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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19일 제114회 보스턴 마라톤대회에 나가 좋은 추억을 안고 돌아왔습니다. 시간이 다소 경과 했습니다만 오늘은 보스턴 마라톤 이야기를 묶어서 주말편지를 구성했습니다. 과거 한국의 위대한 마라톤 챔피언들의 숨결이 어린 그 보스턴의 숲과 언덕을 마치 성지를 순례하는 심정으로 완주한 대한민국 시민 마라토너의 소회를 들려 드립니다.
아직 뛰어보지 못한 다른 세계메이저 마라톤 대회도 있었지만 내가 보스턴 대회에 나가기로 한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과거 위대한 한국 챔피언들이 달려간 그 길에 나를 세워 그들이 겪은 고통과 영광의 순간을 체험하고 싶은 동경의 대회라는 점.
둘째 현존하는 세계 마라톤 대회 사상 가장 오래되고(114년) 성별 연령층별 기록에 의한 참가자격을 제한하고 있어 질적으로 우수한 대회라는 점.
셋째 달리는 사람의 안전과 응급구호를 위하여 대회조직위원회에서 완벽한 의료지원체계를 운영하고 있다는 점.
넷째 대학과 도서관의 도시 보스턴에서 마라톤이 열려 여가시간에 명문사학의 탐방을 통하여 생각을 살찌게 하는 유익한 문화 여행을 겸할 수 있다는 점.
작년 가을 에코원 디스커버리를 통하여 참가신청을 하고 주중에는 개인훈련으로 주말에는 서울마라톤에서 주관하는 반달모임에 나가 꾸준히 장거리 달리기 연습을 하였다. 3월21일 동아일보대회와 4월4일 코리아오픈 대회에 나가 대회 직전까지 실전 훈련을 쌓았다.
전날까지 바람이 불고 음산하던 보스턴 날씨가 대회당일에는 최저 섭씨5도 최고 섭씨 13도로 온화하고 하늘은 맑았으며 바람이 없어 경기하기에 좋았다. 대회 3일전에 도착하여 시차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지만 달리기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대회 전날 한인성당에 가 미사를 보느라 일행들과 일정을 함께 할 수 없어 한식을 먹지 못하고 햄버거로 저녁을 때웠지만 대회장으로 가는 날 아침 나의 몸은 활기가 넘쳤고 발걸음은 가벼웠다.
홉킨톤(Hopkinton)의 메인스트리트를 출발하여 전반부에는 줄곧 내리막으로 이어졌다. 보스턴 마라톤대회에는 페이스메이커(Pacemaker)가 없어 페이스를 스스로 조절해야 한다. 10km지점을 지나 마라톤코스에서 나보다 약간 앞서 달리던 중년의 미국인 여성을 발견하여 대화를 나누면서 그녀와 함께 달렸다. 한참 가다 그녀가 연도에 응원 나온 딸을 찾아 페이스를 늦추는 바람에 다시 홀로 뛰기 시작하였다.
19Km지점에서 열광적으로 응원하는 연도에 나온 Wellesley College학생들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하고 한국의 민속소품 몇 개를 전달하느라고 시간이 약간 늦어졌다. 거기서부터는 잃어버린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나보다 좀 페이스가 빠른 다른 주자를 찾아야만 했다.
마침 마사추셋주에 산다는 미국청년이 가볍게 잘 달리고 있어 그를 쫓아 25Km지점까지 무난히 달릴 수 있었다. 출발점 25km부터 32km사이에 굴곡이 심한 4개의 크고 작은 경사진 언덕이 있다. 그 중에 경사가 가장 심한 마지막 언덕을 Heartbreak Hill이라고 한다.
보스턴 마라톤을 이야기 할 때 미국인들의 우상 죤 케리(John A. Kelley)선수를 빼놓을 수 없다. 케리는 보스턴 대회에서 2번이나 우승했으며 준우승을 7 번 차지 하였고 10위안에만 무려 18번 들었으며 보스턴 마라톤을 총 58회나 완주한 전설적인 인물이다.
케리가 1935년 보스턴 대회에서 27세 나이로 처음 우승한 후 1936년 연승을 노리고 있었다. 1936년 대회에서 케리가 뉴턴에 있는 작은 언덕 초입에서 선두로 달리던 엘리손 브라운(Ellison Brown)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의 말을 건네고 브라운을 추월하였다. 이에 자극을 받은 브라운이 뉴턴의 마지막 언덕에서 다시 케리를 앞질러 결승선까지 질주하여 그 해 브라운이 우승하였다.
연승을 노리던 케리는 뉴턴의 언덕에서 브라운에게 도전하다 오히려 역습을 당한 후 그 해 5위로 쳐지는 저조한 기록을 남기고 실의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보스턴 글로버(Boston Glove)지의 기자 제리 네이슨(Jerry Nason)이 케리가 브라운에게 재역전 당한 뉴턴 언덕에서 일어난 이 사건을 두고 “Breaking Kelley’s Heart” 라고 표현을 하였다. 그 이후 사람들은 이 언덕을 “Heartbreak Hill”즉 “상심의 언덕”이라는 애칭으로 부르게 되였다.
하지만 관점에 따라 그 언덕은 “상심의 언덕”일수도 있고 “심장파열의 언덕” 일 수도 있다. 달리는 사람에게는 “심장파열의 언덕” 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 할지도 모르겠다. 30여 km의 먼 길을 헐떡거리며 달려온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마라톤 참가자들 입장에서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마지막 큰 언덕의 벽을 넘어야 하니 이를 두고 “심장파열”의 언덕이라고 한들 누가 반론을 제기 하겠는가?
나는 600m 남짓한 “상심의 언덕”을 오르면서 보폭은 줄였지만 결코 멈추지 않고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달려나갔다. 먼저 달린 한국 챔피언들이 이 언덕에서 경쟁자들을 추월했겠지 라고 생각하니 더욱 힘이 났다. 언덕에 꼭대기에 이르자 “상심의 언덕”을 넘은 것을 축하한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거기서 결승점이 있는 9km가량은 평탄한 코스가 이어져 무리 없이 달릴 수 있었다. 특히 마지막 구간에서는 연도에 늘어선 시민들의 응원하는 함성이 나의 등을 밀어주는 에너지가 되였다. 결승선을 통과하니 내 시계는 3시간 58분 07초였다. 나중에 대회조직위원회에서 공식 확인한 시간은 3시간 58분 04 초였다.
2008년 뉴욕 마라톤 대회에서 4시간35초로 4시간의 벽을 깨지 못했는데 뉴욕마라톤의 부진을 보스턴에서 만회 할 수 있어 기뻤다. Net Time으로 보면 뉴욕대회보다 2분 31초를 줄였지만 내 연령대에 속한 나이별 순위는 46위로 뉴욕대회 때 36위 보다 오히려 뒤로 쳐진 결과였다.
상심의 언덕이 시작되는 뉴턴 마을 초입에 27세의 나이로 보스턴 마라톤대회에서 처음 우승한 신예 죤 케리가 그 후 56년 뒤인 83세 나이로 완주한 노장 죤 케리와 악수하는 동상이 있다. 이동상의 명칭은 “Young At Heart”이다. 내가 달린 제114회 보스턴마라톤대회에서 세계 도처에서 온 “Young At Heart”의 노장들이 녹슬지 않는 기량을 과시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미 보도 된 바와 같이 이번 대회에서 케냐의 Robert Kiprono Cheruiyot가 2시간 5분 52초로 남자부에서 우승하며 대회기록을 수립하였다. 기대를 모았던 미국선수 Hall과 Keflezighi 선수가 4위와 5위에 그쳤으나 또 다른 미국선수가 9위에 올라 남자부 Top 10에 미국선수가 3명이나 이름을 올리는 수확을 거두어 마라톤미국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여자부에서는 에티오피아의 Teyba Erkesso선수가 2시간26분11초로 우승하였다. 아시아 선수로는 일본선수가 여자부에서 7위 그리고 중국선수가 8위를 차지 한 것이 이번 대회의 최고 기록이다.
비록 시민 마라토너인 내가 나의 실력에 합당한 기록으로 완주했다고 하지만 세계 최고의 마라톤 대회에서 한국의 엘리트 선수가 남자부 Top 10에 들지 못해 허전한 마음 금 할 길이 없었다. 유독 남자부를 강조하는 이유는 전통적으로 한국의 남자 마라톤이 강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보스턴마라톤에서 활약한 역대 한국 챔피언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한때 찬란했던 마라톤강국 한국의 면모를 다시 조명해본다.
1947년
1950년
2001년
1947년
1950년 함기용선수 우승당시 2위 송길윤선수, 3위 최윤칠 선수가 차지하여 한국선수가 1,2,3위를 휩쓸었으며,
2001년 이봉주선수가 우승하여 케냐선수들의 보스턴 마라톤우승잔치를 10연승(1991-2000)으로 저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BC490년 그리스 병사 페이디피데스(Pheidippides)가 마라톤평원에서 달려가 아테네 시민에게 승전보를 전하고 쓰러진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해 마라톤 경기가 탄생하였다. 올해가 마라톤 경기 탄생한 후 꼭 2500년이 되는 해이다. 이 뜻 깊은 해에 한국 마라톤이 지금까지 국제 대회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해 유감천만 이다.
이번 대회의 통계를 살펴보면 23,126명이 참가하여 22,645명이 완주하였다. 한국의 참가자는 120명으로 멕시코 122명, 이태리 121명과 비슷한 규모이며 미국, 캐나다에 이어 3위 그룹을 형성하였다.
한국 참가자중 여러 사람들의 격려와 찬사를 받은 화제의 인물 몇 분이 내 기억에 뚜렷이 남아 있다.
먼저 73세의
김선생님께서는 이번에 발목에 Timing Chip을 차고 맨발로 보스턴 마라톤코스를 완주 하셨다. 김선생님은 이세상 사람이면서도 마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이 같이 전혀 기록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법으로 초연하게 마라톤을 완주하셨다. 세상 풍조에 물들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믿고 있는 방식대로 살아가시는 김선생님이 존경스러웠다. 그리고 김선생님을 세계 최고의 마라톤대회에 설수 있게 초청해주신 재미교포사업가의 동포애에 진한 감동을 느꼈다.
64세의 김춘백 선생은 수술로 위장 전체를 절제한 후 7년 동안 마라톤을 하면서 건강을 완전히 회복한 인간승리의 주인공이다. 이번 대회에서 4시간 초반 대 기록으로 완주하셨다. 대회기간 중 저와 같은 방을 쓰는 룸 메이트 였다. 짧은 기간이나마 한방에 기거하면서 김선생님께서 정상인보다 더 건강하고 부지런한 생활양식을 지키는 모범적인 면을 엿볼 수 있었다.
이밖에 컨설팅회사에 다니는 30대의 직장 여성 한 분은 직장에서 휴가를 얻어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보스턴대회에 참가하였고 대전에서는 3형제 가 동시에 이번 대회에 참가하는 마라톤가족의 우애를 과시 하였다. 세계메이저 마라톤 5개 대회 제패를 목표로 뉴욕,런던 대회를 완주하고 이 대회를 마치면 시카고 베를린의 수순을 남겨놓고 있는 대구 달구벌 마라톤 가족들도 선망의 대상이 였다. 이번 대회에서 부부가 동시에 달린 커풀 마라토너가 12 쌍이나 된다고 이번 여행을 주선한 에코디스커버리에서 확인 해 주었다.
제114회 보스턴 마라톤대회 한국 참가자 120명중 116명이 완주 하였다. 완주자는 남자 92명 여자 24명이고 연령별로는 대부분 40-50대였다. 여자부에서는 60세 이상 2명 남자부에서는 70세 이상 4명이 참가하여 노익장을 과시하였다.
마라톤협회와 한국의 엘리트 마라톤 선수들이 분발하여 다음 보스턴 마라톤대회에서는 과거 위대한 대한민국 마라톤 챔피언들의 영광을 재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긴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 합니다.
추신: 다음주는 필자의 중국여행으로 인하여 주말편지 쉽니다.
첫댓글 과거 찬란했던 한국마라톤의 중흥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노구(?)를 가비얍게 이끌고 세계를
누비는 우리의 건각 정장군 자랑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