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문출처 : NAVER 라이프 매거진 [THE MUSI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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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초 양준모가 일본에서 공연 중인 [스위니 토드]를 보기 위해 일본행을 감행했다. 이번 여행에서 그는 일본 최고의 연출가 미야모토 아몬이 연출한 [스위니 토드] 이외에도, 일본의 스테디 뮤지컬인 토호의 [레 미제라블]을 관람했다. 이번 일본행에는 공연 관람 말고도 특별한 이유가 있는데, 바로 일본의 살롱 콘서트에 초청된 것이다. 아담한 공간에서 일본 관객들을 만나 특별한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양준모가 일본 여행에서의 감동을 [더뮤지컬]에 보내왔다.
스위니! ‘[스위니 토드]가 일본에서 공연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공연 스케줄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르센 루팡]공연이 끝난 다음날 새벽, 낮 1시 공연을 보러 아침 일찍 일본으로 떠나는 비행기에 올랐다. [스위니 토드]가 정말 좋다. 왜냐고? ‘좋으니까 그냥 좋으니까~’ 2007년 스위니가 되어 노래를 부르면서 손드하임이 써놓은 그 느낌과 인물의 감정들을 발견해 나가는 재미로 공연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 추억들은 나를 일본으로 강하게 이끌었다.
1. [스위니 토드]의 연출가 미야모토 아몬과 함께 |
2. [스위니 토드]가 공연 중인 KAAT 극장 |
드디어 피곤한 몸을 이끌고 5월 6일 아침 11시 일본에 도착! [미녀는 괴로워] 일본 공연 때 인연을 맺은 쇼치쿠좌의 히시누마 피디가 직접 마중을 나와줬다. 그녀는 일본에 있는 동안 [스위니 토드] 배우들과 연출님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을 소개해주고 따뜻하게 챙겨줬다.
완공된 지 3년이 된 KAAT 극장, 들어서자마자 아담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느꼈다. 잔인한 스위니 토드가 극장 어딘가에 숨어있다는 걸 모르는 듯이. 객석으로 들어서자 옅은 조명 사이로 보이는 철골 무대가 한국 [스위니 토드]의 무대와 흡사했다. 단지 많은 기계 구조물을 좀 더 촘촘하게 엮은 느낌이랄까?
드디어 내가 기다린 굉음의 시작! 눈가의 어두운 분장이 인상적인 앙상블 배우들의 ‘Ballad of Sweeney Todd’를 시작으로 공연의 막이 올랐다. 많은 부분이 한국의 연출과 흡사했다. 다만 연출의 표현에 몇 가지 다른 부분들이 신선했다. 대표적으로 피렐리와 토드의 대결에서 면도 대결 이외에 한국 무대에서는 없었던 이를 뽑는 두 번째 대결이 펼쳐졌다. 마지막 스위니 토드의 죽음의 계기를 새롭게 해석한 점도 흥미로웠다. 미야모토 아몬 연출은 손드하임의 작품의 의도와 메시지를 백분 살려 표현하고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백스테이지에서 아몬 연출과 토드 역과 러빗 부인 역의 배우를 만날 수 있었다. 한국 공연과 다른 점들, 이번 공연에서 인상 깊게 본 장면들을 이야기하자 아몬 연출은 큰 관심을 보이며, 한국에서 재공연될 [스위니 토드]를 꼭 보러 오겠다고 약속했다. 일본에서는 대작 뮤지컬의 특정 캐릭터는 특정 배우만이 연기하곤 한다. 토드 역의 이치무라 마사치카와 러빗 부인 역의 오오타케 시노부도 굉장히 오랫동안 이 역을 맡아온 배우들이다. 60대의 이치무라 상은 내가 20대에 스위니 토드 역을 연기한 것을 듣고는 무척 놀라워했다. 일본에 가기 전 공부 차원으로 일본 영화 [13인의 자객]을 찾아봤다. 이 영화에 연기 잘하는 비중 있는 조역이 있었는데 그가 이치무라 상이었다. 영화에서도 뛰어난 연기에 깊은 인상을 받았는데, 그 배우를 이렇게 무대 뒤에서 만나게 되다니 무척 신기했다. 러빗 부인 역의 오오타케 시노부는 일본의 국민배우로 매우 매력적인 미소을 지녔는데 그것이 무대에서도 잘 드러났다. 에디뜨 피아프 역을 했다고 하는데, 얼마나 매력적일까 상상이 갔다. 기회가 된다면 오오타케의 피아프를 꼭 보고 싶다.
또한 개인적으로 매력을 느낀 배우는 안소니 역할의 카키자와 하야토였다. 그는 안소니란 캐릭터를 그 나이 대에 맞게 사랑이 넘치고 생명력이 가득한 인물로 만들었다. 주변 인물들이 모두 어두운 캐릭터였기 때문에 하야토의 안소니가 더욱 살아 있는 인물로 보였다. 음악적으로도 두성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능력이 인상적이었다.
3. 마노 료코 선생님과 기념 촬영 |
4. 살롱 콘서트 리허설 장면 |
5. 살롱 콘서트 장면 |
이번에 일본에 간 또 다른 이유는 살롱 콘서트에 게스트로 초청받았기 때문이다. 팬들을 위한 아담한 살롱 콘서트에서 일본 관객을 만날 기회였는데 나에게는 무척 좋은 경험이었다. 콘서트 전날 일본 뮤지컬의 산 역사인 마노 료코 선생님의 스튜디오에서 리허설을 하는 기회를 얻었다. 이분은[미스 사이공]이나 [맨 오브 라만차] 등 일본에서 공연한 대표적인 뮤지컬에서 배우들의 음악 지도를 담당했다. 수많은 일본 배우들이 그의 지도하에 무대에 섰다. 일본의 대표적인 음악인 앞에서 노래를 하려니 무척 긴장됐다. 내 노래로 한국 배우들에게 편견이 생기지 않을까 어깨가 무거웠다. 노래를 끝내고 그분의 가르침을 내심 바랐지만 특별한 말씀은 하지 않으셨다.
이번 일본 방문에서 가장 뜻 깊은 일은 노지마 나오토라는 친구를 만난 것이다. 한국 관객에게도 친근한 노지마는 [빨래] 기념 공연 때 솔롱고 역으로 오디션을 본 일본 배우이다. 그는 지난 [빨래] 2천 회 기념 공연에서 한국어로 공연했고, 일본 [레 미제라블]에서 마리우스를 거쳐 현재 앙졸라로 출연하고 있다. 노지마의 한국 뮤지컬에 대한 애정은 ‘참 예뻐요’를 부르는 그의 한국 발음을 통해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는 한국과 일본 뮤지컬의 상생과 교류를 꿈꾸며, 자신이 이끌어 가야 할 일본 뮤지컬의 아름다운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를 보며 나 또한 작은 책임감을 갖게 됐다. 요즘 한국 뮤지컬계의 중요 이슈 중 하나는 일본과 한국 뮤지컬의 교류다. 역사적인 앙금이 말끔히 가시지는 않았지만, 서로의 발전을 위해 상생할 이유와 목적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여러 곡의 뮤지컬 넘버를 불렀는데 내가 했던 라이선스 뮤지컬과 [서편제]의 넘버, 그리고 특별히 [지킬 앤 하이드]의 ‘지금 이 순간’을 일본어로 연습해서 불렀다. 내가 부른 노래 중 가장 뜨거운 반응이 쏟아졌다. 역시나 그때 그 순간은 ‘지금 이 순간’이었다. 그 곡을 들은 한 일본인 관객은 공연을 많이 봤지만 이 노래가 이런 느낌의 노래인지 몰랐다면서 내 노래에 깊은 감사의 평가를 해주었다. 다만 일본에서는 [지킬 앤 하이드]의 인기가 한국보다는 덜한 것 같았다. 간바레(힘내요), 지킬!
마지막에는 노지마와 듀엣 곡으로, [엘리자벳]의 ‘그림자는 길어지고’를 불렀다. 기획사 측에서는 일본어와 한국어로 부르면 좋겠다고 했는데, 내 생각에는 언어가 섞이면 매끄럽지 못해서 한 언어로 부르는 게 좋겠다고 했다. ‘지금 이 순간’처럼 내가 일본어로 연습하든 노지마가 한국어로 부르든 언어를 통일하기로 했다. 한국어를 잘하는 노지마가 연습하기로 하고 한국어로 듀엣을 불렀는데, 마무리 곡으로 적절한 선택이었다.
©TOHO Theatrical Division
우리의 자랑스러운 김준현 배우가 출연 중인 일본 토호 제작사의 [레 미제라블]을 보았다. 아쉽게도 내가 본 날에는 김준현 배우가 출연하지 않았다. 대신 존 오웬 존스(최고의 장 발장으로 꼽히는 미성을 지닌 배우- 편집자 주)를 연상케 하는 거구의 매력적인 보이스를 가진 요시하라 미츠오의 공연을 봤다. 개인적으로 무대에서 [레 미제라블]을 보는 것은 처음이라 아주 큰 기대를 품고 봤는데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레 미제라블]이 공연 중인 제국극장은 일본 배우들에게는 꿈의 무대라 불린다. 한국으로 치자면 국립극장 격으로 오랜 전통을 가진 곳이라고 한다. 무엇보다도 극장의 음향이 아주 훌륭했다. 모든 사운드와 배우들의 톤을 놓치지 않고 들을 수 있었다. 일본의[레 미제라블]은 한국 공연과는 조명 디자인과 동선이 다르다고 한다. 아마도 이것은 관객들의 취향의 차이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생각했다. 영화가 새로운 버전의 [레 미제라블]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두 장르의 [레 미제라블]에서 비슷한 연출의 느낌을 받았다.
6. 제국극장에서 |
7. 앙졸라로 출연 중인 노지마와 무대 뒤에서 |
일본 뮤지컬 배우들의 노래 실력이 평균적으로 우수하지 않다는 평을 듣곤 했는데, 두 작품을 관람하면서 이러한 점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의 연기는 물론이고 노래에서도 배울 점들을 많이 발견했다. 다만 조심스럽게 나의 소견을 붙여본다면 일본어 발음 구조에서 오는 제한된 발음 공간이 노래에도 영향을 미칠 것 같았다.
앙졸라를 연기한 노지마는 어제와는 또 다른 모습으로 무대에서 매력을 발산했다. 안정적인 노래와 연기로 그가 얼마나 좋은 배우인지 증명했다. 공연이 끝나고 무대 뒤로 갔다. 원래는 의상을 입고 사진을 찍는 것이 허락되지 않지만 노지마의 도움으로 촬영 허가를 얻고 기념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갔던 일본 선교 여행을 제외하고, 2년에 걸친 [겨울연가] 일본 투어, [미녀는 괴로워] 오사카 공연을 거치면서 여러 차례 일본을 방문하게 되었다. 처음엔 음식도 맞지 않고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이 들곤 했는데 방문 횟수가 늘어나면서 일본이라는 나라가 친숙하게 다가온다. 정치적으로 안타까운 일도 많은 요즘, 양국의 뮤지컬 교류를 통해 두 나라가 진심 어리게 웃을 수 있다면 좋겠다. 자, 그럼 난 관객에게 또 다른 세상을 선사하러 연습하러 간다. 아이시떼루(사랑해요), 뮤지컬!
발행 2013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