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원 나무
- 강 문 석 -
진주성을 출발하여 수목원으로 향하면서도 내심 걱정을 했다. 이미 서산으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정에 없던 합천 삼가면의 남명선생생가지를 찾은 것이 시간을 잡아먹었다. 길안내 앱이 고속도로가 아닌 지방도와 자동차전용도로를 짚어준 것도 수목원 탐방을 그르치는데 한몫을 했을 터이다. 흡사 어린 애들처럼 입에다 얼음과자를 하나씩 물고 나타난 노인들에게 수목원 직원은 말했다. “오후 4시까진 도착하셔야 입장이 가능합니다.” 이미 5시에 가까웠으니 어찌 해볼 도리가 없었다. 입장하는 문은 이미 굳게 닫힌 뒤였다.
앞서 입장했던 관람객들이 서둘러 수목원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낭패감에 그래도 멀리 부산에서 왔으니 ‘수목원’ 간판이 붙은 건물 앞에서 일행이 단체사진이라도 찍고 가면 안 되겠느냐고 사정을 했다. 중년의 사내는 사진만 찍겠다는 우리 일행에게 식물원 산책로까지 빨리 둘러보라는 배려까지 해주었다. 어쩌면 그 순간 연로한 방문객 모습들에서 부모님을 떠올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마침 수목원을 나서는 젊은 남녀를 맞닥뜨려 “총각, 카메라 셔터 한번 눌러줄래요?” 했더니 활달해 보이는 그의 파트너가 나서서 카메라를 얼른 받아들었다.
주문대로 건물 외벽에 높게 붙은 수목원 간판까지 넣어 몇 차례나 셔터를 눌러주고는 절까지 꾸벅한다. 내가 뛰다시피 빠르게 이동하면서 카메라에 담은 나무는 줄지어 늘어선 메타세콰이아 Metasequoia다. 수목원 역사가 길지 않은 탓에 아직 이곳에 거목은 없지만 개의치 않고 열심히 카메라에 담았다. 같은 품종인데도 그 안에 또 다른 놈들이 섞였던지 아니면 나무가 선 위치에 따라 일사량이 달라서 그런지 아직 초록 잎사귀를 매달고 있는 것으로부터 잎사귀가 황금색으로 물들어 낙하 직전인 것까지 다양했다.
이 나무는 1972년 전남 담양 가로수 길에 시범으로 식재한 것이 우리나라에선 가장 오래 되었다. 남이섬이나 경남도청 앞에도 심어져 있지만 봄부터 가을까지 담양을 찾는 관광객이 단연 많았던 기억이 난다. 체로키 인디언 부족은 체로키 문자를 창시한 자신들의 지도자를 영원히 기억하고 추앙하기 위해 거주지 인근에다 태평양 인근에서 자생하는 3천 년 가량의 수명을 가진 나무에 ‘세쿼이아’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고 나서 관찰해 보니 나무가 1년에 1미터씩 자라고 있었다. 그래서 메타세쿼이아가 된 것이다.
오늘 투어엔 아흔에 이른 두 분도 동행했으니 이제 인간의 수명은 곧 백세시대를 넘어 120이나 150을 바라보게 될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단풍나무 잎은 붉은색이 강렬했지만 노랑도 그 진한 색상이 감동을 안겨주기엔 모자람이 없을 것 같다. 근년에 문학기행과 역사탐방 등으로 네댓 차례 진주를 방문하게 될 때마다 혼자라도 남아 수목원을 둘러보고 싶었다. 때문에 오늘 수목원 탐방을 제대로 못한 것은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지구의 온난화 덕분에 계절이 지났는데도 단풍을 대하고 보니 내 생의 푸르던 날이 떠올랐다.
반백년 전엔 이맘때가 되면 얼음이 얼었다. 3보충대는 춘천의 소양강변에 허술한 막사로 붙어 있었다. 겨울이 되어도 별로 추위를 느끼지 못하던 부산에서 지내다가 대구 신병훈련소를 거쳐 춘천 땅을 밟은 것이 이맘때였다. 식기를 씻느라 강물에 손을 담그자 떠내려오는 유빙조각이 그릇에 부딪쳤고 식기는 손에 쩍쩍 달라붙었다. 눈을 들어 북녘을 바라보니 새하얀 설산이었다. 난 유독 추위를 많이 탔다. 유아 때 두꺼운 포대기에 싸서 키운 때문이란 말은 수도 없이 들으며 자랐지만 체질 탓일 거라고 난 생각하고 있다.
철늦은 단풍을 찾아 나선 날이 반백년 전 춘천에 발 디뎠던 바로 그날이었다. 단풍이 절정을 지난 줄 모르지 않았지만 굳이 찾아 나선 것은 철지난 단풍이지만 황혼을 사는 인생에게 주는 메시지가 없지 않을 것이란 기대도 가지고 나섰다. 헐벗고 궁핍하던 지난날 우린 마지막 보내는 길만이라도 잘해드려야 한다면서 있는 것 없는 것 바쳐 망자를 배웅했다. 그랬던 장례문화가 이젠 많이 달라지고 있다. 세상에 왔다가 바람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쪽이 지구를 그나마 오래 살릴 수 있다는 판단에서 일 터이다.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한 해에 새로 늘어나는 묘지 면적이 여의도 크기라고 했다. 그만큼 너도나도 매장에만 매달렸던 것이다. 그랬던 것이 이젠 많이 달라졌다. 시신기증이 늘어나면서 납골당 예약을 취소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바뀐 장례문화 중에는 수목장도 들어있다. 종교에서도 인간의 죽음을 영원한 안식으로 일컫고 11월은 죽은 자를 기억하는 위령성월로 지내기도 한다. 쉰다는 것은 사람이 나무에 기대는 것이다. ‘사람 人’과 ‘나무 木’이 만나야만 “쉴 休‘가 된다. 수목은 인간의 생사를 떠나 영원히 함께 해야 할 존재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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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선배님들 건강하신 모습이 참 보기좋습니다~
깊은 단풍색이 선배님들 깊은 경륜과
너무 조화롭습니다~~ 베리굿입니다~
무조건 건강 하십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