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4.(주일). 창15:1-11. 믿음의 요소.
기독교인의 신앙중심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전제가 되고 기초가 되어야 기독교신앙은 존재합니다.
믿음의 주체가 내가 되면 올바른 믿음이 아니죠.
오직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내 생각과 욕구를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을 움직이는 것은 결코 믿음이 아니죠.
성경이 가르치는 믿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신념이나 자기 확신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왜 그렇죠? 신념이나 자기 확신의 중심에는 ‘내가’ 있기 때문이죠.
믿음의 확신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이뤄질 때 생기게 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에는 ‘하나님의 말씀’곧 ‘하나님의 약속’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중요하다는 것은 재삼 거론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Ab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인정하지만 Ab의 선배들 중에는 믿음의 사람이 없었을까요?
당장 떠올리는 인물들 중에는 아벨, 에녹, 노아 등 기라성 같은 믿음의 조상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독Ab을 믿음의 조상, 믿음의 상징인물로 여겨지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1. 바랄 수 없는 상황 가운데에서도 믿었습니다.
본문 6절 -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구약성경에 나오는 가장 위대한 말씀 가운데 하나가 바로 본절입니다.
바로 성경의 以信得義의 오묘한 교리를 주는 것입니다.
‘믿으니’에 해당하는 ‘아만’은 확실하다, 지속하다, 굳게하다 등의 뜻을 가지며 본문에서는 문법적으로 기대다, 신뢰하다 뜻이 됩니다.
따라서 본문은 자신과 아내가 이미 늙었다는 현실적인 상태를 초월하여 오직 여호와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신뢰하고 의지하며 기대는 Ab의 확고한 신앙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롬4:18 -
Ab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함이니라
믿음의 기초가 어디 있지요?
믿음의 근거가 바로 ‘믿다(웨헤에민)’단어에 있습니다.
우리말로 표기 할 수 없는 원어 한 글자가 매우 큰 뜻을 주는 경우가 많이 나옵니다.
그래서 시간이 걸리고 머리를 많이 써야 하는 원문연구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웨 헤에민
와우 계속법이 사용된 것인데, Ab의 믿음의 기초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15:1 절 부터의 계시에 있는 것입니다.
특히 본문에서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을 신실히 지키시는 하나님을 강조하는 새로운 명칭 ‘여호와’ 란 단어에 있습니다.
더 자세히 설명하면 여러분들이 복잡하기 때문에 생략합니다만
여호와 란 단어 안에서도 매우 깊은 의미가 있기 때문에 언약의 하나님을 Ab이 믿었기 때문에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 !
Ab의 입장을 내 자신에 비유하여 생각해 보세요.
나이는 많죠, 자식은 없죠, 그렇다고 부인도 고령이죠 뭐 하나 될법한 조건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인간적인 방법은 자신의 종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대체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현대의학 같이 시험관이나 체내수정 같은 방법을 쓸 수도 없는 거고..
그런데 하나님은 계속해서 Ab에게 찾아와 말씀하시고 계시해 주시는 등 실망에 빠져 있을 수밖에 없는 Ab에게 후사의 약속을 믿게 해 주신것입니다.
도저히 될 것이 아무것도 없는 형편이지만 Ab은 여호와를 믿었더니
하나님께서 그를 의로 여겨 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인간의 도움을 통해 당신의 약속을 이룰 수 있는 그런 무능한 분이 아닙니다. 그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오직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실로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분입니다.
롬4:17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믿음과 의심의 사이에서 계속 갈등을 겪고 있는 Ab은 100번 이해하고고 남습니다.
Ab의 혼란한 심정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Ab은 이제 믿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은 것입니다.
구약성경중 가장 위대한 말씀이자 기독교의 근간이 되는 이신득의 의 오묘한 교리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롬4:20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믿음이 굳세어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2.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7절은 보면 하나님께서 Ab이 갈대아우르에 있을 때 그를 부르신 이유가 나옵니다.
그것은 가나안 땅을 그에게 주어 업을 삼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Ab으로 하여금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하기 위해 부패하고 타락한 우상숭배의 땅 갈대아우르에서 부르시고 가나안 땅까지 인도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죄의 자리에서 부르신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게 해 줍니다.
그것은 땅을 차지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무슨 땅 이죠?
바로 영원한 약속의 땅 곧 하늘 가나안인 천국입니다.
그렇죠.
하나님은 우리들로 하여금 천국을 차지하기 위해 죄의 자리에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벧전 1:4 -
썩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고 낡아 없어지지 않는 유산을 물려받게 하셨니다. 이 유산은 여러분을 위하여 하늘에 간직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Ab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시고 또한 그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게 하셨습니다.
Ab의 영적후손인 우리들도 하나님께서 영적인 가나안 저 천국을 유산으로 주시기 위해 불러주셨다는 사실에 확신을 갖기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할 축복입니다.
다른 것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찾으려고 애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영적가나안 땅 저 천국을 소유하였다는 진리의 말씀에 큰 위로와 감사의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약2:5 -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더 한 단계 나아가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에는 다음과 같습니다.
에베소서 2: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
1)하나님은 우리를 사랑으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이유는 그분의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나와의 밀접한 관계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이유는 단순히 어떤 일을 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먼저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나누기 위함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5절에서 예수님은 우리를 “종이 아니라 친구로 부르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 그분의 첫 번째 목적입니다.
2) 하나님은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해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단지 현재 모습 그대로 남겨두지 않으십니다.
부르심에는 변화와 성장이 따릅니다.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은 성화의 여정으로 우리의 성품과 삶을 변화시키며 성숙하게 하십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변화되고,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씀합니다.
3) 하나님은 우리를 선한 일을 위해 부르셨습니다.
본문은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선한 일을 통해 그의 영광을 나타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재능과 경험, 심지어 과거의 상처와 실패까지도 사용하셔서 그분의 계획을 이루십니다.
우리가 겪은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선한 일을 위한 과정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그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7절은 “내 이름으로 불리는 모든 자를 내가 창조하였나니 이는 내 영광을 위하여 그를 지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간다는 것은 단지 선한 행동을 넘어,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3. 믿음은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교제와 예배를 통하여 이뤄집니다.
7절을 보면 하나님은 Ab에게 후사에 대한 약속에 이어 가나안 땅에 대한 약속도 주셨는데 8절을 보면 Ab이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표징(sign) 을 구하였습니다.
이러한 Ab의 태도는 Ab의 불신앙적인 태도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믿음에 대해 이미 하나님께 합격점수를 받았습니다.
이는 Ab의 표징요구를 불신앙적인 태도로 볼 것이 아니라 더 하나님의 약속을 구체적으로 알기 위한 믿음의 표현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자신의 믿음을 더 확실하게 하기 위한 태도들을 기드온이나 마리아의 경우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Ab은 하나님의 약속을 철저히 신뢰했죠.
그리고 그 믿음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하나님께 표징을 요구하는 등 하나님과 지속적인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하나님의 천국구원의 약속을 받은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교제를 통해 자신의 믿음을 더욱 다져 나아가서 흔들리지 않는 신앙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대상 16:11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항상 그의 얼굴을 찾을지어다
엡6: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9절을 보면 하나님은 그의 약속에 대한 표징을 구하는 Ab에게 그 준비를 지시하셨습니다.
이에 따라 아브라함은 그 모든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주목할 사실은 11절의 내용입니다.
11절 - 읽는다
이것은 Ab이 그가 준비한 제물이 순순하고 더럽히지 않은 채 하나님께 열납되기를 소원하였음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Ab은 하나님께 거룩한 제사를 드리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 것입니다.
이러한 Ab의 태도는 오늘날 지극히 형식적이고도 습관적이면서 무성의하게 예배를 드리는 우리들에게 일대 각성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을 거룩히 구별하여 드리되 부정한 방법으로 모은 제물을 하나님께 드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형식적인 예배나 흠이 있는 제물에 대해서는 가증히 여기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겠습니다.
요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전5:1
너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이 제물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그들은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
말씀을 정리합니다.
Ab은 바랄 수 없는 막막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확신과 믿음을 가졌습니다.
왜 하나님이 Ab을 부르셨는지 분명한 뜻과 목적을 깨닫고 오직 믿음과 순종으로 하나님만 바라보며 나아갔습니다.
믿음의 길에 많은 어려움과 방해가 있었으나 지속적인 하나님과의 교제와 예배를 통하여 믿음의 승리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하늘의 별 만큼 이나 수많은 영적 후손들의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Ab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고 약속이 성취되는 은혜를 입었듯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여김을 받고 천국 구원의 은혜를 체험할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임을 기억하시기를(히11:1)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