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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무섬마을 이야기 원문보기 글쓴이: 박완서
"병마를 이겨내고 향토사랑을 다시쓰다" | ||||||||||||
함께하는 세상[117] 영주 사료집 발간한 향토사학자 박세우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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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애 기자 agh3631@yjinews.co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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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실록을 보면 '이정식 등이 상소를 해서 1682년 1월 13일 순흥 도호부가 복권되었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1년 뒤인 1683년이라고 알고 있죠." 박세우씨는 안타까운 듯 말한다. 어쩌다 우리지역 문화행사에서 그를 만나면 어눌한 말투로 '이거 알아요?' '이거 하나 물어봅시다'라며 우리지역 향토사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야기 도중 상대가 모르는 듯하면 '어 참 이 정도는 알아야 되는데'라며 슬쩍 면박을 주기도 한다. 그 만큼 우리지역 역사에 대해 해박한 이도 드물다.
박세우씨는 무섬이 고향으로 향토사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고향사랑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지난해 무섬 외나무다리 축제에 추진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다음카페에 개설한 무섬마을 이야기의 '박세우의 글방'에 무섬 관련 글 뿐 아니라 우리지역 향토사를 발굴, 발췌해 올려놓고 있다. ◆향토사에 대한 끝없는 연구와 고향 사랑 "영주에 동천(洞天)이 몇인지 아십니까?" 동천이라는 그의 말에 '어화동천 이화자'라는 탈춤의 소리가 문득 생각난다. 산과 내가 둘러있어 경치가 좋은 곳을 뜻하는 동천이 아닌가? "허문동천, 구호동천, 알성동천, 매양동천, 가암동천, 고석동천, 운포동천, 월리동천, 방학동천, 광능동천, 율수동천, 하암동천, 문암동천, 연화동천 그리고 또 하나가 있는데 생각이 안나요."라며 고개를 꺄우뚱한다. 우리고장에 이렇게 많은 동천이 있다니 알고 나니 놀랍다. 우리는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배워서 알고 있다. 1866(고종3)년 8월 조선에 통상을 요구하면서 대동강으로 올라와 해적질을 하던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평안도 관찰사 박규수 등에 의해 불태워진 사건이다. 당시 제너럴 셔먼호에는 대포 2문이 장착되어 있었으며, 프레스턴 등 무장한 승무원 19명과 통역자인 영국인 선교사 토머스가 타고 있었다. "박규수요. 그 박규수의 비가 구성공원에 있어요. '어사박공규수영세불망비'라고 쓰여있죠. 비석 밑 부분이 아직도 땅에 묻혀 있습니다. 또 우리지역이 지리적으로도 중요한 곳이었던 만큼 수많은 봉수대가 있었어요. 녹전산 봉수, 창팔래산 봉수, 사랑당 봉수, 성내산 봉수, 망전산 봉수, 죽령산 봉수 등 많은 봉수대가 있었습니다. 그의 우리지역 이야기는 끝이 없다. "요즈음 TV에 눈이 오는 데는 너무 와서 농사를 다 망쳐 문제고 또 다른 지역은 가물어서 난리죠. 순흥 비봉산 중턱에 거북바위가 있어요. 가뭄이 들면 아낙네들이 거북바위 등에다 소똥을 올려놓고 거북 궁둥이를 자기 마을로 돌려 비가 오기를 빌었어요. 그러면 하늘이 거북바위 위에 오물을 씻기 위해 비를 내려준다는 거지요. 지금도 거북바위가 그곳에 있어요."라며 재미있는 얘기도 들려준다. ◆거짓말처럼 찾아온 뇌졸증을 이겨내다 박씨는 지난 2000년 지역 향토사학자 2명과 함께 496쪽 분량의 영주사료집 발간했다. 그리고 영주인물초를 쓰던 중 뇌졸중이 재발해 영주인물초 총 4권 중 한 권만 완성하고 그만두게 된 것이 지금도 안타깝기 그지없다고 한다. 그가 향토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학교 다닐 때 소풍을 가면, 절이나 서원 정자 등이 너무 신기하고 평소 못 보던 글씨와 글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자꾸 알고 싶어지고- 그게 시작이라고 봐야지요." 초.중.고등학교를 영주에서 졸업한 그는 '74년 철도에 입사했다. 20년 이상 기능직으로 근무한 그에게 어느날 갑자기 뇌졸증이 찾아왔다. "진짜 거짓말처럼 병이 왔어요. 숙직을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다가 콱 엎어졌어요. 몸이 말을 안 듣고- 마비가 온 거죠. 앞도 안 보이고...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그래 휴직계를 내고 치료하다가 발병 다음해 사표를 냈습니다. 그 후 치료 끝에 완치되었다고 생각했는데 6년 후 재발한 겁니다. 지금 걷는 것도 불편하고 오른손을 제대로 쓸 수가 없어 글씨도 못쓰고 밥도 왼손으로 먹습니다." 그의 가족으로는 '80년에 친척의 중매로 만난 부인과의 사이에 평택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인 딸과 재대 후 성균관대학교 건축공학과에 복학을 준비하는 아들, 그리고 고향 무섬을 떠나지 못해 홀로 무섬에 살고 계신 모친이 있다. * 영주시민신문 안경애 기자의 글입니다 펌글 박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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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글을 보고나니 친구라는 단어가 부끄럽기 그지없구나 ..안경애기자님 고맙습니다
무섬마을에서 옮겨 온것이다. 내도 세우가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