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의 계절 5월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스승의 날에 즈음하여 오늘 기념식을 갖고 공로상을 수여하는 축제의 잔치를 갖게 된 것은 참으로 뜻 깊은 일입니다.
존경하는 교육가족 여러분, 30년 전에는 우리의 교육여건은 참으로 열악했습니다. 콩나물시루와 같은 교실에서 오직 열정과 젊음에 의지하여 목이 쉬라고 애국애족을 외치고, 하나라도 더 가르치려고 애쓰시던 그 시절에 비하면 지금의 우리 교육환경은 외적으로는 많이 좋아진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스승의 모습은 더욱 초라해지고, 어깨는 움츠러들고, 키가 작아지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여기서 ‘훈장’이라는 김삿갓의 시 한 수를 읊어보렵니다.
世上誰云訓長好 無煙心火自然生 (세상에 누가 선생을 좋은 직업이라 했던가 연기도 없이 마음에 불이 저절로 생긴다) 曰天曰地靑春去 云賦云詩白髮成 (하늘 천 따지 하다가 청춘이 다 가고, 시부를 읊조리다가 백발이 다 되었네) 雖成難聞稱道語 暫離易得是非聲 (비록 잘 해도 칭찬하는 말은 듣기 어렵고 잠깐만 벗어나면 시비하는 소리는 듣기 쉽도다) 掌中寶玉千金子 請囑撻荊是眞正 (손바닥 안의 보석같이 빛나는 천금같은 자식을 부디 때려가며 가르쳐 달라는 소리가 진정으로 하는 말이던가)
공감이 가십니까? 우리가 교직에 입문할 때부터 돈도 권력도 명예도 탐하지 않고 누구에게 대접받고 존경받겠다는 생각은 해 본 적도 없었지만, 그래도 보람과 긍지만은 남달랐었는데 왜 현실이 이다지도 우리를 비참하게 만들고 있을까요?
존경하는 교육가족 여러분, 그래도 자학하거나 위축되지 맙시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떳떳합니다. 스승의 날만 다가오면 어김없이 되풀이 되는 촌지문제를 부각시켜 교원들을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하는 언론들이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현실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감싸주고 위로해야할 정부와 교육당국은 한 술 더 떠서 마치 교원들 때문에 교육이 엉망이고 학교와 교실이 붕괴되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습니다.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던가요?
교원들은 옛날부터 평가를 받고 있는 데도 전혀 평가를 받지 않는 것처럼 떠벌이고, 교원평가를 하면 교육문제는 해결되는 것처럼 학부모들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우리는 떳떳하게 평가받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부적격교원은 당연히 퇴출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반대하는 것은 교원평가가 자체가 아니라 준비가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졸속평가를 함으로써 오히려 평가결과에 대한 불신이라는 더 큰 혼란과 부작용이 초래하지 않을까를 우려하는 것입니다.
이는 이미 몇 년 전 교원성과급 지급과 관련하여 뼈아픈 경험을 한 바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바는 교원평가를 졸속으로 예정된 일정에 짜맞추어 강행하려 하지 말고 좀 더 시간을 갖고 평가자들이나 피평가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객관성과 공정성과 타당성이 담보된 평가척도를 만들어서 점진적으로 시행하자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의 주장이 마치 평가를 받지 않으려는 뻔뻔한 집단이기주의로 오해되고 있는 현실이 원망스럽고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학부모들이 일 년에 한두 번 교원들의 공개수업을 참관하고 과연 교원들의 전문성을 올바르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학생들이 교사를 평가하면 인기몰이식 교육을 하는 교원이 좋은 점수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제대로 교육이 될 수 있을까요?
존경하는 교육자 여러분, 오늘은 좋은 날입니다. 더 이상 우울한 얘기는 않겠습니다만, 이대로라면 스승의 날 행사도 재고해 볼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2월로 옮길 바에야 없애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공휴일로 하거나 휴무로 하여 스승의 날 하루만은 교육자들도 은사들을 찾아뵙고, 교육자로서의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부, 정치권에서 우리의 절규를 경청하여 국가백년대계인 교육문제를 당리당략에 이용하려 하지 말고, 철저하게 정치중립적인 입장에서 생각해 주실 것을 당부하는 바입니다. OECD 국가들 가운데 우리나라가 가장 열악한 교육환경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관심을 갖고, 교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면 결국 교육력이 약화된다는 사실에도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스승의 날을 맞아 우리도 자숙하는 의미에서 한국교총은 교직윤리헌장과 우리의 다짐을 선포하였습니다. 선언만 해놓고 다음날부터 지키지 않는 그런 사문화가 되지 않도록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마련하여 적극 추진해 나갈 것입니다.
우리들의 귀한 행사에 넋두리만 해서 미안합니다. 답답하고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푸념을 늘어놓았습니다.
아무쪼록 모든 선생님께 축하의 말씀을 다시 한번 전해 드리며, 댁내 두루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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