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의 꽃’은 어떻게 ‘따까리’가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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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E가 어떻게 보면 따까리잖아요.”
“그렇죠….”
“아(A) 이(E)것도 제가 하나요,의 약자죠.”
지난 6월29일 방송된 SBS Plus의 ‘나는 솔로’라는 프로그램에 광고대행사 AE가 출연해 AE라는 직업에 대해 PD가 던진 말(평소
자신의 소신이었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과 그에 대한 답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와 각종 SNS에서는 이 발언의 파장이 만만치
않았다.
‘PD라는 직업은 얼마나 대단하기에…’, ‘이 프로그램은 무슨 돈으로 제작되나?’, ‘사과해라’ 등등 주로 담당 PD에 대한 비난을 중심으로 논란이 이어졌다. 이런 논란은 프로그램 1주년 기자 간담회를 빌어 담당 PD가 언론을 통해 사과를 표명한 것으로 마무리되는 것으로 보인다. 담당 PD는 프로그램의 재미를 위해서 던진 말이라고 하지만, 방송에서 특정 직업을 깎아내림으로써 올 수 있는 사회적 파장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발언을 한 것은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 질문을 아무 생각 없이 ‘그렇죠’라고 받아넘기고 더 나아가 ‘아(A) 이(E)것도 제가 하나요’라고 덧붙이며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조적 태도를 보여준 대답을 보며 안타까움을 넘어, 이 시대 광고 산업의 사회적 위상을 보는 건 아닌지 하는 우려가 들었다.
‘라떼는 말이야…’라는 비난을 들을 각오로 말을 한다.
나는 AE 출신이다. 물론 80년대 중반에 광고를 시작했으니 오래된 이야기다. 당시 한국의 광고 산업은 경제의 고도성장에 힘입어 새로운 성장산업으로 주목받고 있었다. 오늘날로 보면, 광고 회사는 IT 플랫폼 기업 정도로 각광을 받았고 AE는 그 중심에 있었다. ‘광고의 꽃’이라는 말을 들었고 광고라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라는 말도 들었다. 광고업계의 임금수준도 전체 산업계를 통틀어 톱 클라스에 있었다. 어느 자리를 가더라도 AE라는 생소한 용어의 새로운 직업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기에 답을 준비하고 있었다.
“광고주에게는 광고대행사를 대표하고 대행사에서는 광고주를 대표하는 광고의 전 과정을 책임지는 지휘자”라고 AE를 설명했다. 사회적으로도 기획력이 있고, 아이디어가 많은 직업이라는 인정을 받았다. 돌이켜 보면 이 모든 것들의 근원은 많은 보상도 아니고, 직업에 대한 멋진 정의 때문도 아니었다. 광고주를 리드하는 리더십에 바탕한 자존감이 그 중심에 있었던 것 같다.
광고주로부터의 스트레스는 그때도 있었다. 아마 그 강도는 더 컸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기준으로는 신문에 날 정도의 갑질이 횡횡했던 시절이니 말이다. 광고주의 불합리한 요구에도 당당하게 행동하고, AE라는 직업에 자부심이 살아 있었던 것은 아무리 갑질을 당해도, 광고주의 수준 낮은 눈높이를 가엾게 생각하며, 광고주가 생각하지 못하는 실력과 아이디어로 그들을 압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현재로 돌아와 보자. 광고 산업의 종사자들은 광고주를 압도하는 전문성과 실력, 아이디어로 그들을 리드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광고주에 대한 리더십이 존재하지 않는 한, AE의 일은 ‘따까리’가 된다. 너무 확대 해석 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 같은 시각에서 보면 AE라는 특정 직업뿐 아니라 광고 산업 전체가 스스로를 자조적으로 보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된다.
생각해 보면 모든 직업은 누군가의 따까리가 아닌가? 의사는 환자의 따까리고, 공무원은 국민의 따까리, 교수는 학생들의 따까리다. 따까리와 전문가의 차이는 고객에 대한 리더십을 가지는가의 여부에 달려 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대신할 때 그 일은 ‘따까리’의 영역이지만, 누군가 대신 할 수 없는 일은 전문가의 영역이다. 우리에게 물어보자, 우리는 과연 전문가인가?
허태윤 한신대학교 교수 / 애드아시아 사무총장
첫댓글 과연 내가 하는 일이 전문가 다운 일인가 자문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