로 이렇게 철저히 글쓰기교육을 시키는 학교이기 때문에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요.
이 대학 교육대학원의 리처드 라이트(Richard Wright) 교수는 『하버드 수재 1,600명의 공부법』에서
"하버드생들이 4년 동안 가장 신경쓰는 분야가 바로 글쓰기다.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할 줄 아는 능력은 대학생활은 물론 직장에서도 가장 중요한 성공요인이다."
라고 강조합니다.
하버드대학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글쓰기 프로그램을 갖고 있습니다. 1872년에 만들어진 것이지요. '익스포스(Expos)'라고 부르는데, 바로 논증적 글쓰기 프로그램(Expository Writing Program)입니다. 그들이 '하버드의 전통' 이라고 자랑하는 이 프로그램은 하버드에 입학하면 누구나 한 학기를 수강해야 하는 과목입니다.
프로그램이 녹록치 않습니다. 굉장히 '빡셉'니다. 익스포스10, 익스포스20, 익스포스52 등 세 단계가 있는데, 여러 편의 논문을 써야 하는 것은 기본이지요. 논증전개 방법, 근거자료를 종합하고 인용하는 방법, 표절을 피하는 방법, 문장이나 단락을 명료하게 표현하는 방법, 문체론 등을 배웁니다. 문장유형, 메타포, 리듬, 아이러니, 역동성 등에 대한 강의가 이루어지고, 베이컨, 에머슨, 디킨슨, 로렌스, 오웰 등의 작품 문체에 대해 토론도 합니다.
무엇보다 독특한 것은 이 프로그램의 교수진이 각양각색이라는 점입니다. 모두 40여 명인데, 이들 가운데 전공이 영국 문학이거나 미국 문학인 사람은 절반 정도밖에 안 됩니다. 나머지는 철학, 미국 역사, 유럽 역사, 환경, 문화인류학, 러시아 문학, 사회학, 대중문화, 시각문화, 공연, 음악, 생리학 등 전공도 관심분야도 가지가지입니다. 켈트문학을 전공하고 가수와 뮤지션으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도 글쓰기 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온갖 종류의 백그라운드를 가진 교수진이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지요. 글쓰기 테크닉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사고의 전개과정을 가르친다는 얘기 아니겠습니까? 영문학과 교수가 어떻게 천체과학에 대한 글쓰기를 지도하겠습니까? 글쓰기 자체를 이미 문학에서 완전히 떼어내 오히려 분석적이고 과학적인 영역으로 옮겨놓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학생들에게 제공되는 글쓰기 가이드책자도 종류가 가지가지입니다. 심리학 관련 글쓰기, 종교학 관련 글쓰기, 동아시아 연구에 대한 글쓰기, 생명공학에 대한 글쓰기, 철학에 관한 글쓰기, 음악에 대한 글쓰기 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생명공학에 대한 글쓰기 가이드를 보면 이런 설명이 나옵니다.
글쓰기는 다른 과학자들은 물론 과학에 대한 아이디어와 과학적 발견에 대해 커뮤니케이션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글쓰기는 과학을 연구하는 과정의 한 부분이다. 실험노트를 작성하고, 연구제안서를 쓰고, 연구논문 형태로 스토리를 얘기하는 것 모두가 과학적 사고에 없어서는 안 될 부분이다.
그래서 이 가이드책자에는 실험노트, 연구제안서, 연구논문, 과학논문에 대한 비판과 대중을 위한 글쓰기 등에 대한 상세한 방법론이 실려 있습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익스포스의 이 '생명공학 글쓰기강좌' 가 두 가지 접근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하나는 글쓰기를 통해 과학적 사고를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 또 하나는 과학을 통해 글쓰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입니다. 그래서 강좌는 자신의 과학전공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익스포스에 들고 와서 글쓰기를 하는 식으로 진행됩니다. 한마디로 글쓰기 커리큘럼과 과학 커리큘럼이 통합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해야 훌륭한 작가이자 훌륭한 과학자를 배출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
하버드는 익스포스의 목적을 설명하면서
"글쓰기와 사고력은 떼려야 뗄 수가 없다. 훌륭한 사고력은 훌륭한 글쓰기를 필요로 한다"
고 말합니다.
하버드대학뿐만 아닙니다. 경제계의 리더를 육성하는 비즈니스 스쿨도 마찬가지입니다. 와튼스쿨은 글쓰기와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을 교육의 최우선순위에 두고 있습니다. 모든 학생이 '글쓰기세미나'를 수강해야 합니다. 비판적인 사고와 문제해결능력을 길러주기 위해 와튼스쿨은 비즈니스 교육을 예술, 과학 교육과 결합하고 있습니다.
또 인디애나대학 켈리스쿨은, 글쓰기만 따로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취지에서 모든 커뮤니케이션 수업에서 글쓰기, 말하기, 듣기, 팀워크를 통합시킨다고 합니다. 펜실베이니아 주립대는 이 대학의 스밀(Smeal) 비즈니스스쿨의 글쓰기 모듈을 전학생이 수강해야 합니다. 리치먼드대학의 한 회계학 교수는 자신의 중급회계학 수업에서 비즈니스와 관련없이, 학생들에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책에 대해 페이퍼를 쓰라는 숙제를 낸다고 합니다.
미국의 기업들도 글쓰기능력을 우선순위에 두고 인재를 뽑고 있습니다. 글쓰기 능력은 비즈니스 전공자들이 일자리를 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인베스트뱅크, 컨설팅회사뿐 아니라 테크놀로지회사까지 리쿠르팅 기준 최상위에 랭크되어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미국은 온 나라가 글쓰기에 목숨 건다 해도 과언이 아닌 듯 싶습니다. 스스로 리더국가로 자부하는 미국인 만큼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대입-대학교-입사-직장생활 등으로 이어지는 인생의 큰 굽이마다 글쓰기능력은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가장 우선적으로 교육됩니다. 대입전형에서는 학업성적 외에 SAT, 과외활동 및 수상경력, 추천서, 면접 그리고 에세이 등을 요구합니다. 이 가운데 에세이는 단독항목으로서 큰 비중을 차지할 뿐만 아니라 SAT 내 과목으로도 지정돼 있습니다. 글쓰기로 대학가고 글쓰기로 취직한다고 해도 과장은 아닙니다.
2007년 '미국대학설명회'를 위해 한국에 온 하버드대 낸시 소머스 교수는 국내 한 주간지에 이런 글을 기고했습니다. 소머스박사는 익스포스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버드는 사회에서 논리적인 사고가 가능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익스포스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논리적 글쓰기 능력은 단순한 학습효과를 뛰어넘어, 능동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지난 사회인으로서의 덕목을 실현시켜 주는 것이다. 생각을 탄생시키는 논리적 글쓰기 능력은 학문적인 내용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 전분야에 꼭 필요한 과제다."
정리하면, 공부를 잘 시키기 위해서 뿐 아니라 능력 있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그렇게 모질게 글쓰기 훈련을 시킨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인재양성이나 리더교육을 위해 왜 글쓰기가 이렇게 중요한 걸까요? 보다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 보다 합리적인 사고의 정리를 위해 글쓰기보다 더 유효한 수단은 없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면서 자신의 주장을 정리하고, 글로써 보다 명료하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고, 보다 선명한 '소통'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래위로 납작 짓눌리지 않고 세대구분 없이 원활하게 '소통'하고, 자기 삶의 키를 스스로 쥐고 살아가며, 나아가 어떤 분야에서든 리더가 되려면 이렇듯 글쓰기능력이 필수적입니다.
첫댓글 창의력을 중시하는 게 교육의 키워드라고 봅니다. 글쓰기가 창의력의 길잡이라고 봅니다. 더 중요한 거는 협동입니다. 우리 같은 소모적 경쟁보다 협동으로 함께 이뤄가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그런 공동체의식에서 혼자 할 수없는 많은 것을 해낼 수 있고 나눌 수있습니다. 소모적 경쟁의식으로 뒤에서 험담하고 끌어내리려는 도발이 내 인생에서 가장 가슴 아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