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코메디닷컴의 이성주님이 보내신글입니다.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일이 있는가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중략)…
야망에 찬 도시의 그 불빛 어디에도 나는 없다
이 큰 도시의 복판에 이렇듯 철저히 혼자 버려진들 무슨 상관이랴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고흐란 사나이도 있었는데 …(중략)…
너는 귀뚜라미를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귀뚜라미를 사랑한다
너는 라일락을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라일락을 사랑한다
너는 밤을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밤을 사랑한다
그리고 또 나는 사랑한다. 화려하면서도 쓸쓸하고 가득찬 것 같으면서도 텅 비어 있는 내 청춘에 건배 …(나머지 생략)…
지금 40, 50대 남성들이 노래방에서 많이 불렀을 노래이죠.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 동아일보 홍호표 기자의 박사학위 논문 ‘조용필 노래의 맹자적 특성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가왕(歌王) 조용필의 이 노래는 이상(理想)을 노래했고 그 이상은 사랑이라고 합니다. ‘사랑의 가수’ 조용필이 어제 환갑이었다는 것을 모르고 지나칠 뻔 했습니다.
조용필은 레이 찰스의 음악에 감명 받아 가수를 꿈꾸었습니다. 고교 졸업과 동시에 그룹사운드를 만들어 활동했고 미8군 무대에서 ‘화이브 핑거스’ ‘김 트리오’ 등의 멤버로 활약하다가 군대에 입대합니다. 김 트리오에는 얼마 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이남이도 속해있었지요. 이 무렵 한 흑인병사가 “다음날 생일인데 애창곡을 들려달라”고 앨범을 주자, 밤새 연습해서 다음날 그 병사를 감동시킨 적이 있습니다. 그 노래가 ‘Lead Me On’입니다. 조용필은 군 제대 후 ‘조용필과 그림자’란 그룹사운드를 만들어 70년대 최고의 히트곡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내놓습니다. 트롯 고고란 새 장르의 노래였지요.
그러나 정상에 오르자마자 대마초 파동에 휩싸입니다. 60, 70년대만 해도 가수들은 지금 담배 피우듯 대마초를 피웠다고 하는데 당시 단속으로 이장희, 신중현, 김추자, 윤형주, 김세환 등이 마이크를 놓아야만 했습니다. 조용필도 미군부대 공연 때 대마초 피운 것을 누가 고발했고 정상에서 내려와야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아시다시피 해금이 된 이듬해 1980년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으로 가요의 역사를 써내려가죠. 앨범 ‘창밖의 여자’는 국내 앨범 중 최초로 100만 장이 팔렸고 이듬해 ‘고추잠자리’는 KBS 라디오 인기순위에서 무려 24주 정상에 머물렀습니다. 국내 가수 최초로 미국 카네기홀, 일본 NHK홀에서 공연을 했지요. 1993년에는 부산 해운대에서 10만 명 앞에서 공연을 해 최다관객 기록을 세웠고 96년에는 ‘친구여’가 대중가요 최초로 고교 음악교과서에 실리기도 했지요.
조용필은 자신에 안주하지 않고 늘 변화를 추구했습니다. 이데아를 추구했다고나 할까요? 고문과 구속, 두 번의 자살, 국회의원 딸과의 결혼과 이혼, 재혼과 사랑하는 아내와의 사별…. 삶이 평탄하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이겨나갔습니다.
회갑을 기념해서 소록도에서 영국의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서 자선공연을 갖는다고 하네요. 그에게서 킬리만자로의 정상에 선 표범의 면모를 느끼게 됩니다. 그를 통해 난관을 이기는 힘을 배웁니다. 그 음악에서 불굴의 의지와 뜨거운 사랑을 배웁니다.
첫댓글 제목을 ~~~표범으로 수정해 주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