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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랑길 평택 85코스 제3부
현덕면 장수리마을회관-포승읍 신영2리매상마을-
포승신영3리중간촌-희곡리장안이골-황해희곡6로-
황해희곡2로-희곡3교-로지스월드-황해희곡3로-
만호2리하만-서해대교아래-SR친오애아파트앞-
서동대로만호사거리-평택항만길-평택항마린센터
20240508
1.코스 소개
서해랑길 85코스는 길이 22.3km, 소요시간 7시간 30분, 난도 보통이다. 두루누비에서는, 평택호의 맑은 물에 깃든 역사와 문화를 만날 수 있는 코스라고 소개하며, 관광포인트는 다양한 조형물과 포토존으로 조성된 호반공원 '평택호예술공원'과 전통예술의 육성을 목적으로 개관한 '한국소리터'라고 안내한다. 시점은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노양리 산21-9(구룡교 북단 동측 정자 옆)이고, 종점은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만호리 570-3(평택항국제여객터미널 앞 삼거리)이다. 주요 지점과 경로는, 노양마을회관정류장 1.5Km - 평택국제대교 8.9Km - 평택호예술공원 6.4Km - 신영2리마을회관 5.9Km - 평택항마린센터 입구이다.
서해랑길 85코스는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의 2개 리(里)(노양리, 신대리), 현덕면의 6개 里(덕목리, 신왕리, 대안리, 기산리, 권관리, 장수리), 포승읍의 3개 리(里)(신영리, 희곡리, 만호리)를 통과한다. 평택시 2개의 읍과 1개의 면, 전체 11개 리(里) 지역을 통과하는 먼 거리이다. 아름다운 아산호와 평택호 관광단지의 예술공원, 그리고 여러 조형물들에 가슴이 요동쳤다. 탁 트인 아산호 풍경, 그 건너편의 아산시를 병풍처럼 두른 산봉들, 예술공원의 설치 미술과 여러 조형물을 살피고 감상하는 데 시간은 쏜살같이 흐른다. 두루누비에서 소개하는 '한국소리터' 관람은 제한 시간 안에서는 관람하기가 어렵다. 대안리와 기산리, 장수리와 신영리의 드넓은 간척농지와 들녘의 풍경은 인위적인 관광단지와 예술공원 조형물과는 다른 인간의 원초적 마음의 고향처럼 다가왔다. 그리고 포승읍 희곡리 일대에 들어선 경기 경제 자유구역 포승지구와 만호리 평택항의 글로벌 물류 중심 기지는 평택의 눈부신 발달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름다운 들길과 물길, 산길을 걷고 눈부신 산업 발전의 현장을 살핀 85코스 탐방을 3부로 나누어 기록한다.
2.평택항마린센터와 평택의 눈부신 번영
제3부 : 현덕면 장수리마을회관 앞에서 서해랑길 85코스를 이어간다. 이곳에서 85코스 종점인 평택항마린센터 입구까지 약 7km가 남았다. 현덕면 장수리에서 포승읍 신영리로 넘어가 희곡리를 거쳐 만호리 평택항 국제여객선터미널 앞에서 85코스를 마치게 된다. 물이 길게 이어지는 마을이라는 뜻을 지닌 장수리(長水里) 마을을 돌아 장수리 들녘으로 나갔다. 들녘은 아산만 바닷물이 들어왔으나 지금은 간척되어 드넓은 간척농지가 조성되어 있다. 이곳에 석화진이라 불렸던 옛 나루터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 위치를 분명히 알 수 없다. 아마도 아산만 바닷가였을 것이다. 장수리 지명은 원래 두메리(두매리)였다고 한다. 그런데 마을 주민들이 두메리 지명이 좋지 않다고 하여 평택시 현덕면 장수리(長水里)라고 개명하였다고 하며 마을회관 자리에는 예전에 동광학원이라는 교육기관이 있었다고 한다. 외진 지역에서 마을 선각자들이 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아 교육기관을 설립하여 마을의 동량들을 교육한 것을 보면 이 지역의 문화적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장수리 들녘을 가로지르면 작은 하천에 다리가 놓여 있다. 하천 정비 사업이 진행 중인데, 이 하천을 경계로 평택시 현덕면과 평택시 포승읍이 경계를 이룬다. 현덕면 장수리에서 포승읍 신영리로 넘어간다. 포승읍 신영리(新榮里)는 고려시대 신영장(新榮莊)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장(莊)은 처(處)·향·소·부곡과 함께 고려시대의 특수 행정구역이었는데, 신영장(新榮莊)은 화살과 칼을 제조하는 역役을 담당한 지역이었다. 신영장(新榮莊) 지역은 포승읍 신영리·방림리·내기리·석정리 일대로 추정되며 신영장의 중심이 되는 곳이 신영리라고 한다. 낮은 구릉지를 넘어 내려가면 신영2리 매상마을이다. 매상마을은 두매리(장수리)의 서쪽에 있어 ‘서두매’, ‘서두호(西杜湖)’라고 불린다는 마을이다. 매상마을에는 매상정미소, 매상떡방앗간이 있으며 북쪽으로 현덕면 방축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신영리 매상마을을 지나 포승남로를 따라가면 오른쪽 북동쪽 지역은 현덕면 방축리 지역으로, 방축리는 포승면 신영리를 감싸안는 형국이다. 공사 중인 서부내륙고속도로가 북쪽 방축리에서 내려와 신영리 들녘을 가로지르며 남쪽 아산만방조제 아산호 방향으로 이어진다. 그곳에 신영1리 직산동(稷山洞) 마을이 있다. 직산동 마을은 예전 직산현 지역이어서 ‘직산골’, 나무가 흔해서 ‘장작골’이라고도 불리며, 그 어름의 신영리 지역 아산만 바닷가의 새로 간척한 새밭땅에는 신전포구가 있었는데, 평택항 개발로 사라졌다고 한다.
공사 중인 서부내륙고속도로 육교 아래를 통과하여 직산동길을 가로질러 신영3리 중간촌 마을로 진입한다. 중간촌(中間村) 마을은 ‘중촌(中村)’, 또는 옛 양성현 지역이어서 ‘양성말’이라 이른다고도 한다는데, 남쪽으로 신영1리 직산동 마을이 손에 잡힐 듯 가깝고 서쪽으로 서해안고속도로 서해대교가 보인다. 숲이 아름다운 중간촌 마을을 지나 장안이골을 통과하면 희곡리 지역으로 넘어간다. 희곡리(希谷里)는 평야지대로 산골짜기가 드물다 하여 지어진 지명으로 희곡1리 송내(松內) 마을, 희곡2리 일자촌(一字村) 마을, 희곡3리 원희곡리(元希谷里) 희여울 마을이 있다고 하는데, 일자촌 마을은 경기경제자유구역 평택포승지구 산업단지 개발로 사라진 것 같다.
희곡리 지역에서부터 평택의 눈부신 성장과 발전 모습을 확인하지만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드넓은 간척농지 희곡리 지역은 간척토지가 구획되어 구획된 토지에 경기경제자유구역 포승(BIX)지구 산업단지와 주거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도로는 구획된 토지를 종횡으로 직선화되어 놓여 있다. 구획지에 기업의 입주가 늦어지고 있지만 앞으로 기업들이 입주하고 나면 희곡리 지역은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될 것이다. 그 모습이 눈앞에 보여지듯 공장들이 즐비하게 늘어서고 고층 건물들이 하늘을 찌른다. 아직은 버려진 듯한 인상을 주는 토지에 잡초들이 무성하여 황폐한 느낌을 준다. 몇 물류유통 업체들이 단정한 자태로 자리하고 평택BIX경기행복주택아파트만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서 미래를 연상시켜 준다. 서해랑길은 이 드넓은 경기경제자유구역 포승(BIX)지구의 직선화된 도로에 명명된 황해희곡로를 따라 이어간다. 황해희곡6로, 황해희곡2로, 황해희곡3로를 따라 희곡리에서 만호리로 넘어간다. 서해안곳혹도로 서해대교와 병행하다가 서해대교 아래를 가로질러 서동대로 만호사거리 방향으로 진행한다.
만호사거리 평택항만길에서 목적지 평택항마린센터 건물이 보인다. 평택항만길을 따라가며 평택의 눈부신 발전과 번영의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평택 동쪽 지역이 자연경관과 문화예술의 중심지라면 평택 서쪽 지역은 산업 발전과 문명의 중심지라고 볼 수 있다. 정신이 나간 채로 서해랑길 85코스 종점인 평택항 국제여객선터미널 삼거리에 도착하여 서해랑길 85코스 탐방을 마친다. 평택항 개발로 평택은 예전의 모습을 완전히 잃었으며, 아산만 바닷가에는 평택항 부두가 길게 이어져 있을 것이다. 평택 발전의 핵심인 평택항 단지와 포승2산업단지가 평택 서북쪽에 펼쳐져 있으며, 그 대미는 그 북쪽의 아산국가산업단지 경기포승지구가 장식할 것이다. 그 속살을 들여다 보는 서해랑길 86코스 탐방이 기대된다. 그 속살을 들여다 보기 전에 전체 윤곽을 살피고 조감하기 위해서 평택항마린센터 14층 전망대로 올라간다. 아, 놀랍구나! 평택의 눈부신 성장과 아름다운 풍경이여!
3.탐방과정
전체 탐방 거리 : 23.1km
전체 소요 시간 : 6시간 13분
장수안길을 따라 장수보건진료소와 장수리마을회관을을 지나와 뒤돌아본다. 정면 뒤에 장수보건진료소, 오른쪽에 장수리마을회관, 왼쪽에 장수리 자율방범 위원회가 자리한다. 장수리마을회관 자리에는 동광학원이 있었다고 한다.
장수리는 후미진 마을이어서 근대교육의 혜택이 늦었다. 그러자 일제강점기부터 마을 선각자들을 중심으로 근대교육기관을 설립을 추진했다. 1930년대 설립한 동광학원이 대표적이다. 동광학원은 현재의 마을회관 터에 15칸 규모의 건물에 교실 2개, 교무실 1개로 운영됐다. 이춘희, 우상호, 오재천 등 마을 출신의 지식인들이 교사로 봉사했다. - 평택시史
장수리마을회관 앞에서 서쪽 방향으로 바라보면 장수전원교회가 있다.
장수리마을회관 앞에서 장수안길을 지나 장수길을 따라오면 교차로공사 알림막이 펼쳐져 있다. 알림막은 차량의 우회를 알리는 것이어서 공사 중인 오른쪽으로 이어간다.
서해랑길은 차단시설을 지나 왼쪽으로 이어간다. 농가 뒤쪽은 현덕면 방축리 지역인 듯.
왼쪽 뒤의 장수리마을회관에서 왼쪽의 길을 따라와 공사 현장을 지나왔다. 오른쪽 뒤에 장수전원교회가 보인다.
장수리長水里는 조선시대 양성군 승량동면. 갑오개혁 뒤에는 수원군 가사면 지역이었다. 1914년 ‘두메리'라고 했다. 1938년 주민들의 요구로 장수리로 바뀌었다. 두메는 장수리의 옛 지명으로 산너머 후미진 곳에 마을이 형성돼 유래됐다. 석화진은 장수리에 있었던 옛 나루이다. -평택시史
장수리 북쪽에서 장수전원교회 오른쪽의 장수리 서남쪽 들녘을 바라본다. 중앙 뒤쪽은 포승읍 신영리 지역이다.
현덕면 장수리 서북쪽 들녘이 펼쳐지고 뒤쪽은 신영리 지역이다. 서해랑길은 오른쪽 농로를 따라 신영리 지역으로 넘어가 오른쪽 뒤의 신영2리 마을회관 앞으로 이어간다.
현덕면 징수리 북쪽에 들녘이 펼쳐져 있다. 서해랑길은 장수길에서 왼쪽으로 꺾어 장수리 들녘의 농로를 따라 왼쪽 구릉 오른쪽에 움푹 파인 길을 넘어 포승읍 신영2리 마을회관 방향으로 이어간다.
현덕면 장수리 간척농지를 가로지르는 농로를 따라 뒤쪽의 표승읍 신영리 지역으로 넘어간다.
앞쪽 들녘은 현덕면 장수리 들녘, 오른쪽 뒤 지역은 현덕면 방축리 지역, 왼쪽 뒤 지역은 포승읍 신영리 지역이다.
현덕면 장수리와 포승읍 신영리를 경계하는 소하천 위에 현덕면 장수리와 포승읍 신영리를 잇는 다리가 놓여 있다.
소하천을 경계로 왼쪽은 현덕면 장수리, 오른쪽은 포승읍 신영리이다. 맨 뒤쪽에 아산시 영인산과 그 오른쪽 입암산이 보인다.
장수리 마을에 장수전원교회 십자탑이 솟아 있고 그 왼쪽에 장수리마을회관과 보건진료소가 어림된다. 오른쪽 끝에 장수리 석화진이 있었을까? 맨 오른쪽 뒤에 아산시 영인산이 솟아 있다.
장수리 마을은 예로부터 반농반어 마을이었다. 주민들은 이른 봄부터 석화진을 중심으로 어로활동을 하다가 농번기가 시작되면 농사를 지었다. 근대 이후 간척사업으로 경작지가 확대되면서 농업 중심이 됐다. 간척사업은 일제 말과 3공화국 시절 대규모로 이뤄졌다. 1939년(소화 14) 대가뭄 때에는 이범태 씨가 빈민구제를 빌미로 시작했고, 제3공화국 시기에는 정부가 새마을사업으로 현포수리계를 조직하여 간척사업을 시작했다. 맨손으로 시작한 간척사업은 1970년대 초 성공했고 1974년 아산만방조제가 준공되고 경지정리 사업이 진행되면서 옥토로 변했다. - 평택시史
현덕면 장수리마을회관에서 장수리 들녘으로 나와 농로를 따라왔다.
장수리 들녘 농로를 따라와 소하천 다리에서 북동쪽을 바라본다. 왼쪽 뒤 지역은 현덕면 방축리 지역이라 추정한다.
현덕면은 조선시대 수원군에 속했다가 1914년 3월 1일 부령 제111호에 의거 진위군으로 편입할 때 수원군 가사면, 광덕면, 현암면 일원과 안외면, 포내면, 승양면의 일부를 병합하였으며 그 중 면적이 넓은 현암면의 '현(玄)'자와 광덕면의 '덕(德)'자를 따서 진위군 현덕면(玄德面)이라 개칭하였으며 1939년 10월 1일 행정구역 개편에 의거 평택군 현덕면이라 하였다. 현재는 12개 법정리와 41개 행정리가 있다. - 평택시史
소하천 왼쪽 지역은 포승읍 신영리, 오른쪽은 현덕면 장수리, 위쪽 지역은 현덕면 방축리 지역이다.
서해랑길은 소하천 건너편 작은 구릉 오른쪽 언덕길을 넘어 포승읍 신영리 매상마을로 이어간다.
현덕면 장수리에서 현덕면 장수리와 포승읍 신영리를 잇는 다리를 건너 포승읍 신영리로 넘어간다. 서해랑길은 다리를 건너 농로를 따라가다가 오른쪽으로 꺾어 오른쪽 구릉 앞의 신영리 매상길을 따라 매상마을로 이어간다.
신영리 들녘의 농로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구릉 앞으로 올라왔다. 왼쪽 맨 뒤에 아산시 영인산과 그 오른쪽 입암산이 보인다.
현덕면 장수리 마을과 들녘이 건너편에 있고, 앞쪽은 포승읍 신영리 들녘이다. 중앙 왼쪽의 소하천 다리를 건너 농로를 따라왔다. 이 들녘은 예전에 갯벌 지역있는데 간척되었다. 왼쪽 맨 뒤에 아산시 고용산, 맨 오른쪽 뒤에 영인산이 보인다.
매상길을 따라 포승읍 신영2리 매상마을로 이어간다.
포승읍은 내기리 도곡리 원정리 만호리 희곡리 신영리 방림리 석정리 홍원리 등 9개 법정리 행정을 담당하는 64개의 마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농업을 기반으로 평택항, 서해안 고속도로, 국가공단 등 주요산업시설을 건설하고 있는 서해안개발의 요충지역이다. 포승읍은 양성현에서 분리하여 수원군에 병합되어 구한말까지 소속되어 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포내면(浦內面)과 승양면(升陽面)의 대부분, 안외면(安外面)의 일부를 병합하여 포내면의 포(浦)자와 승양면의 승(升)자를 따서 포승면으로 부르게 되었고 인구의 증가와 도시화의 진전으로2006년 12월 29일 포승읍으로 승격되었다. - 평택시史
왼쪽에 직물제품 제조업체인 항만피엔티 건물이 있으며, 맨 오른쪽 뒤에 서해안고속도로 서해대교가 보인다.
매상길을 따라오면 왼쪽 앞에 매상동청장년회 건물, 오른쪽에 신영2리마을회관 건물이 있는 매상마을에 이른다.
포승읍 신영리(新榮里)는 고려시대 신영장(新榮莊)의 중심마을로, 조선시대 직산현 외야곶면 지역이다. 장莊은 처處·향·소·부곡과 함께 고려시대의 특수 행정구역이었다. 신영장(新榮莊)의 범위는 신영리·방림리·내기리·석정리 일대로 추정된다. 신영장은 화살과 칼을 제조하는 역役을 담당했다. 신영장은 조선 태조 7년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수원부에 편입됐고 중간촌·직산말을 비롯해 일부 마을은 직산현 외야곶면과 양성현 승량동면에 속했다. 1914년 신영리·가장동 일부·안외면 신영리·현암면 신령리·서두호(西杜湖)를 통합해 신영리라 했다. 직산동稷山洞은 신영1리. 직산현 지역이어서 ‘직산골’, 나무가 흔해서 ‘장작골’이라고도 한다. 매상동은 신영2리의 자연마을. 두매리의 서쪽에 있어 ‘서두매’, ‘서두호’라고도 했다. 중간촌中間村은 신영3리 ‘중촌中村’. 옛 양성현 지역이어서 ‘양성말’이라고도 한다. 가장동佳庄洞은 신영4리. 농사짓기 좋은 지역이어서 유래됐다. 벽장골은 으슥하고 후미진 곳. 도망친 병사들이나 도피자들이 숨어살았다고 해서 유래됐다. 신전포는 신영리 바닷가의 포구. 간척한 지역이어서 ‘새밭땅’이라고도 한다. 평택항 개발로 사라졌다. - 평택시史
왼쪽에 매상동청장년회, 앞에 신영2리 마을회관이 있다. 서해랑길은 신영2리 마을회관 왼쪽 포승남로 지선을 따라 매상정미소와 매상떡방앗간을 지나서 왼쪽 뒤에 보이는 큰길인 포승남로 간선으로 나간다.
신영리(新榮里)는 옛날에 장터가 있어 나날이 번영하라는 뜻으로 지은 지명으로, 자연부락은 조선시대 직산현에 속해 지은 지명으로 직산동과 매상동, 중간촌, 가장동, 신전포 마을이 있다. - 평택시史
포승남로 지선도로에서 포승남로 간선도로로 나가 오른쪽 방향으로 이어간다.
왼쪽 포승남로 지선도로를 따라 신영2리 매상마을 매상정미소와 떡방앗간을 지나 포승남로 간선도로로 나왔다. 중앙의 전신주 오른쪽 맨 뒤에 아산시 고용산, 맨 오른쪽에 영인산이 가늠된다.
포승남로 간선도로를 따라 북진한다. 오른쪽 지역은 현덕면 방축리 지역이다.
현덕면 방축리(防築里)는 조선시대 갑오개혁 뒤에 수원군 현암면 지역이었다. 1914년 방축동·신기동·승량동면의 국리를 통합해 방축리라 했다. 방축은 방죽말에서 유래됐다. 자연마을은 ‘방죽말(1리)’과 ‘국말(2리)’로 나뉜다. 방죽말은 다시 ‘새터’, ‘수사리’, ‘방죽말’로 구분되고, 국말은 ‘윗말’, ‘아랫말’, ‘갈마지’로 나뉜다. - 평택시史
포승남로 포승읍 신영2리 입구 버스정류소를 거쳐 왼쪽으로 이어간다. 도로 오른쪽은 현덕면 방축리 지역이다.
공사 중인 서부내륙고속도로가 아산만방조제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나무숲이 우거진 곳은 포승읍 신영1리 직산동 마을이며 그 뒤 신영리 바닷가에는 신전포구가 있었을 것이다. 신영리 들녘 길가에는 지칭개 홍자색꽃이 예쁘게 피어 있다.
포승남로를 따라 공사 중인 서부내륙고속도로 육교 아래를 통과한다.
서해랑길은 포승남로를 따라가다가 직산동길과 만나 오른쪽으로 꺾어 서평택IC, 포승읍 방림리 방향의 직산동길을 따라간다.
서부내륙고속도 14공구 현덕면 방축육교 우회도로 공사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직삭동길 위쪽은 포승읍 신영4리 지역이다.
왼쪽 포승남로를 따라와 제일가든 앞쪽으로 이어지는 직산동길로 들어왔다.
직산동길 바로 앞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꺾어 신영3리 방향의 중간촌길로 진입한다. 직산동길 위쪽은 신영4리 가장동 지역이다. 신영4리 가장동(佳庄洞)은 농사짓기 좋은 지역이라고 하여 지명이 유래됐다고 한다.
중간촌길을 따라 신영3리 중간촌 마을을 통과한다. 신영3리 중간촌(中間村)은 ‘중촌(中村)’, 또는 옛 양성현 지역이어서 ‘양성말’이라 이른다고도 한다.
오른쪽 제일가든 앞 직산동길을 따라오오다가 왼쪽으로 꺾어 중간촌길로 들어왔다.
왕새우양식장의 수차가 힘차게 돌아간다. 건너편 마을이 신영1리 직산동(稷山洞) 마을이며, 그 뒤 신영리 바닷가에 신전포구가 있었을 것이다.
신영1리 직산동(稷山洞)은 직산현 지역이어서 ‘직산골’, 나무가 흔해서 ‘장작골’이라고도 한다. 신전포는 신영리 바닷가의 포구로 간척한 지역이어서 ‘새밭땅’이라고도 하였으나, 평택항 개발로 사라졌다. - 평택시史
중간촌길을 따라 신영3리 중간촌마을을 통과하여 장안이골 들녘으로 나간다. 왼쪽 뒤에 서해안고속도로 서해대교가 보인다.
도로 왼쪽은 포승읍 희곡리 지역이며, 희곡리와 경계를 이루는 포승읍 신영리 도로를 따라간다. 왼쪽 포승읍 희곡리 장안이골 들녘에 소공원이 설치되어 있다. 구릉지 위쪽에 공사가 진행 중인지 토사 흘러내림 방지막이 설치되어 있다.
서해랑길은 토사 흘러내림 방지막이 펼쳐진 둑 왼쪽 길을 돌아서 신영새싹길을 따라간다.
포승읍 신영리 신영새싹길을 왼쪽으로 돌아간다.
포승읍 신영리에서 희곡리로 넘어가 황해희곡6로를 따라 이어간다.
황해희곡6로가 황해희곡3로와 만나는 회전교차로에서 황해희곡3로 방향을 바라본다. 서해랑길은 왼쪽 방향으로 황해희곡6로를 계속 따라간다. 희곡리(希谷里)는 평야지대로 산골짜기가 드물다 하여 지어진 지명으로 자연부락은 원희곡리(元希谷里)와 송내리(松內里), 일자촌(一字村) 마을이 있다고 한다.
회전교차로 위쪽은 황해희곡6로, 왼쪽은 황해희곡3로, 오른쪽은 황해희곡7로이다. 서해랑길은 황해희곡6로를 따라와 회전교차로 왼쪽의 황해희곡3로 횡단보도를 건너 서남쪽으로 계속 이어지는 황해희곡6로 쪽으로 왔다.
황해희곡3로 횡단보도를 건너와서 서남쪽으로 이어지는 황해희곡6로를 따라간다. 서해랑길은 앞쪽의 황해희곡2로 회전교차로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황해희곡2로를 따라간다. 왼쪽의 고층 건물은 평택BIX경기행복주택아파트이다.
황해희곡6로를 따라와 회전교차로를 건너 황해희곡2로 왼쪽 보도를 따라간다.
건너편 왼쪽 황해희곡6로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황해희곡2로로 건너왔다. 회전교차로 오른쪽 뒤는 황해희곡7로이다.
황해희곡2로 남쪽 보도를 따라 ESR KENDALL SQUARE 건물 NEPA 물류센터 앞을 통과한다.
소하천의 희곡3교에서 북쪽의 희곡3리 원희곡을 바라본다. 나즈막한 산은 포승읍 방림리의 대덕산일 것이라 가늠한다.
방림리芳林里는 조선시대 양성현 승량동면 지역. 대덕산 아래로 숲이 울창하고 아름다워 ‘뱅골’ ‘방곡’이라고 했는데 이것이 순화돼 ‘방림’이 됐다. 1914년 방림동·전촌箭村·원택院宅리 일부·현암면 전촌리·포내면 미평을 통합해 방림리라 했다. 대덕산은 옛 신영장(新榮莊)의 주산으로 정상에 산신제당이 있다. 장莊은 처處·향·소·부곡과 함께 고려시대의 특수 행정구역이었다. 신영장(新榮莊)의 범위는 신영리·방림리·내기리·석정리 일대로 추정된다. 신영장은 화살과 칼을 제조하는 역役을 담당했다. - 평택시史
위쪽의 회전교차로에서 황해희곡2로 횡단보도를 건너 황해희곡2로 남쪽 보도를 따라 희곡3교를 건넜다. 오른쪽의 고층 건물은 평택BIX경기행복주택아파트이다.
황해희곡2로에 윗 줄기를 자르고 여러 가지들을 키우는 대왕참나무가 자라고 있다.
왼쪽 황해희곡로 횡단보도를 건너 물류센터 로지스월드를 뒤돌아본다.
희곡들 너머에 서해안고속도로 서해대교가 아산만 바다 위를 가르고, 목적지인 평택마린센터 건물이 중앙 뒤에 보인다.
왼쪽 뒤에 포승읍 만호7리 SR친오애아파트가 보이고, 오른쪽 뒤는 희곡1리 송내(松內) 마을이다. 송내는 ‘솔안말’, ‘안터’라고도 부르며, 소나무 숲 안쪽에 형성된 마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오른쪽 황해희곡2로를 따라 서해대교 앞으로 이어간다.
건너편 황해희곡로 오른쪽이 희곡2리 일자촌(一字村) 마을이 있었던 곳이다. 이곳은 바닷물이 들어왔던 곳으로, 바닷가 쪽에 일자 형태로 마을이 형성되어 일자촌 마을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 왼쪽 위에 희곡3리 원희곡 마을이 있다.
희곡리(希谷里)는 조선시대 직산현 외야곶면 지역으로 1914년 가장동 일부·송내·승량면 희곡·안외면 송내·만호리 일부를 통합해 희곡리라 했다. 희곡1리 송내(松內)는 ‘솔안말’, ‘안터’라고도 부른다. 소나무 숲 안쪽에 형성된 마을에서 유래했다. 희곡2리 일자촌(一字村)은 바닷가 쪽에 일자 형태로 마을이 형성됐다. 희곡3리 원희곡(元希谷)은 ‘희여울’이라고도 하며 희곡이라는 지명이 여기에서 비롯됐다. - 평택시史
황해희곡2로 남쪽 보도를 따라 서해안고속도로 아래 교차로에서 황해희곡3로 횡단보도를 건넌다.
황해희곡3로 횡단보도를 건너면 경기경제자유구역 포승(BIX)지구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오른쪽 뒤는 희곡1리 송내지역이다.
황해희곡3로 북쪽 보도를 따라 서해안고속도로와 동행한다.
황해희곡2로를 따라 평택포승BIX 일반산업단지를 거쳐서 왼쪽의 황해희곡3로 횡단보도를 건넜다. 오른쪽에 물류센터 로지스월드가 보인다. 포승지구는 산업시설, 물류시설, 정주시설로 개발되는데, 자동차부품, 화학, 전자, 기계 전기, 기타 운송장비, 물류 등이 주요 입주 업종이라고 한다.
황해희곡2로와 황해희곡3로의 교차로에서 희곡리 일대를 살핀다. 서해대교 왼쪽 화면에 보이지 않는 곳은 희곡1리 송내, 왼쪽 뒤 야트막한 산 오른쪽은 희곡3리 원희곡, 오른쪽은 희곡2리 일자촌이다. 평택시 평평한 땅에서 오른쪽 뒤에 해발 58m 대덕산이 살포시 솟아 있다. 대덕산은 포승읍 희곡리, 왼쪽의 내기리, 뒤쪽의 방림리, 오른쪽의 신영리에 걸쳐 있으며, 고려시대 특수 행정구역인 신영장(新榮莊)의 주산으로 산신제당이 있다고 한다.
황해희곡3로 북쪽 보도를 따라간다. 왼쪽 지역은 만호2리 하만 당골 지역이고 오른쪽은 만호1리 상만 지역인 듯. 오른쪽 위에는 서해안고속도로 서해대교가 지난다.
만호리의 자연마을은 상만호(윗느지, 1리)·하만호(아랫느지, 2리)·대정(3리)·원터(4리)·연암(솔개바위, 5리)이 있고, 만도 아파트와 친오애 아파트는 만호6리와 만호7리다. 개발 전에는 유곡(놀코지)이라는 마을도 있었지만 폐동됐다. 만호1∼2리 상만호와 하만호의 자연지명은 ‘느지’다. '느지'는 곶이 발달해 바닷물이 호수를 이룬 지형을 말한다. 두 마을은 본래 같은 마을이었다. 규모도 해방 전후에는 30∼40호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1986년 3월과 5월 만도기계, 한라공조 평택공장이 입주하고 1986년 평택항이 개항하면서 상만호(윗느지)가 33호, 하만호(아랫느지)가 22호로 커졌다. - 평택시史
황해희곡3로에서 서해안고속도로 서해대교 너머에 있는 만호7리 평택SR친오애아파트가 보인다.
왼쪽은 만호2리 하만 당골지역이다. 앞쪽 서동대로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서해안고속도로 서해대교 아래를 통과한다.
왼쪽에 서동대로가 달린다. 서해랑길은 서해안고속도로 서해대교 아래를 통과해 오른쪽으로 돌아간다.
서동대로 오른쪽 아래 도로를 따라 서동대로 위로 올라간다. 오른쪽 위에 만호7리 평택SR친오애아파트가 보인다.
만호리(晩湖里)는 조선시대 직산현 외야곶면 지역이다. 갑오개혁 뒤 수원군에 통합됐고, 옛날에 만포(晩浦)라는 포구가 있어 만포리(晩浦里)라 했으나, 1914년 만포晩浦·안외면 만호리 일부·원촌院村·유곡을 통합해 진위군 포승면 만호리라고 했다. 만포의 만(晩)자와 충청도와 가까운 지역에 있어 호서(湖西)의 호(湖)자를 따서 만호리(晩湖里)라고 했다. 만호리는 포구마을이다. 포구는 만호5리 솔개바위 마을에 있었다. 대동여지도 등 여러 고지도에는 대진大津·한진漢津·대진포大津浦라고 표기돼 있다. 1872년 조선방역지도에 대진은 삼국시대 백제의 수군창이 있었고, 통일신라 때에는 당나라와 신라의 사신과 상인들이 오가던 해로교통의 요지였다고 기록돼 있다. 조선시대에는 대중국 교역항으로의 역할은 중단됐지만 서산·당진·태안 등 내포지역 사람과 물산을 교역하던 대표적인 포구였다. 16세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대진大津은 수원부 서남쪽 1백 리이며 넓이가 10여 리인데 조세潮勢가 사납다…만조滿潮 때 배로 건너면 홍주洪州, 면주沔州 등 여러 읍으로 통하는 첩로捷路’라 기록했다. - 평택시史
오른쪽은 만호7리 평택SR친오애아파트 가는 길, 서해랑길은 왼쪽 서동대로 보도를 따라간다.
서동대로 동쪽 보도를 따라 앞쪽의 만호사거리에서 서동대로 횡단보도를 건너 평택항만길로 이어간다.
만호리(晩湖里)는 대진(大津)이 있던 포구마을이다. 조선 초에 수군도만호 또는 수군만호가 설치됐다. 조선시대 직산현 외야곶면이었고 1914년 수원군 포내면의 만포晩浦·안외면 만호리 일부·원촌院村·유곡을 통합해 만호리라 했다. 만호1리의 상만호(上晩湖)는 ‘윗느지(상만호, 큰말)’, 만호2리 하만호(下晩湖)는 ‘아랫느지(하만호)’라 불린다. 만호3리 대정(大井) 마을은 큰 우물이 있어 유래됐다. 만호4리 원기(院基) 마을은 ‘원터’, ‘원막’이라고도 한다. 조선 초 수군만호가 주둔한 것으로 추정된다. 포승제2산단 건설로 2013년 현재 폐동됐다. 만호5리 연암(鳶岩) 마을은 ‘솔개바위’라고도 부른다. 만호5리에 있던 대진(大津) 나루는 솔개바위나루라고도 했다. 통일신라시대 당나라를 오가는 뱃터라고 전해지며, 근대 전후에는 충청도 내포지역과 안중장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였으며, 현재 평택항이 들어섰다. - 평택시史
만호사거리 동쪽 보도에서 서동대로 횡단보도를 건너 평택항만길로 넘어와 만호사거리를 뒤돌아본다.
평택항만길을 따라 평택항마린센터 앞으로 이어간다. 평택시에서는 소방관 이병곤씨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평택항만길에 '소방관이병곤길'이라는 명예도로명을 부여하였다.
평택항만길 북쪽 보도에 '글로벌 물류 중심기지 평택항' 조형물이 조성되어 있다. 건너편 지역은 만호6리 지역이다.
평택항만길 남쪽에 평택직할세관 건물이 있으며, 그 서쪽에 평택항마린센터 건물이 솟아 있다.
평택항만길 북쪽에 경기수협이 자리한다.
평택항 국제여객선터미널 삼거리 직전에 이병곤 소방관 순직 안내판, 조금 더 위쪽에 서해랑길 85·86코스 안내도가 있다.
이병곤 소방관의 순직 상황과 그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는 명예도로명 지정을 소개한다.
이병곤(1961. 4. 2.~2015. 12. 3.) 소방관의 삶과 순직 : 충청남도 청양군에서 출생한 그는, 1990년 소방관에 입문 후 25년간 수많은 화재진압과 구조활동을 펼친 베테랑 소방관이었다. 2015년 포승119안전센터장으로 부임하였으며, 그해 12월 3일 서해대교 2번 주탑 꼭대기 부근 화재 발생 시 동료 소방관과 함께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해 고속도로 통행 차량의 안전유도 및 화재진압을 하던 중 화재로 인해 끊어진 교량케이블에 맞아 순직하였다. 이를 계기로 시행된 '이병곤 플랜'에 따라 소방관 근무환경 개선과 소방력이 확충되어' 각종 재난상황 발생 시 보다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이 구축되었다. 순직 후에는 소방령 특진과 더불어 녹조근정훈장이 추서되었으며, 2016년에는 '서해안고속도로 행담도휴게소 내에 그를 기리고자 흉상이 건립되었다.
명예도로명, 소방관이병곤길 : 평택시에서는 그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고자 포승119안전센터와 서해대교 주탑이 모두 바라다 보이는 평택항만길에 소방관이병곤길이라는 명예도로명을 부여하였다.
평택항 국제여객선터미널 삼거리 평택항마린센터 입구에 서해랑길 85·86코스 안내도와 스탬프함이 설치되어 있다.
서해랑길 85·86코스 안내도와 스탬프함이 설치되어 있고, 그 뒤에는 평택항마린센터 건물이 솟아 있다.
서해랑길 85코스는 경기둘레길 45코스와 동행했다. 거리 21.2km, 소요시간 7시간 30분. 탐방 결과 23.1km, 6시간 13분이 걸렸다.
서해랑길 85·86코스 안내도와 함께 서해랑길 85코스 탐방 완주를 기념한다.
평택항 국제여객선터미널 삼거리 가로등 기둥에 서해랑길 86코스 시작점 표지판이 붙어 있다.
서해랑길 85코스 탐방을 마친 뒤 평택항마린센터 전망대로 올라가 평택항을 조망하기로 한다.
평택항마린센터 건물 14층의 전망대로 올라가서 평택항 주변을 전망한다. 전망대 입장료는 무료이다.
서해안고속도로 서해대교가 아산만 바다를 가르고 앞쪽에 평택항 동부두, 중앙에 평택항 서부두와 평택당진 중앙부두가 있으며 뒤쪽에 행담도, 오른쪽 뒤에 당진시 송악읍 송악산이 보인다.
평택항동부두에 평택항카훼리화물터미널이 아래에 있고, 서해대교 뒤에 평택항서부두에 카길애그리퓨리나평택공장, 물류창고, 해운 업체들이 바다에 떠 있다. 맨 오른쪽 뒤에 행담도, 건너편은 아산만 당진시 신평면 해안이다.
서해대교 아래 위쪽에 평택항신컨테이너터미널, 오른쪽 앞에 평택항카훼리화물터미널이 있다. 아산만 바다 맨 왼쪽은 아산만방조제, 정면 맨 끝에는 삽교천방조제, 오른쪽 건너편으로 당진시 신평면 해안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
평택항신컨테이너터미널이 넓게 자리하고 오른쪽에 아산만 바다가 펼쳐져 있다. 맨 왼쪽 뒤에 아산시 영인산, 그 오른쪽에 아산만방조제, 오른쪽 끝에 삽교천방조제, 맨 오른쪽 당진시 신평면 삽교호관광지가 가늠된다.
바로 앞에 평택직할세관 건물이 있고 왼쪽에 만호6리 만도사원아파트, 중앙에 만호7리 평택SR친오애아파트, 그 뒤쪽은 포승읍 희곡1리 송내 지역이다. 서해안고속도로 서해대교 오른쪽은 희곡2리 일자촌, 그 위쪽은 희곡3리 원희곡 지역이다.
만호사거리에서 서쪽으로 평택항만길이 길게 이어진다. 왼쪽 중앙에 만호6리 한라아파트와 그 뒤 만도사원아파트가 보이고, 만호사거리 오른쪽에 만호7리 평택SR친오애아파트가 보인다.
중앙 위쪽에 에너지 보관 탱크들이 설치된 곳이 만호5리 솔개바위(鳶岩) 마을이 있었던 곳이다. 그 위쪽은 아산국가산업단지 경기포승지구이다. 왼쪽 평택항 돌핀부두에 신라철강 평택공장, 그 위쪽에 평택항자동차수출전용부두, 그 위쪽에 해군제2함대, 맨 위쪽은 아산국가산업단지 경기원정지구이며 수도사가 있을 것이다.
대진大津이 서해안 물산 유통에 중요한 항구로 부상하면서 나루터에는 선창이 조성됐다. 솔개바위 마을 앞에 있었던 선창은 일제가 쌓았고, 산 밑으로는 해방 후에 쌓았다. 새로 쌓은 선창에는 나룻배가 오가고 봄·가을 성어기면 생선을 가득 실은 고깃배들이 몰려들었다. 타지에서 몰려든 고깃배들은 연안에서 조업하는 중선中船이 많았다. 중선들은 칠산 앞바다와 연평도에서 조기잡이를 하거나 고군산열도에서 새우잡이를 했다. 소규모 어선으로 근해에서 조업했던 만호리 사람은 주로 아산만의 숭어·강다리·꽃게를 잡았다. 사람과 소의 운송은 나룻배의 몫이었다. 나룻배는 한선이라고 하는 밑이 넓적한 평저선이었다. 충청도 내포의 소장수들은 한선에 소 10마리씩 실어 건너왔다. 풍족했던 어족자원은 1970년대 아산만과 삽교천 방조제가 건설되면서 씨가 말랐다. 고기들이 산란장소를 빼앗겼기 때문이다. 바지락에 밟혀 걷기 힘들던 갯벌도, 썰물에 갯가에 나가면 몇 자루씩 해오던 굴양식도 먹이가 줄어들면서 서서히 황폐해져갔다.
1990년대 평택항 확장공사가 본격화되고 1999년 해군제2함대 사령부가 옮겨오면서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어선이 드나들던 포구가 사라지고 어족자원이 고갈됐으며 주변지역이 개발되면서 고향을 떠나는 사람도 많아졌다. 봄·가을이면 어선들과 관광객들로 북적였던 솔개바위도, 농업과 수산업으로 살아가던 느지도 영향 받기는 마찬가지다. 평택항이 건설되고 주민들 가운데 상당수가 항만사업소에 취직도 했지만 오래 근무한 사람은 많지 않다. - 평택시史
신라철강 당진공장, 평택항 자동차전용부두, 미해군제2함대 사령부, 맨 위쪽의 아산국가산업단지 경기원정지구와 수도사를 가늠한다. 바다에 떠있는 평택당진 중앙부두에는 경동탱크터미널, 한일현대시멘트 당진공장, 건설 자재 업체들이 자리하고 있다.
평택항동부두에 국제여객터미널과 여객선 부두가 아래에 있고 바다에는 평택항 서부두와 평택당진중앙부두가 떠 있다. 더불어 경동탱크터미널, 한일현대시멘트 당진공장, 건설 자재 업체들이 자리하고 있다. 서해대교 왼쪽 뒤에 행담도가 보인다. 건너편에는 당진시 송악읍 송악산이 표지가 되어 주며, 건너편 맨 오른쪽에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그 왼쪽 맨 뒤에 당진화력발전소를 가늠한다.
평택항에 대한 시설 안내도를 통해 위치와 시설물들을 파악할 수 있다.
평택항 운영선석 현황이 아주 상세하다. 평택항에 대한 현황을 잘 설명해 준다.
평택항마린센터 전망대에서 허겁지겁 순식간에 조망을 마치고 평택항 국제여객선터미널 삼거리로 되돌아왔다. 왼쪽 가로등 기둥에 서해랑길 86코스 시작점 표지판이 붙어 있고 오른쪽에 서해랑길 85·86코스 안내도와 스탬프함이 설치되어 있다.
평택항만길 중 이곳에서 만호사거리까지는 '소방관 이병곤길'이라 명명되어 있다. 경기둘레길 안내판도 조성되어 있다.
서해랑길 85·86코스 안내도와 스탬프함 옆에서 평택항만길 만호사거리 방향을 바라본다. 평택항마린센터 전망대에서 조망함으로써 탐방의 대미를 장식하고 서해랑길 85코스 탐방 전체 과정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