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세례 (1475)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Andrea del Verrocchio1435-1488)는 르네상스 시대에
최초로 다방면에 걸쳐 완벽한 기량을 뽐낸 종합 예술가였다.
그는 귀금속 세공사이자 조각가이며 화가였다.
그는 피렌체에서 유명한 공방을 운영했으며
레오나르도 다빈치, 페루지노, 보티첼리와 같은 화가들을 배출했다.
<그리스도의 세례>는 피렌체의 산 살비 수도원이 우피치 미술관에 기증한 것으로,
현재 남아있는 베로키오의 유일한 회화작품이다.
베로키오는 자신의 마지막이자 가장 유명한 그림이 된 이 작품을
제자인 레오나르도 다빈치, 보티첼리와 함께 그렸다.
베로키오가 직접 그린 부분은 세례자 요한과
거대한 퇴적암이 있는 암벽과 투명하게 비치는 맑은 요르단강이다.
그리고 보티첼리는 오른쪽 천사를 그렸고,
마지막으로 다빈치는 배경과 그리스도,
야자수가 있는 왼쪽 풍경과 왼쪽 천사를 그렸다.
그런데 최고의 미술평론가인 바사리는 스승 베로키오가 다빈치가 그린
천사를 보고 그만 붓을 던지고 다시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제자처럼 성스러운 얼굴을 그릴 수 없다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그림이 무엇 때문에 훌륭할까?
첫째는 최초로 빛과 그림자를 인물의 근육에 이용한
명암법을 새로운 감각으로 시도했다.
둘째는 해부학적 지식으로 강물에 담긴 발을 그리고
근육과 힘살과 정맥이 보일 정도로 요한의 팔뚝을 표현했다.
셋째는 그림을 세 단계로 나누어 표현하여 원근법을 실현했다.
가장 멀리에는 모나리자의 배경과 흡사한 뒤 배경이 있고,
중간에는 왼쪽에는 이국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야자수와
오른쪽에는 거대한 퇴적암이 있는 암벽이 있으며,
가장 가까이에는 이 그림의 중심이 되는 인물들이 있다.
그런데 그 인물들의 시선이 너무나 재미있다.
보티첼리가 그린 오른쪽의 천사는 예수님의 옷을 들고 있는
왼쪽의 천사를 부러운 듯 쳐다보고 있고,
왼쪽의 천사는 꿈꾸는 것 같은 표정으로 세례자 요한을 올려보고 있다.
그리고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에게 물을 부으며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고
예수님은 그 모든 시선을 받아들이고 있다.
또 하늘에서는 하느님의 두 손의 기운이 비둘기 모양을 한 성령을 통해
빛살의 형태로 예수님에게 내리고 있고,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두 손 모아 받아들이고 있다.
그래서 예수님을 통해 하늘과 땅이 만나고,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은 왼손으로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쓰인
승리의 십자가를 들고 있다.
그분은 하느님과 인간을 화해시킨 속죄의 제물이 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욱 재미있는 것은 이 그림을 그린 사람들의 운명이
이 그림의 내용과 비슷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보티첼리가 그린 천사는 다빈치가 그린 천사를 부러운 눈으로 보고 있고,
베로키오가 그린 세례자 요한은
다빈치가 그린 그리스도를 부러운 눈으로 보고 있다.
베로키오는 다빈치에게 그림을 가르쳐 주었지만, 다빈치를 능가할 수 없었다.
세례자 요한도 예수님에게 세례를 주었지만, 예수님을 능가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의 운명처럼 베로키오는 세례자 요한을 그리고,
다빈치는 그리스도를 그린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
우리도 다빈치처럼 우리 삶의 중심에 그리스도를 그려야 하지 않을까?
그분은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마음에 드는 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도 우리에게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만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