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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톨릭과 개신교
일반적으로 가톨릭신자들에 비해서 개신교 신자들은 선교에 정말 열심이다.
개신교에 비하면 가톨릭은 선교열성도 부족한 것 같다.
십일조와 같은 헌금에 있어서도 개신교신자들이 가톨릭신자들보다 더 적극적인 것 같다.
원래 천주교도 초대교회부터 십일조가 있었다. 십일조수입으로 성당을 짓고, 선교를 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왔다. 하지만 교회가 점점 더 부유해지게 되면서 자꾸 문제가 생기게 되었다. 특히 성직자나 수도자들이 영적인 가난의 정신이 약해지고 귀족정신이 몸과 마음에 배여 복음에 따라 살기가 어려웠다. 또 신자들도 십일조에 대한 부담이 적지 않았다. 이런 폐단이 심해지자 천주교는 결국 십일조를 폐지하고 하느님께 감사의 헌금을 자발적인 정성으로 바치도록 하고 있다.
개신교신자들은 천주교신자들이 보기에 부러울 정도로 많은 헌금을 기꺼이 봉헌한다. 개신교가 헌금 때문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많은 헌금을 기꺼이 바치는 개신교신자들의 정성이 참 부럽다.
하지만 빠르게 성장하던 개신교는 최근 우리나라 선교가 한계에 와있다고 판단하고 세계선교로 눈을 돌리고 있다. 현재 한국개신교는 미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많은 선교사를 해외로 파견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해외선교사를 파견하고 있지만 규모면에서 훨씬 적은 것 같다.
** 1.해외선교사 이태석 요한신부님(1962-2010)
부산출신으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신학대를 졸업해서 신부가 되신 의사신부님.
2001년 사제품을 받고 아프리카 수단 남부의 오지마을에서 아프리카 사람들을 도우면서 살다가 지난 1월 14일 암으로 선종하셨다.
신부님은 진료소를 마련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의술을 폈고, 돈보스코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설립해서 교육에도 심혈을 쏟았다.
아프리카 수단이라는 나라는 종교와 인종갈등으로 20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내전으로 200만 명의 사람들이 죽었고, 살아 있는 사람들도 난민촌과 같은 곳에서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 45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와 수수죽 한끼로 사는 사람들, 의료혜택을 못받아서 맹장염으로도 죽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의 수단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바로 나에게 한 것'이라는 주님 말씀대로 8년 동안 헌신하신 신부님... 신부님의 선행이 알려지면서 신부님을 후원하는 후원회가 결성되었는데 목사님도 있고, 스님, 원불교 교무님도 있었다.
신부님은 2008년 휴가차 귀국해서 건강검진을 받으셨는데 암이 발견되어 1년 투병생활을 하시다가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하느님의 품으로 가셨다. 사람들은 이태석신부님을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불렀다. 이제 수단 남부에서 그 일을 누가 할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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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평리본당 선교의 예
나는 2006년 8월부터 2007년 8월까지 대구 평리본당에서 사목을 했다.
2007년 5월부터 7월까지 두 달간 평리본당은 다음과 같이 예비자모집을 했다.
예비자모집의 모토는 '행복'이었다.
첫째, 예비자모집 선포식을 하고 선교기도문을 미사와 단체회합 때마다 바치고 선교구호를 외쳤다. (나가자! 기도하자! 선교하자!)
둘째, 현수막과 홍보포스터 : 성당 안과 정문, 그리고 주요한 동네 포인트에 현수막과 홍보포스터를 부착했다. '평리성당에 오시면 행복을 드립니다.'
셋째, 홍보리플렛(행복비타민공장 공장장 전광진신부)과 홍보용티슈(행복을 드립니다)를 4천개 이상 활용했다.
넷째, 반별, 레지오마리애별 예비자현황판을 따로 만들어서 성당로비에 걸어놓고 선의의 경쟁을 유도했다.
다섯째, 가두선교 : 교중미사 마치고 국수 한 그릇 끓여먹고 팀을 두 팀으로 나누었다. 본당신부팀과 보좌신부팀으로... 수녀님도 2분씩 나누고 사목위원들, 반장님들, 단장님들도 나누어 한 팀에 보통 15명씩 나누어 전부 6번을 나갔다.
여섯째, 개인별, 단체별 선교왕을 뽑아 시상했다.
두 달간의 선교 끝에 104명의 예비자를 모집했다.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지난 2008년 6월부터 2009년 6월까지 '바오로의 해'를 맞아 대구교구에서는 특히 선교운동을 펼쳤고, 선교왕을 선정해서 지난 1월 1일 신년교례회 때 시상하였다.
최우수 선교본당은 구미 옥계본당으로 판공성사 190여명 보는 본당에서 150명을 입교시켰다.
최우수 개인은 흥해본당 자매로 1년 동안 29명을 입교시켰다.
3. 선교와 2005년 인구주택 총조사
1) 개요
2005년 통계청 주관 '인구주택총조사'에서 10년 동안 종교별 신자증감결과가 나왔는데, 천주교는
74%증가, 불교는 18%증가인데 비해 개신교는 16%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 개신교가 대단히 놀라워했다. 그래서 개신교 자체적으로 선교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많았다.
사람들이 어떤 종교에 입교하는 데는 교리지식보다는 그 종교에 대한 호감이 첫 번째로 중요하다. 사람들은 텔레비전이나 주변사람들 등 여러 경로를 통해 종교에 대해 접하면서 호감이나 반감을 갖게 된다. 호감을 가진 사람은 어느 기회가 되면 입교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선교해도 반감을 가지면 입교를 거절할 것이다.
그래서 선교전략의 첫 번째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갖게 하는 것이다.
2) 선교증가요소
서울대 종교학과의 김종서교수는 한국에서 천주교증가의 가장 결정적 원인으로 5가지를 들었다. : 첫째, 조직력과 결속력, 둘째, 청렴성, 셋째, 군사정권시절의 정의와 인권활동
넷째, 제사에 대한 유연한 태도, 다섯째, 타 종교에 대한 열린 태도
(1) 조직력과 결속력
천주교 기본조직은 교구인데 16개 교구가 있다. 교구에는 교구장주교가 있다. 주교들은 한국천주교주교회의를 구성하고 춘계와 추계정기총회를 통해 교회정책을 함께 논의하고 결정하고 실천한다. 주교회의 산하에는 다양한 위원회들이 있어서 교회정책을 조율하고 있다.
천주교는 교구별로 움직인다. 신부들은 주교의 협력자로 거의 모든 신부는 교구에 소속된다. 수도회의 신부들도 있지만 교구 내에서 활동할 때에는 교구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각 교구에는 교구청이 있고, 교구청은 여러 부서로 나뉘어 교구의 정책을 지원한다.
신자들은 이사하면 전에 다니던 성당에 가지 않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성당에 다닌다. 그러다보니 천주교신자들은 모든 성당이 우리 성당이라는 의식을 갖게 되고 이것이 결속력의 바탕이 된다.
(2) 청렴성
천주교에서는 신부와 수도자들의 청빈한 생활을 중요하게 여긴다. 교구장은 신부들의 청빈한 생활에 대해 늘 관찰하고 문제가 있으면 일정한 조치를 한다. 신부들은 교구가 생활비와 주거지, 노후생활비, 질병치료 등을 책임지기 때문에 재산을 모으는 일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수도자들은 개인재산을 소유할 수 없다.
천주교는 모든 수입과 지출을 투명하게 처리하고 있다. 성당에서의 교무금이나 헌금, 또 다른 수입은 모두 컴퓨터에 입력되고 매일 본당신부가 결재를 한다. 성당의 모든 수입과 지출은 매달 교구청에 보고되고, 일 년 모든 재정을 결산해서 교구청에 보고하고 주보에 공지한다. 성당에서의 지출은 관련부서의 평신도들이 서명하고 본당신부가 서명해야 돈이 지출된다.
가끔씩 신부들 가운데서도 돈 문제로 신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 또 신부들은 골프와 같은 운동을 과하게 하거나 과도한 음주 같은 것도 피해야 하겠다. 돈이라는 것은 요긴한 곳에 꼭 맞게 쓰일 때 그 효과가 있는 것이다. 신부들이 청빈의 정신을 잊지 않도록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다.
(3) 정의와 인권활동
군사정권시절 천주교의 민주주의를 위한 정의와 인권활동도 신자증가에 좋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군사정권시절 곳곳에서 억압받고 부당하게 인간의 기본권이 유린되고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는 경우들이 많았다. 당시 정보기관의 서슬이 시퍼럴 때 그 누구도 저항하거나 약자들의 권리를 대변해주기 어려웠다. 이럴 때 신부와 수도자들이 탄압을 무릅쓰고 구약시대 예언자처럼 나서서 이들의 권리를 대변해주었다.
신부와 수도자들 가운데 더러는 박해를 받거나 감옥에 가기도 하였다. 감옥에 끌려가 전기고문도 당하고 두들겨 맞고한 신부들이 더러 있었고 수녀들도 폭행을 당한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자신의 안위에 연연해하지 않고 정의의 소신에 따라 약자들을 보호하고 도와주었던 일들이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었고 천주교에 대한 호감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어 선교에 큰 도움이 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오늘날도 인권이나 환경문제에 대해 정의평화구현 전국사제단의 활약이 여전하다. 일부 사람들은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활동에 못마땅해 하기도 하지만 정의와 평화를 위한 그분들의 용기 있는 행동은 결코 가볍게 평가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약자들의 눈물을 누가 닦아줄 수 있겠나... 용산참사와 같은 일에 약자들의 눈물을 누가 닦아주었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외면할 때... 문정현신부님을 비롯한 용기 있는 신부들이 용산참사 현장에서 미사드리고 함께 해주지 않았나... 바로 이런 모습이 착한 사마리아 사람 아니겠나...
BC 750년경 이사야 예언자는 자기들 배만 생각하면서 예배만 반듯하게 바치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이렇게 선포하였다. : "무엇하러 나에게 이 많은 제물을 바치느냐? 나는 이제 숫양의 번제물과 살진 짐승의 굳기름에는 물렸다... 더 이상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마라. 분향연기도 나에게는 역겹다... 너희가 기도를 아무리 많이 한다 할지라도 나는 들어주지 않으리라... 악행을 멈추고 선행을 배워라... 공정을 추구하고 억압받는 이를 보살펴라. 고아의 권리를 되찾아 주고 과부를 두둔해주어라." (이사 1, 11-17)
예수님도 이렇게 선포하셨다. :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루카 4, 18-19) 과연 예수님은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자 하셨다. 특히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자 하셨고, 병자들, 고통 받는 사람들 모두가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게 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오늘날 우리 세상에 오신다면 옛날 유대사회에서 그랬던 것처럼 우선적으로 사회적 약자들의 눈물을 닦아주시지 않겠나. 먼저 외국인 노동자나 비정규직 노동자, 용산철거민과 같은 약자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시지 않겠나...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한 측은지심, '인간에 대한 연민'이 예수마음이었다.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배려를 생각한다. 우리가 말로만, 기도로만 약자들을 위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들의 처지를 외면하고 오히려 권력자들, 힘 있는 사람들을 옹호하지는 않는지 반성해야 하겠다.
(4) 제사에 대한 유연한 태도
1742년 교황 베네딕도 14세는 제사를 금지시켰는데 이것이 중국에서 천주교박해의 빌미가 되었고, 조선에서도 제사를 거부한 진산사건이 천주교박해의 빌미가 되었다.
1939년이 되어서야 교황 비오 11세께서 유교식 조상제사를 허용하게 되었지만... 너무 늦은 것 같다. 천주교발전의 적절한 시점을 놓쳤고 뒤늦은 문서상의 동의로 그 의미가 퇴색된 것 같다.
천주교는 제사를 미신이 아니라 '조상들을 공경하는 풍습'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제사도 전부다 허용되는 것은 아니고 미신적인 요소는 금지된다.
제사라는 것이 돌아가신 분을 귀신으로 생각하고 음식을 드시러 오시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신 분들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예식'이다. 그래서 우상숭배가 아니다. 우리는 뜻 깊은 일에 예를 갖추는 예식을 한다. 결혼도 결혼식을 하고, 월드컵도 개회식을 하지 않나. 제사도 가족들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예식인 것이다.
또 천주교의 장례문화는 선교에 큰 힘이 된다. 신자들이 밤낮으로 빈소에서 연도를 드리고 대가 없이 봉사하고 성당에서 깨끗하게 드리는 장례를 보고 감동해서 입교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5) 타 종교에 대한 열린 태도
일반적으로 배타적인 종교들은 타종교를 무시하고 더러는 지옥 간다고 욕하는데 비해, 천주교의 타종교에 대한 호의적인 태도는 사람들에게 천주교에 대한 인식을 좋게 하고 있다.
천주교도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전에는 타종교에 대해 배타적이었는데, 공의회 이후 정교회나 개신교뿐만 아니라 타종교에 대해 좋게 대하려는 태도도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고 있다.
옛날에는 천주교도 천주교에서 세례 받지 않으면 모두 지옥간다고 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도 양심에 따라 선하게 산다면 구원될 수 있다고 선포하였다. 단 천주교는 구원의 정도다. 다른 길은 예외적인 길인 것이다.
(6) 기타 사회복지활동 등
그 밖에도 천주교가 펼치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헌신적인 봉사활동도 천주교에 대한 호감과 선교에 큰 도움이 되었다.
충북 음성의 '꽃동네'는 종교를 초월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상징적인 사회복지시설이 되었다. 소록도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일부 악덕 사회복지시설 원장이 국가의 지원금을 빼돌려 배불리다가 구속되는 일이 가난한 사람들을 두 번 아프게 하는 결과가 되는데 비해,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사회복지시설은 그런 문제에 대해 투명하기에 천주교시설은 사람들의 신뢰와 사랑을 받고 있다. 이점도 천주교의 장점이겠다.
오늘날 선교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오늘날 정신적으로 병들고 삶의 의미를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선교라는 것이 천주교를 알려 내가 덕을 보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에게 힘이 되도록 해주는 것이다. 그 힘은 진정한 힘... 약하게 보이지만, 세상 그 어떤 힘보다도 강한 힘... 죽음도 두렵지 않는 힘인 것이다.
첫댓글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