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일입니다.
버스를 놓쳐 집까지 혼자 걸어가고 있는데
까만색 스포츠카가 앞에 서더니, 한 청년이 길을 묻더군요...
"아주머니, 차로 천왕봉까지 가려면 어떻게 가나요 ?
눈을 껌뻑거리며 뜨아한 표정이 되었습니다.
성삼재도 아니고 천왕봉까지 차를 타고 가겠다니 ? 뭔가 잘못 알고 묻는거겠지요 ?!
자동차로 오를 수 있는 곳이 성삼재인지라, 성삼재로 가는 길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성삼재 말고, 천왕봉까지 차타고 가는 길은 없습니까 ?~ "
허걱걱~~~
이 순진무구한 젊은 청년은 옆자리에 사랑스런 연인을 태우고,
오프로드하듯 천왕봉 바윗길을 자동차로 달려가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상상만으로도 아찔했습니다.
위험해서 아찔한 것이 아니라,
지리산의 나무와 바위들이 자동차 바퀴에 짓이겨지는
혼자만의 앞서가는 상상으로 진저리를 친 것이지요.
"아구, 젊은 양반, 천왕봉까지 가는 찻길이 생기면, 그날이 우리나라 망하는 날이 될거에요.
천왕봉까지 가는 찻길은 없어요~~"
울상이되어 버린 내 표정에도 불구하고,
청년은 자동차로 달릴 수 없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이내 실망하는 얼굴이 되었습니다.
좀 미안해지기도 했어요.
연인을 옆에 태우고 뭐라도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을 혈기왕성한 젊은 청년에게
넘 심하게 무안을 준게 아닌가 싶더라구요.
묻지도 않은 3박 4일 지리산 종주까지 권해가면서 한참을 설명해주었지만,
이미 김이 빠진 청년은 듣는둥 마는둥 하더니, 이내 쌩~하고 내빼버렸습니다.
차의 뒷꽁지를 한참동안 쳐다보고 서있자니, 별의 별 생각이 다들대요.
지리산에 대해서 정보가 없었던게지.
예쁜 여인을 옆자리에 태우고 천왕봉이 뭐야 하늘까지도 날아가고 싶겠지.
젊은 혈기인데 뭔들 못할까,
그래도 천왕봉까지 차를 타고 가겠다는 발상을 할 수있다는게 도무지 상상이 안되어 혀를 차게 되더라구요.
젊은시절, 키보다 더 큰 베낭을 메고 지리산 종주를 떠나는 친구들을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릅니다.
그 산을 자동차로 달리고 싶어 하는 젊은이도 있을 수 있다는 건 인정해줄 수는 있겠지만,
진짜 그런 시대가 올까봐 더럭 겁이났습니다.
오늘 볼일이 있어 오랜만에 함양에 나갔다가,
그때의 공포가 또다시 엄습하는 일을 목격했어요.
난데없이 도로 양쪽으로 플랭카드들이 잔뜩 늘어서 있는데,
플랭카드마다 함양의 각종 단체들 이름으로 '지리산 케이블카를 함양에 유치하자'는 똑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던 것입니다.
함양 군수의 생각이 그렇고, 함양 군민들의 생각이 또 그렇고, 그들의 요구가 그러하다면,
조만간 그런 일도 생겨버리는 것이 아닐런지...?!
얼마전 산청에 다녀온 남편말이, 산청에도 케이블카를 산청에 유치하자는 플랭카드들이 잔뜩 걸려 있다고 하네요.
애초에 구례 산동에서 시작된 케이블카 유치 노력이 이제 함양, 산청, 남원까지 번지고 있으니,
지리산을 둘러싼 각 시,군들이 저마다 지리산에다 케이블카를 매달겠다고 안달이 나 있습니다.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것이 나쁘다고 볼수만은 없겠지만,
종주객들의 발길만으로도 몸살을 앓는 지리산에, 대책도 예방책도 없이 케이블카로 사람들을 실어 날라 놓으면
지리산이 어찌될까 걱정이 앞서네요.
케이블카 설치로 산과 계곡이 망가지는 것은 일차적인 문제인듯해요.
지리산의 자생약초와 버섯과 산나물들은 3년안에 멸종될거라고 장담하면 좀 오바일까요 ?
안그래도 길가의 느릅나무라고 하는것은 죄다 누군가의 손에 가죽이 벗겨져 하체를 벗고 서 있곤하는데,
지리산 골골이 숨어 있는 느릅나무들이 무사할 수 있을까요 ?
나무 열매를 채취해서 술 좀 담가먹는다는데 그 정도는 애교로 봐줄 수 있겠죠.
하지만 나무의 생태를 모르는 사람들은 열매를 따기위해 나무의 생장점을 무시하고,
밑둥까지 싹뚝 자르는 일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가을이면 도시인들이 봉고차까지 대절해 지리산으로 몰려와 도토리와 밤을 주워가버려
곰과 다람쥐의 양식조차부족하다 하는데, 케이블카로 그들을 실어 나르면 도토리와 알밤은 씨도 남지 않을거에요.
몇년전, 산행중에 우연히 채취한 상황버섯 사진을 인터넷 까페에 올렸다가,
생각없는 자랑질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깨닫고 후다닥 사진을 내린 적이 있습니다.
바로 그 다음주말에 30명의 사람들이 상황버섯을 따겠다고 우리집으로 몰려왔었거든요.
얼마나 황당하던지, 그날 그들이 지리산 봉우리 하나를 싹싹 훑어서
버섯이란 버섯은 크든 작든 가리지 않고 따왔더라구요.
지역주민들은 작은 것은 더 크라고 놔둘줄이라도 아는데,
그들은 다시올 기약이 없으니 아직 채 자라지 않은 것도 몽땅 채취를 해가지요...
전문가인체하는 자칭박사들이
케이블카를 편도로 끊어 정상에 도착한 후,
하산길에 지리산을 골골이 훑어 내려오는 그림을 그려보면서
혼자 진저리를 칩니다.
산아래 사람들은 당장의 돈벌이에 혈안이되어 케이블카에 자신들의 생존권이 걸린양 울부짖지만,
산에서 나물과 열매를 채취해 장사하는 그들에게
케이블카야말로 자신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가장 큰 적이 될 거라는걸 모르고 있는것 같아요.
천왕봉으로 질주하는 자동차보다,
케이블카로 편하게 지리산에 오르게될 사람들의 손길이 훨씬더 무서운 일을 초래할 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케이블카가 진짜 설치될 것인지...
선거때보다 더 많은 플랭카드를 잔뜩 달아 놓고 케이블카 유치하자고 아우성을 치는걸보니...
소름이 좀 돋았습니다...
첫댓글 그러게요. 있는 그대로가 좋은 것인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