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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피한 들깻가루가 없다고 걱정하지 마세요.생들깨를 씻어 물과 함께 곱게 갈아 채에 걸러서 국물에 넣으면 됩니다.그런데 껍질에 더 많은 영양 성분이 있다는 사실~ 껍질을 함께 드시면 가장 좋아요. 모든 견과류와 종실유(참깨나 들깨 종류)는 껍질을 까는 순간 바로 산화가 시작됩니다. 인체에 유익한 불포화 지방산이 많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죠.가장 바람직한 섭취 방법은 먹기 바로 전에 껍질을 까는 것이 좋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잘 밀봉하여 냉동실에 보관하세요.이현맘은 조미료나 자극적인 양념보다는 건강에 좋고 영양학적으로도 손색이 없는, 그리고 맛도 좋은 견과류를 양념으로 사용해요.오랫동안 이렇게 먹으면 입맛이 순해질 뿐만 아니라 우리의 피도 깨끗해지고 건강해져요.생명이 피의 순환에 있듯이 우리의 영적인 생명도 더욱 활력을 얻을 수 있답니다. y
12 장을 열면, 제일 먼저 여자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 그리고 곧이어 큰 붉은 용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책이나 영화를 보면 이야기 내용 안에 두 주인공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어 가듯이, 요한계시록 12장에도 여자와 용의 관계가 얽히며 사건이 전개되어 나간다. 그렇다면 여자는 누구를 가리키며 용은 누구인가?
1. 여자와 용의 정체는 무엇인가? 12장을 열면, 제일 먼저 여자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 그리고 곧이어 큰 붉은 용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책이나 영화를 보면 이야기 내용 안에 두 주인공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어 가듯이, 요한계시록 12장에도 여자와 용의 관계가 얽히며 사건이 전개되어 나간다. 그렇다면 여자는 누구를 가리키며 용은 누구인가?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a woman)가 있는데, 그 발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 (계 12:1).요한계시록 12장에는 참 교회의 실체가 소개되어 있다. 12장 1절에서 우리는 여인으로 표상된 참 교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여자를 묘사한 이 성경 절은 상징적인 표현으로 쓰인 것이다. 성경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상징적 표현 중의 하나가 교회를 여자, 하나님의 아내 혹은 여인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호 2:19, 20; 사 54:1~8; 겔 16:8~14; 엡 5:21~23 참조).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참 백성인 교회를 정결한 처녀로 표현하였다.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라 (고후 11:2). 예레미야 서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름답고 묘한 딸 시온 으로 기록되어 있는데(렘 6:2), 이사야 서에는 시온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사 51:16)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아 우리는 성경에서 시온은 하나님의 백성을 뜻하는 동시에 아름다운 딸(여인)로 묘사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위의 사실을 통해 다음과 같은 정의가 성립된다.
정결한 처녀 = 시온 = 아름다운 딸 = 여인 = 하나님의 백성 = 참 교회
이 제 요한계시록 12장에 나오는 여자, 즉 교회의 모습을 살펴보자. 이 교회는 해를 입고 있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해를 입었다는 것은 의의 태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가지고 있으며, 그분의 의의 두루마기를 입고 있는 것을 상징한다. 달은 햇빛을 반사한다. 그것처럼, 여자의 발아래의 달은 성경의 구약, 곧 햇빛인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예언을 가진 구약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구약의 예언을 기초로 한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가지고 있는, (달을 밟고 있고 해를 입은) 신약의 교회를 가리킨다. 또한, 이 여자가 머리에 쓰고 있는 면류관에 달린 12 별은 12 사도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자로 표현된 하나님의 참 교회는 시대와 환경을 초월하여 예수님께 직접 진리를 받은 열두 제자들의 가르침을 순수하게 보존하고 있는, 그리고 그들이 믿는 진리와 그들의 생애가 하나님의 영광으로 환하게 빛나며 하나님의 성품을 그대로 반사하는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을 말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참 교회란, 예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전수한 12 사도와 그 제자들이 전한 올바른 복음 위에 선 교회, 곧 그 복음대로 믿고 사는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킨다.
그 꼬리가 하늘 별 삼 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4절).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 (9절).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 났고 (10절).위의 성경 절들을 읽어 보면, 이미 용의 존재가 사단임이 천명되어 있다. 사단은 하늘에서 최초로 죄의 반역을 일으킨 루시퍼, 즉 마귀로서 하늘에서 천사 중 삼 분의 일을 꼬여서 하나님의 정부에 반역하게 하고 죄를 짓게 한 장본인이다. 그는 하늘에 전쟁을 일으켰다. 하나님의 계명은 지킬 수 없으며, 하나님의 법과 정부는 불공평한 것이다 라고 그는 하나님을 고소하며 천사들을 선동하였다. 그리하여 천사장이었던 루시퍼는 사단이 되었고, 타락한 삼 분의 일의 천사는 사단의 악한 부하들이 된 것이다. 그때 시작된 선과 악 사이의 전쟁은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그는 형제들을 참소하는 자, 거짓말을 하고, 비난하고 시험을 주는 존재이다. 사단과 그의 악한 천사들은 땅으로 쫓겨나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 알고 땅에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미혹하고 죄 짓게 하려고 분을 내어 사력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덧붙여서 용은 사단을 직접적으로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지만, 사단의 정신으로 역사 하는 세력과 조직에도 적용된다.
1절에 나오는 여자로 표현된, 12 사도들의 가르침과 순결한 신앙이 있는 참 교회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하나님께서 요한에게 준 참 교회에 대한 계시 12장에는 하나님의 교회가 어떠한 시련과 역사를 통과하게 될 것인가에 대한 놀라운 예언적 장면이 소개되어 있다. 이 예언은 요한이 미래에 일어날 하나님의 교회의 모습과 그 교회가 당면하게 될 사건들에 대해서 벌써 오래전에 계시를 받은 것이다. 예언을 공부하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대로 모든 예언이 성취된 것과 앞으로 성취될 것을 믿게 된다. 그러므로 이 예언 연구에서 여자에게 일어난 사건과 그에 관련된 일들을 살펴보면, 예언에 나오는 참 교회(여자)가 오늘날에는 어디에, 어떠한 모습으로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12장 2~5절에서, 우리는 아기를 해산하려고 하는 여자(교회)를 발견하게 된다.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여 자가 해산하여 낳은 아이는 누구일까? 용이 삼키려고 벼르고 있는 참 교회의 초석과 반석이 되시는, 만국을 다스리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앞과 보좌 앞으로 올려간 이 아기는 누구일까? 이 성경 절을 만족하게 하는 유일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없다. 누가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했는가? 예수께서 마구간에 태어나셨을 때, 사단(성경에서 용으로 표상된)은 로마의 헤롯 왕을 통하여 2살 이하의 어린아이들을 학살함으로써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마리아와 요셉을 애굽으로 피신하도록 하셨으며, 헤롯 왕이 죽은 후에 어린 예수와 함께 나사렛 마을로 돌아와 생애 하셨다. 30세가 되시자 예수께서는 인류를 위한 공생애를 시작하셨고, 사랑과 희생의 생애를 마치신 후, 부활하셔서 하늘로 올라가신 사실을 성경을 통하여 알 수 있다.
하 나님의 교회와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여 멸하려고 버티고 서 있는 사단의 모습과 하늘에서 전쟁을 일으키고 이제는 땅에서도 자신의 세력을 펴려는 사단의 모습이 12장 전반부에 여실히 잘 드러나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요한계시록 12장 전반부에 나오는 참 교회의 실체와 그 하나님의 교회를 박멸하려는 용, 사단의 행동 개시의 모습을 공부해 보았다. 계속해서 12장 후반부를 공부해 보자. y
요한계시록 12장 후반부에는 더 흥미 있고 매우 의미심장한 사건과 일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 12장 후반부에 대한 연구는,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시점과 우리의 존재 의미와 우리의 사명을 확실히 깨닫게 될 것이며,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더 분기하여 굳센 신앙을 소유하고 하나님께 더 충성하고자 하는 열망을 줄 것이다. 계속하여 함께 연구해 보자.
Ï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 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지라"(계 12:13).
요한계시록 12장에 나오는 여자, 하나님의 참 교회는 용으로부터 핍박을 당한다. 사단이 범죄하여 하늘에서 쫓겨나 그의 활동 반경이 지구 이 땅으로 국한되자, 하나님과 그분의 교회, 백성에 대한 그의 분노와 화가 이 지구로 집중되었다.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 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12절). 그리하여 사단은 할 수만 있으면 하나님의 백성과 교회와 그들이 전수하고 있는 영원한 복음, 믿으면 구원을 얻게 할 올바른 복음을 전멸하기 위하여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다.
자, 이제 살펴보자. 교회가 핍박을 당한 예가 세상의 역사 중에 있었는가? 그렇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그리스도인들이 핍박을 당했던 시대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사단의 정신을 받은 용으로 표현된 로마제국은,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을 극렬하게 핍박하였다. 예수님의 가르침 위에 출범한 하나님의 교회, 초대 교회는 사단의 방해와 핍박과 어려움 속에서 고난을 겪었다. 초기 그리스도 교회의 교인들은 자신의 목숨을 바쳐야만 신앙을 지킬 수 있었다. 수많은 순교자의 피가 강을 이루었던 사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이교의 신을 믿었던 로마제국이 교황권의 세도와 합병한 후, 예수님의 순수한 가르침과 복음에서 벗어나 이교의 신앙이 혼합된 교황권의 이상한 교리와 종교를 국교로 만들었고,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교황권의 핍박은 더욱 극심해졌다. 역사가들은 중세기의 종교 암흑시대 동안에 죽은 순교자의 숫자가 5천만 명을 넘는다고 입증하고 있다.
Ï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계 12:14).
이제 하나님의 교회는 종교 탄압과 오류의 가르침을 강압적으로 주입하는 교황권의 핍박 때문에 피신하여야 하였다. 교황권의 핍박을 피하려고 깊은 산과 계곡으로 피신하였던 참 교회에 대해서 성경은 "여자가 독수리 날개를 받아 광야...로 날아가서"라고 표현하고 있다. 기독교 역사 중에 그리스도인들이 광야나 한적한 곳으로 피한 기록이 나오는가? 그렇다. 종교 암흑시대 동안에 교황권의 핍박이 극렬해지자, 참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에게 전수받은 진리를 지키기 위해서, 깊은 산과 계곡으로 숨어들어 갔다. 특히, 신실한 왈덴스인(Waldenses)들과 휴그노와 알비젠스와 같은 그리스도인들은 깊은 산 속과 광야에 숨어서 수 세기 동안 자신들의 신앙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교황권의 압력과 핍박에 대항하였던 사실을 역사에서 볼 수 있다.
신실하게 신앙을 고수하며,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성경의 순수한 복음을 그대로 믿고 진리를 전수하는 사람들, 교황권의 오류를 반대하고 거짓 가르침에 저항한 사람들 중에 왈도파 - "왈덴스인" (Waldenses)들의 역사는 특히 매우 감명 깊다. 이 사람들이 역사에서 가지게 된 "왈도파"라는 이름은 그들의 지도자 "피터 왈도"에게서 유래한다. 왈도는 프랑스 리옹의 부한 상인이었는데, 그의 모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며 가장 성서적이고 그리스도의 원래의 가르침에 맞는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왈도에게는 많은 추종자가 생겼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이 사용하기 위하여 신약성서를 프랑스어로 번역했다. 그와 그의 설교자들은 이곳저곳을 다니며 사람들에게 이교의 가르침이 혼합되지 않은 올바른 순수한 복음을 가르쳤고, 구원의 소식을 전해 주었으며, 사람들을 교회와 성직자에게 매이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구원으로 인도하는 지식을 얻기 위하여 성경으로 돌아오라고 말하였다.
그런데 로마에 그 말이 전해지자 교황은 어떤 사람도 자기에게 먼저 그 특권을 받지 않고는 설교할 수 없다고 금지하는 명령을 보냈다. 그러나 왈도는 "나는 사람보다 오히려 하나님을 복종할 것이다"라고 대답하였다. 그것 때문에 그는 곧 출교당해 "이단자"가 되었고, 그와 그의 추종자들은 범법자로 여겨졌다. 로마 교황은 그런 무리를 파괴하고 없애는 것은 크리스천 교회가 전체적으로 나서서 협조할 의무라고 공포하고, 그들을 괴롭히고 박해하기 위해 여러 가지 규정들을 시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수가 계속해서 증가하자, 더 나아가 가지각색의 파문과 법규와 율령을 선포하였으므로 왈도파는 그 정부하에서는 어디에서도 안전을 기약 받을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의 땅은 빼앗겼고 그들의 재산은 몰수를 당했으며 죽은 자들의 시체까지도 장례 되는 것이 금지되었다. 사실 종교 재판소가 세워진 것은, 왈도파 때문이었는데, 이들로 인해 하나님의 복음에 대한 지식이 점점 강해지고 복음이 전파되자 그 힘을 타파하기 위한 수단으로 세워진 것이 중세기 종교 탄압의 극치인 종교 재판소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많은 신실한 사람들이 핍박을 피하여 신앙을 지키며 살 곳을 찾아 떠나게 되었는데, 그 중 수많은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수백 년 동안 알프스 산맥 동부에 있는 험한 산골짜기에서 피난처를 찾아 숨어 살게 되었다. 그들은 법왕의 지위가 확립된 나라에 살면서도 진리를 보존하고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며, 그들의 믿음의 순결을 그대로 유지하며 살았다. 그들은 숨어서 조용히 지내지만은 않았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성경을 복사하는 일과 성경이 제시하는 올바른 복음을 전하는 일에 그들의 일생을 바쳤다. 하나님의 교회는 예언된 대로 이렇게 핍박을 피해 광야에 숨어 양육을 받으며 보존되었던 것이다.
Ï "여자가 광야로 도망가매, 거기서 일천 이백육십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6절).
Ï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14절).
정말 1260년의 핍박 기간이 있었는가? 그런데 하나님의 참 교회가 얼마나 오랫동안 광야에서 피신하였다고 하였는가? 성경 예언은 말하기를,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고 하였다. 참 교회가 광야에 피신하였던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란 얼마나 긴 기간이며, 그 핍박의 기간은 언제 시작해서 언제 끝나는가? 그리고 정말 기독교 역사에 1260년간의 핍박 기간이 나오는가?
참 교회가 광야에 도망하여 피신한 기간을 한 성경 절(6절)은 1260일이라고 했는데, 다른 성경 절(14절)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고 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두 성경 절의 문맥과 내용으로 보아서, 두 기간은 같은 기간임을 알게 된다. 여기서 때(time)란 1년을 의미하는 상징적 표현임을 다니엘서 11장 13절에서 확인할 수 있다. "북방왕은 돌아가서...몇 때, 곧 몇 해 후에 대군과 많은 물건을 준비하였다가"; 이로 보아 성경 예언의 기간을 나타내는 상징적 표현에서 때는 곧 해(year)를 나타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그렇게 적용하여 풀어보면 다음과 같은 햇수가 나온다.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 1년 + 2년 + 반년 = 3년 반
3년 반을 달 수로 환산하면 42달이고, 42달에 30을 곱하면 1260이 된다. (성경에서 1달은 30일로 계수됨).
기간을 상징하는 예언에서 1일은 1년으로 해석하는 원칙이 있다. 그 이유는 성경에서 이 원칙을 뒷받침하는 열쇠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Ï 에스겔 4장 6절 : "내가 네게 사십 일을 정하였나니 일일이 일년이니라."
Ï 민수기 14장 34절 : "사십 일의 하루를 일년으로 환산하여."
위의 성경 절을 보아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와 "1260일"이라는 예언적 기간은 공히 1260년으로 환산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이러한 원칙을 성경에 나오는 모든 날짜에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루를 일 년으로 환산하는 예언 해석 원칙은, 날짜가 기간적인 예언을 나타내는 상징어로 사용되었을 때만 적용할 수 있다. 이러한 예언 해석법이 올바로 적용되었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미 성취된 예언을 역사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예언 해석법의 진위를 판단하기 위해서, 중세 시대의 참 교회가 광야에서 1260년 동안 핍박을 받았는가를 역사 속에서 확인해야 한다. 과연, 하나님의 참 백성이 1260년 동안 교황권의 핍박을 피하여 광야 생활을 하였던 사실을 역사에서 찾을 수 있을까?
역사는 이 예언이 시작되는 한 시점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A.D. 538년에 로마제국의 저스티니안 황제가 로마 교회(교황권)에게 절대적인 종교적 권위를 부여했던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이때부터 교황권은 종교적인 독재를 휘두르다가, 나중에는 유럽제국들의 왕이 취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교황의 인가를 얻어야 할 정도로 그 세도가 하늘을 찌르게 되었으며, 종교 및 정치에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교황권이 이러한 권력으로 그리스도인들의 양심과 신앙을 핍박하였는데, 역사가들은 이러한 시기를 종교 암흑시대라고 부르고 있으며, 놀랍게도 그 기간은 꼭 1260년이었다.
교황권의 쇠퇴와 1260년 핍박의 종식 126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내려가서 하나님의 예언의 시계가 1798년을 가리킬 즈음, 유럽은 프랑스 혁명으로 인하여 대변혁을 겪게 되었다. 엄청난 특권을 누리던 성직자들을 향하여 저항하는 농민들의 반란이 일어났으며, 결국에는 나폴레옹이 지휘하는 프랑스 혁명군의 "버티어" 장군이 로마로부터 교황 "피우스" 6세를 잡아다가 파리의 감옥에 가두어 교황을 감옥에서 죽게 하는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바로 그 해가 1260년이라는 기간의 종점인 1798년이었다. 프랑스 혁명정부는 로마 교회의 교황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함으로써,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교황권의 핍박 시대였던 종교 암흑시대는 역사적인 종말을 고했다. y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 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 가게 하려 하되,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15, 16절).
1260년간의 종교 암흑시대가 끝나갈 무렵, 사단의 공격으로부터 하나님의 참 교회, 백성을 보존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한 땅을 준비하는 예언의 장면이 나온다. 15, 16절에 보면, 여자를 물에 떠내려 가게 하기 위하여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같이 토하여"내는 장면이 나오고, 그러자 땅이 여자를 돕는 장면이 연출된다. 성경 예언에서 "물"은 "백성, 사람들"을 가리킨다(계 17:15절 참조). 사람과 사람의 세력을 사용하여 참 교회를 박멸하려던 사단의 공격을 피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는 한 땅을 준비해 놓으셨다. 여기서 "땅"이 그 물을 삼켰다는 의미는, 용이 물로 교회를 떠내려 가게 하려는 의도를 무효화시켰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땅이 하나님의 참 교회 곧 참 백성을 중세기의 핍박으로부터 도왔다는 뜻인데, 그 "땅"이란 과연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마귀의 공격과 그 핍박으로 인하여 거의 멸망 직전에 이르게 된 교회를 도와주어 다시 소생케 하는 것이 "땅"이라면 우리는 그 정체를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것이다.
여자를 도와 피하게 한 땅,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이 핍박을 피하여 안전하게 거하도록 마련하신 땅이 어느 나라이며, 이 땅이 등장하는 시기는 언제인가? 성경은 이 문제에서 오해치 않게 하려고 이 땅, 곧 이 나라가 1260년 핍박이 지나가는 끝 무렵에 나타날 것을 말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프랑스 혁명 당시 전후를 시점으로 하여서 생겨나는 나라로서, 하나님의 핍박 받는 백성을 도와준 나라를 찾아야 이 성경 예언을 올바로 푸는 것이 된다. "땅"이라는 의미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이 별로 없는 땅, 즉 물과 정 반대되는 대조적인 형편에 있는 나라라는 뜻이다. 바벨론과 그리스와 로마처럼 인구가 많은 유럽 지역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사는 사람들이 드문 지역을 상징하는 땅에서부터 올라오는 나라를 말하는 것이다.
중세기의 종교 박해를 피하여 메이플라워 호나 또 다른 많은 배를 타고 이주하여 오는 청교도들과 수많은 개신교도에게 피난처를 제공하여 주고, 다시는 종교의 핍박 없이 예배와 신앙의 자유를 가지고 살 수 있도록 땅을 제공하여 준 나라가 과연 어느 나라였는가? 사람들이 많은 지역에서 전쟁을 통하여 세워진 나라가 아니라 인구가 별로 없는 황무지 같은, 즉 "땅" 같은 대륙을 발견하고, 이주하고, 개발하여 세운 나라가 어느 나라인가? 이 조건에 맞는 나라는 미국밖에 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틀림없는 미국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건국이 언제였는가? 의심할 나위 없이 1776년에 독립을 선언했지 않는가! 이 나라가 일어나는 시기와 그 역할, 그리고 지리적인 조건들에 대한 힌트들은 그 국가를 미국으로 이해하는 일에 큰 도움을 준다. 그러므로 여자를 피신시키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땅은 미국이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닷모래 위에 섰더라"(17절).
여자로 상징된 하나님의 참 교회는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땅" 미국의 도움으로 핍박을 모면한다. 이제 하나님의 참 교회는 미국에 와서 그 중요한 맥을 이어가는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의 교회, 남은 무리를 향한 용의 분노가 하늘로 충천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미국이라는 신대륙을 통하여 당대의 참 교회였던 신실한 성도들을 구원하시자, 사단은 분노하여 여자의 남은 자손과 싸우려고 "바닷모래", 곧 모래처럼 많은 수의 사람들의 지지를 받으며 공격의 태세로 서 있는 것이다. 앞의 성경 절(17절)은 성경에 나오는 예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예언 가운데 하나이다. 왜냐하면, 이 예언은 중세기 암흑시대 이후에 적용되는 것으로서, 마지막 시대, 곧 미국의 출현 이후부터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의 참 교회의 정체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은 마지막 시대의 여자의 남은 자손인 참 교회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18세기 이후에 나타나는 참 교회의 특징을, 성경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묘사하고 있다.
요한계시록 12장 17절에 나오는 "남은 무리"(remnant)란 무엇을 의미하는 말일까? "remnant"의 원어의 의미는, 옷감을 파는 집에 가면 천을 큰 두루마리로 말아놓은 것이 있는데, 그 두루마리의 마지막 남은 조각을 remnant라고 부른다. Remnant는 두루마리의 첫 번째 천과 같은 천으로써, 맨 마지막에 남는 조그만 천 조각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남은 무리는 초기 사도 시대의 교회가 가지고 있던 가르침과 같은 변질하지 않은 가르침을 그대로 전수하고 있는 참 교회,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한다.
`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다 예수께서는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 점 일 획이라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7~18)라고 하시며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라고 강조하셨다. 또한, 성경의 마지막 장인 요한계시록 22장 14절에는 하늘에 들어갈 마지막 참 교회와 백성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이라는 한국말 번역 구절이 킹 제임스 영어 성경과 성경의 원문에는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라고 되어 있음).
성경은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께 충성하고 신실하게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남은 무리의 특징을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신실하게 지킨다는 표현을 하고 있다. 마지막 시대의 참 교회는 계명을 지키는 자들로 구성될 것이다. 오늘날, 과연 누가 사도 요한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그리스도의 예언을 부인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현실을 살펴보면, 너무나 많은 목사와 종교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계명은 십자가에서 폐해졌다고 설교하고 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마지막 시대에 사단이 분노하여 전쟁을 벌이는 상대는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여자의 남은 자손 외에는 없다는 사실을.
a 예수의 증거를 가지고 있다 남은 무리는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다. 예수의 증거란 무엇인가? 우리는 그 대답을 성경 절에서 찾을 수 있다. 요한계시록 1장 2절과 3절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이라는 구절과 "이 예언의 말씀"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그러므로 예수의 증거란 계시로 예언된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킨다. 여자의 남은 무리는 예수의 증거인 예언의 말씀, 곧 예언해석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계시록 19장 10절에는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영어로는 "spirit of prophecy", 예언의 신이다. 예언은 하나님의 남은 자손들에게 주신 귀중한 선물로서 오류와 배도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 y
우리는 앞서 계시록 12장에서 여자로 상징된 하나님의 교회와 용으로 상징된 사단과의 사이에 벌어지는 대 쟁투, 곧 쫓고 쫓기는 공격과 그것을 피하고 방어하는 긴박한 전쟁의 장면들을 살펴보았다. 이제, 용은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방어수단, 곧 "여자"를 돕는 "땅" 때문에 여자를 놓쳤고, 그리하여 참 교회를 향한 핍박을 잠시 멈출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나 사단이 하나님의 교회와 참 자녀들을 향하여 가지고 있는 핍박의 정신과 공격은 절대 그치지 않았으며, 변하지 않았다. 13장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를 향하여 내딛는 구체적인 사단의 공격의 방법과 실체를 파헤치며 공부할 것이다. 13장에는 두 짐승과 짐승이 하는 일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마지막 때에 이 두 짐승 모두가 다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겠다고 예언되어 있다. 이 두 짐승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핍박하는 세력으로 돌변하게 될까? 두 짐승과 그 일들에 대하여 함께 연구해 보자.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있더라.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1,2절).
먼저 첫 번째 짐승은 바다에서 나온다고 기록되어 있다. 성경 예언 해석에서, 짐승과 뿔은 나라, 세력, 왕권을 상징한다(단 7:17 참조). 그리고 바다, 물은 백성, 사람을 상징하므로 이 나라는 사람이 많은 곳에서 올라온 나라, 세력이다. 그런데 사도 요한이 계시에서 본 이 첫 번째 짐승은 괴상하고 무서운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그 짐승은 "사자의 입 + 곰의 발 + 표범의 몸 + 일곱 머리 + 열 뿔"을 가진 이상한 짐승이었다. 도대체 이 짐승이 무엇이며, 왜 이런 모습을 하고 있을까? 성경의 예언을 연구해 본 사람이라면, 이 짐승에 대한 묘사를 어디서 많이 읽은 듯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렇다. 이 짐승의 모습은 구약의 예언서인 다니엘서 7장에 나오는 네 짐승의 모습을 총 망라하여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더 자세한 이해를 위해 다니엘서 7장에 나오는 네 짐승을 살펴보자. 다니엘서 7장 1~8절에는 다니엘이 세상에 일어날 나라에 대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계시가 기록되어 있다. 그 나라들은 짐승으로 상징되어 나오는데, 첫 번째 짐승은 사자로 표상된 바벨론 나라였고, 두 번째 짐승은 곰으로 표상된 메대와 페르시아였으며, 세 번째 짐승은 표범으로 상징된 그리스, 그다음 네 번째 짐승은 열 뿔을 가지고 있는 무섭고 놀라운 짐승으로 표현된 로마 제국이었다.
그러므로 이 계시록 13장에 나오는 첫 번째 짐승은, 다니엘서 7장에 나오는 바벨론, 페르시아, 그리스 그리고 로마 제국의 권세와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는 성격을 복합적으로 지니고 있는 세력이라는 사실을 말해 준다. 이 첫 번째 짐승은 "일곱 머리"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을 보아서도 이 짐승이 다니엘서 7장에 나오는 네 짐승의 복합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자 머리(1개) + 곰 머리(1개) + 표범 머리(4개) + 무섭고 놀라운 짐승 머리(1개) = 일곱 머리
특히, 이 짐승의 열 뿔 위에 면류관(왕관)이 있는 것을 볼 때, 이 복합적 짐승이 강력한 권세와 왕권을 가지고 출현하는 시기가 로마 제국이 멸망하여 열 뿔(열 나라)로 나누어진 이후(서기 476년)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짐승이 누구인가?
첫 번째 짐승은 교황권이다. 이것을 어떻게 증명하는가? 그것은 이 세상의 역사를 보면 증거를 찾을 수 있다. 역사는 교황권이 로마 제국이 열 나라로 분열된 이후에 서부 유럽에서 등장하였던 사실을 증명한다. "로마 제국의 무너짐으로부터 로마 교회의 거대한 종교적 왕국이 일어났다"(A.F. Flich, The Rise Of The Medieval Church, 1900년도 판 15면). "교황은 로마 황제가 가졌던 권력과 명성 그리고 이교의 명칭들을 물려받음으로써 공석이 된 로마 황제의 자리를 차지하였다"(스텐리의 역사, 40쪽).
로마 교황권은 언제 일어났는가? 로마 가톨릭 교회가 강력한 세력으로 등장하는 역사적인 연대는 이 첫 번째 짐승의 특징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교황권은 로마 제국이 열 나라로 분열된 서기 476년 이후에 강력한 세력으로 등장하였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서기 538년에 저스티니안 황제는 로마 교회에게 막강한 권세(종교, 정치, 군사권)를 주기로 선포했는데, 이로써 교황권이 세상을 지배하는 중세기의 종교 암흑시대가 열리게 되었던 것이다. 역사는 교황권이 등장하는 지리적 위치를 서부 유럽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 교황권은 서부 유럽에서 발생하였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로마 제국의 심장부인 이탈리아 반도의 로마 시에서 일어났다.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3절).
요한계시록 13장에 물에서 올라오는 첫 번째 짐승이 교황권임을 증명하는 특징이 하나 있다. 그 특징은, 용으로부터 능력과 보좌와 권세를 받았던 이 짐승이 머리가 상하여 죽게 되는 상처를 입지만, 죽게 된 상처가 다시 나아 회복한다는 특징이다. 다시 말해서 첫 번째 짐승이 말세에 다시 그 막강한 권세를 회복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교황권이 이 특징을 만족하게 하는가? 그렇다. 로마 가톨릭은 과거 수백 년 동안 유럽을 정치적으로 위압하였었다(용에게 권세를 받음으로). 이러한 정치적 독재는 종교개혁자들의 개혁이 시작되기 전까지 계속되다가 개신교운동이 시작될 즈음부터 그 세력이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독일의 경건주의 운동, 영국의 청교도 운동, 미국의 독립과 개신교주의 운동으로 말미암아 로마 교황권의 세력은 더욱 약화하였고, 1789년 프랑스 대혁명으로 결정적으로 쇠퇴하게 되었으며, 1798년 프랑스의 버티어 장군이 나폴레옹의 지휘 아래 교황 피우스 6세를 잡아 감금하였고, 교황이 그 이듬해 옥사함으로써, 1260년의 세도는 종말을 고했다. 1798년 교황이 잡혀간 사건을, 1700~1800년경에 살았던 종교개혁자들과 초기 개신교인들은,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첫 번째 짐승이 죽게 되는 상처를 받은 것으로 해석하였다. 결국, 1806년 신성로마제국이 망함으로써 로마 교황권은 중세기의 역사에서 사라져갔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은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리라고 예언하였다. 정말 이 예언이 성취되었는가? 대답은 "그렇다"와 "그렇게 되어 가고 있 다"이다. 1798년에 교황 피우스 6세가 프랑스 혁명군에 의하여 옥사당함으로 교황권의 세력이 완전히 쇠퇴한 것이 "죽게 되는 상처를 받"았던 것이라면,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낫는 것은 로마 가톨릭이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권세가 예수께서 오시기 직전에 다시 회복되는 것을 의미한다. 교황권이 그 잃어버렸던 정치적 세력을 다시 얻고 세계를 지배하는 권위를 회복하는 첫 번째 일이 성취되었다. 그것은 라테란 조약으로, 1929년 이탈리아의 독재자 무솔리니가 바티칸의 교황청을 하나의 교회와 국가로 인정하고 독립시켜 주는 협약을 맺은 일이다.
그 당시 미국은 강력한 반 교황권 사상이 있었으며, 그때로부터 적어도 50년 동안, 곧 1950년대까지만 해도 그러한 사상이 바뀌지 않았다. 이러한 미국 전체의 종교적 분위기 때문에, 샌프란시스코의 한 신문에서는 라테란 조약에 대해 "죽었던 상처를 낫게 함"이라는 제목하에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렸다. "오늘 밤 로마에 관한 문제는 과거에 대한 것이 되었으며, 바티칸은 이탈리아와의 사이에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중대한 협정 조인 문서에 '상처를 낳게 함'이라는 친필을 추가한 것은 양편 다 이 문제에 대하여 극진한 진실성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샌프란시스코 연대기 신문, 1929년 2월 11일 자).
이때로부터 바티칸의 교황권은 서서히 그러나 계속 성장하여 근래에 들어와서는 놀라운 정치적 영향력을 세계에 펼치기 시작하였다. 1979년 9월 18일 자 "워싱턴 스타"지에는 교황의 첫 번째 미국 방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기사를 기재하였다. "...과거에는 교황이 미국을 방문한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벼락을 맞을 일이었다. 그러나...이제 역사상 최초로 폴란드인인 법왕 요한 바오로 2세가, 그의 놀라운 선거를 치른 지 1년 후에 온 세계의 하늘에 빛나는 별로서 만 7일간을 우리와 함께 지내겠다는 약속 아래 미국에 오게 되었다. 정치가들은 앞을 다투어 그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여섯 개 도시의 시장들은 그들의 도시 업무를 실제적으로 중단하고 교황을 맞이할 행사를 열렬하게 준비하였다." 개신교회의 지도자인 빌리 그래함 목사마저 교황의 미국 방문을 크게 환영하면서 다음과 같은 글을 발표하였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미국 방문은 로마 천주교회뿐만 아니라, 세계는 물론이요 온 미국 사람들에게 참으로 의미 깊은 사건이다...그가 교황이 된 기간은 짧으나 현 시점에 요한 바오로 2세는 세계의 영적 지도자가 되었다. 그가 여행하는 동안 나의 기도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개신교도의 기도가 그를 위하여 드려질 것이다"(1979년 9월 27일 자, Religious News).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 두 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4,5절).
첫 번째 짐승이 하는 "큰 말과 참람된 말"이란 무엇인가? 성경에서, "큰 말"은 그 의미에 있어서 "참람된 말"과 함께 사용되는 낱말이다. 그러므로 어떤 세력이 "큰 말"을 한다는 것은, 그 세력이 "참람된 말"을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참람된 말"이란 어떤 것을 말하는가?
신약 성경에는 "참람"이라는 단어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는데, 첫째는 인간이 자기 스스로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고(눅 5:21), 둘째는 인간이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 올려놓는 것을 말한다(요 10:33). 요한복음 10장에는, 예수님께서 자신과 하나님이 하나라고 말씀하시자,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참람되다고 말하면서 그분을 향하여 돌을 던지려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요 10:30~33). 또한, 마가복음 2장에는 "참람"에 대한 또 다른 정의가 나온다. 예수님께서 문둥병자에게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시면서, 당신께서 가지고 계신 죄를 사하는 권세를 말씀하시자, 유대인들이 주님을 향하여 참람되다는 말을 하였다(막 2:5,6). 물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시기 때문에 당신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 되다고 말씀하실 수 있으며, 죄를 사하실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실 수 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어떤 사람이나 세력이 스스로 하나님과 동등하다는 말을 하거나, 죄를 사할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참람된 말" 즉, "큰 말"을 하는 것이다. 교황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큰 말을 하는데, 즉 스스로 하나님과 동등함을 주장하며 죄를 사할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특징을 가진 세력이다.
이 첫 번째 짐승은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7절)는데, 그 기간이 마흔두 달, 곧 12장에 나오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인 1260년이다. 교황권은 1260년 동안의 권세를 누리며 성도들을 핍박하였다. y
요한계시록 13장 전반부에는 바다에서 올라온 첫 번째 짐승이 등장하고, 후반부에는 두 번째 짐승이 등장한다. 이 두 번째 짐승에 대하여 공부해 보자.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계 13:11).
두 번째 짐승은 땅에서 올라온다. 이 짐승이 "올라오니"라는 말의 헬라어 원어를 살펴보면, "자라나다", 혹은 "식물처럼 솟아 올라오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로 쓰여 있다. 교황권이 상처를 받게 되는 시점에, 인구가 많지 않은 "땅"에서부터 올라오는, 새끼 양 같은 모습, 곧 예수 그리스도의 기독교 정신을 가지고 등장하는 이 짐승의 정체는 무엇일까? 힌트로 이 나라는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으로부터 도와주는 모습으로 12장에서 언급되었던 그 세력, 나라이다.
"옛 세계를 새 세계와 비교함"이란 책 462쪽에서 "G.A. Townsend"씨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미국은 그 공허한 곳으로부터 나아오는 신비함이 있고, 마치 씨앗이 조용히 자라 큰 제국으로 성장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겠다." 1850년도에 유럽의 알려진 신문이었던 "The Dublin Nation"지는 미국에 대해 언급하기를, "서서히 조용한 땅에서 올라와 매일 그 힘과 세력을 더해 가고 있다"라고 기록하였다. 또한, 이 짐승은 요한계시록 13장 첫 부분에 나오는 첫 번째 짐승이 사로잡힘을 당하는 시기에 올라온다(계 13:10,11). 교황권이 1798년도에 프랑스에 의해서 깨지는 일을 당했기 때문에, 두 번째로 올라오는 이 짐승은 1798년도를 전후로 일어나야 하는데, 미국의 건국 시기는 이 예언을 적중시켰다. 요한 웨슬리는 1760년도에 계시록 13장을 해석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그가(새끼 양 같은 짐승) 아직 이르지 아니했지만, 그러나 올 날이 결코 멀지 않았다. 그는 첫 번째 짐승의 42달 기간이 끝나는 시기에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Explanatory Notes Upon the New Testament, 17th ed. 704). 그러므로 지리적이고 시기적이며 특성적인 정확한 묘사와 암시들을 통해 이 짐승은 미국임을 부인할 길이 없다.
요한계시록 13장 11절은 이 짐승이 "새끼 양같이 두 뿔"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새끼 양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우선 어리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세력인 것을 말한다. 두 뿔을 가지고 있는데, 이 뿔들에는 왕관이 없는 것으로 보아 왕권이 없는 나라이며 오히려 두 세력이 서로 조화되어 운영되는 느낌이 든다. 이것은 사법 기관과 입법 기관이 서로 견제하며 통치하는 나라이며, 압박과 독재가 없고 자유가 있는 나라, 종교와 정치가 분리된 나라이다. 그러면, 1798년도를 전후로 하여 인구가 별로 없는 곳으로부터 왕권이 없이 민주 공화정치를 구현하며 기독교 정신을 가지고 자유와 천진스러운 성격을 띠고 새끼 양처럼 일어난 나라가 과연 어느 나라인가? 미국 이외에 또 어느 다른 나라가 이 예언에 들어맞는 성격이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이 지구 역사의 마지막에 즈음하여 핍박당하는 그리스도인들을 구출하고 성경의 복음과 진리를 세상에 널리 전하기 위하여 미국을 세우신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이 미국의 운명을 성경에 미리 예언하여 두셨다.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이 미국이 새끼 양처럼 올라왔는데 용처럼 말하게 된다는 것이다. 미국이 양 같은 정신을 버리고 옛날 유럽의 압박의 정신으로 돌아가 핍박하는 세력으로 변모하리라고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예언된 대로 새끼 양 같던 미국이 용처럼 말하게 되는 일도 놀랍지만, 이 두 번째 짐승으로 표상된 미국이 미구에 행하게 될 일 또한 매우 놀랍다.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12절).
요한계시록 13장에 예언된 바로는, 미국은 머지않아 옛날 교황권이 행했던 일을 똑같이 행할 것이다. 즉, 교황권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의 교회와 자녀들을 종교적으로 탄압하며 핍박하는 세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말이다. 또한, 모든 사람이 로마 교황권을 따르고 경배하게 할 것이다.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13, 14, 15절).
미국이 중세기 로마 교황권이 가졌던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그 권세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후원과 협력과 숫자가 필요하다. 13절은 지지자들을 모으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될 사단의 계략을 밝히고 있는데, 그것은 이적으로 사람들을 미혹하는 것이다. 그것은 모든 사람을 종교적인 연합 속에 묶어둘 만한 엄청난 기만이 될 것이며, 많은 그리스도인을 하나로 연합시킬 만한 것이 될 것인데, 그 수단은 바로 거짓 성령 운동이다(자세한 것은 월간지 살아남는 이들 92호 참조 바람). 그리하여 미국은 짐승의 우상을 만들게 된다.
"짐승의 우상"에서, 우상은 영어로 "image" 즉, 형상(모습)이라는 뜻으로서, 첫 번째 짐승의 모습(image)을 닮았다는 뜻이며, 옛날에 짐승이 행하였던 일을 똑같이 행하는 것을 말한다. 즉, 짐승(교황권)의 우상은, 첫 번째 짐승(교황권) 자체는 아니지만, 첫 번째 짐승의 모습(특성)을 가지고 있는 독립된 개체로서, 첫 번째 짐승을 위하여 일하는 세력을 의미한다. 그런데 중세기에 첫 번째 짐승(교황권)이 갖고 있던 모습은 정치, 종교적 세력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는 것이었므로, 마지막 시대에 형성되는 짐승의 우상도 짐승의 모습(image)을 닮아서 정치적 힘을 이용하여 자신들이 믿는 종교적 교리나 가르침을 강요할 것인데, 이를 거절하는 하나님의 백성은 가혹한 핍박을 받게 될 것이다. 미국은 머지않은 장래에 종교의 힘을 가지고 사람들을 강제하는 일을 하게 될 것이며, 먼저 나온 짐승을 위하여 일하게 될 것이다. 이 일은 미국의 국민이 사회의 혼란과 무질서를 막기 위하여 스스로 원하여서 종교적인 강제성을 입법화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앞으로 다시 중세기의 핍박이 이 세상에서 잠깐 재현될 것이며, 하나님의 참 교회와 백성을 핍박하는 일에 미국이 선봉세력이 된다.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 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 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16, 17절).
짐승의 표는 짐승의 우상과 경배와 관련이 있다. 15절에 나오는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라는 말씀은 매우 의미심장한 말이다. "경배"는 종교적인 의미가 있는 단어이다. 경배는 누구를 예배하고 섬기는가 하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성경의 역사를 보면, 우상에게 경배하는 일이 큰 이슈가 되고 생사가 달린 문제가 되었던 예가 있는데, 그 예는 다니엘서 3장에 나오는,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이 금신상을 만들어 놓고 모두에게 그 우상에게 절하기를 강요할 때, 그 명령에 굴하지 않고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은 다니엘의 세 친구 사건이다.
짐승의 표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계명에 관한 것이고, 누구를 섬기고 누구에게 예배하고 경배하며 충성하는가 하는 것이다. 마지막에 사단의 정신으로 고무된 두 짐승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께만 충성하는 그분의 참 백성을 박멸하기 위해서 짐승의 표를 강요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 대신, 인간이 만든 계명, 곧 사단이 변조하고 만든 계명을 순종하도록 강요할 것이다. 또한, 사단의 표에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충성스러운 사람들에게 매매하는 자유를 박탈하고 경제적인 압박을 가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엄청난 핍박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충성스러운 교회, 하나님의 참 자녀들은 짐승의 표를 거절하고 끝까지 하나님을 위해 충성할 것이다. y
요한계시록 12장 13장에서 계속되던 선과 악의 전쟁이 멈춘 듯, 14장 전반부에는 갑자기 구원받아 하늘에서 하나님을 영원히 찬양하는 무리 십사만 사천의 모습이 등장한다. 왜 갑자기 마지막 시대에 구원받는 십사만 사천이 등장하는 것일까? 왜냐하면, 그들은 사단이 하는 모든 공격 중에서 가장 절정인 짐승의 표의 핍박과 환란을 이기고, 하나님께 끝까지 충성하여 우주에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신실한 증인으로서 구원을 얻은 무리, 하나님의 참 교회이기 때문이다. 아마 요한은 12장, 13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백성과 사단 간의 숨 막히는 전쟁과 공격과 핍박과 환란의 장면들을 계시에서 보다가, 그러면 과연 누가 이 무서운 시련들과 마귀의 음모와 공격을 벗어나서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 염려했을지 모른다. 그때 요한의 눈에, 짐승의 표를 벗어나 승리한 사람들이, 곧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의 보호 하심으로 모든 것을 이긴 하나님의 참 교회, 남은 자손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영광스러운 장면이 나타난다. 그들은 아무도 부를 수 없는 경험의 노래를 부른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능력으로 사단의 세력을 이기고 죄를 이기고 승리한 그들 자신만의 경험의 노래를 부르며 하나님을 영원히 찬양하는 것이다.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있다. 이 뜻이 무엇인가? 이것은 구원받을 하나님 백성의 이마에 쳐지는 하나님의 인으로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그들의 성품이 하나님의 성품, 곧 십계명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과 똑같이 변화함을 받았으므로 하나님의 소유라고 인침을 받는 것을 뜻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인을 받은 사람들이다.
십사만 사천 인의 특징을 살펴보면, 제일 먼저 그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한 사람들이라고 나온다. 구약 성경에서 "행음"이나 "음행"이라는 단어는 이교의 우상 숭배와 관련이 있는 표현들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않았다는 것은 이교의 가르침, 즉 바벨론의 오류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진리를 그대로 지키고 믿는 것을 말한다.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간다는 말의 뜻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님이 인도하시는 곳이면 어느 곳이라도 순종하며 따라간다는 말인데, 예수님께서 가신 길, 예수님께서 당하셨던 경험을 그대로 하며 따라가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주님을 따르는 데 걸림돌이 되는 모든 것을 버리는 일, 주님을 따르는 길에 닥쳐오는 고난과 시련과 역경을 견디는 일, 또한 주님을 따르기 위해, 진리를 위해 그리고 하나님께 충성하기 위해 자아를 포기하는 일과 세상의 우상들을 포기하는 일, 그리고 세상의 쾌락이나 재물이나 명예를 포기하는 일들을 포함하고 있다. 십사만 사천은 무엇이든지 주님의 뜻이면 순종하고 따라간다. 그렇게 주님을 따라가는 과정에서 그들은 고난을 견디며 극기와 인내를 배우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꼴 짓고자 하시는 대로 꼴 지어진 사람들이다.
성경은 십사만 사천 인을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라고 말하고 있다. 십사만 사천은 마지막 시대에 구원 얻을 자들을 표상하는 첫 열매들이며,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삼대 절기에는 꼭 첫 열매를 드리는 의식이 선제했다. 무교절과 오순절과 장막절은 보리와 밀과 나무 열매들을 추수하는 계절에 들어 있는데, 그 각각의 절기들에서 첫 열매를 드리는 일이 선제하지 않고서는 추수가 시작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십사만 사천이 첫 열매가 되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십사만 사천, 즉 마지막 세대가 먼저 준비되어 완전히 영그는 일이 먼저 생기지 않는다면 세상의 마지막 추수가 있을 수 없다. 제일 먼저 잘 익은 첫 열매들을 하나님께 바치는 일이 있기 전에는 마지막 추수도 시작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이 마지막 시대에도 진리를 통하여 먼저 영글고 성품이 준비되어 인침 받은 남은 자손이 준비되기 전에는 세상 끝의 추수 사업이 시작될 수가 없다.
입에 흠이 없는 사람은 완전한 성품을 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말은 그 사람의 생각과 성품을 드러낸다. 성경은 십사만 사천은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라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흠 없는 성품을 가진 사람들이다. 마지막 십사만 사천 인에 속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매일 자아에 대하여 죽고, 혀를 굴레 씌우듯이 제어하고, 말을 지배하고, 불평과 비난의 말은 한마디도 입술에서 새어 나오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성경은 십사만 사천을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계시록 14장 전반부에 십사만 사천이 등장하더니, 갑자기 공중에 천사가 나타나 날아가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메시지를 외치는 장면이 연이어 나온다. 천사들은 아주 다급하게 큰 소리로 하늘로부터 가지고 온 복음을 외치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12장, 13장에 계속 등장하는, 하나님의 백성을 멸하려고 하는 사단의 술수와 할 수만 있으면 하나님의 백성까지 미혹하고 탄압하여 짐승의 표를 받게 하려는 사단의 기만에서 살아남아 마지막에 구원을 얻는 십사만 사천 같은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알려주시기 위해, 또한 이 세상에 내릴 마지막 심판과 하나님의 진노를 받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알려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외치게 하시는 것 때문이다.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6, 7절).
여기서 "영원한 복음"이란 시초부터 변하지 않은 하나님의 순수한 복음을 가리킨다. 또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영광을 돌린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계명과 뜻을 온전히 순종하고 변화된 성품으로 하나님을 증거하라는 의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변질하지 않은 영원한 복음을 알아야 한다. 첫째 천사는 마지막 하나님의 심판이 다가왔으니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라고 외친다.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8절).
둘째 천사는 무너진 바벨론에 대하여 경고해 주고 있다. 바벨론이 무너졌다는 것이 무슨 뜻이며, 왜 바벨론이 무너졌는가? 무너진 바벨론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계시록 18장에 나온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계 18:2, 3). 앞의 성경 구절을 읽어보면, 바벨론이 무너지는 것은 바벨론의 죄악의 잔이 가득 차고 그 죄가 하늘에 사무쳤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바벨론의 무너짐이란 하나님의 심판을 가져온 바벨론의 타락을 말한다. 바벨론은 삼중 연합, 곧 종교의 연합, 정치의 연합, 경제의 연합으로 타락하여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고, 또 바벨론의 오류의 가르침과 가짜 복음으로 백성을 취하게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무너진 바벨론에서 사람들을 나오라고 하시며, 바벨론에 내릴 재앙을 받지 말라고 호소하신다(계 18:4~8).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9~12).
셋째 천사의 메시지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짐승의 표를 받지 말고 하나님께만 충성하라는 것이며, 짐승의 표의 강요와 환란을 통과하기 위하여, 그리고 마지막에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증명할 증인이 되기 위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님이 가지셨던 똑같은 믿음을 가진 하나님의 남은 자손이 되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이 되려면 예수 믿음이 필요하다. 예수를 믿는 믿음 말고 예수께서 가지셨던 믿음이다. 그렇다면 "예수 믿음"이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는 우리 인간과 똑같은 본성을 입으시고, 나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노라고 하시며 아버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사시는 경험 속에서 죄를 짓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시며 살았다. 예수 믿음이란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믿음이며, 또한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실 뿐만 아니라, 같은 죄를 다시 반복하여 짓지 않도록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켜 주시고, 죄를 이기고 승리할 수 있도록 능력과 은혜를 주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는 믿음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의 뜻대로만 사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믿음이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만이 앞으로 오는 짐승의 표의 환란과 핍박과 이 세상에 내릴 진노의 심판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계시록 14장 후반부는 두 추수에 대하여 언급한다. 곧 의인의 추수와 악인의 추수이다. 앞장 12, 13장 그리고 14장 전반부까지 기록된 예언 속에는 하나님의 백성을 박멸하기 위해 애쓰는 사단의 공격과 술수와 음모가 나타나 있고, 하나님의 참 백성, 교회를 보존하시기 위해 온 힘을 다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그려져 있고, 그다음 마지막 최후의 심판과 환란을 이기는 데 필요한 메시지와 심판을 피하라는 사랑의 경고가 나타나 있고, 이 경고의 기별을 듣고 순종한 남은 자손의 특징이 나타나 있고, 이제 14장 후반부에는 짐승의 표를 받은 악인들과 하나님의 인을 받은 의인들, 두 무리의 추수가 언급된 것이다.
"또 내가 보니 흰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가 앉았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이한 낫을 가졌더라.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네 낫을 휘둘러 거두라. 거둘 때가 이르러 땅에 곡식이 다 익었음이로다 하니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곡식이 거두어지니라"(14~16절).
이것은 의인의 추수, 곧 알곡이 곳간 안에 들여지는 추수이다. 쭉정이는 다 날아가고, 가라지는 다 불에 태워지고, 진정한 신앙과 믿음으로 속이 알차게 무르익은 알곡 성도만이 하늘의 창고에 거둬들여 질 것이다. 이 곡식의 추수는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에 나오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성장 과정에 나타나 있는 결과와 같은 것이다.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막 4:28). 하늘 곳간에 들여질 그리스도인들은 "이삭에 충실한 곡식"처럼 영적으로 완전한 성장과 성숙을 이룬 사람들이다. 그들은 생애와 품성으로 하나님의 온전하신 성품을 나타내고, 영적으로 원숙한 상태를 이룬 사람들이다.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이한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가로되, 네 이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굴레까지 닿았고 일천육백 스타디온에 퍼졌더라"(18~20절).
하나님의 자비의 호소는 이제 멈추어졌다. 이 세상에 사는 한 사람의 영혼이라도 멸망 당하기를 원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동안 세 천사를 통해서, 또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고 세상을 향해 외치는 하나님의 종과 사자들을 통해서, 이 세상을 경고해 왔고 회개하라고 촉구해 오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의 간청을 무시하고 거절한 사람들, 짐승의 형상으로 꼴 지어지고 세상의 모습으로 형성된 악한 사람들, 짐승의 표를 이마와 손에 받은 사람들,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를 끝까지 뿌리치고 불순종한 악인들은 그들의 진노의 잔을 채우고 은혜의 시간이 끝났으므로 심판을 면하지 못하게 되었다.
악인의 추수는 포도송이의 추수로 상징되어 나온다. 포도송이가 틀에 밟히어질 때 포도즙이 나오는 것처럼, 그들의 추수는 피의 추수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자비가 떠난 세상에 버려진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보존하시는 하나님의 참 교회는, 영원한 복음을 믿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 믿음을 가진 사람들, 즉 하나님의 남은 자손들로서, 짐승의 표와 모든 환란을 믿음으로 이기고, 또한 하나님의 능력으로 죄를 승리하고 영원한 하늘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십사만 사천의 무리라는 것을 우리는 배웠다. 예언은 준비하라고 주어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언을 통해 우리에게 미래를 보여주시며, 앞으로 다가올 사건들을 위해 준비하게 하신다. 마지막 날에 이루어질 사건들을 예언을 통해 미리 알고 이를 위해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특권인가? 또한, 하나님의 증인과 남은 무리가 되는 데 필요한 경고들과 자비의 초청을 듣고 이렇게 준비할 기회를 가진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짐승의 표의 환란과 이 세상에 다가올 환란과 시련의 시기가 매우 가까이 이르렀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주님의 재림을 위해서 준비할 때가 되었다. 자비하신 하나님께서는 환란을 어떻게 통과하고, 어떻게 준비하여 구원을 얻을 것인지 우리에게 다 알려주셨다. 말씀을 연구하고, 그 말씀대로 변화되며, 하나님께 마음을 바치고, 자아를 굴복하고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생애를 살자! 머지않아 이 세상이 다 불타 없어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를 때에, 이 글을 읽는 모든 독자가 구원을 받아 그 아름다운 하늘에 함께 가게 되기를 기도드린다. y
Q:성경은 은혜를 자주 다루며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고 말한다. 사도 바울은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9)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지 우리의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며, 그 은혜를 받는 것은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오늘날 은혜에 대하여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본적이지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크다고 찬송하나 은혜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많은 사람이 은혜를 우리의 죄를 용서하고 덮으며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선물 정도로만 생각한다. 물론 은혜란 받을 가치가 없는 인간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자비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이 단어는 더 놀랍고도 심오한 뜻을 담고 있다.
A:은혜는 능력이며 힘이다 에베소서는 우리의 구원과 관련된 은혜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데,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한다. 인간의 행위를 자랑치 못하도록 은혜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구원을 받았으니 선한 행실이나 순종이 필요 없다고 말하는가? 오히려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욱 더 순종하며 선을 행할 힘을 준다고 강조하고 있다. 은혜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능력이며 힘이다. 은혜도 죄처럼 우리를 다스리는 권세이다. 에베소서 2장은 은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엡2:1~7) 은혜는 부활의 능력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죄로 인하여 죽은 우리를 다시 살리셔서 이제는 주님을 위하여 살도록 새 생명으로 일으켜 주신다. 5절은, 바로 그것이 은혜로 구원을 얻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용서해 주실뿐만 아니라 우리가 붙잡혀 있던 과거의 죄의 힘, 그 죄의 사슬에서 해방해 주신다. 또한, 우리가 그분께 매일 의지한다면 계속 죄에서 해방된 삶을 살 수 있도록 은혜(힘, 능력)를 공급하여 주신다. 다윗은 이렇게 기도한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51:10) 은혜로 받는 구원은 새롭게 태어나는 초자연적인 능력이 포함된다. 그 속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순종하는 일이 자연스럽게 동반된다. 하나님의 계명을 불순종하는 생애는 그분의 은혜로 구원받은 참된 경험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 어떤 속절없는 살인자가 사형 선고를 받고 형 집행을 기다리고 있다면 그는 법 아래 있다. 그는 죄책감과 법의 정죄 아래 놓여 있다. 그러나 만일 대통령이 그러한 암담한 처지에 있는 그 죄수를 정상을 참작하고 불쌍히 여겨 용서하고 사면해 주었다면 그는 더 이상 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으며 법이 그를 정죄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그 사람이 이제 법을 마음대로 어겨도 되는 것인가? 그는 자신이 값없이 받은 그 용서가 너무나 고마워서 이제는 법을 존중하며 순종하는 마음으로 살게 될 것이다. 은혜 받은 자의 태도 19세기 중반 미국 조지아 주의 큰 농장주는 노예 시장에서 아주 반항적으로 소리를 지르는 쓸모없는 흑인을 많은 돈을 주고 샀다. 그 노예는 마차에 실려오면서 줄곧 농장주를 모독하며 복종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 주인이 농장에 도착하여 노예의 손발을 풀어주며 해방시켜 주려고 값을 치렀다고 하며 그를 친구로 불렀다. 의심하던 흑인은 그 말이 진실임을 알고 엎드려 평생 순종하겠으니 같이 살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다. 이 이야기는 은혜 받은 자의 태도를 잘 설명해 준다. "죄가 너희를 주관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라."(롬6:14) 은혜로 계명을 폐하는 것이 아니다. 은혜의 힘은 죄가 우리를 더 이상 주관하지 못하게 해 주며, 우리를 순종하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해 준다. 우리가 만일 진정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그분의 능력을 알고 은혜의 의미를 체험하는 사람이라면 기쁨으로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할 것이며 그분의 뜻대로 행할 것이다. 진정으로 하나님께 마음을 바친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는 뜻이다. y
나님의 창조 교실 - 엄마에게 자식은 모든 것
과학자들이 매우 흥미로운 실험을 했습니다. 쥐를 이용한 동물 실험에서, 출산 전후에 있는 어미 쥐의 뇌에서 "도파민" 수치의 급격한 변화가 관찰되었다고 합니다. 어미 쥐가 출산 이후 새끼 쥐와 접촉하면, 이것이 신호가 되어 뇌의 도파민 수치가 상승합니다.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은 뇌에서 여러 가지 역할을 수행하는데, 그 중 하나가 고양감(기분 좋은 느낌)과 행복을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한 연구팀도 쥐를 이용해서 하나의 시험을 했습니다. 상자를 세 칸으로 나눈 다음, 그 세 칸으로 나뉜 상자의 가운데 칸에 쥐를 넣고, 오른쪽에는 코카인(도파민을 분비시켜 쾌감을 느끼게 하는 대표적인 약물)을, 왼쪽에는 새끼들을 넣어 쥐가 어느 쪽에 더 관심을 보이는지 관찰했습니다. 이 상자 안에 쥐를 넣어두게 되면, 보통 쥐는 주로 코카인이 있는 오른쪽 방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하지만, 출산 초기의 쥐는 달랐습니다. 어미 쥐는 코카인이 있는 쪽에 가지 않고 새끼가 있는 쪽으로만 가는 것이었습니다. 이 실험을 통하여, 출산 초기에 있는 어미 쥐에게 새끼들은 코카인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어미를 끌어당기는 요소로 작용한다는 것이 알려졌습니다. 이후 이어진 연구를 통해 새끼와의 접촉은 어미의 뇌에서 도파민을 분비시키기 때문에 새끼가 강력한 유인 요소가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2008년에 미국의 한 연구팀은 아이의 웃는 얼굴은 엄마의 뇌에서 도파민 분비를 증가시켜 엄마를 행복하게 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이제 왜 엄마들이 아기를 볼 때 행복해하는지 이유를 알게 되었지요? 그런데 아시나요? 하나님의 눈은 엄마의 눈과 같으신 것을요...
우리를 보실 때 하나님은 행복해하십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행복하게 하는 자녀가 됩시다! 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