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을 간다고 하니 잠도 오지 않네요! 그도 그럴것이 패키지로 전주에서 02시 40분
출발하는 관광버스를 타야 하니 아예 잠은 포기를 했지요! 3시 정각에 출발해서 평택을 거쳐
서해안 고속도로로 가니 3시간여 걸려 인천공항에 도착 했습니다. 09시 35분에 인천공항을
출발해서 2시간 20여분 만에 연길 국제공항에 도착 했지요. 여기서 이도백하 숙소까지는 대략 4시간 정도, 중식후 버스를 타고 40여분, 두만강 변에 있는 도문시로 이동 했습니다.
두만강 강변공원에서 강폭은 100m 정도, 건너편은 북한땅이고 1km 쯤 건너편에는 북한 주민들의 주택들이 보입니다. 물건너 풀숲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북한 군인들이 지키고 있다는 가이드의
말이었습니다. 물길이 그리 깊지는 않고 흑탕물인데 잠시후 10명씩 타는 땟목같은 배를 타고 500m 쯤 올라갔다가 내려 왔습니다. 이 두만강 중간이 국경이라 서로가 협조가 안되면 뱃놀이가 안 된답니다. 그래서 수입중 일부는 북한한테 나누어 주는 상부상조 하는 거랍니다. 뱃놀이를
마치고 뚝방을 가보니 뚝방옆에 큰 나무 한구루가 서 있는데 그늘에서는 남자, 여자 할것없이 옛날춤들을 추고 있는데 우리 부모님들이 흥에 겨우면 어깨춤을 추는것과 똑같더군요. 조그만 핸드
마이크를 어깨에 매고 흘러간 옛노래들을 틀며 춤을 덩실 덩실 추고 있는데 한 50대로 보이는
여자가 다가 오더니 부끄럼도 없이 나의 손을 잡으며 같이 춤을 추자고 손을 잡고 끌어 당기는데 내가 부끄러워 그만 뒀지요. 버스를 타고 2시간 정도 이도백하로 가는 도중에 차도 쉴겸 장뇌삼
파는 휴게소가 있어 들렸는데 잠간 산속으로 들어가니 장뇌삼이 시골 마당 만큼씩 이곳 저곳에
장뇌삼들이 15년 된 것, 20년, 30년, 40년, 50년 이라고 푯말이 써 있었습니다. 50년 된것이 한뿌리에 30만원이라 하는지라 고개를 설래 설래 저으면서 내려오니 전시장에 있는 사람이 20만원이라고 외칩니다. 차가 막상 떠나려 하니 10만원이라고 또 외칩니다. 값도 의심스럽지만 년도 표시
한것도 좀 이상해요. 4시간 쯤 갔을까? 백두산 가까이 온 것 같은데 관광객을 맞이 하는 관광촌이 조성중에 있는데 오늘과 내일 묵어야할 “이도백하” 라고 부르는 곳입니다. 외형상으로 좋아
보이는 금수학 5성급 호텔에서 짐을 풀었습니다. 한참 도로들을 정비 하느라 어지러져 있고
건축중인 것이 많지만 정비가 끝나면 상당히 큰 도시로 변할것같은 예감이 듭니다.
호텔에서 현지식과 백숙으로 저녁을 끝내고 보니 어제 잠을 못잔 피로가 몰려오는 것 같아
내일 일찍 서둘러야 하니 일찍 잠을 청했답니다.
2일차
콜 전화 소리를 듣고서야 일어나 서둘러 준비를 하고 백두산 서파(2,670m)를 올라 가야 합니다. 날씨가 그리 맑지는 않지만 한국의 보통 날씨외 비슷한데. 백두산을 향해 1시간 30여분 정도 버스를 타고 갔는데 주변에 야생화들이 여기 저기 피어 있더군요. 차를 버꿔 타야 하는데 여기서
부터는 셔틀버스를 타고 한참 달려가 내려서 다시 계단을 40여분 올라가야 한답니다. 그런데 이때부터 날씨가 이상 해져요. 없던 구름이 끼더니 짙은 안개비가 날리기 시작해요. 중국 사람들도 요즈음은 관광을 많이 다닌다는데 계단이 사람으로 가득차서 꾸역 꾸역 말없이 올라 갑니다. 주변은 야생화들로 키가 작은 꽃들이 피어 있고 또 겨우내 쌓여있던 눈덩이들이 아직도 덜녹아 남아
있구요. 드디어 서파 정상 기념비가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안개비가 이제는 잠시 장대비로
내리다가 잠시 안개비로 내리기를 반복 하네요. 우의를 입었지만 바람이 세게 불어 우산은
펼칠수가 없습니다. 말로는 이러다가도 바람이 불어 안개를 걷어내고 천지가 보이기도 한다는데 30여분을 기다려 봐도 소용이 없네요. 정상 부근에는 나무는 없고 키 작은 야샹화가 주로 피어
있고 그밑에는 키작은 나무, 그밑에는 침엽수가 있고, 2000m 밑에는 활엽수 나무들이 꽉 차서
마치 정글과도 같은 느낌이 든답니다. 어쩔수 없이 포기하고 돌아 설려니 너무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내일 북파를 가니까 기대를 하기로 하고 내려오다 중간쯤 내려와서 보니
백두산이 옛날 화산이 폭발할 때 지각변동으로 생긴 틈이 지금은 소협계곡, “쌍제자하”라 불려지고 계곡이 되어 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또 야생초가 피어있고 풍화작용으로 바위들이 칼날처럼 날카롭고 뾰족 뾰족 하게 남아 있어 계곡을 이루는데 “금강 대협곡”이라 불려지고 있었습니다.
밑으로 내려오니 이곳 나무들은 쭉쭉뻗은 소나무들이 많은데 일명 “미인송”이라 부른답니다.
한국송은 구부러지고 가지도 많은데 이곳 소나무들은 미인송 답게 잘 뻗어있군요.
3일차
오늘은 북파를 가는날 입니다. 어제 아쉬웠던 마음을 간직한채 오늘은 기어이 한을 풀겠지! 하고
호텔을 출발했지요. 한참을 버스로 가서 다시 차를 갈아타야 합니다. 벤츠 승합차. 한국의
스타렉스와 크기가 거의 같은데 백여대 이상이 기다리고 있는것 같아요. 먼저 타려고 난리입니다. 조금만 눈을 팔다가는 앞에 사람, 줄을 잃어 버립니다. 10명씩 단체로 표를 끊었기에 중간에
끊기면 안되기 때문이죠. 안 좋은 말로 전쟁터 같아요. 어렵사리 승합차를 탔는데 아! 이건 또
뭐야! 차가 좌 우로 쏠려 돌아가는데 어떻게 급회전을 하는지 붑잡지 않으면 도저히 안되는
상황이고 얼만큼 빠르게 올라 채는지 무서울 정도 랍니다. 멀미가 나는 사람도 있구요. 그리 긴
시간은 아니지만 장난이 아니네요. 아마 운전은 특급 기사만 모집을 했는지 실수하면 사정없는
낭떨어지인데 정말 아찔해요. 여기도 역시 좌우로 녹다 남은 눈덩이들이 남아있네요. 승합차를
내려서 10여분만 올라가면 북파 정상인데 또 비가 오고 짙은 안개에 바람이 부는데 어제와 똑같은 상황입니다. 절망이네요! 역시 이 백두산은 높아서 그런지 웬만큼 해서 마음을 열어주지 않는 것 같아요. 저 턱 밑 아래 천지 물가 언덕에 세워 놓은 안테나는 슬쩍 슬쩍 보이는데 그밑에서 부터는 도대체 보여 주질 않아요. 사람 약올리는 것도 아니고 1시간 여를 기다려봐도
소용이 없어요. 하는수없이 “5호 경계비”와 “천지”라는 기념비만 쓰다듬다가 아쉬움만 남기고
내려갈 수 밖에요. 내려오다가 다른길로 들어서서 “장백폭포”를 볼 차례 입니다.
차에서 내려 폭포쪽으로 가다 보니 백두산 전경이 4계절따라 변하는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천지가 야생화들로 어우러져 있는 경치가 가히 장관을 이루고 있더군요. 저렇게
멋있는 천지를 못보고 간다 생각하니 원통하기도 하고 다음에 계절을 잘 선택해서 다시오자
생각도 해 봤지만 아쉬움은 가슴에 남아 있답니다. 한참 올라가 보니 저쪽 1km 너머에
그 웅장한 장백폭포가 그 힘찬 물줄기를 아래로 쏟아 내리고 있지 않겠습니까? 정말 장관이네요. 아쉬운건 그 이상 더 다가 갈수가 없답니다. 내려오면서 주변에는 유황온천이 노출되어 있고 겨우 손싣는 정도 마련되어 있고 목욕탕도 있는 것 같은데 시간이 없어 손만 싣고 내려왔습니다.
오후에는 연길시를 관람 했습니다. 예날 우리 선조님들이 일제에 항거하며 독립운동을 하였던
흔적들이 흩어져 있답니다. 연길시를 2~3 km 쯤 앞두고 우측을 보니 뒷동산보다 조금 더 높은
산이 있는데 정자가 하나 있고 그 앞에 푸른 소나무 한구루가 눈에 뜨이더라구요. 이 소나무가
바로 노랫말에 나오는 "일송정" 이랍니다. 일제가 서서히 만주로 세력을 넓힐 즈음 우리 선조들은 일제에 항거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 해야 하는데 그 모이는 장소가 바로 정자앞 큰소나무 그늘
아래였는데 이장소는 바로 연길시를 한눈에 볼 수 있고 일제 군인들이 쫒아 오기라도 하면 올라
오는 곳이 다보여 재빨리 피하기가 아주 좋은 곳이랍니다. 연길시 중간을 가로질러 흐르는 유명한 "해란강"이 있으며 이 해란강을 가로질러 용정교가 있는데 강폭이 200여m 쯤은 되는가봐요.
강물은 그때나 지금이나 유유히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일송정 나무는 굉장히 컸는데
일제들이 조선 사람들이 모여 회의 하는 것을 못 마땅하게 생각하고 별짓을 다해 결국은 그
소나무를 죽여 버렸는데 한참 후에야 한국의 중소기업하는 사장이 안타깝게 생각하고 지원해서 그 소나무를 새로 심어 잘 자라고 있는데 아직은 옛날 소나무보다 위용히 못하다고 합니다. 연길
시내에 들어서니 어느듯 “대성중학교”에 도착했습니다. 그당시 만주에는 우리 선조들이 세운
크고 작은 중학교가 6개 있었는데 이를 못 마땅하게 여기던 일제들이 학교를 다 없애고 하나로 통합하라는 지시에 따라 남은 것이 바로 대성중학교인데 이학교 옆에는 별도로 우리 선조들의 활동 했던 모습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윤동주, 문익환 목사도 바로 이학교 출신 이더군요. 또
윤동주 시인의 시비가 보존되어 있고 노래교실도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전시회 관광을 마치고
저녁을 먹는데 북한 사람이 운영하는 북한식당(유경호텔)을 가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북한에서 외화벌이로 나온 사람들이 겠지요! 식사가 호텔보다 좋았고 고급 음식점으로 음식들이 풍성하고 맛도 아주 좋았습니다. “들쭉술”이 두어잔 돌고 거의 끝날 무렵 갑자기 북한 여성들의
가무와 노래가 시작 되더군요! 음식먹다가 공연까지 보게 되었답니다. 30여분 후에 끝나고
자리를 옮겨서 마사지를 받으니 몸의 피로가 다 풀어지드군요. 오늘은 연길역 앞에 있는
"대주호텔", 호텔치고는 남한의 여관정도의 수준, 연길에는 최근 새로 지은 호텔이 없어 그래도
이 대주호텔이 나은거랍니다.
4일째
오늘은 오전에 일정이 없어 늦게까지 쉬고 있는데 아침 호텔식사가 참 별로드군요 하지만
먹어 둬야지요. 11시 55분 연길 국제공항을 출발해서 2시간 20 여분 날아가니 인전 공항에
도착하고 전주에 도착하니 오후 6시반, 김치찌개에 소주 한잔으로 뒷풀이를 하니 이게 우리의
입맛에 맞는 음식이더군요.
아! 3박 4일 백두산 구경 한번 잘했내!!!
혹시라도 백두산 관광을 갈 친구가 있을가 하고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적어 봤습니다
2014년 7월 16일 강 대 선 올림
첫댓글 공짜구경 덕분에 참 잘 했습니다 고생도 많이 하셨네요 고집쟁이도 이런글 한번 써 보시지요.^^
폰에서PC버전으로 보니까 더 멋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