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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릉도 나리골의 너와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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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현철 |
| 삶은 '생명 활동'입니다. 활동 의욕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삶의 동력인 생기가 구분됩니다.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생기를 갖고 일할 경우, 긍정적 효과를 내지만 반대일 경우 역효과를 내기 쉽습니다. 이왕 살아야 할 인생이라면 시너지 효과를 내고 사는 게 값어치 있을 것입니다.
가는 세월 속에 발길 닿는 대로 흐르다 보니 어느덧, 나리분지입니다. 제주의 맛 중 하나는 한라산 주변 화산인 '오름'을 오르는 데 있습니다. 울릉도도 그렇습니다. 이곳에선 제주 오름처럼 힘들게 오를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 사는 '오름'이기에 자연스레 거치게 됩니다.
처음 보는 투막집과 너와집이 색다름을 안겨 줍니다. 울릉도 오름을 먼저 보고 제주 오름을 대했다면, 제주의 오름이 색달랐을 터인데 그 반대의 경우라 이곳 오름이 색다르게 느껴집니다.
지난해 여름, 제주 오름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들을 보며 '평화'를 떠올렸는데, 나리분지의 너와집과 투막집에서 '여유'를 맛봅니다.
울릉도 옛집인 너와집과 투막집은 집 구조가 거의 같아 지붕 재료로 구별한다 합니다. 나무로 얹으면 너와집, 억새로 올린 집은 투막집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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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릉도 나리분지입니다. 이곳은 제주도 화산분화구 '오름'과 달리 사람들이 밭을 일구며 살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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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현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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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 아부오름. 분화구 안에서 풀을 뜯고 있는 소들에게서 '평화'를 느꼈습니다. 작은 사진은 아부오름 근처에서 풀을 뜯는 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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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현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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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영민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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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현철 | 나리분지는 약초와 집에서 먹을 푸성귀를 가꾸는 넓은 밭, 군데군데 집으로 인구밀도가 아주 적습니다. 그래선지 오순도순 사는 맛을 간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야영장 식당의 윤영민(56)·김위순(53) 부부와 이야기를 나눕니다.
"울릉도 정말 좋네요. 여기 나리분지는 완전 신선놀음이네요." "그래요? 살기 좋은 곳입니다. 근데 한 달만 살아보세요. 신선놀음인지?" "그런 뜻이 아니라…."
아무리 좋더라도 그곳에 살지 않으면 애환을 모르는 법. 좋은 의미로 잘못 말했다 곤혹(?)을 치릅니다.
"나리분지, 어떤 곳이에요?" "사계절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봄에는 나물 캐고, 여름에는 아무리 더위도 30도를 넘지 않아 시원하고, 모기가 없습니다. 가을 단풍은 피아골 단풍보다 아름답고, 겨울 설경은 아름다운 동양화를 떠올리게 합니다. 산이 둘러져 있는 해변 산중이어서 울릉도에서 유일하게 섬이란 걸 못 느끼는 곳입니다."
나리분지는 동서 약 1.5㎞, 남북 약 2㎞로 60여만 평의 평야지대입니다. 울릉도 인구 1만2천 명 중 나리분지에 18가구, 40여 명이 옹기종기 살고 있습니다. 울릉도 도동이나 저동이 대도시라면 이곳은 시골입니다. 시골 밤하늘에 유독 별이 많게 보이는 것처럼 낭만도 가득하겠지요. 그러나 삶은 낭만만 있는 게 아니지요.
"언제부터 살게 되었나요?" "부산에서 살다 아내 고향인 이곳에 온 지 올해로 7년째입니다. 부산에서 환경 일을 했는데 IMF로 직장을 그만두고 장사를 했습니다.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한다'며 집사람이 자기 고향인 울릉도로 가자 해 오게 됐습니다."
"섬에 정착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도시에서 살다 섬 시골 생활 어려웠습니다. 필요한 물품도 제때 구입하지 못합니다. 도시에선 밤 문화가 있는데, 여기는 밤이 되면 바로 잠자리에 들어야 합니다. 또 밭일, 산일 등 농사를 처음 접해 적응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다 식당을 하게 됐습니다. 큰돈을 벌겠다는 욕심은 없습니다. 섬에 살면 여유로워져 마음이 넓어집니다. 한 번 온 사람들이 다시 찾습니다. 관광객들은 공기 맑고, 신선한 느낌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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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인봉 오르는 길에 만난 겨울 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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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문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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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영환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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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현철 | 윤영민·김위순 부부, 공사장 손님 받느라 질펀하게 앉아 있을 수가 없습니다. 대충 정리하고 울릉도 토박이로, 특산물 판매와 민박을 겸하는 뿌리 깊은 나무의 고영환(48)·이숙희(47) 부부와 이야기를 나눕니다.
"나리분지는 물이 많고, 특히 좋다면서요?" "보통 섬은 물이 귀한데, 울릉도는 넘쳐나요. 여기서 자고 가는 분들이 온천욕 한 것 같다 해요. 울릉도는 비가 바다로 흐르지 않고, 땅속으로 스며들죠. 조금 내려가면 용출수가 있어요. 외지 분들은 분지여서 물이 용출수로 모이지 않느냐 하는데 그게 아니라 땅에서 솟아요. 하늘에서 오는 물을 떠먹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죠."
목회 활동하는 형, 나리골에 숙소를 잡으며 "물이 좋고, 땅 기운이 달라"라면서 "자고 나면 몸이 개운할 거다"더니 그렇습니다. 다음날, 일어난 오문수 선생님은 "어제 몸이 찌푸덩 하더니 몸이 개운하다"면서 "손과 얼굴이 반질반질하다"고 덧붙입니다.
"이건 뭐예요?" "눈 많은 울릉도에서 신는 설피에요. 이거 없으면 어디 못 가요. 여기는 눈이 많아 올해 처음 눈꽃 축제를 계획했는데 눈이 안 와 취소했어요. 준비까지 다했는데…. 눈이 없는 건 올해가 처음이에요. 성인봉엔 눈이 허리까지 쌓였는데 여기는 눈이 없으니 별일도 다 있지…."
"약초가 지천인데 울릉도 약초와 육지 것의 차이는?" "육지와 비슷하지만 울릉도는 공해가 없어 깨끗하단 거겠죠. 삼나물은 육지에는 없고, 울릉도 악산(惡山)에 있는 걸 후계자들이 가져다 재배에 성공해 키우고 있어요. 부지깽이, 명이, 더덕 등 약초들이 부드럽고 연한 게 토질이 달라서 그러나 봐요."
섬에 다니다 보니, 소득원 개발이 가장 시급하게 느껴집니다. 소득원이 없으면 자연히 섬을 떠날 수밖에 없는 거죠. 요즘 고기가 안 잡혀 어부들 시름이 이만저만 아닌데 해변 산중인 나리분지야 오죽하겠습니까? 그나마 약초라도 있으니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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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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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문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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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약초를 캐는 사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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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현철 |
| 공사 따라 움직이는 오연군(44)씨와 대화를 합니다. 그도 IMF로 인해 다니던 은행을 그만두고 공사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IMF가 삶의 방식을 바꿨다더니 울릉도에서 마주하게 되어 한편으론 씁쓸합니다.
"울릉도의 건축비는?" "집 지을 경우 2배가 더 든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육지와 멀리 떨어진 섬이라 운반비 등을 고려하면 이해될 것입니다. 아이스크림도 육지에선 500원인데, 이곳에선 그 이상입니다. 아이들도 이런데 다른 것도 오죽하겠습니까?"
"공사가 많은 이유는?" "태풍 매미 왔을 막바지에, 일기예보에서는 매미가 우리나라를 빠져나갔다고 예고했습니다. 육지만 벗어났지 울릉도까지 벗어난 건 아닌데 말입니다. 섬이 겪는 애환입니다. 태풍 때마다 여기저기 파손됩니다. 난공사가 많아 아직까지 복구공사 중에 있습니다. 자연재해와 싸우는 섬입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한 정부지원이 필요합니다."
지글지글 삼겹살이 익고 있습니다. 이야기도 덩달아 익어가고 있습니다. 소주 한 잔을 털어 넣으며, 명이에 삼겹살을 얹어 입에 넣고 씹습니다. 꿀맛입니다. 제주의 오름과 구별되는 나리분지. 애환이 있어 사람 사는 맛이 납니다. 사람이 중요한 이유겠지요. 이게 생명활동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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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리골 풍경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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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현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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