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400년의 깊은 잠, 이제는 세계의 보물
일연(一然, 1206~1289) 스님이 저술한 <삼국유사(三國遺事)>는 김부식이 고려인종(23년, 1145)의 명에 따라 쓴
삼국사기(三國史記)와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서이다. 일연 스님은 1206년에 경상도 경주의 속현이었던
장산군(章山郡),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압량면에서 태어났다. 그는 대구 달성 인흥 마을에 있었던
인흥사(仁弘寺, 仁興寺)에서 1266(원종 7)년부터 11년간 주지로 있으면서 <삼국유사>의 뼈대에 해당하는 '역대연표(歷代年表)'를 편찬하였다. 인흥사에 머물던 일연은 72세 때 왕명을 받들어 운문사(雲門寺)로 거처를 옮겨서 1277년부터 1281년까지 5년을
머무르면서 본격적으로 <삼국유사>의 집필 작업을 시작하였고, 1984년부터는 인각사(麟角寺)에 머무르면서 삼국유사를
완성하였고, 충렬왕 10년(1289)에 입적하였다. <삼국유사>는 편찬된 연대가 정확하지 않으나 충렬왕 7∼10년(1281∼1284)
사이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삼국유사>를 집필한 곳인 인각사는 경상북도 군위군 고로면 화북리에 있는 유서 깊은 사찰이다.
고로면(古老面)은 <삼국유사>를 집필한 곳이라는 유명세에 따라 지역의 고유성과 역사성을 부각시켜 '삼국유사면'으로
변경되었다(2021.1.1).
<삼국유사>는 오랫동안 필사본으로 전해졌으나 고려시대의 각본(刻本)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주요 간행연표를 보면
1281∼1284 일연, 삼국유사 저술
1310년에 일연의 제자 무극(無極)이 <삼국유사>를 간행하였는데, 실존 불명이다.
1394년에 만들어진 범어사 소장본인 성보박물관본은 현존하는 판본 중 가장 오래된 조선초기본이다. 이와 함께
조선 초기본인 연세대 박물관 소장 파른본(파른은 손보기 교수의 호; 교감본(校勘本 발행, 연세대 박물관, 2016)과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본 등 3종이 모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2022).
1512년에 경주 부윤 이계복(李繼福)이 주관해서 간행한 '정덕본'(正德本, 壬申本)은 현재 전하는 것으로는
가장 오래된 판각본이다.
1545년에? 5권이 갖추어진 완본인 순암수택본(順庵手澤本)이 있다. 이는 이계복이 판각한 뒤 32년 후에 나온 것으로
순암 안정복 (安鼎福)이 소장하면서 가필하였다. 이 본은 이마니시(今西龍)가 1916년부터 소장하여 일인들은
今西本이라 하고, 일본의 덴리대학(天理大學)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1908년에 발간된 일본 동경대학문학부(東京大學文學部)의 사지총서본(史志叢書本)은 현대 활자본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인데,
이때 사용한 저본은 임진왜란 때 퇴각하던 일본군이 가져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바친 것이다.
1921년에 교토대가 영인본을 간행했는데, 이 영인본의 저본은 <동사강목(東史綱目)>을 쓴 안정복이 가지고 있던 책이다.
안정복 소장본도 일제강점기에 일인이 사가지고 간 것이다.
1926년에는 순암수택본을 축소, 영인하여 교토제국대학(京都帝國大學) 문학부총서 제6으로 간행하였다.
1927년에 최남선은 납 활자본으로 간행(六堂 崔南善, 三國遺事, 啓明 18號 特輯, 啓明俱樂部, 1927)하였다. 이 책의 신증본도 있다
(新增本, 최남선, 三中堂, 1943, 1946).
1928년에 계명구락부(啓明俱樂部)에서 조선사학회본(朝鮮史學會本)과 최남선에 의한 교감본(校勘本)과
그 증보본(增補本) 등을 간행하였다.
1932년 고전간행회에서 순암수택본을 원래의 크기로 영인, 한장본 2책으로 간행하였다.
1954년에 발행된 증보본(增補本, 민중서관, 1954)은 그 동안 일반에게 가장 널리 보급되었으며
〈삼국유사〉 연구의 바탕이 되어왔다
현재 간행, 유포되고 있는 <삼국유사>는 여러 종류로 영인본, 활판본, 번역본 등이 있는데
그중 주요한 것으로는 아래와 같은 것이 있다.
영인본으로는
1964년 일본의 가쿠슈원동양문화연구소(學習院東洋文化硏究所)에서 고전간행회영인본을 축소, 재영인 하였다.
1973년 민족문화추진회에서는 서울대학교 소장본을 반으로 축소, 영인하였는데, 이동환(李東歡)의 교감을 두주(頭註)로 붙이고,
<균여전(均如傳)> 및 <황룡사구층탑찰주본기>를 부록으로 덧붙인 양장본이다.
1983년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에서 만송문고본(晩松文庫本)을 축소, 영인하였다.
부록으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소장 필사본인 석남본과 송은본의 모사본을 영인하여 수록하였다.
<삼국유사>의 번역본으로는 현대 한글 번역본을 비롯하여 여러 나라말로 많이 번역되고 있는데
그중 초기 번역본으로 자주 언급되는 것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한글 번역본으로는
사서연역회 번역본, 고려문화사, 1946.
이종렬 책임번역, 완역삼국유사, 고전연역회, 학우사, 1954.
리상호 역, 조선과학원번역본, 북한 사회과학원 고전연구실, 1960.
일본어 번역본으로는,
野村耀昌 譯, 國譯 一切經 所收(수록), 1962.
林英樹, 三国遺事, 三一書房, 1975.
金思燁, 完譯三國遺事, 六興出版, 1976.
중국어 번역본으로는
一然 著, 孙文范等 校勘, 三国遗事, 吉林文史出版社, 2003.
權錫煥, 陳蒲淸, 三國遺事, 中國 岳麓书社, 2009
영어 번역본으로는
Ilyon ; Ha, Tae-hung ; Mintz, Grafton K., Samguk Yusa: Legends and History of the Three Kingdoms of Ancient Korea,
Seoul: Yonsei University Press, 1972.
Kim Dalyong, Overlooked Historical Records of the Three Korean Kingdoms, Seoul: Jimoondang, 2006.
체코어로는 체코학자 뢰벤슈타이노바의 번역본이 있는데 2013년엔 제11회 한국문학번역상을 받았다.
Irjon, Samguk jusa: nepominutelné události Trí království, trans. Miriam Löwensteinová and Marek Zemánek
(Praha: NLN, Nakladatelství Lidové noviny, 2012), 10.
독일어 번역본으로는
Kim Young-ja, Rainer E. Zimmermann, Samguk yusa legenden & Wundergeschichten aus den drei K?nigreichen Koreas,
EB-Verl., 2008.
베트남어 번역본도 있다.
Tác giả: Kim Won Jung/Dịch giả: Trần Thị Bích Phượng. am Quốc Di Sự, Nhà xuất bản Văn hóa - Văn nghệ, 2012
최근에 <삼국유사> 연구가 홍수를 이루고 있다. 이처럼 <삼국유사>가 전문가의 전유적 성격을 떠나 대중화되고 민족적 자존심을 일깨우게 한 기폭제 역할을 한 것은 최남선의 활자본(六堂 崔南善, 三國遺事, 啓明, 18號 特輯, 啓明俱樂部, 1927)의 발행인데
이러한 역사적 사건은 1512년(중종 7년) 경주부에서 이계복이 발행한 이후 415년 만에 일어난 일이다. 그 후 100년이 자나는 동안 다양한 판본이 나왔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고운기의 저서 <도쿠가와가 사랑한 책, 현암사, 2009>는 <삼국유사>를 통하여 민족의 자존적 가치를 되돌아보는 계기를 새롭게 하였다.
<삼국유사>의 가치가 처음 인정받은 것은 임진왜란(1592~1598)이 계기가 되었다. 왜군이 퇴각하면서 약탈해간 책 중에 있던
<삼국유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가 수장한 보물이 되었다. 일본학자들은 일본의 고대사 연구를 위해 <삼국유사>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신라의 향가 연구에는 보물로 여기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구는 1908년 일본에서 동경대학문학부의
활자본, 사지총서본(史志叢書本)이 나오면서 더욱 활발해졌다.
물론 한국에서도 당연히 <삼국유사>에 관심을 갖게 되는데, 일본에서 활자본이 나온 지 20여 년이 지난 1927년에 최남선은
자신이 발행하는 잡지 <계명> 18호에 ‘삼국유사 해제’와 함께 본문을 활자본으로 발간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삼국유사>에 관한 책을 가장 열정적으로 연구해온 고운기는 ‘1512년 경주에서 한 번 인쇄된 다음, 실로 415년 만에
<삼국유사>는 최남선의 손을 통해 새 옷을 입고 세상에 다시 나온’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또 일연이 원의 간섭기 시대(1259~1356)에 민족의 자주적인 입장에서 고난을 극복하는 대안으로서 800년 전에
<삼국유사>를 남긴 것처럼 고운기도 그의 저서, <도쿠가와가 사랑한 책>을 통하여 우리의 현실을 견주어 보고 있다.
<삼국유사>는 조선시대에는 유교의 통치이념으로 불교가 배척되었고 실학자들에게도 배척되었다. 그리고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김부식이 고려 인종의 명을 받아 편찬한 것으로(1145) 신라, 백제, 고구려 3국의 역사를 개국부터 멸망까지
기전체(紀傳體)로 기록한 역사서이다. 그러나 <삼국유사>는 그보다 130여년이 지나서 일연이 1285년에 입적 전까지
지은 책이다. 고승인 일연은 <삼국사기>와 달리, 고대국가와 3국의 사적(史蹟)을 간략하게 적되, 대부분 신화, 전설, 설화,
시가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였다. 특히 이 책에는 단군신화와 신라 시대의 향가 14수가 실려 있는 것이 이 책의 가치를
더 없이 높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서 간단히 언급한 가야에 대해 <가락국기(駕洛國記)>를
인용했음을 밝히면서도 가야사를 외면하여 우리의 고대사를 신라를 부각시키는 삼국시대로 고착시키게 된 것은
아쉬움을 남긴다.
끝으로 <삼국유사>는 당시 동아시아 지역에 ‘자국 중심의 주체적 역사관’이 형성됐음을 증언하는 기록물로서 높이 평가된다.
<삼국유사>가 기존의 중국 중심의 역사관을 넘어 자주적 역사관의 지평을 열었다. 남북조시대에도 고구려, 백제 유민 의식이
잔존했고, 고려에 들어서도 그 의식은 여전히 남아있던 터에 몽골의 간섭과 고려의 위기를 겪으며 ‘하나의 고려’라는 겨레의
자주적 역사관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들이 높게 평가되어 <삼국유사>가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삼국유사>는 2022년 11월 26일 경상북도 안동에서 열린 제9차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 지역위원회(MOWCAP)
총회에서 심사를 거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가 결정됐다. 등재된 <삼국유사>는 현존하는 여러 판본 가운데
기록유산으로서의 중요성을 가진 범어사 성보박물관본, 연세대학교 박물관 소장 파른본과,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본 등
3종이다. 이처럼 <삼국유사>는 400년의 깊은 잠에서 깨었고, 일연이 집필한지 740여년이 지나서 세계적인 보물로
인정받게 되었다. [2023.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