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뭐 이래,
교회가 이상한데, 무슨 교회가 이래. 여기 이단교회 아냐? 우리 쌍샘교회를 바라보는 눈이 사뭇 심상치가 않다. 교회는 십자가를 높이 세워야 하고, 화려하거나 웅장하진 못해도 커다란 강단의 강대상과 의자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나. 그런데 여기 이 교회는 어느 것 하나 교회 모습에 어울리는 것이 없다. 건물이라는 것이 단층 기와집의 낡은 가정집인데다가 십자가 탑은 아예 있지도 않고, 예배실은 작은 방에 조그만 탁자하나와 오래된 풍금만 달랑 있으니 초라해 보이는 것이 당연하리라.
하지만 ‘교회가 뭐 이래!’ 이 말은 우리 사람들이 모든 교회를 향해 언제나 물어야 할 말이다. 교회가 왜 십자가 탑을 높이 세우는가, 왜 교회는 자꾸 커지는가, 높아지고 커져서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쉽게 찾아오도록 하기 위함인가, 우리교회는 이렇게 큰 교회요, 그러니 안심하고 우리 교회로 오시오. 모든 면에 풍족하고 넉넉하니 여기로 오시오 라는 뜻인가.
교회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교회가 커지고 힘을 기른다면 그것처럼 좋은 일은 없겠지. 하지만 오늘 나누지 못한 자가 내일 더 벌어서 나누겠다는 말은 ‘장사꾼이 밑진다.’ 는 말과 ‘처녀가 시집 안 간다.’는 말처럼 믿을 수 없다.
교회는 찾아오도록 해야 하지만 적극적으로 찾아가야 한다. 힘이 없다는 핑계는, 땅을 사는 일이나 건축을 해야 한다는 핑계는 정말 예수를 모르기 때문이다. 언제 교회가 자기 힘과 노력으로 일을 했고, 자기 돈으로 교회를 세웠는가. 교회는 누가 세웠으며 누구의 힘으로 일하는가? 주님이 찾아오는 사람이나 만나지는 사람보다, 찾아가서 사람을 만나셨듯이 교회도 응당 그러해야 한다.
교회는 주님의 이름으로 찾아가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이다. ‘교회가 뭐 이래’ 그 말은 교회를 보는 성도나 사람들의 눈이 외형적이고 형식적인 모습에 익숙해 있다는 증거다. 교회의 모습은 다양해야 한다. 지역적 상황과 선교 대상자의 특징을 고려해 교회의 건물이나 선교 프로그램이 다를 수 있다. 적어도 찾아가는 교회가 되려면 그러해야 한다.
예수님이 인간을 찾아오시기 위해 육신을 입으셨듯이, 교회가 세상의 구석구석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려면 더욱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교회 모습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그 말은 교회가 그렇게 동화되거나 현실에 안주하는 교회를 이르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세상의 부귀와 영화 권력에 눈꼽만큼도 흔들리지 않으셨으며 끝까지, 죽음의 길에서조차 당신의 길을 잃지 않으셨다. 결국 교회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평화와 사랑을 보이신 것처럼 해야 하며, 세상에 희망과 기쁨을 주고 생명을 살리는 일에 나서야 한다.
여기 쌍샘교회는 다른 교회와 전혀 다른 게 없다. 특수 목회도 아니고 이단도 아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한 믿음의 형제들이 모충동 쌍샘에 교회를 세우고 이웃을 찾아가는 교회로 만들자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자문할 것이다. 교회가 주저앉아 있을 때, 교회가 우리만의 교회가 될 때 ‘교회가 뭐 이래!’ 1992년 7월 26일 쌍샘교회이야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