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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시작한 KBS대하사극 왕건을 보면서, 무장들이 입고나온 갑옷을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고전적 양당개의 이상한 변형부터 송나라식 의장용 갑옷, 삼국시대 찰갑에 이르기까지 잡탕이더군요. 변혁기이고 국가체제가 완비되지 못한 시기를 대상으로 했기에 갑옷 고증 문제도 약간 자유스럽게 접근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이 글 "한국의 갑옷"은 한국 갑옷에 대한 극히 초보적인 이해를 목적으로 쓴 것입니다. 최대한 제 개인적인 견해를 억제하고, 학계의 대표적인 의견들을 소개하려고 했지만, 제 주관이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닙니다. 어느 정도 제 주관적 견해를 가미한 것이긴 하지만, 단순 소개를 목적으로 쓴 글이므로 이 글에 대해선 비평을 사절합니다. 본격적으로 한국의 갑옷에 대해 연구한 글은 추후 공개할 예정입니다.
가야의 대표적인 갑옷은 판갑(板甲; Plate Armor)이다. 가야고분 중에 찰갑이 출토되는 경우도 있지만, 숫적으로는 판갑이 압도적이다. 일본에서는 흔히 단갑(短甲)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나라 학계에서도 과거에는 단갑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지만, 요즘은 판갑이란 용어를 더많이 사용하는 편이다. 판갑이란 판형태의 재료(주로 금속)로 만들어진 갑옷을 의미한다. 유럽 중세의 갑옷도 대부분 이 판갑이다. 일본식 용어인 단갑(短甲)이란 말의 의미는 짧은 갑옷을 의미한다.
1) 갑옷 구성 부분의 명칭
위 갑옷의 각 구성부분 명칭은 "한국군복식발달사 제1편, 국방군사연구소 1998년" p71을 인용한 것이다. 이 책의 가야갑옷을 설명한 부분은 송계현씨의 1988년 석사학위논문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주'는 투구를 의미하는 용어이고, '상갑'은 갑옷의 치마부분을 의미하는 용어이므로 역시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경갑은 목부분의 갑옷, 견갑은 어깨의 가운데 부분 갑옷, 상박갑은 어깨의 좌우양끝 부분 갑옷을 의미한다. 이러한 용어정의는 송계현씨의 주장에 따른 것이고, 한국 학계의 일부나 일본에서 통상 사용하는 용어와는 차이가 좀 있다. 일본 갑옷 용어로 경갑은 우리나라의 경갑과 견갑을 포함한 것이고, 일본의 견갑은 우리나라의 상박갑을 의미하므로 약간의 의미상의 차이가 있다. 이런, 용어상의 문제외에 가야 판갑을 둘러싼 학계 의견 대립이 두드러진 부분은 굉갑 부분이다. 위 그림에서 팔목에 장착한 것으로 되어 있는 굉갑을 무릅 아래 부분에 장착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2) 가야 판갑의 원류와 평가
가야 판갑은 어떻게 보면 한국 갑옷의 주류에서 벗어난 다소 이단적인 갑옷이다. 최근까지도 가야 판갑의 사진을 보여주면 우리나라에 이런 갑옷도 있었느냐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적지 않을 정도이다. 사실, 가야 판갑이 한국산(가야제)라는 주장이 제기된 것은 비교적 근래의 일이다. 왜냐하면, 일본이 고대에 이와 유사한 형태의 갑옷을 주로 사용했고 출토량에 있어서도 일본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80,90년대를 거치면서 가야 지역에서 이와 같은 판갑이 집중적으로 출토되었다. 이 때문에 판갑이 오히려 가야에서 발생해 일본으로 전해졌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그 근거로는 일본의 판갑은 서로 다른 종류의 갑옷이 동시대의 고분에서 동시에 출토되지만, 가야 지역에서 출토되는 판갑은 시기별로 출토되는 갑옷 형태가 다르다는 점을 들고 있다. 이는 갑옷의 발전이 이루어진 장소가 가야라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에서 출토되는 판갑의 수량이 엄청나다는 점을 고려할때 판갑의 기원이 가야라는 주장은 좀 더 검토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학계일부에서는 가야 판갑이 동시대의 갑옷 중에 가장 발전된 갑옷이라는 주장도 하지만, 이런 주장도 좀 더 검토해 볼 여지가 있다. 한국 갑옷의 발전단계에서 판갑보다는 찰갑이 보다 발전된 갑옷형태라는 것이 보다 통설적 견해이다. 사실, 신라지역에서도 판갑이 일부 출토되지만, 시기적으로 판갑이 이른 시기의 고분에서만 출토된다. 이는 신라에서는 판갑->찰갑 순으로 갑옷이 발전되었음을 의미한다. 백제의 경우에도 판갑이 부분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수년전에 도굴품 시장에 백제 갑옷 일습이 매물로 나온적이 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찰갑형태의 갑옷이라면 복원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판매가 불가능하므로, 이 백제 갑옷은 판갑 형태의 갑옷일 가능성이 높다.
KBS 역사스페셜(2000년 1월22일자) 시험장면
-복원한 고구려식 화살로 가야 판갑을 관통할 수 있는지는 실험했다. 오른쪽 사진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10cm 정도 관통했다.
위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가야 판갑은 고구려식 화살에 쉽게 관통된다. 튼튼해 보이는 외관과는 달리 방호력은 의외로 떨어지며, 활동성에 있어서도 찰갑계열보다는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이런 종류의 판갑이 과연 기병이 착용하기에 효율적이었는지에 대해선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설사 제조법에 있어서는 나름대로 선진적인 금속기술을 반영할지 모르지만, 전술적으로 이런 형태의 갑옷이 효율적인지 대해서는 좀 더 연구를 필요로 한다. 위 사진에 나오는 갑옷 복원품의 원형은 경상남도 김해에서 출토된 것으로 현재 국립박물관에 보관중이다.
위 왼쪽 사진은 경상북도 고령군 고령읍 지산동에 위치한 지산동 고분군 32호분에서 출토된 갑옷이다. 언뜻 유럽 중세의 Plate Armor를 연상시키는 가야 판갑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사진이다. 대가야의 국왕 내지 이에 준하는 고위급 인물의 갑옷으로 추정된다. 위 오른쪽 사진은 김해 퇴래리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해질 뿐 정확한 출토지는 확실하지 않은 가야 판갑이다. 현재 국립박물관에 보관중이다. KBS 역사 스페셜에서 고구려 화살 관통력 실험에 사용한 가야 판갑의 원형이다.
위사진 속의 투구는 경상남도 합천군 옥전고분군에서 출토된 가야 투구이다.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의 투구와 겉모습이 유사하게 생겼지만 측면 아래부분의 볼가리개나 후면 아래부분도 일체형의 금속으로 되어 있다.
왼쪽 사진은 부산 복천동 고분에서 출토된 판갑의 일부이다. 이것이 팔에 장착하는 갑옷 (굉갑)인지 무릅아래의 정강이 부분에 장착하는 갑옷(경갑)인지에 대해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한국의 갑옷-2 / 삼국시대의 찰갑
신라나 백제에서도 부분적으로 판갑을 사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고구려, 신라, 백제 시대의 대표적인 갑옷은 판갑이 아니라 찰갑(札甲)이다. 찰(札)는 무엇을 매단다는 의미이다. 금속조작 등을 가죽이나 천에 부착한 형태의 갑옷이 바로 찰갑이다. 한국에서 찰갑을 도입한 순서는 대체로 고구려->백제->신라->가야 순으로 추정된다. 찰갑은 기본적으로 기병에게 더 적합한 갑옷이기 때문에, 찰갑의 수용 여부는 기마전술과도 관련이 깊다. 평양의 정백동 고분군 등지에서 이런 찰갑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고조선 말기에 이미 발전된 찰갑을 사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부착하는 방호재는 일반적으로 금속조각을 사용하지만 가죽이나 뼈조각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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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왼쪽 사진은 서울 올림픽 공원내에 위치한 몽촌토성에서 출토된 백제 갑옷이다. 특이하게 뼈로 만든 골제 찰갑이다. 함경북도에서도 이와 같은 골제 찰갑이 출토된 바 있다. 위 오른쪽 사진은 7-8 세기 경의 통일 신라시대의 투구이다. 경주 안압지에서 출토된 것이다.
왼쪽 사진은 전쟁기념관에 전시중인 고구려 찰갑의 복원품이다. 이 복원품은 실물원형이 없이 기존 학계의 지식으로만 복원한 것이다.철제 소찰 부분은 실제 출토된 실물을 근거로 했지만 전체적인 모양새는 실물이 아닌 고구려 고분 벽화의 그림을 토대로 복원 했다. 단지 참고용에 불과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삼국시대 찰갑을 이해하는데에는 충분하다. 모양을 자세히 살펴보면 삼국시대의 판갑 종류와 마찬가지로 목부분의 거의 절반을 감싸는 경갑이 인상적이다. 상하 갑옷은 분리되어 있으며 하체는 치마형태가 아닌 바지형태로 유고형 갑옷이다. 허리에는 별도의 요갑을 장착하고 있다.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정면이 통짜형으로 되어 있다.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의 갑옷도 방호재의 결합형태면에서 기본적으로 찰갑에 속한다. 하지만,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의 찰갑은 기본적으로 두루마기형태(袍型)의 갑옷으로 상의 가운데가 좌우로 개방되는 구조이지만, 이 찰갑은 측면이 개방되는 구조로 모양새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아래 부분의 조선시대 두정갑(온양민속박물관 소장품)을 보면 상하의가 하나로 되어 있고, 정면이 좌우로 열리는 구조(포형 갑옷)로 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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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갑옷-3 / 고려, 조선시대의 갑옷-상
1) 고려, 조선시대 갑옷에 대한 개설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의 갑옷은 방호재의 결합형태로는 찰갑으로 분류할 수 있는 갑옷이 대부분이고, 형태적으로 포형(袍型) 갑옷이 대부분이다. 포형 갑옷이란 두루마기 모양으로 생긴 갑옷을 말한다. 기본적으로 상하의가 하나로 결합되어 있고, 가운데가 열리는 구조로 되어 있다. 옷의 아래부분이 대체로 허벅지나 무릅 주변까지 덮는다. 쉽게 설명하면 외투 모양으로 생긴 갑옷이 바로 포형 갑옷이다. 크게 보아 형태적으로 포형 갑옷에 속하지만 개별 갑옷은 다시 두석린갑,두정갑,피갑 등등으로 나뉘어 진다.
하지만,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는 포형 갑옷 이외에 드물게 중국식 양당개나 동환식 갑옷도 있고, 쇄자갑이나 경번갑 같은 특이한 갑옷도 있다.
포형 갑옷은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부터 주로 착용한 갑옷인데, 주변국중에선 몽골만이 포형 갑옷을 입을 뿐 중국이나 일본에선 거의 사용하지 않은 갑옷 형태이다. 우리나라에서 이와 같은 포형 갑옷을 착용한 것이 고려시대 부터인지 혹은 그 이전 삼국시대로 소급될 수 있는지는 좀 더 검토해 볼 문제이다.
오른쪽 사진은 두석린갑으로, 정식명칭은 '봉황 원수문 용린 갑주'이며 고려대학교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두석린갑의 대표적 명품이라고 할 수 있다.
2) 두석린갑
두석린갑이란 두석으로 된 비늘갑옷을 의미한다. 조선시대를 다룬 사극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갑옷 형태이다. 하지만, 실물은 오히려 두정갑 계열에 비하여 드물게 남아있다. 현재 알려져 있는 두석린갑은 2벌이며, 그중 한벌은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소장중이고 한벌은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두 갑옷은 상당히 유사하지만 고려대에서 소장중인 갑옷이 더 정교하고 보관상태도 좋다. 조선시대 갑옷중에서 삼국시대의 찰갑과 가장 유사한 것이 바로 이 두석린갑이다.
위 오른쪽 그림은 권율 장군의 표준 영정으로 두석린갑을 착용한 모습으로 그려진 영정이다.
위 왼쪽 사진은 국립 경주 박물관에 소장중인 조선시대 두석린갑의 실물이다. 경주부윤(경주를 다스리는 지방관)이 착용하던 갑옷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확한 제작연대와 착용자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한국의 갑옷-3 / 고려, 조선시대의 갑옷-중
3) 두정갑(豆丁甲)
두정갑도 조선시대를 다룬 사극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갑옷 중에 하나이다. 사극에선 흔히 최고위급 장수는 어린갑을 입고, 두정갑은 중간급의 장수가 입고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두정갑이 주로 하급자만 입었던 갑옷은 아니다. 최근 이우혁씨가 그의 소설 왜란종결자에서 두정갑을 언급한 바 있어 일반인도 이 갑옷 이름이 그렇게 낯설지는 않을 것이다. 두정이란 쉽게 말해 놋쇠로 된 못머리를 말한다. 겉에서 보면 갑옷에 둥근고 굵은 못이 박혀 있는 모양이기 때문에 두정갑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원래 두정갑은 내부에 금속이나 가죽재의 편찰이 달려 있는게 원칙이다. 두석린갑이나 어린갑은 갑옷의 바깥에 방호재가 붙어있지만, 두정갑은 갑옷의 안쪽에 방호재가 붙어있다. 좀 더 거칠게 설명하면 두석린갑 형태의 갑옷을 안밖으로 뒤집어 입으면 두정갑의 형태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조선후기의 두정갑 중에는 내부에 별도의 방호재가 붙어있지 않은 갑옷도 있다. 이렇게 방호재가 붙어있지 않은 경우 겉모습만 갑옷이고, 실제로는 하나의 유니폼에 불과한 것이다. |
왼쪽 사진은 두정피갑의 안쪽면으로 가죽으로 된 편찰(조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두정갑을 겉에서 보면 금속제 장식이 붙어있을 뿐 별다른 방호재가 없어 갑옷으로는 효과가 떨어질 것 같지만, 갑옷 안쪽에는 이처럼 방호재가 부착되어 있다. 내부의 방호재가 가죽으로 된 것을 두정피갑으로 부르고, 방호재가 철로 된 것은 두정철갑으로 부르기도 한다. 기본적인 옷의 형태는 천으로 만들지만, 가죽으로 만든 것도 있다. 천이 아닌 가죽으로 만든 두정갑은 두정갑이 아닌 피갑 (가죽갑옷) 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
아래 왼쪽사진은 이순신의 후손으로 수군 통제사를 역임한 바 있는 이봉상(1676-1728)이 입었던 부원수용 갑옷이다. 내부 방호재가 철편찰로 되어 있는 두정철갑이다. 육군 박물관 (육군사관학교내에 소재) 소장품이다. 육군 박물관에는 이 갑옷외에도 이봉상의 장군의 갑옷이 몇 벌 더 보관되어 있다. 전쟁기념관에 있는 것은 복제품이다.
위 사진은 두정갑으로 내부의 가죽으로된 편찰을 잘 살펴볼 수 있는 사진이다. 붉은 색 원부분에 가죽 편찰이 보인다. 두정갑의 일반적 형태와 차이가 있기 때문에 면피갑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사실 피갑과 두정갑을구별하기 곤란한 경우가 적지 않다. 이 갑옷은 육군 박물관 소장품이다
한국의 갑옷-3 / 고려, 조선시대의 갑옷-하
4) 경번갑
경번갑은 가죽과 쇠사슬이 결합된 형태의 갑옷이다. 고분에서 발굴한 출토품을 제외하고, 이 갑옷은 전해져 오는 갑옷 중에 가장 오래된 갑옷이다. 이 갑옷의 주인은 1343년에 태어나 1391년에 사망한 정지(鄭地) 장군이다. 고려시대의 갑옷이 무려 600년이 넘게 후손들을 통해 기적적으로 전해져 온 것이다. 이 갑옷은 정지 장군의 종손인 정영근씨(발견 당시 광주시 지산동 거주)가 소장한 것이다. 1960년 1월20일 이 전래의 가보가 보물336호로 지정되어 나라의 보물로 인정받게 되었다. 경번갑은 사극에도 거의 등장하지 않은 갑옷이지만 중국에선 당나라시대에 흔히 입던 갑옷중에 하나였고, 우리나라에서도 세종실록에서 경번갑을 거명하는 것으로 보아 그렇게 희귀한 갑옷은 아니었던 것 같다. 복식사를 전공하는 학자들은 정지 장군의 경번갑에 대해 몽골제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별 근거가 없는 주장인 것 같다. 복식사 전공자들이 경번갑이 몽골제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비슷한 형태의 몽골 갑옷이 영국의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경번갑이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권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된 갑옷이었고, 심지어 일본에서조차 사용한 갑옷이었는데 몽골제라고 단정하는 것은 상식 밖의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
5) 쇄자갑
쇄자갑이란 쇠사슬로 만들어진 갑옷을 말한다. 유럽 갑옷 에선 비교적 흔한 편이며, 중국을 포함한 동양권에서도 드물지 않게 사용된 갑옷이다. 경번갑과 마찬가지로 이미 중국 당나라 시대에 사용된 갑옷이며,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나 세종실록에서도 쇄자갑을 언급하고 있다. 이런 정황을 볼 때 우리나라에서도 흔하지는 않지만 간간히 사용된 것 같다. 이 쇄자갑은 조선 왕실 소장품으로 창덕궁 서행각에 보관하여 오던 것이며 현재에는 덕수궁 궁중薇같鰥【?소장하고 있다. 현재 전해져 오는 쇄자갑은 국산이 아니라 청나라제라는 주장도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사실 중국 청나라 시대에는 쇄자갑을 높게 평가하고 실전에서도 많이 사용했기 때문에 덕수궁 궁중박물관에 소장된 갑옷이 청나라제일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쇄자갑은 정식 갑옷이 아니라 안에 받쳐입는 내갑 (內甲)의 일종이라는 견해도 있으나 이 견해 역시 좀 더 검토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
6) 내갑의(內甲衣)
내갑의란 갑옷 안에 받쳐입는 가벼운 갑옷을 말한다. 두정갑 중에서 방호재가 없는 갑옷 등을 입을 때는 이 런 식의 내갑의를 안에 입었을 가능성도 있을 것 같다. 내부에 설기게 엮은 쇠사슬로 심지를 넣어 놓았다. 마상무예를 연구하는 민간단체인 마상무예단이 조선시대 정통 무예 연습복이라고 주장하는 옷과 유사하다는 점이 흥미롭다. 아래 내갑의는 육군박물관 소장품으로 조선 후기의 갑옷이다. 미국 시카고 휠드 자연사 박물관과 창덕궁에도 1벌식 소장하고 있으나 형태나 재질에 조금식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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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흉갑
이 흉갑은 내갑(內甲)용도로도 착용 가능할 것으로 추정되며, 일반 군졸들의 주력 갑옷으로도 착용했던 것 같다. 임진왜란 당시 동래성 전투를 기록한 에스파니아인 종군 신부가 "코레아인들이 모두 검은색 흉갑을 착용했다"고 기록한 것도 참고가 될 것이다. 내부에 얇은 금속판이 들어있다. 여러가지로 요즘의 방탄조끼를 연상시키는 재미있는 갑옷이다. 사진의 흉갑은 육군 박물관 소장품으로 겉감은 무영이고 안에는 두터운 무쇠 통판이 들어있다. 고려대 박물관에도 비슷한 흉갑을 1벌 소장하고 있으며, 일본 야스꾸니신사에도 유사한 흉갑 1벌을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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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면갑
대원군이 총알을 막기 위해 면 30겹으로 만들었다는 유명한 갑옷이다. 지나치게 무겁기 때문에 소용이 없었다는 주장도 있으나 흉갑이나 기타 갑옷에 비교해서 특별히 더 비실용적이라고 볼 근거는 없을 것 같다. 아래 사진의 면갑은 국립 중앙박물관 소장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