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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6:1-10 무능의 능력
(2010.07.04, 주일예배)
눈물의 행로
제가 설교를 준비하다가 몸이 아주 피곤해질 때…그런데도 제 몸 안에서 아주 약동하는 힘이 필요할 때…제가 좀 자극을 받기 위해서 듣는 노래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어매이징 그레이스”라는 노래입니다. 이 노래가 여러 가지 버전이 있는데…그 중에서 어떤 한 버전을 들을 때마다…제 가슴을 마치 칼로 후벼 파는 듯한…애끓는 마음이 느껴지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노래를 좀 조사를 해봤죠. 그랬더니 미국 인디언들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지금부터 160년 전에…영국에서 배를 타고 미국으로 건너 간 우리 청교도의 후예들이…미국 본토에 살고 있던 인디언들을 무려 2천 만 명 가까이 죽였을 때…미국 동부의 테네시, 노스캐롤라이나, 그리고 조지아 근처에 살고 있던 체로키 인디언이…백인 이주민 국가인 미합중국의 강제명령에 의해서…고향에서 무려 2000km 떨어진…머나먼 오클라호마 주 벌판으로 쫓겨났습니다.
이때 이들이 미국 기병대에 쫓겨서 피눈물을 흘리며 떠난 이 길을…미국 역사는 '눈물의 길' 또는 '눈물의 행로'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정확히 말하면 '눈물과 죽음의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때 이들이 떠난 그 길을 그림으로 그린 것을 보면…그야말로 담요 하나 없이 맨몸으로 쫓겨나서…남녀노소 할 것 없이 거의 대부분 걸어서 이동을 했고…아주 추운 겨울에도 그냥 맨바닥에 누워서 잠을 자야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추위와 굶주림, 그리고 질병으로 인해서 약 4,000명이 중간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 죽음의 강제이주는 그 다음해 봄에야 겨우 끝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때 이 체로키 인디언들이 부른 노래가 바로 “어매이징 그레이스”였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노래는 본래 기독교 노래가 아니라…인생의 이유 없는 고난 앞에서…그리고 힘 있는 자들의 엄청난 핍박 앞에서…영생을 원했던…그런 미국의 전통 음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노래를 이 체로키 인디언들에게 전해준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이들과 함께 살면서…백인들의 강제 이주 정책에 반대해서…끝까지 법정투쟁을 했던 백인 선교사 사무엘 워시스터였습니다.
그래서 이 체로키 인디언들은…추운 길바닥에서 담요 하나 없이 죽어가는 자신들의 가족을 위해서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질병으로…때로는 배가 고파서 죽은 자신들의 동료를 땅에 묻으면서…이 노래로 이들의 명복을 빌었고…또 살아남은 사람들은 언젠가는 자신들에게 주어질 영생을 기다리면서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것이 전부 이 백인 선교사 사무엘 워시스터의 노력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삶은 정말 처절했지만…그래서 눈에 보이는 것은 전부 죽음과 저주, 그리고 재앙뿐이었지만…그런데도 이들은 이 노래 안에서 자신들의 미래를 보았고…또 이 노래 안에서 자신들의 현실을 잊을 수 있는 힘을 얻었습니다.
천국과 지옥
이와 같이 인생은 고개 하나 돌리면 천국이 보이고…또 인생은 고개 하나 돌리면 지옥이 보입니다. 내가 현실을 보면 지옥이 보이는데…또 하나님 앞에서 그 현실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또 천국이 보입니다. 그래서 어떤 신용불량자가 그러더군요. 자기는 카드를 못 쓰기 때문에 어디 마트에 가서 물건 하나 살 수가 없고…집에서 먹는 반찬도 고기 하나 못 먹는 이런 인생이…그래서 매일 김치 하나 놓고…밥에 물을 말아 먹어야 되는 그런 인생이…무슨 살 가치가 있냐고…이런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그렇게 말을 합니다.
그러나 인생은 고개 하나 이쪽으로 돌리면 천국이 보이고…또 고개 하나 저쪽으로 돌리면 지옥이 보이는 것처럼…우리 인생의 천국과 지옥을 결정하는 그런 요소라고 할까요? 아니면 그런 이해의 폭이라고 할까요? 그런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뭔가 하면…제가 지난주에 말씀드린 것처럼…이 세상은 우리를 성공의 길로 인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라는 것을 증거 하기 위한 그런 요소들로…아주 가득 차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알고 나면…우리 인생의 모든 고통과 슬픔이 다 사라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생이 나를 세우고…나를 증거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기 위한 삶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우리 인생의 고통과 슬픔에 연연하지 않는… 그런 초월적인 삶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내일 당장 카드 빛 300만원을 갚지 못하면…신용불량자가 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러면 이 사람은 일단 모든 방법을 다 써보다가 안 되면…“이제 내 인생은 끝이다.”…그래서 하나님은 왜 이렇게…아니, 똑같이 예수 믿는데…어떤 사람은 돈 걱정 안 하고 아주 떵떵거리면서 살게 하시고…어떤 사람은 애들 신발 하나 사주는 것도…물건이 그렇게 큰 것도 아니에요. 그저 애들 신발 하나 사주는 것도 돈부터 확인해야 되는…이런 기가 막힌 세상을 내가 더 살 필요가 뭐가 있냐고…그런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되고…심지어 자살까지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을 완전히 거꾸로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그러면 우리 인생은…내가 이렇게 성공했다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내 인생은 예수님을 증거 하는 인생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이렇게 신용불량자가 되고…인생에 실패하는 것을 완전히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생각을 한번 바꿔보십시오. 그러면 순식간에…아주 순식간에…우리 마음이 지옥에서 천국으로 바뀌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전혀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인생의 요인
그러니 이제부터는 “내가 잘못해서 내 인생이 이 모양 이 꼴이다.” 이런 말을 절대로 하지 마십시오. “내가…바로 내가 잘못해서 사업을 망쳤고…내가 잘못해서 돈을 못 벌었고…내가 잘못해서 성공 못했고…내가 잘못해서 우리 아이들 좋은 대학 못 갔고….” 이런 말을 절대로 하지 마십시오. 단기간은…정말 단기간은…우리 때문에 일이 잘못되고 우리 때문에 일을 망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시험공부를 안 해서 시험 못보고…또 내가 직장에서 실적을 못 내서 직장에서 쫓겨날 수도 있어요.
그러나 우리 인생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고…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내 인생이 잘 풀리느냐 안 풀리느냐…그리고 내 인생이 일찍 성공해서 불과 40대의 나이에 아주 탄탄한 경제력을 갖추느냐…아니면 내 나이 50-60이 될 때까지 그렇게 평생을 가난과 함께 살 수밖에 없느냐…이런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바로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결정돼요.
잘못된 생각
롬14:7-8을 보십시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와 같이 사도바울은…우리 인생이 다 예수님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내가 잘 살고 못살고…내가 건강하고 건강하지 못한 것이 다 예수님을 나타내기 위한 증거라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내가 시험을 치기 위해서 시험장에 들어갑니다. 그러면 우리 인생은 사나 죽으나 다 주의 것이기 때문에…이미 예수님이 우리 인생의 점수를 다 백점을 매겨놨습니다. 내가 인생 시험을 잘 보든지 못 보든지…우리 인생은 우리가 아니라 바로 예수님이 끌고 가는 것이기 때문에…그래서 예수님이 끌고 가면 우리 인생이 잘 되든지 아니면 못 되든지 간에…우리 인생에 실패라는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에…왜요? 왜 그렇습니까? 우리 인생을 예수님이 끌고 가시는데 예수님이 실패했다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예수님이 끌고 가는 인생을 실패라고 하는 것은…말이 안 되기 때문에…우리 인생은 예수님이 미리 다 채점을 해서…백점이라고 이미 점수를 매겨놨습니다. 백점이라고 이미 점수를 매겨놨어요.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도 치열한 삶의 현장에 있기 때문에…늘 내 행동에 의해서 인생이 결정되는 것으로 알고…“주님, 내가 잘못해서 인생이 이렇게 엉망입니다. 주님 모든 게 다 내 잘못이고, 바로 내가 죽일 놈입니다.” 이렇게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게 뭐하고 똑같은가 하면…“어차피 니들 실력으로 점수가 결정되는 거 아니니까…그저 결석만 하지 말고 시험 봐라. 중간에 인생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시험만 봐라. 그러면 내가 다 백점 준다.” 이렇게 말씀하시는데도 불구하고…우리는 계속해서 내가 점수 더 잘 맞기 위해서…시험지에 답을 썼다가 지웠다가 썼다가 지웠다가 한다는 거죠. 그러다가 시험지가 찢어지거나 마치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지면…그때부터는 주님 앞에 나와서 “주님, 내가 잘못해서 인생이 이렇게 누더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 때문에 인생이 이렇게 엉망이 되었습니다.” 이러면서 마음속에 아주 깊은 탄식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평생 2천만 원짜리 전셋집에 산다고…내 인생은 벌레요, 쓰레기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타고 다니는 자동차가 그저 마티스에 불과하다고…그래서 평생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산다고 그렇게 고통스러워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식이 좋은 대학에 못 들어갔다고…강남에 못 산다고…최신식 아파트가 아니라 아주 낡아빠진 주택에서 산다고…그렇게 평생을 열등감 때문에 괴로워합니다.
이 모든 것 중에서 가장 비참한 것은…바로 개척교회 목사님들입니다. 우리 일반 성도들처럼 밖에 나가서 택시 운전도 할 수 없는 목사님들이에요. 그래서 내가 평생 목회했는데…성도 수가 불과 열 댓 명에 불과하다고…그것도 처음에는 30명이었는데 나중에는 열 댓 명으로 줄었다고…“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조롱거리라고” 그렇게 말합니다.
그분의 인생
그러나 우리 인생이 누구 인생인데 그런 말을 합니까? 아니 여러분, 우리 인생이 순수하게 우리 인생이라면…이런 말을 백번 천 번…아니 만 번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자살한 영화배우처럼 심지어 자살까지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이 누구 인생인데 그런 못된 짓을 합니까? 우리 인생이 도대체 누구 인생인데…그렇게 못된 짓거리를 합니까? 우리 인생이 도대체 누구 인생인데…그렇게 매일 자신의 가슴에 못을 박으면서 자해행위를 합니까?
우리 인생이 도대체 누구 겁니까? 우리 인생이 도대체 누구 거고…도대체 누가 우리 인생을 끌고 갑니까? 우리 인생이 우리 겁니까? 그리고 우리 인생을 내가…바로 내가 끌고 가는 겁니까? 갈2:20을 보십시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우리는 이미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기 때문에…우리 인생은 이제 없다는 것입니다. 내 인생은 이미 다 사라지고 없어요. 그래서 이제부터는 내가 아니라…바로 주님이…바로 주님이 우리 안에서 자신의 삶을 살기 때문에…우리 인생은 우리 것이 아니라 바로 주님의 것입니다. 그런데도 끝까지 인생을 자기 것이라고 우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교회 부흥 못시켰다고…내가 실수하고 내가 실패했다고…이 세상에 예수 믿는 사람은 전부 다 주님의 인생인데…그런데도 내 인생이 따로 있는 줄 알고…내가…바로 내가 잘못해서 이 모양 이 꼴이라고…이렇게 자신의 가슴에 수 없이 상처를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분의 결과
그러나 시험지가 찢어지고 너덜너덜해졌다고…우리의 시험점수가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다고 내 인생에 대한 주님의 평가가 바뀌는 것이 아니에요. 왜 그렇습니까? 우리 인생을 그렇게 만들어가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을 때로는 고달프게 하고…때로는 실패하게 하고…때로는 먹을 반찬이 없게 하고…때로는 대학에 떨어지게 하고…때로는 정말 아무 것도 되는 일이 없게 해서…‘인생은 내가 아니라…바로 주님의 것이구나.’라고 생각하게 하는 분이…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내가 열심히 해서 교회가 천명, 이천 명이 되었다고 합시다. 그렇다고 그 교회가 내 교회가 되는 겁니까? 그리고 그 일이 정말 내가 한 일이 되는 겁니까? 만약 그렇다면 그 사람은 정말 삯군 목자가 되고…이 세상의 모든 비난을 다 받으면서도 자기 자식에게 교회를 물려주는 세습 목사가 되고…교회재정을 마치 자기 것처럼 쓰는 횡령 목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게 아니다. 정말 이런 식의 생각은 말도 안 된다.’라는 생각이 들면…그때부터 우리 인생은 100번 넘어져도 101번째 다시 일어서게 되어 있습니다. 또 우리 인생이 1000번 실패해도 1001번째 다시 일어서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 인생은 예수님이 스스로 만들어 가신다는…그런 의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내 인생은 예수님이 스스로 이루어 가신다는…그런 인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순된 개념
이것을 위해서…우리가 꼭 한 가지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 고후6:9-10을 보십시오. “우리는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바로 여기에 성경의 가장 위대한 사상 중에 하나가 나옵니다.
그것은 이 세상과 성경은…완전히 거꾸로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유명하게 살려고 하면…성경에서는 제일 이름 없는 사람이 되고…또 이 세상에서 어떻게든지 내가 살고 내 자존심이 살려고 하면…성경에서는 이미 죽은 시체와 같은 사람이 되고…또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다 가지려고 하면…성경에서는 모든 것을 다 빼앗기는 그런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에 유행하는『동이』라는 드라마를 보십시오. 그러면 장희빈과 겨우 무수리 즉 물 뜨는 종에 불과한 동이가 아주 막상막하의 혈전을 벌이는데…이때 동이가 아주 유명한 말을 합니다. 그 전에 먼저 장희빈이 그러죠. “용서는 힘이 없는 자가 힘이 있는 자에게 비는 것이다. 그러니 넌 나에게 용서를 빌어야 된다.” 그러자 나중에 왕의 아들을 낳는 동이가 그럽니다. “아닙니다, 희빈 마마. 용서는 죄 있는 자가 죄 없는 자에게 빌어야 됩니다. 그러니 희빈 마마가 잘못을 인정하십시오.”
그러나 희빈은 절대로 그렇게 안 하죠. 그래서 가난과 고통, 그리고 의의 길을 가는 동이를 죽이려고 하죠. 이때 희빈의 마음에 한 가지 불길한 생각이 떠오릅니다. 그것은 구약에 나오는 선지자처럼…어느 날 갑자기 희빈에게 찾아와서…아주 뼈아픈 말을 하고 간…어떤 도인이 한 말입니다. 이 도인이 장희빈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마마님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 이룰 겁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 가질 겁니다. 그러나 바로 그때 마마님보다 더 큰 하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 나타나서 마마님이 가진 것을 다 빼앗을 겁니다. 그래서 결국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자가…모든 것을 다 가진 자를 이길 겁니다.” 물론 이 사람은 바로 동이를 말하죠.
그러나 저는 이 마지막 말, 즉 “결국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자가…모든 것을 다 가진 자를 이길 겁니다.”에서…예수님의 십자가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이 말한 오늘 말씀의 진정한 뜻을 보았습니다. 그렇죠…. 성경은…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자가…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다 가진 자를 결국 이기는 거죠. 그래서 그 사람이 가진 명예와 성공이라는 타이틀을…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그렇게 만들어버리는 거죠. 그래서 인생은 결국 허무밖에 없다는 것을…정말 처절하게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광야의 특징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할 때…하나님은 정말 아무것도 없는 광야로…그런 풀 한포기 나지 않는 광야로 이스라엘 백성을 몰고 가셨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도대체 왜 그럴까요? 아니,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싫다고 그렇게 땡깡을 부리면…적당히 좀 혼을 내서 들어가게 하면 되지…왜 그렇게 40년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광야로 데리고 가셨을까요? 하나님이…도대체 왜 그러셨을까요?
광야의 제일 큰 특징은…어디를 가든지 절망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일을 해도 안 되고…저 일을 해도 안 되고…집에 생활비가 없어서 시장에서 멸치 장사를 해도 안 되고…그래서 아주 힘들게 커피 타는 기술을 배워서…길거리에서 아주 조그맣게 커피 전문점을 해도 안 되고…그래서 결국 빛만 늘어가고…그래서 정말 집에 있는 애들 저금통을 깨서라도…몇 푼 안 되는 애들 저금통을 깨서라도 생활비에 보태고 싶은…그런 상태에 있는 것이 바로 광야 생활입니다.
그러면 이게 무슨 희망이 있느냐? 아니, 정말 돈도 없고 명예도 없고…그래서 정말 비빌 언덕이 없는데…이런 생활이 도대체 무슨 희망이 있느냐? 여러분 이것이 왜 희망인가 하면…신앙의 세계는 바로 이런 사람들에게만 허락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이런 사람들에게만 허락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있을 때를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그러면 아무리 종살이를 해도…그래도 먹을 것이 있고…잠을 자기 위해서 누울 공간이 있고…그야말로 정말 비빌 언덕이 있었습니다. 정말 비빌 언덕이 있었어요. 그래서 요즘으로 얘기하면…비록 아침 일찍 나가서 밤 11시, 12시에 들어와도…그래서 몸이 천근만근 해도…그래도 자식들에게 먹일 양식이 있고…온 가족이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분 좋으면 가끔 외식이라도 할 수 있는 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도 전혀 안 된다는 거죠. 그러면 이게 도대체 무슨 희망이냐?
이때 정말 가만히 한번 생각을 해보십시오. 우리는 늘 우리의 어려운 환경 때문에…그리고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그런 경험부족 때문에…우리는 늘 이런 일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그래서 저도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서 성경을 묵상할 때마다…정말 깜빡 깜박 합니다. 그래서 ‘정말 이런 일이 될까? 정말 될까?’ 이런 생각을 하지만…이럴 때마다 우리에게 이런 경험이 없다는 것 때문에 위축되지 말고…하나님이 과연 어떤 식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몰고 가시는지 한번 잘 생각을 해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은 분명히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셨습니다. 비록 돈 벌어먹기 치사하고…전혀 자유가 없는 곳이지만…그래도 먹을 것이 있는 그런 곳에서 나오게 하셨어요. 그런 후에 눈앞에 보이는 것은…온통 모래와 자갈뿐인 광야입니다. “그러면 이속에서 도대체 어떻게 사냐? 그리고 이런 환경이 우리에게 무슨 도움이 되냐? 아니, 이런 환경에서 우리의 승질만 나빠지지…도대체 이런 것이 우리에게 무슨 도움이 되냐?” 할 때…하나님은 우리에게 아주 귀중한 교훈을 하나 말씀하십니다.
당연한 절망
그럼 그게 뭐냐? 이 세상은 아무리 해도 절망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해도 절망을 피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술을 먹고 심지어 자살까지 하죠. 그래서 사람들의 생각 속에는…이 세상에 절대로 절망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내 인생이 절망으로 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아주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어요. 그래서 절망이 오면 어떻게든지 이것을 벗어나려고…술은 물론이고…심지어 마약의 힘까지 빌립니다.
이번에 자살한 영화배우를 보십시오. 이 사람의 아버지가 빚보증을 잘못서서…이 아들이 배우 일을 하면서 무려 7년 동안 아주 힘들게 빚을 갚았는데…이번에는 또 자기가 사기를 당해서…“에이, 이놈의 인생 살아서 뭐하냐? 인생은 오직 고통뿐인데…에이, 이놈의 인생 살아서 뭐하냐?” 그래서 술을 먹고 자살을 했지 않습니까? 이와 같이 이 세상은 절망이 계속되면…절망이 하루 이틀이 아니고 계속되면…그 다음부터는 인생을 포기하는 것 외에는…더 이상 방법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이 소망 없는 인생을 끝내는 것 외에는…더 이상 방법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신앙의 힘이 뭔지 아십니까? 그리고 하나님이 광야생활 40년 동안…우리에게 깨닫게 하는 것이 뭔지 아세요? 그것은 인생은 절망에서 절망으로 이어지는 것이…가장 합당한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생은 절망에서 절망으로 이어지는 것이…우리에게 가장 희망적인 미래를 약속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이 있느냐? 여러분 먼저…하나님이 이 세상을 이렇게 절망의 연속으로 만들어놓은 그 이유를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그러면 여기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먼저 이걸 좀 생각해야 돼요. 여러분…우리 인간이 선악과를 먹고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죄 짓고…매일 고통당하는 것 외에는…우리에게는 별로 할 일이 없죠. 그런데도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에게 살 길을 열어주시기 때문에…하나님이 이 세상을 이렇게 절망 모드로 끌고 가시는 것에는…반드시 그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를 들어서 대출을 얻어서 집을 샀습니다. 그런데 요즘에 이자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에…또 집값이 떨어져서 이제는 집을 팔아도 본전도 못 건지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자식은 대학에 떨어져서 집에서 놀고 있습니다. 그런데다가 남편마저 직장에서 언제 해고를 당할지 모르는 그런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게 전부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된 일이거든요? 그러면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혹시 이러다가 신용불량자가 되면 어떻습니까? 그러면…그렇게 살면 되는 거죠. 그리고 혹시 이러다가 밥을 굶으면 어떻게 합니까? 그러면…그렇게 살면 되는 거죠. 혹시 이러다가 애들 학비도 없으면 어떻게 합니까? 그러면…그렇게 살면 되는 거죠. 그런데 이 모든 것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도대체 “왜~” 이렇게 하십니까?
신앙의 세계
그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에게…“네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그런 세계가…바로 신앙의 세계야.” 바로 이걸 알려주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네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그런 세계가…바로 신앙의 세계야.” 하나님은 이 한 가지 사실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우리의 일생을 소비하십니다. 우리의 일생을 소비해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왜 풀 한포기 나지 않는 광야로 몰고 가셨는지 생각해보십시오. 광야는…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 정말 아무것도 없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없어요.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이 이 속에서 무려 40년을 살면서…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매일 같이 눈을 떠서 또 하루를 시작하지만…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들을 바라보면서…이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우리 아들이 말을 안 듣습니다. 그리고 우리 남편이 속을 썩입니다. 생활비는 아주 쥐꼬리만큼 갖다 주면서…자기가 의사라고…그리고 자기가 돈 버는 사람이라고…그런데도 당신은 집에서 뭐하냐고…당신은 그저 집에서 돈 쓰는 일밖에 하지 않는 사람 아니냐고…그렇게 부인을 무시하고…부인의 가슴에 대못을 박습니다. 그런데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보면서…이 부인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해야 될까요? “에이, 이놈의 인생 약을 먹고 콱~ 그냥” 이런 극단적인 생각을 해야 될까요? 아니면 다른 생각을 해야 될까요?
내가 신학교에 가서 목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 좋은 직장 다 때려 치고…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드디어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아주 좋은 목사가 되려고…성경도 많이 읽고…온갖 좋다는 프로그램도 다 듣고…그래서 어느 정도는 부끄럽지 않게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도 교회들이 전부 다 인맥을 통해서 사람을 쓰지…그저 서류만 갖다 내는 사람을 쓰지 않아서…어떻게 할 수 없이 개척교회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개척한지 10년이 다 돼 가는데도…하나님은 도대체 사람을 보내주시지를 않습니다. 그러면 이 목사님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해야 될까요?
절망의 열매
그것은 신앙은…내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처럼 점점 늙고 무기력해지는 그런 상황에서…그래서 아무도 나에게서 하나님의 일을 기대하지 않는 그런 상황에서…“당신이 교회 집사가 되고 목사가 됐지만…이날 이때까지 당신의 모습을 보니까…이제 더 이상 당신에게는 하나님의 일을 기대할 수 없다”는…그런 사형 선고가 내려졌을 때…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살고 싶은 마음이 없고…하나님을 믿는 것이 오히려 지긋지긋한 바로 그때…그래서 내가 이날 이때까지 하나님을 떠나지 못한 것이 오히려 후회가 되는 바로 그때….
하나님은 새로운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시는데…우리는 이걸 통해서 ‘아, 신앙은 결국 내가 죽는 거구나. 그래서 내 인생이 사라지고…하나님의 인생이 시작되는 거구나. 그러면 이 세상에 생명이 공급되는 그런 일이 시작되겠구나.’ 바로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보십시오. 그러면 어떤 사람은 사라가 임신을 못하게 된 것에 대해서…“하나님이 사라의 태를 아예 시멘트로 발라버렸다.”는 과격한 표현을 쓰는데…어쨌든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기 때문에…우리가 아브라함을 통해서 믿음이 무엇인지 알 수 있고…그 대표적인 일이 하나님이 사라의 태를 아예 시멘트로 발라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라의 태를 아예 시멘트로 발라버린 거예요. 이것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완전한 죽음을 말합니다. 완전한 죽음을 말해요.
그러나 놀라운 게 뭔지 아십니까? 하나님은 아무나 신앙 때문에 절망하게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나 신앙 때문에 절망하게 하시지 않아요. 아브라함의 조카 롯을 보십시오. 그러면 롯은 아브라함과 헤어지면서 전혀 신앙 때문에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소돔과 고모라에서 아주 행복하게 살았죠. 처음에는 아주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유독 아브라함만…인생의 모든 길을 다 막아서라도…인생의 모든 길을 다 막아서라도…죽음과 절망의 길로 몰고 갔습니다. 그런 다음에 하나님이 하신 일은…결국 이 세상에 생명을 가져오는 사람 즉 이삭을 이 세상에 내놓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자신이 특별히 선택하신 그런 사람들에게만…깊은 신앙의 골짜기와 쉽게 그 소원을 들어주시지 않는 절망의 길을 가게 하십니다. 그러나 바로 그런 사람이 있어야 이 세상에 생명을 주는 일이 일어납니다.
여러분, 오늘 여러분이 바로 이런 사람은 아닌지…한번 확인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하나님이 롯처럼 인도하지 않고…아브라함처럼 인도했다는 생각이 들면…하나님은 틀림없이 여러분에게 절망을 주시겠지만…그에 못지않게 또한 하나님은 반드시 여러분을 통해서…이 세상에 생명을 주는 그런 일을 시작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이 소망 없는 세상에…하나님의 참 생명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그런 증인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이것을 기억하고…지금 여러분이 앉아계신 그 자리를 기뻐하고 감사하는…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