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과 평화를 화두로 한 절실한 작업을 하고 싶었습니다.. 별러오다가 이라크 침략 전쟁의 파병국 대열에 선 나라의 국민이 되어버린 어느날부터 그 절실함을 피부에 감지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실천적 삶의 모습을 가지려고 백방으로 두리번거렸습니다..
체감하지 못하고 방심하고 망각하노라면 반전이나 평화는 그저 자기생존의 일정한 편의주의적 말 장난으로서 매듭지어질 뿐이라 생각했습니다..
나의 오감에 직접 체감되지 않는 상태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역사를 바라보면서 타인의 아픔이나 비애를 체감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 반전이나 평화의 절실함을 이 지구를 향해 정의롭게 외칠 수 있는 진정함과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때까지는 무던한 자기확인이 필요했습니다.
스스로 자각해보고 부끄럽지 않게 자신은 정말 꿈에도 평화를 원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사는가 그래서 그의 평화에 대한 한마디와 행동이 사람들 속에서 합당하게 회자될 수 있는가?
그렇게 노력하였으나 전쟁의 불씨하나라도 가슴속에 갖고 있다면 그는 평화를 얘기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이 작업을 준비함에 힘이 들었습니다.
미루고 미루던 그 부족함이 반전과 평화를 얘기하는 사람들 속으로 먼발치에서나마 다가가면서 그들의 절실함-물론 부분적인 조각조각의 절실함 일수도 있겠지만-을 마주하면서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 절실함을 향해서 그리운 하나의 의문으로 인간세상의 평화에 대한 화두로 숙제장에 불러준 숙제를 적어 귀가한 학생처럼 이 작업은 시작됩니다.
나는 사람들이 평화를 이룰거라고는 생각 치 않습니다. 그분이 약속했던 56억 7천만년뒤에까지도 평화는 이뤄지지 않을 것같습니다. 다만 그것을 외치는 사람들의 고귀한 실천만이 세상 어느 구석 구석에서의 호전가들의 양심을 자극해주는 부분적 꽃잎으로 피었다간 밟히곤 할 것입니다.
만남의 인사에서 그리고 헤어짐의 인사말로 평화를 얘기하기로한 것도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입으로 다시 미움을 키우는 것도 사람들입니다.
지구인들 가운데 아주 미세한 일부가 매일 밤마다 평화를 향한 글을 하나씩 쓴다면 전쟁이 조금은 줄어들까요? 나약해 보이리만치 무던한 민초가 밟히고 뽑히어도 용서하면서 평화를 노래하면 빼앗고 더 가지려는 자 자신 안에 남을 가두려는 자들의 행동이 조금은 누그러 들까요?
혹자는 여러 이유를 찾아가면서 논쟁으로서 전쟁논리를 대항하지만 전쟁이란 행위를 용납시키기 위한 무슨 논쟁의 필요가 있을까요?
세상엔 전쟁을 하는 자와 전쟁을 하지 않는 자로 구분됩니다. 예플 작업은 당신에게 평화를 이라고 인사말을 건네는 사람들 즉 전쟁을 하지 않는 자들의 얘기를 통해서 전쟁과 반전 그리고 평화의 화두에 접근하려 합니다.
절대 싸우지 않는 자는 가장 큰 힘을 가진 인류로 여겨집니다. 단 그가 싸우지 않는 이유가 비굴함이나 나약함 두려움이 아닌 평화와 반전의 의지일 경우입니다.
앗살람 알라이 쿰 사람이 사람을 대할 때 진정으로 그렇게 얘기하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어 그들의 얘기를 지구표면에 나열하다보면 세상은 그 순간만이라도 조금은 평화로와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 부질없는 그리움으로 이 작업을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