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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을 하다보면 - 송추.,'여성봉 & 오봉'
송추는 송추유원지를 비롯하여
인근에., 일영유원지 장흥유원지.
예나 지금이나 풍광이 좋은 명승지.
일영역
장흥역
온릉역
송추역.
의정부역
예나 지금이나
'추억의 교외선'
어느 역에서 하차를 해도
역 인근 풍경이.,아름답다.
자전거를 타고 구석구석 한바퀴 돌면,
양주시 명승지 그 아름다움에 매료 당한다.
'서울 근교에 이렇게 멋진 곳들이 숨어 있었나?'
국내는 물론이고
전 세계를 둘러봐도
이 만한 곳은 없는듯..
'개인적인 편견일까?'
구슬이 3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다. - 속담.
진주알 같은 명승지는 구석구석 많이 있지만
진주목걸이처럼 하나로 꿰어지지 않은.,아쉬움.
세계적인 관광자원으로 내놓아도
손색없는 명소들이 수없이 많은 곳.
보물찾기 하듯 다니다 보면 흥미롭다.
.....................권율장군 묘................
정유재란 명장 권율(權慄, 1537∼1599)과
정부인 창녕 조씨, 후부인 죽산 박씨의 묘.
조선 중기 문인 권율은 백사 이항복의 장인.
권율은 안동 권씨로 선조 15년(1582) 문과급제 후
여러 벼슬을 거쳐 의주목사로 근무하던 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라도 광주목사에 임명되었다.
한양 수복을 위하여 북상하였으나 용인싸움에서 패하자
다시 광주로 돌아가 군사를 모아 충청도 금산 이치싸움에서
왜적을 대파시켜 전라 지역을 지켰고 이어 한양수복을 위하여
다시 북상 중 수원 독산산성 진지구축 후, 왜군의 진격을 막았다.
이후 행주산성으로 진지를 옮겨 대승.
권율은 이 공으로 전군지휘하는 도원수.
선조 29년(1596) 충청도 관찰사가 되었다.
선조 32년(1599) 관직을 물러나
그해 운명하자 영의정으로 추증.
조선시대 신도비는 종2품 이상 공신이나
훌륭한 학자에게 허용된 것으로 권율 묘역은
이 원칙에 충실하며 묘역 입구 신도비는 기존의
신도비 비문이 닳아 철종 12(1861) 후손이 새로 건립.
1971년과 1999년 정화사업으로 묘를 새롭게 단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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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율은 슬하에 금지옥엽 무남독녀 외동딸 뿐.
하여, 백사 이항복은 처가살이 한 것으로 유명.
어릴때 부모를 일찍 여윈 백사는 아들 같은 사위
고지식했던 권율과 재기가 넘쳤던 이항복
장인사위 관게를 초월한 친구 같은 사이였다.
................이항복 일화......................
이항복과 권율의 집은 담 하나 사이.,이웃.
마침, 이항복의 집에는 감나무가 있었는데,
감나무 가지가 권씨 집으로 뻗어 넘어가자
권씨 하인들이 따 먹는 일이 자주 벌어졌다.
이 광경을 지켜 본 어린 이항복.
무작정 권율의 집으로 찾아가서,
권율의 부친인 정승 권철의 방문에
당돌하게 대뜸 주먹을 찔러 넣었다.
“이 주먹이 누구 것입니까?”
문창호지가 푹 찢어졌음에도
권철은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
“이놈아, 그야 네 주먹이지.”
“그런데 왜 대감님댁 하인들이
우리 집 감나무에서 뻗어나간 감을
마음대로 따 먹게 하십니까?” - 이항복
어린아이의 당돌함에 기가 찬 권철은
하인들을 불러 감을 되돌려주라고 명했고,
이항복은 그제야 으스대며 집으로 돌아왔다.
권철은 속좁은 사람이 아닌 위인이었다.
그는 이항복이 큰 인물이 되리라 여겼다.
훗날 권씨 집안은 이항복을 사위로 맞는다.
이 감나무 사건은 권철이 1565년 우의정이 되고 난
이듬해 명나라에 다녀온 후 몇 년 사이에 일어난 일.
사실 이항복의 부친과 권철은 관직생활을 같이한 사이.
명종 19년(1561년)에 권철은 우찬성이 되었고
이몽량은 1562년 우참찬이 된 서로 정치적 동지.
하지만, 이몽량은 이항복이 9세 때 일찍 운명했다.
그러나 권철은 영의정이 된 후에,
16세 때 어머니마저 잃고 홀로 된
이항복을 손자 사위로 맞아들여서
3대의 소중한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권율은 임진왜란이 벌어진 7년 동안
조선 군대의 최고지휘관으로 활약하며
선무공신 1등으로 책록되었지만, 권율은
사위 이항복보다 2년 늦게 식년문과에 급제.
권율은 임진왜란 내내 병조판서 이항복의 지휘를 받았고
사위의 기지와 해학에 시달림을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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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장난이 심한 이항복은 선보는 날에
집에 친구들을 불러들여 인절미를 나눠주며
"신부 앞에서 몽둥이로 자신을 때리는척 하라."
신부는 이에 당황하지 않고
"선을 보려면 겉선이나 보시지
속선까지 보시렵니까?" 라고 응수.
그후, "부부 인연을 맺었다." 전한다.
오성과 한음.,이야기
오성 이항복은.,한음 이덕형과는.,절친 관계.
오성이 한음에게 부인과 정을 통했다고 농담.
한음 부인은 그 말을 전해듣고 오성을 초대한다.
한음 부인은 오성이 떡을 좋아하는줄 알고
떡 속에 똥을 넣어 먹이고는 "거짓말을 하는
입에는 똥이 약이지요."라는 일화가 전해온다.
노고산 야영
북한산 전망대로서 각광받는.,노고산.
한북정맥 종주 야영장으로도 인기 높다.
또한 산악자전거 라이딩 코스로 인기 높다.
'오봉능선 & 상장봉능선'
노고산에서 바라본.,'상장봉 & 북한산'
노고산에서 바라본.,'장흥. 송추 & 북한산'
노고산 일출
노고산 월출
노고산., 산악자전거 라이더.
한북정맥.,노고산 백패킹
..................독재동(篤才洞)..............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 사는 마을'., 독재.
경기도 화성군에도 이와 같은 지명이 보이며,
마찬가지로 재주 있는 사람이 많은 마을.,독재동.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삼하리.,자연 마을.
주변에 서울외곽순환고속국도가 지나간다.
노고산의 해발 120m 지점에 위치한 독재동.
독재동이 자리 잡은 삼하리는 양주시 최남단.
일설에는 조정의 모함을 피해 온 사람들 피난지.
조선시대 양주군 장흥면 삼패하리 혹은
고양군 신혈면 선유동에 속한 지역이었다.
현재, LH 공사에서 곧 아파트 건립할 지역.
1914년 일제의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양주군 장흥면 삼하리 산65~66번지 일대.
2003년에 양주군이 양주시로 승격하였으나
당시 면 단위 이하 행정 구역은 바뀌지 않았다.
2011년 7월부터
양주시 장흥면
일영로 394-26.
어지러운 세상에서 손발을 씻으며
더러움을 씻어낼 샘.,‘가탁천(可濯泉)’
오랫동안 물줄기가 떨어진 탓에
돌 표면이 갈아졌다.,‘유마폭(流磨瀑)’,
부지런히 충과 서를 닦자는 뜻의 ‘충서근(忠恕勤)’,
미수(眉叟) 허목(1595~1682)이 만년에 머물던 곳.
‘미수선생장구지소(眉叟先生杖屨之所)’라는 암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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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기념물 제97호.
노고산 중턱., 곡릉천 계곡.
자연암반 9곳에 새겨진 암각문.
“미수선생장리지소(眉叟先生杖履之所)”
조선 중기 유학자 미수허목(1595∼1682)이
1658년 이곳 독재동을 다녀가면서 새겨진 것.
그 좌우에 “李時善□”과 “壬戌·篤才洞·記言始得”
미수 제자 이시선(1625∼1715)에 의해 새겨진 것.
.
또 다른 암반에는 가로로 “몽재(夢齋)”라는
웅건한 필세의 행서가 있는데(세로 약 50㎝),
말미에 “秋史”는 추사 김정희(1786∼1856) 필적.
“몽재”가 누구의 호인지는 미상이며,
그 아래 새겨진 “甲子·庚午·戊戌·甲寅”.
이란 간지도 무엇을 뜻하는지 미상이다.
이곳에 김정희 필적이 남겨진 연유는
확인되지 않지만, 1816년(순조 16)과 이듬해
진흥왕순수비를 살펴보고자 북한산에 두 차례
갔을 즈음에 이곳에 들리지 않았을까 추측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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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희(1786~1856)가 언제 써 놓았는지 알 수 없으나,
‘추사’ 호가 새겨져 있어 김정희의 글씨임을 알 수 있다.
노고산 독재동 추사 필적 암각문
(老姑山篤才洞秋史筆蹟岩刻文)
양주시 장흥면 삼하리 마을회관 맞은편
노고산으로 향하는 등산로 따라 2㎞ 오르면
노고산 북쪽 중턱의 계곡 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노고산 독재동 추사 필적 암각문 주위 계곡에는
‘가탁천(可濯泉)’·‘유마폭(流磨瀑)’·‘충서근(忠恕勤)’
‘만의와(萬懿窩)’ 등의 암각문들이 산재하여 있다.
마을 주민들은 ‘지붕바위’라고 부르는 곳에는
높이 280㎝, 전체 길이 11m 커다란 화강암 바위,
상단부터 하단까지 여러 암각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시선(李時善)이란 선비가 쓴.,암각문.
지붕바위 앞으로 계곡물 흐르는 작은 공터
노고산 등산 코스 및 쉼터로 활용되고 있다.
미수(眉叟) 허목(許穆)[1595~1682]
그가 지팡이를 놓았던 장소를 의미하는
‘미수선생장구지소(眉叟先生杖屨之所)’ 암각.
노고산 독재동 추사 필적 암각문은
추사 필체를 확인할 수 있는 유적이며
그외 여러 문인들의 필체가 남겨져 있어
조선 후기 선비들의 풍류를 확인할 수 있다.
추사 암각문 外
'노고산 북쪽'
암각문들
.
조선시대 문인들은
왜 노고산 북쪽 계곡에
암각문을 남겨놓았던걸까?
.
조선시대 노고산을 애워싼
장흥 일영 송추 의정부 파주
등지는 내시부 상선을 비롯하여
고위직 은퇴 환관들의 집단 거주지.
.
여기소마을 안 백화사 뒤편은
조선시대 내시부 상선을 비롯한
조선 후기 고위직 환관들 공동묘역.
.
구파발 이말산 조선시대 묘역들은
조선왕실과 밀접한 중인가문들 묘역.
추사는 왜 노고산에 암각문을 남긴걸까?
필체를 자세히 살펴보면,
추사체가 아닌 것으로 보아
제주도로 귀양을 가기 전.,필체.
추사체.
추사체는 제주도 귀양살이 때 완성,
추사는 제주도 귀양살이를 마친 후에
흥선 대원군의 스승이 되어 여생을 마감.
흥선 대원군.,석파란(石坡蘭)
노고산 고인돌.
노고산., 금바위저수지
'송추 장흥 일영 사기막골 진관동'
주민들은 설날에.,노고산에서 해맞이.
노고산을 북한산보다 신성하게 여긴다.
'원주민들은 왜 노고산을
신성하게 여기는 것일까?'
.................노고산(老姑山).............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우고리와 덕도리
및 파주시 법원읍 갈곡리에 걸쳐 있는 산.
노고산은 19세기 중반 지리기록에 처음 등장.
동국여도(東國輿圖 : 1801~1822)에서는 노고산.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 1861)에는 석적산(石積山).
광적면 옛지명이 석적면이었으므로., 석적에 있는 산.
하여, 광적면에서는.,
"서석적산(西石積山)".
노고성 할머니가 치마로 돌을 옮겨 성을 쌓다가
도락산과 노고산에 두 다리를 걸치고 오줌을 눴다.
그때 마침 그밑에 게가 할머니 거시기를 물어버렸다.
화가 난 노고성 할머니는 게를 파주 너머로 던져버렸다.
이로부터 노고산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노고산은 산신 가운데 할머니 산신과 관련깊다.
"노고산(노고봉, 할미봉)"은 산신제를 지내던 곳.
................................................................
노고산., 백패킹 차량(흥국사 주차장).
일영.,자전거 라이더
일영 허브랜드
자지산 & 일영산.
일영., 자전거 라이딩
일영 계곡
일영 계곡
장흥.,자전거 라이딩.
기산 저수지
장흥숯가마
송추.,자전거 라디딩.
영화 드라마 촬영장으로도 각광.
연인들이 많이 찾는.,데이트 명소.
'연인, 등산객, 자전거 라이더' 천국.
........................송추.............................
송추 부곡리 원래 이름은 가마골, 혹은 가막동.
‘가마가 있는 곳’이란 뜻으로, 조선 중기부터 이곳에
도자기를 굽는 큰 가마가 있었기 때문에 붙은 지명이다.
도봉산에서 나무를 해 여기까지 가져와
이곳의 흙으로 빚은 도자기를 구워냈는데,
가마가 크고 도공이 많아 나무 나르기가 큰일.
더욱이 도봉산부터 가마골에 이르는
약 30 km 길에 무려 5개의 고개가 있다.
기울기도 기울기지만 굽이굽이 꺾어지고
울퉁불퉁해서 요즘 산악자전거 명소로 유명.
그당시 가마골 도공들이 5고개 넘어 오는
나무를 기다리는 일은 새색시 꽃가마 타고
오길 기다리는 만큼 힘들고 긴 것이었으리라.
결국, 가마골 나무꾼이나 도공들은 고개를 넘기 위해
소, 말의 힘을 빌었는데, 힘센 짐승에게도 쉽지 않은 길.
아무리 힘센 말도 4째 고개쯤 와서는 머리를 떨어뜨리고
쉬지 않을 수 없다고 하여 ‘말머리 고개’라고 불렀다고 한다.
또한, 우직하고 힘센 소도 5째 고개에 오르면 입에 거품을 물어
잠시 쉬어가지 않을 수 없다고 해서 ‘소머리 고개’라 이름 붙였다.
이렇게 우직하고 힘센 송추의 소들은
송추 도공이나 나무꾼은 물론 모든 마을
사람들에게도 사랑을 받으며 ‘가마골 소’라는
별명으로 불렸는데 소가 죽어 고기가 되어서도
탄탄한 질감과 뼈대에 붙은 고기 맛이 놀라운 정도.
.
지금은 가마골이란 이름도 사라지고
가마골에서 자라는 소도 보기 힘들지만
송추 가마골 갈비는 전국적으로 유명했다.
물론 지금 송추의 갈비가 모두
가마골에서 자란 소는 아닐지라도,
설화 속의 맛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
청암민속박물관
또한 양주골에는 부추마을이 형성되어 있을 정도로
양주의 부추는 생산량이 많고 품질이 좋은 것으로 유명.
다른 산지 부추보다 덜 무르고 씹는 맛이 좋다고 알려졌다.
송추역
1970년대 교외선
사패산 정상 가는 길목.,오봉 전망대.
무더위에도 오싹할 만큼 시원한.,쉼터.
여기서 사패산 정상까지 40분 도보거리.
이곳 쉼터에서 바라보는
도봉산 오봉 풍경은.,일품,
사패산
사패산 안골.,계곡.
사패산 안골.,망월사
사패산 선바위
사패산 선바위.
사패산 안골능선.,물개바위
사패산 갓바위.
송추 계곡
송추폭포
사패산 정상
사패산 치마바위
..........................송추유원지.....................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울대리에 있는 유원지.
도봉산 북서쪽, 사패산 서쪽이며, 송추역 남쪽 3㎞.
북한산에서 흘러내리는 약 4㎞ 오염되지 않은 계곡과
삼단폭포 경관이 수려하여 1950년대부터 조성된 유원지
놀이시설, 숙박시설, 토속음식점, 등산로 등.
등산 코스로는., 오봉, 사패산 코스가 있으며,
사패산은 왕복 3~4시간, 오봉은 4~5시간 소요.
주변에 일영유원지, 장흥관광지, 행원도예, 송암사,
석굴암, 파라다이스수영장, 로얄수영장, 송추낚시터.
근처 농원에서 계절에 따라 생산되는 딸기, 배, 복숭아,
포도 등을 저렴한 가격에 농장에서 직접 맛볼 수 있는 곳.
주말에는 가족 단위 방문객이 많다.
구파발에서 지방도 312호선을 타고
14㎞ 직진하면 송추유원지 입구 도착.
대중교통으로는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에서
704. 34 버스를 타고 송추 입구에서 내리면 된다.
......................................................................
북한산국립공원 내에서 가장 외딴 곳.,오봉.
도봉산 주능선에서 동떨어져 나간 5개의 암봉.
5개 암봉마다 기묘한 형태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오봉은 ' 5개 암봉이 나란히
줄지어 있다.'는 뜻말의 지명.
^오봉 & 여성봉에서 바라본.,송추v.
.
"옛날에 송추마을 다섯 총각들이 원님의 어여쁜 외동딸에게
장가들기 위해 오봉과 마주한 뒷면의 상장 능선에 있는 바위를
오봉 위에 던져올리기 시합을 하여, 지금의 모습이 만들어졌단다."
도봉산 주능선에서 바라보면 서북쪽으로 나란히 놓인.,5봉.
마치, 5손가락을 펼친 그위에 큰돌을 올려놓은듯 기묘한 형상.
경기도 양주시 송추 남능선 따라 자운봉으로 오르는 중간에 위치.
도봉산 주능선에서 바라본.,5봉.
5봉 서쪽으로는 기묘묘한 형상의
여성봉이 등산객들의 눈길을 끈다.
송추에서 여기까지만 올라도 참 좋다
도봉산을 형성하고 있는 화강암이 차별 침식을 받음으로써,
약한 암석은 풍화되어 사라지고 강한 기반암 만 우뚝 솟았다.
오봉은 마치 다섯 손가락이 하늘을 향해 솟구친듯 뻗은.,바위산.
도봉산 주능선에서 분리되어 나가
5개 섬처럼 고립된 곳에 우뚝 선 오봉.
최고봉 제1봉을 제외한 나머지 4개 봉은
각각 70~80m 높이인 화강암 통바위 암봉.
각 봉우리 꼭대기마다 토르(tor) 형태로
존재하는 크고 작은 바위가 한개씩 있다.
제1봉 근처에는 오봉 샘터가 있다.
제3봉은 거북이가 산을 오르는 형상.
3봉 아래에 특수부대 훈련장 겸 야영장.
필자가 만난 특수부대 교관은
유격대 '여군 중사'이거나 '상사'.
훈련병들은 이병, 일병, 또는 상병.
훈련병들이 공포와 두려움에 시달려
바지가 소변에 흠뻑 젖는 사례가 잦다.
여군 교관은 대부분 여성 클라이머 출신.
오봉은 여성이 생리현상의 다급함에
쫓기지 않을 만큼은 몸 숨길 곳이 많다.
그래서, 여성 클라이머들에게 인기 높다.
.
오봉 샘터를 지나면서부터 산정상부로는 급경사 지형.
오봉(660m)은 클라이머 만 접근할 수 있는 암장이 형성.
2인 이상이 보호 장구를 소지한 경우에만 등반이 허용된다.
단독등반은 허용되지 않는 곳이라서
4인1조 또는 산악회 단체등반 적격지.
클라이밍 클럽에서 단체로 많이 찾는다.
송추 여성봉에서 바라본.,오봉.
청담골(사기막골)
사기막골 합수부.
인수봉 귀바위 등반.
상장봉능선에서 바라본.,도봉산.
상장봉능선
숨은벽 제1관문.
북한산.,잠수함바위 능선
결단암.
'백운대로 올라가는 길목'에 위치한.,결단암 ^
조선시대 백운대는 인수봉 만큼 오르기 힘든 곳.
결단암은 백운대로 오를지 여부를 결단 내리는 곳.
조선시대 백운대로 올랐다는.,옛 등산로.
결단암~ 뜀바위 ~마당바위 ~백운대 정상.
.
백운대로 오르는 바위길.,^
오봉.,2봉에서 3봉 가는.,하강 루트.,^
이곳은 오봉의 출입문 관문 격인 들머리.
이곳을 내려서야 오봉의 비경지대가 열린다.
오봉은 도봉산 내에서 '천년고독'과 같은 존재이며
도봉산 산속에서도 외부로부터 고립된 5개의 섬 같다.
이곳 안으로 들어가면, 억만겁 세월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애기봉 정상.
^ 애기봉.
^ 애기봉
쥬마링.
하강하던 도중에 자일이 짧을 경우에는
쥬마링으로 거슬러 올라야만 탈출이 가능.
하여, 클라이머는 평상시 쥬마링 연습을 한다.
근력이 딸려 쥬마링을 할 수 없거나
쥬마링 테크닉을 익히지 못했을 경우에
오버 행에서는 안전하강을 기대할 수 없다.
오봉은 다양한 클라이밍 테크닉을
실전적으로 연마할 수 있는.,연습장.
.
애기봉에서 하강하고나면
3봉 밑 야영장으로 가는 길.
3봉야영장은 특수부대 훈련장.
클라이머들이 즐겨찾는., 훈련장.
뒤풀이.,장소. 메뉴
첫댓글 여셩봉..오봉은 정기산행을 몇번 가본곳이지만..겁게 산행을 하는것이 부럽기만합니다..
저렇게 하는 산행은 꿈도 못꾸는 현실입니다...
모두들 자연과 한몸이 되어서
좋은 글 감사드려요...
.
인수봉이나 선인봉은 주말에 워낙 붐벼
산악회에서 단체로 자일 파티를 할때에는
일산에서 가까운 오봉을 즐겨 찾곤 했지요.
오봉은 각각 다섯 봉우리를 차례 차레로
연이어 오르고 내릴 수 있는 장점이 있어요.
등반 도중에 바쁜 일이 있으면, 혼자 하산도 가능.
등반사진이나 풍경을
사진으로만 봐도 좋을듯.
하여, 카페에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