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몸으로 느낀 겨울의 온도
학교와 집을 오가는 하루들을 반복하는 내게 겨울 추위는 그다지 무서운 것이 못 된다. 출근하는 이들로 가득 찬 서울의 지하철은 따듯하다 못해 후끈하고, 하루 종일 난방이 돌아가는 학교 강의실에서는 점퍼를 입고 있는 학생들을 찾기 힘들 정도다. 버릇처럼 날씨가 춥다고 말은 하지만, 막상 그 추위를 온전히 다 느끼기도 전에 나는 또다시 실내로 들어선다. 그래서 내가 기억하는 겨울의 온도는, 최악의 한파로 기록되는 영하의 온도가 아닌, 난방으로 한껏 데워진 건조하고 미지근한 온도다. 올 겨울도 어쩌면 그렇게 집과 학교를 반복하며, 춥지도 덥지도 않은 애매한 온도에 머물렀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내게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그리고 그 추위 속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일깨워준 소중한 하루가 있었다. 우리 숙명여자대학교에서는 2018년부터 ‘숙명 라이프 아카데미’라는 이름의, 숙명여자대학교에서 주관하고, 동원그룹 육영재단에서 후원하는 인재육성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나는 1기로 활동하며 정말 많은 것들을 배우고,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강의실 안에서 1년 간 배운 소중한 가르침을, 이제는 직접 밖으로 나가 행동으로 옮길 때였다.
체감온도 영하 19도의 올 겨울 최악의 한파로 기록되었던 어느 금요일, 드디어 교실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사단법인 ‘따뜻한 한반도 사랑의 연탄 나눔 운동’에서 진행하는 연탄봉사에 ‘숙명 라이프 아카데미’ 학생 전원과 담당 교수님들까지 함께 참여한 것이다. 단순히 연탄을 나르는 것뿐만 아니라, 교내에서 ‘플리마켓’을 개최해 삼백만원이라는 수익을 얻어 연탄후원금까지 직접 마련해 더욱 의미 있는 실천이었다. 그렇게 마련한 총 1400장의 연탄을 이웃에게 전하고자 용산구 한남동으로 모였다. 내복에 옷을 몇 겹이나 껴입고, 롱패딩까지 입었는데도 춥다는 말이 연신 입 밖으로 나왔다. 따뜻한 실내에서 웅크린 채 겨울을 나는 게 습관이 된 우리에게, 날 것 그대로의 추위는 너무나도 낯설었다. 간단한 봉사안내설명과 함께 앞치마와 목장갑까지 단단히 준비를 한 채, 우리는 구석진 골목길 경사를 따라 한참을 걸어 올라갔다. 서울에서 평생을 나고 자라온 나지만, 새삼 서울 한복판에 이런 곳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어색하게 다가왔다. 엄마, 아빠 세대에서나 썼던 것이라 생각했던 연탄은, 그러나 아직까지도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 계층 등의 어려운 이웃들에게는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필수적인 생필품이라고 한다. 현장에는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더 살기 좋은 한반도를 만들기 위해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꾸준히 봉사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 날도 우리뿐만 아니라 연예인 분들도 있었고 개인자원봉사자들로 골목은 금세 가득 찼다. 그 사람들 중 한 명이 되어 오늘 하루 나눔을 실천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극한의 추위를 이겨내 최선을 다해 봉사에 임하겠다고 다짐을 하면서 봉사를 시작했다.
연탄 하나의 무게는 3.6kg. 한꺼번에 두 장의 연탄을 옮기면 돌이 채 지나지 않은 아이 한 명을 안는 것과 같은 무게가 된다. 짧은 시간에 많은 연탄을 옮기기 위해 우리는 연탄 두 장씩을 들고 계단을 오르내렸다. 영하의 날씨를 잊게 할 만큼 금세 온 몸이 땀으로 젖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걸음을 재촉하는 우리에게 연탄을 건네주시는 봉사자분들은 한 장씩만 나르라며 말렸지만, 겨울 추위도, 그 추위 속에서 흘리는 땀도 모두 낯설고 반가워 끝내 고집을 부려 두 장씩을 건네받았다. 올 겨울 이 연탄으로 추위를 견뎌낼 이웃들의 창고가 조금씩 채워질 때마다 점차 몸을 오그라들게 했던 추위는 가시고 기분 좋은 선선한 바람이 이마의 땀을 식혀주었다. 어느새 우리의 얼굴은 연탄재가 묻어 거뭇거뭇해졌다. 뭐가 그렇게 좋은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우리는 한참을 웃었다. 두 시간이 지나고, 가득 쌓여있던 천 사백 장의 연탄을 모두 옮겨놓자, 그 자리에서 큰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추위에 맨살이 트고, 팔을 들어 올리지 못할 정도로 온 몸이 쑤시고, 얼굴과 손에 검은 연탄가루가 거뭇하게 묻어도, 용산구 한남동 골목길에 사는 이웃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에 모두의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내가 알던 겨울의 미지근한 온도는 어쩌면 조금 부끄러운 온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추운 날씨에도 기꺼이 나를 희생하고 나눔을 실천하는 우리의 모든 이웃들을 통해 하게 되었다. 책상 의자에 앉아서 얻는 가르침은 그러나 ‘실천’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모두 무용지물이 되어버릴 수 있다. 내가 나른 연탄이 고작 몇 장 되지 않지만 우리 이웃들이 겨울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될 것이고, 그 따듯함이 모여 더 살기 좋은, 더 나은 한반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짧은 하루 동안의 연탄 봉사를 통해 깨달을 수 있었다. 겨울이 이토록 춥다는 것을, 그러나 그 추위 속에서 진정한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숙명 라이프 아카데미’를 통해, 그리고 ‘따뜻한 한반도 사랑의 연탄 나눔 운동’을 통해 알게 되어 행복했던 올 겨울 나의 소중했던 하루. <글: 숙명여대 숙명라이프아카데미 이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