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은 역사를 기록하고 후대에 전하고자 했던 선조들의 노력이 담긴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실록은 조선시대 왕의 언행과 조선의 사회상을 객관적으로 서술한 기록물이다.
기록이 가진 힘을 중시했던 조선은 왕실의 기록물을 수도 한양의 춘추관사고와 지방 사고인 정족산, 태백산, 적상산, 오대산사고에 나누어 보관하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나라를 빼앗기며 왕실 기록물 또한 흩어지거나 소실되었고, 오대산사고에 보관되어 있던 실록은
일본으로 반출되었다.
오랜시간 일본에서 머물던 오대산사고본 실록이 100여년만에 본래의 자리에 돌아오게 되었다.
오대산사고는 강원도 오대산에 있었던 조선왕조의 사고이다, 조선왕조는 화재와 전란으로부터 왕실의 기록을 지키기 위해 중앙에 춘추관사고를 설치하고 지방에 외사고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거치며 사고가 소실되자 외사고를 접근이 어려운 산속에 옮겨 설치하였는데 이 중 하나가 오대산사고이다.
오대산사고는 산속에 위치하고 관리가 어려웠기 때문에 월정사를 수호사찰로 두어 보안을 맡겼다.
조선왕조실록은 제1대 태조부터 제25대 철종에 이르는 역대 왕들의 행적을 중심으로 472년(1392-1863)의 역사를 담은 기록이다.
조선은 왕조의 정통성을 증명하는 기록을 중요하게 여겼으며, 왕이 자신의 언행을 경계하여 선정을 베풀게 하고 후대에 역사적 교훈을 남길 수 있도록 실록 편찬에 심혈을 기울였다.
강화사고 정족산성사고
태백산성 사고 오대산성 사고
전체 47책 중 9책이 남아 있어 1475년(성종6)1월부터 1479년(성종10) 8월까지의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군주로서의 모습뿐 아니라 동물 애호가로서의 면모까지 성종의 다양한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전체 22책중에서 1책만 남아있다. 1658년 1월부터 12월까지 단 1년의 기록이지만 기사를 통해 당시 국제 정세와 대내 경제 정책의 변화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전체 89책 중에서 15책이 전한다. 선조가 즉위한 1567년 7월부터 1593뇬 2월까지의 기록으로 임진외랸과 같은 주요한 사건은 물론 기이한 천문현상도 볼 수 있다.
전체53책 가운데 50책이 남아 있다. 1506년부터 1544년까지 39년에 걸친 기록으로 중종의 딸 사랑이 드러나는 대목, 드라마로 잘 알려진 장금에 관한 기록 등 다양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오대산 사고는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어 터만 남아 있었으나 사각과 선원보각을 복원하였고 현재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중국에는 여성사관이 있었으나 조선시대에서는 "예전에는 여자들이 모두 글을 쓸 줄 알았으므로 적당한 여자 사관을 임명하여 왕비의 일을 빠짐없이 상세하게 기록하도록 할 수 있었으나 지금을 글을 잘 쓰는 여자가 적어 제대로 기록할 사람을 어려운 것 같다"라고 했다고 한다.
실록을 잘 못 쓰면 다시 쓰거나 폐기하는것이 아니라 교정쇄본을 만든다고 한다.(성종실록 권51-56)
정족산사고에 보관되었던 정본 성종실록 권51-56
이렇듯 의괘를 통하여 조선시대의 모든 상황을 알 수 있었을수 있을텐데 소실된것이 참 아쉬운 생각이 든다.
작년(2023년) 10월에 월정사에 가다가 월정사옆에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이 생긴것을 보고 언젠가는 꼭 한번
와보고 싶었던 박물관을 직접 답사할 수 있어서 참 좋았고, 다만 시간이 좀 부족해서 더 자세하게 볼 수 있었던
시간이 부족해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