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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엄마를 부탁해 2008년 12월에 미국 워싱턴 D.C에 살고 있는 쌍둥이 아들중 큰아들 집에 머무르면서 둘이서 이런저런 옛날 이야기를 나누면서 앞일에 대해서도 당부를 했었다. 큰아들은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보스톤대학교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워싱톤 D.C에 있는 N.I.H(국립보건원)에 박사연구원으로 자기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부모로서 대견스럽기도하고 그간의 어려움도 보람으로 느껴졌다. 아직도 마음은 청춘이라고 강변하며 지난가을 설악산 대청봉도 혼자 오르긴 했어도 이제는 손자도 둘이나 보고 어느덧 70을 바라보니 세월의 무게를 느끼지 않을수 없다. 산을 오르며 그동안 아들들에게 주로 이야기한것을 생각해보니 이랬다. ◎ 도전하는삶 : 가슴을 펴고 자부심을갖고 당당하게 살아라. 안주하지 말고 어렵더라도 인생의 확고한 목표를 세우고 도전하는 삶을 살아라. ◎ 일 : 자기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라. 인생은 생각보다 짧다. ◎ 정 직 : 좋고 옳은일 하면서 이세상에 도움 되는일 하면서 살아라. 정직이 최선이다. <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대비 > ‘한국인들은 평소에는 체면 등 사유로 내면을 감추고 있다가 위급한 상황이 되면 준비없이 내면을 드러낸다’라는 말이 있다. 아들아 이제 나는 미래에 생길수도 있는 일들에 대해 분명한 의사를 밝힘으로써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너희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한다. 이것은 나의 Living will (생전유언) 이기도 하다. 손명세 연세대 (예방의학) 교수는 ‘당하는 죽음에서 맞이하는 죽음으로’라는 제목으로 중앙시평에서 「 언제 어떤사고가 닥치거나 어떤 질병에 걸려 갑자기 죽음을 맞이할지 모르는 삶의 한가운데서 죽음의 순간을 상상해 보고 나는 그 시점에 어떤 사람들과 어떤 모습으로 죽어가고 싶은지 그리고 나의 시신이 어떻게 처리되기를 원하는지 미리 고민해보고 이를 적어놓을 필요가 있다 」 라고 쓰고 있다. 공감이 가는 말이다. 잠시의 국내외 여행에서도 챙길것이 많고 많은데 하늘여행에 대한 준비가 없으면... 영국 극작가 버나드쇼가 자신이 손수지은 비문의 글 「 우물쭈물하다 내 이렇게 될줄 알았다 」라는 글이 그냥 웃어버릴 남의 일이 아니잖겠는가. 「 I knew if l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 SHAW GEORGE BERNARD 네 엄마를 부탁해 옛시에 「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라는 구절이 있다. 부부가 한날한시에 하느님한테 가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바램일 뿐이고 만일 아버지가 하느님 먼저 보러 가면 기력도 떨어지고 외로움은 더욱 탈 네 어머니만 이 넓은 세상에 홀로 남는데 물론 자식들인 너희들이 오죽 잘 하겠냐마는 그래도 노파심으로 한번더 강조하고 싶다. 네 엄마를 진심으로 부탁한다. 소설가 신경숙(46)씨의 「엄마를 부탁해」 책을 아직 읽어보진 못했지만 아버지가 평생을 살아오면서 본 네 어머니는 강한것 같으면서도 한없이 부드럽고 마음이 약한 여자다. 너희들 몸의 눈, 코, 입 등 살과 피가 다 어데서 왔느냐 바로 너희 어머니의 살이요. 피를 받아 온전한 너희 몸이 된것이다. 네 어머니는 이 아버지의 과보호(?)로 세상물정 모르고 하느님에 대한 봉사와 헌신 그리고 남편과 자식들만 이세상으로 알고 평생을 살아왔다. 절대 소홀함이 없도록 열과 성을 다해 지극정성으로 봉양해주길 믿고 또 간절히 바란다. 어느날 네 어머니의 성경책 갈피에 「 어느 아들의 엄마사랑 이야기 」 가 스크랩 되어 있더구나. 네 어머니가 말없는 가운데 너희들에게 얼마나 의지하고 싶은지 그 마음을 보는것 같아 아버지의 마음이 저려 오는구나. 동봉하니 일독을 바란다. 집회서를 읽다 문득 아래 구절이 마음에 와 닿았다. 「 제 어머니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는 보물을 쌓는 이와 같다 」 「 얘야 네 어머니가 나이들었을 때 잘 보살피고 그가 살아있는 동안 슬프게 하지마라. 그가 지각을 잃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그를 업신여기지 않도록 네 힘을 다하여라 」 치 매 : 부모에게 그런 일이 없어야 겠지만 만일에 치매 등으로 어려 운일이 생기면 아들로서 효도한다고 집에 모시지 말고 적당한 요양원에 모시고 이따금 찾아왔으면 좋겠다. 나는 장모님이 치매로 오래 고생하시는 모습을 지켜보았는데 막내 처남이 집에 모시고 나름대로 열심히 하였지만 여의치 못한 점도 많았다. 존 엄 사 : 김수환 추기경께서도 병원 입원중 담당 주치의에게 자신은 존엄사 하시겠다며 무의미한 생명연장 조치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받으셨다는 신문기사를 보았다. 한국의 대법원은 전원 합의체에서 공개변론까지 하면서 연명 치료 중단에 관한 자기결정권과 본인의 중단의사를 인정했다. 부모가 회복가능성도 없는데 병원 응급실에서 산소호흡기 등 생명연장조치를 절대 하지 말고 부모는 자연에 순응해서 존엄사를 하고 싶다. 만일 병원에서 조치를 하더라도 부모님 뜻이라고 생명연장 장치 등을 철거 요청 하거라. 90을 바라보는 장인어른은 돌아가시기전 편찮으셔 병원으로 모셨는데 의사가 회복가망성이 없다고 하여 처남들이 상의결과 담당의사에게 생명연장 조치하지 말라고 사전에 이야기를 하였지만 의사가 퇴근 후 야간에 응급실에서 당직 의사와 간호원이 산소호흡기 등을 해놓으니 참으로 난감하게 되었다. 그 바람에 십여일을 넘게 응급실에서 의미없이 고생만 하시다 돌아가시는 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장 례 : 너의 할머니를 미국 하와이에 모셨으니 만일 부모가 하와이에서 돌아가면 가급적 할머니 묘소 근처에 매장해 주었으면 좋겠고 한국에서 돌아가면 운구비용이 많이 들거나 번잡하면 화장을 해서 할머니 모신 공원묘지에 안장해 다오. 그러면 너희 아들 그리고 그 아들의 아들들이 하와이에 일생 한번은 올터이니 가족의 의미를 새기지 않겠느냐 유 산 : 아버지가 이재에 별 관심없는 삶을 살다보니 재산이 별로 없지만 부모 돌아가신 후 남는 재산이 있으면 2/3를 형제간에 공평히 나누고 형제간에 우애있게 살아라. 그리고 1/3은 용산고등학교 동창회에 POSCO주식으로 기증해서 (주식을 팔지않는다는 조건부) 그 배당금으로 매년 가정형편 어려운 학생 단 한명이라도 조그마한 보탬이 되도록 해 주었 으면 좋겠다. 마더테레사는 이렇게 말했다. 어려운 모든 사람을 다 안아 주지는 못하지만 한사람 한사람 에게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안아줄 뿐이라고 아버지는 옛날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용산중학교 졸업후 합격한 용산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교통고교졸업후 서울공대 합격 하면 4년간 학비 지원 제도가 있고 고교 3년간 학비도 무료 이고 장학금도 주는 국립 교통고등학교를 아버지 뜻으로 선택 했었다. 기 증 : 이 아버지는 김수환추기경 처럼 때가 되었을때 각막기증을 해서(두눈중의 하나) 어두움에 있는 사람에게 빛을 찾아 주도록 했으면 좋겠다. 남은 한 눈으로는 너희 할머니 바로 그리운 내 어머니를 보고싶다. 천상병 시인 (1930~1993)의 귀천(歸天)이 생각난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 아버지는 티없이 맑고 깨끗한 영혼을 지닌 사람으로 살고싶고, 그렇게 어느날 문득 소풍같은 하늘여행을 떠나고 싶다. 가서 말하리라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아내와 두아들과의 내 삶이 행복하였다고 말하리라...” 용인 천주교 묘원에 있는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미사에 참여하면서 ‘감사합니다 서로사랑하세요’하신 생전의 말씀을 마음속 깊이 새기면서 우리 아들들도 감사하는 삶 서로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기도드렸다. 하느님께서도 너희들을 축복하시길..... 이사악이 야곱에게 축복하였다. “하느님께서는 너에게 하늘의 이슬을 내려주시리라. 땅을 기름지게 하시며 곡식과 술을 풍성하게 해 주시리라” (창세기 27장 28) 2009. 6. 15 윤 만 근 씀
어느 아들의 엄마사랑 이야기 두 바퀴를 돌면 30분이 걸리는 산책로를 향해 남편과 함께 현관을 나서려는데 ‘엄마 같이 가요’하며 아들이 동반자가 되어 준다. 푸르름이 윤기를 더해가는 오월 어느 날 저녁, “엄마 스위스에 다녀온 여행자들이 인터넷에 올린 글을 보았는데 자연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는군요. 엄마가 고대 유적지는 많이 가 보셨지만 순수한 자연만을 접해보지는 않았으니 곡 한 번 가보셔야겠어요” 하며 빙그레 웃음을 던진다. 그리고 이틀 후가 토요일이었다. 딩동, 벨 소리에 나가보니 Fedex 배달부가 커다란 봉투 하나를 건네준다. 조심스레 열어보니 스위스와 오스트리아행 비행기표와 Glacier Express(빙하특급열차)표가 두장씩 들어 있다. 순간 어느새 가득 고여오는 눈물로 또 시야가 흐려진다. 몇해 전부터인가 풀내음이 짙어가는 오월, 아니면 낙엽지는 가을을 골라 일년에 두 번씩 해외 소풍을 보내주며 젊은 나이에 저도 가고 싶은곳, 하고 싶은 것이 무척이나 많으련만, 일년 휴가를 모아 가게를 대신 봐주고 여행비를 모아 따뜻한 가슴을 선사하는 아들. 초여름이 다가오고 가을로 접어들면 아들의 방에는 밤이 깊어가도록 불이 꺼지지 않는다. 잠 못자는 아들이 안쓰러워 살며시 문을 열면 피곤함도 잊은 채 컴퓨터 앞에 앉아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아들의 모습. 엄마의 여행을 위해 더 많은 경비를 모으려는 지고의 사랑 때문이리라. 그런 아들을 뒤로, 발소리를 죽이며 나는 얼마나 많은 감동의 눈물을 흘렸던지... 아마도 그 깊은 배려는 먼 훗날, 엄마가 힘들고 몸 가눔 못할 때가 다가오면 여행이란 한낱 부질없는 그리운 욕구에 머무르리라는 예측에서 기인됐을 것이다. 목적지에 도착하여 호텔 프론트에 서면 언제나 그렇듯 아들이 호텔 지배인에게 보낸 한 통의 편지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다. ‘저의 부모님에게 최대의 서비스를 부탁드리며 그것에 수반되는 모든 비용은 제가 지불하겠습니다’ 라는 내용으로 그네들은 한결같이 이런 편지는 처음 받아 본다며 ‘Wonderful Son!’이라는 찬사와 함께 우리의 기쁨을 나누려 한다. 방 열쇠를 받아들고 문을 열면 미리 준비된 듯한 빨간 장미꽃이 방안 가득히 그윽한 향기로 나를 휘감으며 ‘당신의 여행은 지금부터 시작입니다’라는 조용한 속삭임을 들려준다. 벨보이가 전해주는 트렁크를 열면 아빠 엄마 행여나 피곤할 때 도움이 되어지라는 듯, 정성껏 준비한 2주분의 비타민과 돌아오는 시간까지 몸만 따라주면 한눈 한마음에 담아올 수 있도록 세심하게 짜여진 여행지의 일정이 담겨있다. 이 모두를 준비하느라 또 며칠간 밤잠을 설쳤으리라. 떠나는 순간부터 엄마에게 제공되는 모든 것은 First Class 이어야만 마음이 놓이는 아들의 섬세함으로 둘만의 꿈같이 찬란한 여행은 신혼여행의 재현으로 이루어지곤 한다. 달리는 기차 속에서도, 도심 속에서도, 미풍에 팔랑이는 촛노을 속에 아빠 엄마 마주하며 추억을 심으라고 예약된 아름다운 저녁 만찬의 식탁들, 그 다정함에 눈물이 고이며 행복이란 지금의 이 상태가 그대로 계속되어 주었으면 하는 바로 그것이라는 말의 의미를 거듭 되새겨 보곤 한다. 아마도 2년 전인가 보다. 그림을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파리의 오세르 박물관에서 < 마지막 초상화 >라는 타이틀의 특별 전시회가 열렸을 때, 서둘러 파리행을 준비해 주며 그리도 보고 싶었던 페르디낭 호들러와 에드바르트 몽크의 작품을 만날 수 있게 해준 아들, 반생애를 주검과 함께 하며, 주검에서 환희를 찾으려 했고 그것을 삶으로 승화시키려 했던 그들의 일치성이 담긴 작품을 마주하며 나는 얼마나 진한 감동에 휩싸였던지. 어디 그 뿐이랴. 미지의 세계를 찾아 아름다운 곳곳에 사랑을 심으며 돌아오는 길이 아쉬워 뒤돌아보던 아빠 엄마의 그 숱한 행복들. 오늘도 살며시 한순간을 떠올리며 그리움에 미소 짓는다. 이제 머지않아 가을은 또 찾아오겠지. 다음 여행길은 빈에서 있을 클림트와의 만남을 기대하며 지베르니, 모네의 연못가에 곱게 피었던 수련 위에 고마움을 띄운다. 아들아, 사랑한다. 너의 따뜻한 가슴을 사랑하고, 겸허한 지성을 사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