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에 몸바이에서 끔직한 테러가 발생했습니다. 몇 해 전 뉴욕 무역센터 빌딩의 공격이 인류 역사상 가장 영화 같은 테러 사건이었다면, 인류 역사상 가장 영화 같은 구출사건은 1976년 7월, 아프리카 우간다의 공항에서 일어난 사건일 것입니다. 이 사건의 발단은 1976년 6월27일, 그리스 아테네 공항을 떠난 Air France 비행기가 아랍 테러리스트들에 의해서 하이재킹(hijacking)을 당해 공중 납치되었던 것입니다. 비행기 안에는 102명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타고 있었고 이들은 곧 인질로 잡혔습니다.
이 비행기는 당시에 이디 아민이 통치하고 있던 우간다의 수도 공항으로 인도되었습니다. 당시 라빈 수상이 이끌고 있던 이스라엘에서는 즉각적으로 긴급 내각 회의가 열렸고, 여기에서 비밀스럽고 중요한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며칠 후, 당시 30세의 요나탄 네탄야후 대령이 이끄는 특별 작전 요원들이 6대의 비행기에 분승하고 이스라엘을 떠나갑니다. 네 대의 카고 비행기, 두 대의 707 보행 제트 비행기들이 동원되었습니다. 한 대에 주로 전투 요원들이 탔고 나머지 비행기들은 부상자들의 치료 및 후송을 위해서 준비되었습니다.
그들은 레이다망을 피하기 위해서 저공비행을 해서 우간다의 수도 공항에 안착합니다. 그리고 불과 15분~20분 내에 모든 작전은 끝났습니다. 인질들을 구출하고, 이들은 유유히 이스라엘로 돌아옵니다. 이것이 저 유명한 엔테베 작전입니다. 물론 세 명의 인질이 희생되고 작전 요원 한 사람이 희생되기는 했지만, 이 작전은 거의 완벽에 가까운 성공적인 구출 작전이었습니다.
이 작전 이후에, 네탄야후 대령에게 한 기자가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당신은 작전을 수행하는 동안에 무슨 생각을 하셨습니까? 마음속에 두려움은 없었습니까?" 이때 네탄야후 대령은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나의 동족 인질들이 구원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을 구원해야 한다는 생각, 이 생각밖에 저는 아무 다른 생각을 한 일이 없었습니다."
엔테베 작전과 비교될 수 없는, 이 작전을 넘어서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구출의 드라마로 6.25 전란을 중 우리에게 감동을 준 세 분의 전쟁고아의 아버지들이 있습니다.
이제 고인이 된 할리우드 스타 록 허드손이 주연을 맡아 1956년에 제작된 한국전쟁 영화 "전송 가"의 주인공 딘 헤스 대령은 1950년 7월 초부터 이듬해 5월말까지 약 11개월 동안 250여 회 출격한 한국전쟁의 영웅이입니다. 그의 전투기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친히 써 준'신념의 조인(鳥人)'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우리는 1000여 명의 전쟁고아를 수송한 주인공은 헤스대령으로 알고 있으나 영화 "전송 가"의 실제 주인공은 고(故)러셀 브레이즈델 목사가 보호 중이던 907명의 전쟁고아를 헤스 대령이 김포공항을 통해 제주도로 공수하는 작전을 수행하고, 일본에서 비행기로 식량을 공수해 이들을 보살피도록 했습니다.
헤스 대령은 한국 공군 창설과 육성에도 공을 세워 대한민국 무공훈장을 받았습니다. 1999년 83세의 헤스 대령이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 전쟁고아들을 위해 헌신한 구순의 황은순 여사(영화 전송 가에서 순이 역으로 나온 실제 주인공, 휘경여고 창립자, 작고)와 60대 초로의 전쟁고아들이 감격의 해후를 한 사진이 각 매스컴에 보도되어 국민들을 감동시켰습니다.
1952년 통신병으로 한국에 파병된 드레이크씨는 부대원들로부터 성금을 모아 수백 명 고아를 직접 돌보는 한편 한국의 전쟁고아를 도와 달라는 편지를 미국 시민들에게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군 복무 틈틈이 6개월 동안 1000여 통 이상의 서신을 보내 미국 시민들로부터 200여만 달러를 받아 고아들을 돌보았던 그는 제대한 후에도 20여 톤의 각종 물품을 한국 고아원으로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는 6살짜리 어린 여자 아이가 2살짜리 동생을 등에 업고 음식을 구걸 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굶주리고 피부병으로 뒤덮여 있는 어린이들을 데려다가 씻기고 먹였습니다. 아이들은 일주일 만에 건강해져 그를 보고 활짝 웃었습니다.
6.25 전쟁 중 동생 둘과 장충동 고아원에서 고생할 때 드레이크 병사를 만난 조우연씨는2006년 8월 8일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재단 사무실에서 피부색이 다른 두 노인이 얼싸안고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당시 76세의 조지 F 드레이크 박사와 조우연씨는 63세였습니다. 6.25 전쟁 발발 직후 미 제5공군사령부 군목(중령)으로 배속된 브레이즈델 목사는 당시 ‘한국의 전쟁고아들은 병에 시달리고 해충으로 뒤덮여 있었으며 많은 아이들이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죽음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고 회고록에 썼습니다.
그와 미군 자원봉사자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고아들을 돌보는데 몰두했습니다. 하루에 50여명 이상의 고아들을 사회복지시설로 데려간 날도 있었습니다. 그 해 11월 중공군 참전에 따라 피란행열로 뒤덮였을 때 브레이즈델 군목이 후방으로 떠나는 군부대 차량 등에 고아들을 실어 보냈지만 서울엔 여전히 1000여명의 고아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는 이 고아들을 인천으로 옮겼으나 해양수송이 불가능, 다시 김포로 이동 시키는 등 초인적인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적군이 서울에 들이닥치기 직전인 12월 20일, 그는 극적으로 미 공군의 작전책임자를 만나 제주도로 향하는 C-54 수송기 16대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전쟁고아들의 성공적인 수송 작전은 브레이즈델 군목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와 같은 브레이즈델 군목의 노력이 있었음에도 영화 전송 가 개봉이후 헤스대령이 전쟁고아의 아버지로 유명해졌으나 브레이즈델 군목은 이에 대해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영화 수익금이 고아 돌보는데 쓰여 질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지난 14일 충현원에 따르면 2005년 5월 충현원 관계자들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조지 F 드레이크 박사 주최로 열린 ‘미군 병사들과 한국 아이들’이라는 제목의 전시회에 참가한 자리에서 러셀 목사의 아들 카터 브레이즈델(74) 목사는 “아버님이 회고록의 한국판 판권을 충현원에 전달해달라는 유언을 남기셨다”며 한국어판 출판을 제의했고 이에 따라 충현원은 직접 회고록 출판을 맡게 됐습니다.
러셀 목사가 충현원에 대해 알게 된 것은 한국전쟁 당시 충현원에서 고아들을 돌봤던 미국 참전용사 조지 F 드레이크(77) 박사로부터였습니다. 드레이크 박사로부터 충현원의 건물이 낡아 아이들을 키우기 힘든 처지에 놓였다는 딱한 사연을 접한 러셀 목사는 충현원 복원을 위한 기금 마련을 위해 책의 판권을 주기로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충현원은 국내 현존 보육원 가운에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1949년 선교사 로버트 윌슨(Robert M. Wilson)이 사택에서 40여명의 아이들을 돌보던 것이 계기가 돼 1952년 고(故) 박순이 여사가 ‘충현영아원’을 설립하면서 본격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는 지난 해 초 자신의 회고록 '전란과 아이들, 그 일천 명의 아버지'가 나오면 그 판권을 옛 고아원 체험시설을 복원하는 광주 충현원에 주도록 유언을 남긴 뒤 97세의 나이로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숨졌습니다.
한국의 '쉰들러 리스트'로 알려진 브레이즈델 목사의 아들 카터 브레이즈델(72)씨가 한국을 찾았습니다. 지난 5월 1일 광주 충현 원에서 열린 고 러셀 브레이즈델 목사의 추모식과 회고록 출판기념회에 참석했습니다.
그는 "하나의 좋은 행동은 또 다른 좋은 행동을 낳는다. 옳다고 생각하면 누가 뭐라던 그 일을 하라"는 아버지의 회고록 내용도 공개하며 한국이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만큼 '입양 후진국'이란 불명예를 씻고, 전 세계 분쟁국가에서 제2, 제3의 한국인 '전쟁고아 아버지'가 나와야 한다고 충고했습니다.
하나남이 에스겔을 한 계곡 가운데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 곳에는 뼈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가 나를 뼈들 가운데로 이리저리 이끄셨고, 나는 그 계곡 바닥에 있는 수많은 뼈들을 보았는데, 그 뼈들은 아주 메말라 있었다. 그가 내게 “사람아, 이 뼈들이 살 수 있겠느냐?” 하고 물으셨다. 나는 “주 여호와여, 주님만이 아십니다.”라고 말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이 뼈들에게 나 주 여호와의 일을 예언하여라.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어라.
내가 너희 속에 숨을 불어 넣으면, 너희가 살아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힘줄을 붙이고 네 위에 살을 입히며 살갗으로 덮을 것이다. 그리고 네 속에 숨을 불어 넣을 것이니, 너희가 살아날 것이다. 그 때에 너희는 내가 여호와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명령대로 예언하였다. 내가 예언을 할 때에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뼈들이 서로 한데 모이더니 뼈끼리 이어졌다. 힘줄과 살이 뼈들 위에 나타났고 살갗이 덮였으나 아직 그들 안에 생기가 없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생기에게 예언하여라. 사람아, 생기에게 예언하여 말하여라. ‘주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오 생기여, 죽임당한 이들 속으로 들어가 이들을 살게 하여라.’” 그래서 나는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 예언했고, 생기가 그들 가운데 들어가, 그들이 살아났다. 그들은 발을 딛고 일어나, 매우 큰 군대를 이루었다. <에스겔서 37장 1~10절>
주님은 우리들에게 백성들의 무덤을 열고 그 곳에서 끄집어내어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 감사하라 주님께(헨델곡) ♬
★ 지난 글 누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