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다. 인생을 살면서 답을 찾지 못하여 방황할 때면 늘 '현장'으로 돌아오는 것. 내가 해온 것은 그것뿐이다." 일본의 대표적 위생용구 기업인 유니참(Unicharm Co.)을 40여년 넘게 이끌고 있는 다카하라 게이치로(高原 慶一朗) 회장의 현장을 중요시하라는 일갈로 이 책은 시작되고 있다. 다카하라 게이치로는 일본에서 ‘현장 전도사’라 불릴 만큼 소문 난 경영자다. 본서에는 그가 위생용구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이 열악하던 시기인 1961년 大成化工을 설립하고 (1974년에 유니참으로 사명 개명) 이후 매출 3천억엔에 이르는 기업으로 성장시키기까지 현장과 혼연일체가 되며 깨달은 그만의 경영관, 그리고 후배들을 위한 진솔한 당부가 곳곳에 스며있다. 어떻게 보면 저자가 경영의 화두, 아니 인생의 화두로 삼은 현장중심의 철학은 그가 위생용품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이 이것이 사업이 되겠다고 판단하고 뛰어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는 속담처럼 그는 무에서 유를 만들기 위해 현장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하루하루를 살았다. 게다가 그에게는 위생용품 사업에 대해 가르쳐줄 스승도 선배도 없었다는 점이 더욱 그를 현장 예찬론자로 성장시키지 않았나 싶다.
총 4개의 장, 44개의 짧은 글들로 본서는 구성되어 있다. 이 글들은 메모광으로 알려진 그가 40여년 넘게 노트해온 경영의 지혜, 아니 현장주의가 녹아있는 글들 중에서 엄선한 글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우직함과 느림의 미학, 현장주의
그럼 다카하라 게이치로가 이야기하는 현장주의는 요체는 무엇일까? 저자가 만약 경영학자나 컨설턴트였다면 현장주의는 이것저것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것들의 관계는 다시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는 식으로 설명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40년 넘게 전장을 누벼온 야전사령관이답게 이런 식의 현장주의 설명은 일체 하지 않는다. 오히려 200페이지 안팎의 본서는 '현장으로 가서 현장을 보고, 느끼고 체험하라'는 지극히 단순명료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이 단순명료한 이야기가 우리의 폐부를 찌르는 것은 우리가 그만큼 현장과 멀어져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저자가 말하는 현장은 '경영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곳'이다. 또한 현장은 '성장과 변화를 위한 모든 힘이 응축된 곳'이자 '기업을 일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는 위험이 상존하는 곳'이다. 따라서 애정 어린 눈으로 현장을 바라보고 또한 냉철한 시각으로 현장을 판단하지 않으면 성장의 기회도 없을 뿐만 아니라 위기의 순간을 자초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성장의 기회 포착과 위기 자초의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현장을 성실하고 끈기 있게 대해야 한다. 본서의 1장에서 소개되고 있는 글들은 저자의 이런 생각을 잘 나태내주고 있다. '우직하게 일관하면 슬기롭게 변한다'는 글에서 일에 대한 저자의 태도를 잘 읽을 수 있다. 그는 일에는 두 가지, 응용 부분과 기초 부분으로 나눈다. 그리고 응용 부분은 ‘곱하기’에 의해서 발전해 나가지만 기초 부분은 ‘더하기’를 꾸준히 거듭해야만 축적된다고 정의한다. 머리가 영특한 사람은 일을 요령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더욱 깔끔하게 일을 처리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우직함과 끈기로 현장과 정면으로 맞서기를 저자는 권한다. 이 글은 책상 앞에서 컴퓨터와 마우스에 익숙한 젊은이들에게 일종의 경고인 셈이다. 현장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고서와 컴퓨터 모니터만으로 이해한다면 허상만을 계속 쫒을 따름이라는 것이다. 장자크 루소의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말처럼 '현장으로 돌아가라', 그리고 거기서 해답을 찾으라는 저자의 말은 다시금 곱씹어 볼 여지를 충분히 남기고 있다.
■ 현장은 자신의 내면에 깊은 우물을 파는 곳
본서의 원제인 '이론은 언제나 죽어있다(理屈はいつも死んでいる)'는 학자들이 봤을 때는 좀 심기가 불편한 상당히 도발적인 제목을 갖고 있다. 하지만 저자가 무조건적으로 이론을 폄하하기 위해 제목을 이렇게 붙였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저자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경영자 또는 기업에 몸담고 있는 임직원의 마음가짐에 대한 일갈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식 자본주의 시장경제 시스템이 확산되면서 기업에 대한, 또는 일에 대한 우리의 인식도 상당 부분 바뀌고 있다. 기업을 소비자를 위한 새로운 가치창출의 대상이 아니라 '거래의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고 일 또한 자신의 능력과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생계를 위한 수단으로 우리 사회가 너무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는지에 대한 老경영자의 경고인 셈이다.
최근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젊은이들의 제조업 기피현상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일본은 자타가 공인하는 모노즈쿠리(モノづくり, 좋은 제품 만들기) 강국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모노즈쿠리 세대가 더 이상 전승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 문제는 비단 한 기업의 문제에서 벗어나 미래 국가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점에서 국가차원의 대응책에 고심하고 있다. 저자가 주장하는 바도 이와 일맥상통하다. 모노즈쿠리 강국은 경영자나 임직원이 현장으로 돌아가지 않은 한, 즉 그들의 모든 애정과 노력의 대상이 되지 않는 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저자는 직시하고 있는 것이다. 본서의 2장과 3장에서 저자는 현장이 개인을 더 한 층 성장시키는 삶의 장으로 소개하고 있다.
'일은 고난이고 고난은 사람을 만든다'는 글을 살펴보면 현장은 일에 성실한 사람을 노려 심술을 부린다고 설명한다. 일은 아무리 노력해도 뛰어넘을 수 없는 높은 벽을 각자의 앞에 계속 준비한다. 벽을 넘고자 애쓰는 사람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래서 일을 하다 보면 자신의 무능력과 무력함을 절실히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넘지 목하는 벽에 부딪힌 경험이 없는 사람이야말로 불행한 사람이다. 벽은 넘는 것보다 부딪히는 것에 더 의미가 있다. 설령, 그 벽을 넘지 못한다 할지라도,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노력하는 사이에 사람은 성장한다. 성장의 크기는 그가 벽에 부딪혀 고생한 양에 비례한다. 즉, 벽에 부딪힐 때마다 능력이 향상되고 그만큼 일을 심화시킬 수 있다. 'CSI 범죄과학수사대'라는 미국 드라마가 인기 있다. 미궁의 사건을 첨단 과학적 기법과 분석력을 통해 해결하는 드라마로 사건 해결의 모든 단초를 현장과 피해자에 대한 철저한 데이터 수집과 이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을 통해 구하고 있다. 연구실이나 사무실에 앉아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현장으로 달려가 거기서 모든 정보를 수집하라는 고참 형사의 지적이 그대로 적중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 현장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본다. 현장을 직시하지 않으면 아무리 뛰어나 경영자, 컨설턴트라도 적확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장을 화두로 삼아 모든 답을 구하라'는 저자가 우리에게 던지는 사자후가 아닐까?
■ 현장의 힘은 질문의 힘
'현장에 모든 답이 있다'는 말은 '끊임없는 질문만이 답을 구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라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저자 역시 제품이 생산되는 현장과 판매되는 현장을 늘 주시하며 왜? 왜? 왜? 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며 현장이 꼭꼭 숨겨놓은 비답을 구하고자 노력했다. 또한 누구에게나 배움을 구하고자 한 탐구력을 보였다. 그의 현장주의가 일가를 이루는데 여러 사람들과의 만남이 있었겠지만 본서에는 일본 기업계의 거인이었던 마쓰시타 전기공업의 창업자 故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만남을 소개하고 있다. 경영의 신으로 추앙받는 인물과의 짧은 만남에서 그는 어떤 배움을 구했고 얻었을까? 저자는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강연을 듣고 일면식도 없던 그에게 다가가 여성용 생리용품 사업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내면 조언을 구하고자 했다. 당시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질문에는 답을 하지 않고 오히려 여성용 생리용품 사업은 무엇이냐? 왜 이 사업을 시작하려고 하느냐? 등 오히려 저자에게 이런저런 곤혹스러운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저자도 당시에는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혹시 이 사업에 참여하려는 것은 아닌지 우려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기우였고 저자는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질문에서 불치하문(不恥下問)의 자세를 감명 깊게 느끼게 된다. 초면인 사람에게서도 자신이 대기업 사장이란 사실을 잊어버리고 계속 왜? 왜? 왜? 라는 질문을 하는 배우고자 하는 탐구의 자세를 보인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탐구력에서 바로 현장의 힘은 질문의 힘이라는 사실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저자 다카하라 게이치로가 무조건적인 현장 예찬론자는 아니다. 어떻게 보면 현장을 가장 두려워하면서도 경외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문화재나 예술품 등을 접할 때 흔히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떠오른다. 작품에 대한 사전 배경지식이 있을 경우 문양 하나 조각 하나에도 왜 이런 모양으로 색깔로 표현되었는지를 알게 될 때 감상의 깊이가 더 해진다. 물론 공부가 더해지면 해당 작품을 떠나 타 작품과도 비교할 수 있는 안목이 생기게 마련이다. 즉 먼저 호기심과 탐구심이 없다면 아무리 훌륭한 작품이라도 그는 느낄 수 없는 것이다. 가장 치열한 현장주의자는 학자보다 더한 탐구심과 실행력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현란한 수식과 분석, 그리고 논리적 설득력으로 상징되는 비즈니스 컨설팅계에서 전해오는 한 가지 진리가 있다. "모든 답은 이미 클라이언트 쪽에 있다. 우리의 가치는 단지 그들의 이야기를 논리적으로 엮어주는 것이다. 그들이 모르는 것은 질문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본서 다카하라 게이치로의 '현장이 답이다'는 '진솔되다'는 표현이 모자랄 만큼 일체의 치장과 가식이 없다. 그의 글에는 힘이 넘친다. 일체의 미사어구나 과장됨 없이 투박하지만 아주 진솔하게 자신이 주장하는 현장주의를 명쾌하게 설파하고 있다. 만약 동일한 제하(題下)로 유명한 경영 컨설턴트나 학자가 글을 쓴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아마 주장보다는 가설이 그리고 조건이 이렇게 저렇게 붙어 주장하는 바는 간 곳이 없고 온갖 이론과 수식, 그리고 사례만 우두커니 남아있을 듯하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데 아주 세세한 이유가 없듯이 현장이 곧 모든 해결책의 시발점이라는 사실 하나는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당연지사를 우리는 애써 부정하며 엉뚱한 곳에서 경영의 제반문제를 해결하려고 공연한 애를 쓰고 있지는 않는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본서에서 담고 있는 44개의 작은 이야기들은 연관성이 없을 것 같지만 그 기저에는 '현장에 대한 애정과 경계'가 공존하고 있다. 현장에서 답을 찾지만 그 현장에 너무 매몰되다보면 나무에 가려 산을 바라보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랜 경륜과 높은 식견을 가진 작가의 좋은 글을 접하고 이에 대한 서평을 쓴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너무나도 곤혹스러운 작업이다. 행간과 구절에 담겨 있는 저자가 전달하고 하는 의미를 마음속에 담아두면 족하지 이걸 또 미주알고주알 해설을 위한 해설을 한다는 것이 영 마음에 개운치 않다. 그러나 본서를 일독하면서 느낀 감정은 잃어버리고 산 소중한 것들에 대한 기억을 되찾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