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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놀라운 자비 – 마리아지 2024. 11 · 12 통권 248호
여덟 번 낙태했다고요?
VOUS DITES HUIT AVORTEMENTS?
엠마뉘엘 마이야르 수녀
피에리나pierrina는 성모님의 메주고리예 발현 목격자인 마리야 파블로비치marija pavlovic에게 연락하고 싶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내적으로 황폐해진 상태에서 그녀는 이번 만남이 마지막 기회라고 자신에게 말했다. 그리하여 피에리나와 마리야는 만나게 되었고, 마리야는 기꺼이 피에리나를 맞아들여 그녀 앞에 가슴 아픈 난파선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리야, 지금 내가 자살 직전에 있기에 당신을 만나러 왔습니다. 난 이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요. 나는 완전히 망가졌어요. 사실 나는 낙태를 여덟 번이나 했어요. 여덟 번, 알겠지요? 남편은 아이를 원하지 않았답니다. 하지만 오늘은 내 안에 죽음이 느껴져서, 이대로 계속 살 수 없을 것 같아요. 난 끝났어요. 오늘 저녁 성모님을 만나면 나를 도와주시라고 부탁해주세요. 난 사제도 만나고 싶지 않아요. 지금까지 내가 낙태를 여덟 번이나 했다고 하면, 사제가 나를 고해소에서 쫓아낼 게 분명하니까요.”
이 말에 마리야는 이렇게 설명해주었다.
“전혀 그렇지 않아요. 그 어떤 신부님도 당신을 고해소에서 쫓아내지 않아요! 당신이 경험하고 있었던 모든 것을 신부님께 말씀드리면 됩니다. 그러면 신부님은 당신의 말을 들으시고 분명히 도와주실 겁니다. 고해성사 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요. 오늘 저녁에 성모님께 당신에 관해 말씀드리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리고 당신을 위해 기도할게요.”
그리하여 그날 피에리나는 사제에게 자신의 삶을 고해하였다. 그리고 사제가 너무나 자애 넘치는 친절과 깊은 이해로 자신을 받아주자 놀라면서도 기뻤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즉 그녀가 자신의 비참함과 죄와 상처를 표현항 후에 예수님께서 친히 그녀를 노우러 오셔서마음의 평안을 주셨음을 느꼈다는 점이다. 돈으로 살 수 없고 만들 수도 없는 이 비할 데 없는 보물, 다시 말하면 모두가 꿈꾸는 마음의 평화를 충만히 누리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녀가 누린 그러한 평화를 체험한 사람이 거의 없다.
“내 생애 처음으로 평화를 찾았어요”
피에리나는 성당 왼쪽 탑 아래에서 마리야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마리야가 오후 5시 40분에 성모님의 모습을 뵙고 6시 미사에 참례하며, 오후 7시쯤 성당에서 나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작은 종탑아래에는 한 무리의 순례자들이 모여 있었지만, 피에리나는 그 움직임을 예상하고 문에 붙어서 사랑하는 마리야에게 가장 먼저 매달릴 참이었다. 드디어 마리야가 활짝 웃으며 나오더니 피에리나에게 말했다.
“정말이지, 성모님이 나타나셨을 때, 나는 당신에 대해 말씀드렸는데, 성모님은 너무 많은 세부 사항을 아시길 원하지 않으셨어요. 내 말을 들으시면서 미소를 지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죠. ‘이 여인은 많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 하느님의 손에 쓰인 도구가 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하시며, 성모님께서 당신을 도와주실 것이고, 당신은 성모님과 함께 새로운 길을 걸어가게 될 것입니다. 고해성사를 보러 갔나요?”
예, 마리야. 예수님께서 내 마음을 치유하셔서 이제는 절망감이 사라졌어요. 내 생애 처음으로 평화를 찾았어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피에리나는 메주고리예에서 자신의 몸과 마음과 영혼에 받은 이 풍성한 은총 덕분에 다시 용기를 얻게 되어, 이탈리아로 돌아와서는 여덟 번의 낙태를 경험했던 병원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거기서 그녀는 잃어버릴 것이 아무것도 없는 단순한 사람처럼 용기를 내어, 낙태하러 오는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녀는 훈계하지도 않고, 설명하지도 않고, 가르치려 하지 않았다.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들려주었을 뿐이다. 즉 여덟 번의 낙태 후에 자신이 어떻게 내적 죽음에 빠졌는지, 그리고 메주고리예에 있는 고해소에서 진실하게 고해한 후에 성모님의 개인적인 개입을 통해 어떻게 자신이 삶을 되찾고 살아갈 의욕을 갖게 되었는지를 들려주었다.
하느님 어머니의 예언이 이루어졌다! 실제로 피에리나의 말을 듣고 그녀에게서 발산되는 빛을 본 많은 여성이 아기를 키우려는 마음으로 병원에서 발길을 돌린 것이다. 하느님은 가장 큰 재난 속에서도 당신을 신뢰하는 이에게 용기와 생명을 다시 주시려고 항상 해결책을 찾으신다.
오, 엄마, 당신이 나를 알았다면!
인도 남부 케랄라에서 선교사업을 하던 어느 날 저녁, ”예수 청소년‘팀이 야외에서 연극을 하는데 수백 명이 그 연극을 보며 눈물을 흘리며 우는 것을 나는 보게 되었다. 그 공동체는 복음 전파를 위해 잘 훈련된 열성적인 그리스도인 젊은이들로 구성되었으며, 특히 젊은이들에게 그리스도와 그리스도교 신앙을 알리기 위해 인도 전역을 두루 돌아다녔다.
그날 저녁, 무대 주변에 마련된 임시 벤치에 앉은 이들 중 손수건을 꺼내지 않는 사람이 드물었다. 집회에 참석한 나 역시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심지어 맨 앞줄에 앉아 그 연극을 보신 그 교구 주교님도 눈물을 참지 못할 정도였다.
무대에서는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을까? 한 여인, 따뜻하고 매력적인 목소리, 심금을 울리는 음색, 애정과 기쁨으로 가득한 환희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그 후에 비극적인 장면이 전개되었다. 고통의 울부짖음, 밤을 찢는 그 목소리에 메아리치는 은은한 오케스트라 …. 우리는 수백만 명의 작은 생명들에게 충격을 주었고, 충격을 주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충격을 주며 영향을 미치게 될 숨겨진 극적인 사건의 장면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날 저녁, 이 작은 존재 중 하나를 연기하여 그 아기들의 조용한 외침을 목소리로 담아내며 연기한 사람은 바로 비마Beema였다. 이 드라마에 아주 심오한 인간적 의미를 부여한 어조를 여기서 글로 표현하는 것은 내겐 불가능했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 중에서 가장 작은 사람, 곧 태아의 순수하고 벌거벗은 현실로 우리를 데려가는 이 사랑 노래가 전하는 메시지를 행간에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한 번도 태어나지 않은 아이예요. 그런데 나는 영원의 땅에서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나는 사랑으로 창조되었지만 잔인하게 죽임을 당했어요.
내가 아직 3개월 된 배아였을 때, 나는 사형을 선고받았답니다.
나의 아빠는 내 죽음의 장본인이며, 엄마의 태는 내 죽음의 침대였죠.
아, 나는 살아있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너무 부러워요!
아, 나는 공중의 새들과 함께 노래하기를 너무나 갈망한답니다!
나는 바람에 흔들리는 들판의 백합과 함께 춤추고 싶어요!
나는 웃고 싶어요! 나는 울고 싶어요!
아주 부당하게 빼앗긴 이 장엄한 삶의 풍미를 즐기고 싶어요.
이제 나에게 남은 것은 추억뿐입니다.
어머니 배 속에서 보낸 이 3개월의 멋진 추억들뿐입니다.
나를 살려주세요! 나를 햇살 아래 걷게 해주세요!
나를 살려주세요! 나를 엄마 품에 안겨 주셔요!
내가 엄마의 포옹을 맛보게 해주셔요.
내가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게 해주셔요.
나도 하느님 창조의 일부가 되게 해주셔요! 나를 살려주세요!”
“나는 한 달 전부터 엄마의 배 속에 있었죠. 나는 이 따뜻하고 어둡고 친밀한 작은 구석에 잠겨 있었어요. 내 주위에서 가볍게 진동하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이분이 나의 엄마인가 궁금했어요. 나의 엄마는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아직 모르고 있어요. 아!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면 엄마는 얼마나 기뻐할까요!
이제 나는 태어난 지 두 달이 되었지만 매일 계속 자라고 있어요. 내 심장은 내 존재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제 심장이 뛰기 시작했어요. 아!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요! 손가락과 발가락이 형성되었고, 지금은 작은 입도 생겼어요, 이제 나는 3개월이 되어서 웃을 수 있고 눈살을 찌푸릴 수도 있지요. 발로 차거나 주먹으로 때릴 수도 있어요! 엄마, 나 살아 있어요!
그런데 어제 아빠와 엄마가 나를 죽였습니다. 내가 단지 세포 덩어리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나, 세포 덩어리? 아, 나를 원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을 때 느꼈던 고통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내가 죽임당할 것을 알았을 때 나를 사로잡은 공포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의사가 도구로 내 몸을 꿰뚫고 조각조각 자르는 동안, 내가 견뎌야 했던 죽음의 고통과 끔찍한 고통을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요? 내 작은 손, 내 작은 발 …!
내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누군가 말해줄 수 있나요? 왜 그들은 나를 다시는 원하지 않았을까요? 아! 엄마! 엄마는 나를 모르세요? 나를 기억하지 못하시나요? 난 당신의 아이예요! 당신의 살의 살! 당신은 나를 석 달 동안 당신의 태 속에 품고 있었어요. 나는 당신의 생명과 피를 공유했어요. 그런데 당신은 나를 죽였어요.
왜요? 엄마, 무엇 때문에? 내가 원한 것은 사는 것뿐이었어요. 가족의 일원이 되는 것이었어요! 정다운 엄마, 어떻게 하느님이 주신 생명을 없애버리려고 생각하게 되었나요? 나는 엄마가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존재인가요? 아, 엄마, 엄마가 나를 알았더라면!”
그런 다음 비마는 군중 쪽으로 향해 말했다.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아직 어머니 배속에 있을 때 당신의 어머니가 여러분을 죽이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분 각자가 오늘 날 이렇게 살아 있는 것입니다. 내 말 좀 들어보실래요? 나의 조용한 외침과 나의 애원을 누가 들어줄까요? 내가 바라는 것은, 살 권리뿐입니다 ….”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주세요
낙태는 의식하든 의식하지 안든 간에 부모에겐 언제나 비극이자 깊은 상처이다. 자비로우신 주님께서는 이 어머니와 아버지들에게 이 상처를 치료하기 위한 치유의 길을 주셨다. 여러 단계가 있다.
“이 아이가 천국에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마르트 로뱅에 따르면, 낙태된 아이들은 성모님 영광의 면류관을 구성하며, 천국에서 자신들의 부모를 위해 중개하는데 시간을 보냅니다. 그들은 마리아의 품에서 ’완전한 사람‘의 키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 성장합니다.”
“낙태된 태아에게 이름을 지어주세요. 이 단계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름은 바로 그 아이의 신원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 어린 생명은 더는 자기 부모에게 익명이거나 ’세포덩어리‘가 아니며, 성인들의 통공을 경험할 수 있는 잘 인정받은 존재가 될 것입니다. 그 아이는 어머니 가슴에 움푹 들어간 한없이 깊은 공허함을 채워줄 것입니다.”
“화해의 성사를 통해 하느님께 이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하십시오. 이 권한은 주교님께 있지만, 이런 경우가 너무 많아서 종종 주교님은 낙태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사제들에게 위임합니다.”
“또한 아이에게 용서를 구하십시오. 이제 그 아이는 이름과 신원을 지녔으므로 그의 부모는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아이는 부모가 하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는 아마도 부모가 저세상에 들어가는 순간에 만나게 될 첫 번째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부모가 요청하여 받은 용서는 그 아이들에게 큰 치유가 됩니다.”
“이 과정의 마지막 단계는 자기 자신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에게 이것은 가장 어려운 단계입니다. 이 죄의 심각성을 깨닫는 것은 깊고 강렬한 죄책감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어떤 엄마들은 자신의 이미지가 손상되어 수치심과 깊은 굴욕감을 느낍니다. 낙태를 경험한 많은 엄마들이 끝없이 고해하고 또 고해하는 것을 주목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자신을 용서하지 않고 고해에서 평화를 찾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렇게 하라고 제안하면, 그들은 때때로 이렇게 대답합니다. ’하지만 그런 끔찍한 행위를 내가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어요? 그 아이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나는 그들이 스스로 이렇게 말하도록 권유합니다. ’그래, 나는 그렇게 할 수 있었어!‘”
소화 데레사 성녀도 하느님 자비의 선행은총(사람의 자유의사를 속박하지 않고 미리 회개로 인도하는 하느님의 은총)이 없었더라면, 자신이 많은 대죄를 지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하였다.
“다행히도 일단 진정한 회개와 고해를 하고 나면, 이 악은 하느님에 의해 이번을 마지막으로 용서되어 그분 자비의 바다에 삼켜집니다. 어떤 면에서 이제는 죄로 존재하지 않으며, 그 결과만이 남아 있으며, 내적 치유를 위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 부모는 자신들의 아이가 천국에서 부모를 기다리며, 매우 발랄하고 건강히 지내며, 어떤 형태의 원한도 없이 하느님의 사랑 자체로 부모를 무한히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기쁨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낙태 후 여성의 심리상태는?
심리학 박사 베네데타 포아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잃은 경험을 한 엄마들을 위한 내적 치유 세미나를 이끌고 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썼다.
“유산이나 자발적 낙태를 한 여성들이 당연히 모두 기분이 나쁘다거나, 모든 여성이 다르고 독특한 방식으로 반응한다는 단순한 이유로 같은 고통을 느낀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어떤 여성들은 임신 중절 직후 기분이 나빠지고, 또 어떤 여성들은 몇 년 후(종종 다른 아이가 태어날 때) 기분이 나빠진다. 낙태하고도 마치 아무런 특별한 일도 없었다는 듯이 예전처럼 삶을 계속해가는 여성들도 만났다. 이것은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이다. 부모가 아이를 놓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때, 심리의 불편함이 종종 생긴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소행이라는 것을 깨달으면, 그들의 고통은 더욱 심해진다. 그때 심리적 지원을 찾는 부모는 다음과 같은 여러 증상을 동반하는 낙태 후 스트레스의 전반적인 병리학으로 고통을 겪는다.
- 우울증 : 연민, 음울한 생각, 슬픔, 불안, 계속되는 울음, 죄책감 및 수치심,
- 불안 : 처음에는 긍정적이고 자극적이었지만 불안은 고뇌와 급성의 공황 상태로
악화될 수 있다.
- 분노의 폭발 : 배우자, 부모, 또는 의사에 대한 분노.
- 강박관념 : 낙태 사건에 대한 고정관념.
- 수면 장애 : 불면증, 무기력, 악몽, 자기 폄하.
- 자기 폄하 : 자신이 아무런 가치도 없다고 생각할 정도.
- 인지 장애 : 주의력과 기억과 집중의 장애.
- 관계 장애 : 흔히 배우자와의 결별, 세상과 다른 사람들로부터 점진적인 고립으로
여성이 자기 자신과 내적인 고통 속에 갇힌 상태에 이름.
- 성적인 문제 : 무관심하거나 무절제할 정도의 성적 활동.
_ 음울한 생각 : 자살 시도.
이토록 큰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렇다. 여성은 이 엄청난 고통에서 나올 수 있고 또 나와야 한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요약 정리되고, 모든 것이 그분의 자비로운 성심에 잠길 수 있다! 하느님의 용서를 의심하는 것보다 더 큰 죄는 없다! 낙태가 그 자체로 충격적인 사건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여러 단계를 거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전문적인 지원이 필요한 복잡한 투쟁이다. 낙태는 육체와 정신과 영혼에 영향을 미치는 상처이다. 신체와 정신을 치료하는 것이 의사의 책임이라면, 영혼을 위해 다루어야만 하는 주제에 정통하며 그리고 적극적인 관심을 지니는 것은 사제의 책임이라고 하겠다.”
박 아가다 수녀 옮김
하느님의 놀라운 자비 – 마리아지 2024. 11 · 12 통권 2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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