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로에스
* 철학과 종교
· 아베로에스의 가장 영향력이 큰 노력 가운데 하나는 철학과 종교의 상호 관계를 정하려는 시도였다.
· 코란은 진리다.
· 지성에는 세 종류가 있다. 그리고 거기에 상응하는 세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첫째는 예증의 사람이다. 둘째는 변증적인 사람이다. 셋째는 권고의 사람이다.
· 코란은 이 세 종류의 지성에게 동시에 말한다.
· 각 정신은 할 수 있는 대로 가장 완벽한 방식으로 코란을 이해하고 해석할 권리와 의무를 잦고 있다는 것이다.
· 코란은 가장 고상한 의미는 계시의 참된 의미 이다.
· 종교 본문과 논증적 결론 사이에 충돌이 생길 때마다 바로 철학적으로 종교 본문을 해석함으로써 조하를 다시 세워야 한다.
· 지성은 할 수 있는 해석 정도를 결코 넘어가서는 안 된다.
· 지성은 좀더 높은 지성 계급을 위하여 남겨져 있는 해석을 좀더 열등한 지성 계급에 게 누설해서는 결코 안 된다는 것이다.
· 아베로에스는 회교 공동체를 결코 벗어나지 않았다. 그는 결코 종교에 대하여 조금치라도 공격을 하지 않았다.
· 선지서를 인간 지시그이 절정에 두었다.
· 선지자의 지성에서 종교와 철학은 일치하기 때문이다.
· 철학적 진리를 인간 진리의 가장 높은 형태로 보았다.
· 아베로에스에 따르면 신학은 신앙도 철학도 아니고 그 둘이 타락한 것이므로 사색의 가장 나쁜 형태임을 또한 기억해야 한다.
· 철학적 진리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같은 것이라는 아베로에스의 확고하고 절대적 확신이 있었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교리는 가장 뛰어난 진리다. 왜냐하면 그의 지성은 인간 지성의 한계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지음받아 우리에게 있어서 오리는 알 수 있는 모든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정당하다.
*인식론과 형이상학
· 모든 실체는 존재다. 모든 존재는 실체이거나 실체의 존재에 관여하는 우연성이다.
· 실체는 개별자다.
· 존재는 한 가지 뜻으로 술어가 될 수는 없다. 반면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어떤 종류의 존재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존재는 ‘유비적’이라고 말한다.
· 모든 범주는 존재와 관련되어 있다는 뜻이다.
· 형이상학의 목적은 존재하는 한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연구다.
· 감각적 사물들의 일차적인 원인이 어떤 지성의 사고 작용임을 분명하게 증명한다.
· 본질적인 것은 오직 필연적인 작용인을 통하여 존재한다.
· 보편자가 개별자의 바깥에서 스스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일 것이다.
· 보편자에게 실재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보편자가 각 개별자에게 전적으로 현존한다한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 보편자는 실체가 아니고 지성의 작품이라고 가정해야 한다.
· 형상에 보편성을 주는 것은 바로 지성이다.
· 학문의 목적은 개별 사물에서 그 질료를 개별적인 것으로 만드는 본성을 추상함으로써 개별적 사물을 보편적인 방식으로 하는 것이다.
· 형상은 존재하는 것의 능동성이며 본질이다. 질료는 형상에 의하여 현실화하고 규정된 가능태다.
· 사고가 보편자를 인식하면서 얻는 것은 형상이며, 사고는 이 형상을 정의로 표현한다.
· 형상과 질료로 그러므로 규정자와 피규정자로 구성된 모든 감각적 실체는 가능성이면서 능동성이다. 능동성을 통하여 모든 감각적 실체는 존재하며, 가능성을 통해서는 생성할 수 있다.
· 매개적 사물들은 사람이 원하는 만큼 증산 될 수 있다.
· 움직여짐이 없이 움직이게 하는 것은 가능성이 전혀 없는 능동성 즉 순수 능동성이 되는 것이다.
· 순수 능동성의 시동 활동이 지속적이려면 운동과 움직여지는 사물들도 역시 지속적이어야 한다.
· 세계의 지속은 영원하다
· 지성은 부동의 시동자를 향한 지적인 욕구를 경험한다.
· 모든 개별적 원리들은 첫째 원리에서 그 결과로서 끝나야 한다. 이 첫번째 원리는 제 1의 개별적 시동자이다.
· 만일 이 두 세계에서 알라 외에 신이 있다면, 이 두세계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 그는 자신을 앎으로써 모든 실재를 알기 때문에 좀 덜 완전한 방식으로 자신을 앎으로써 이미 완전한 방식으로 알고 있는 것을 알지 않는 것은 그 속에서 부족한 점이 전혀 될수 없다.
· 예지는 자신의 삶을 살므로, 자신의 지복 속에서 복을 누린다.
· 신은 가장 높은 구체, 즉 고정된 것의 구체의 시동적 예지가 있게 하는 원인이다.
· 이들의 시동자는 모든 인류의 지적 지식의 도특한 원인인 능동적 예지를 존재하게 한다.
· 능동적 예지는 형상이 전혀 없는 최초의 질료에게 질서를 주는 원천이다.
· 사람의 영혼은 이 형상들 가운데 하나며, 사람은 자신이 불충분함을 알고 자신의 원인으로 향한다.
· 수동지성, 즉 개별 지성으로부터 개인에게오는 가지적 형상을 받을 수 있는 단순한 ‘성향’을 허용한다.
능동지성은 사람 속에 인식을 불러 일으키기 위하여 이 수동지성에 빛을 비추어야 한다.
· 능동지성은 물론 심지어 ‘수동 지송’도 모든 인간에게 하나다.
· 개별 능동 지성과 개인의 수동지성이 접촉하여 가지적인 것에 대하여 수용성이 있게 한다고 가르친다.
· 이 가능적 지성은 참으로 개별적이다.
· 개인 속에 영원하거나 영속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전적으로 능동 지성에 속하며 능동 지성의 불멸성에 의해서만 불멸적이다.
마그누스
*알베르트와 세속 학문
·누구보다 독자적인 지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거룩한 그리스도인의 영혼을 가진 알베르트는 우리에게 엄청난 문헌을 남겼다.
· 알베르트는 그리스 아랍의 학문이 펼치는 정신 세계가 기독교 신앙이 펼치는 교부들의 세계와는 구체적으로 다른 것을 보았다.
· 신학은 철학과 특별히 다르며 신앙은 자연 이성과 특별히 다른 인식 양태라는 이중적 사실을 분명히 인식했음을 넌지시 보여 준다.
· 그리스도인들이 2세기 이후로 보지 못했던 철학 세계에 대한 재발견은 서양 사상사에서 전환점이 된다.
· 그가 철학들에게 이바지한 주된 노력은 그들의 저술에 축적되어 있던 모든 내용을 체계적으로 다시 질서를 잡아 준 데 있다.
·그의 백과 사전은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아베로에스주의와 토마스주의의 주석보다는 아비센나주의의 꾸준한 교리적 해석 형태와 더 비슷하다.
· 알베르트의 철학 활동은 토마스 아퀴나스보다 더 낡은 사유 형태를 대변한다.
· 나로서는 사물들을 다루는 학문에서 그런 논리적 탐구를 탐색한다. 왜냐하면 학문들이 많은 오류에 이르기 때문이다.
*네명의 동시대 존재들
· 네명의 동시대 존재들을 창조 하셔따. 즉 질료, 시간, 최고천, 천사의 본성을 만드셨다.
· 발생과 소멸의 보편적 주체로서 질료는 단순하다.
· 질료는 물ㅈㄹ적 실체에서는 양이 있고 비물질적 실체에서는 양이 없다.
· 추상적인 논리적 언어로 이야기하면, 형상은 규정할 수있는 모든 것은 질료다.
· 신학자에게 질료는 창조주가 육일의 활동을 통하여 구별되고 모양을 갖춘 존재로 바꾸는 것이다.
· 그렇게 파악했을 때 질료는 하나이다. 철학자에게 질료는 변화의 주체이며 따라서 다양한 종류의 변화는 다양한 종류의 질료를 요구한다.
· 그 존재의 지속 척도는 그 존재의 본성에 따라 다르다. 하나님은 변할 수 없는 존재다.
· 하나님은 영원 그 자체이며, 혹은 다른 말로 여우언은 그 자체의 지속이라는 척도로 파악된 바로 신적 실체다.
· 시간 속에서 그 변화가 시작도 끝도 없는 변할 수 있는 존재에 고유한 지속을 엄밀하게 일러 ‘시대’라고 한다.· 시간은 발생할 수 있고 소멸할 수 있는 존재에 고유한 척도다.
· 이 시간은 사물 속에 존재하고 있으니, 사물들이 가능성에서 능동성으로 바뀌는 과정은 연속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 신학자에게 시간은 나누어질 수 있거나 나누어질 수 없는 영적이거나 물질적인 어떤 변화의 척도이다.
· 철학자에게 시간은 계속적인 운동이나 변화의 척도이다.
· 최고천의 형상은 영속, 모양, 운동을 천상 존재에게 준다. 최고천의 기능들은 전체 우주에서 발생과 소멸의 계열을 시작 하기 때문에 최고천은 우주적 원인이다.
· 능산적 자연은 하나님이며 그의 작품은 하늘이고, 소산적 자연의 작품은 발생하고 소멸할 수 있는 존재들이다.
· 최고천은 천사의 거주지이며 그 본성은 빛의 본성이다.
· 이 별들의 빛은 본성상 다양하기 때문에 좀더 낮은 존재에 생명이 있게 한다.
· 네번째 동시대 존재는 천사의 본성이다. 천사들은 복합적 본성으로 무엇과 있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 천사는 가지적 실재에 대한 본유적 지식을 부여 받고 적어도 그 목적이 하나님의 직접적인 명상이 아닌 정도에서 그런 지식에 대하여 추론할 수 있는 지속하는 예이다.
*사람
· 사람은 영혼, 신체, 이둘의 연합이다. 영혼의 실존은 어떤 존재는 단순한 자연과는 달리 운동과 휴식의 원리를 자신 속에 갖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하다.
· 인간의 영혼은 신체와 결합한 비물질적 실체이다. 인간 영혼은 신체의 제 1능동성으로서 신체에 존재를 준다. 신체의 두번째 능동성이며 시동자로서 인간 영혼은 신체의 활동을 불러 일의 킨다.
· 알베르트의 영혼학은 아비세나가 해석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학을 따른다.
· 능동 지성은 영혼 속에 있다. 인간의 능동 지성은 인간 영혼과 결합되어 있고, 단순하며 가지적인 것을 전혀 갖고 있지 않지만 환영으로부터 가능 지성에 가지적인 것을 산출한다.
· 능동지성의 고유한 행위는 작용인과 형상인의 행위인데, 이 원인들의 효과는 가능 지성을 가능성에서 능동성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다.
· 모든 가지적인 것에 대하여 능동성으로 있는 것으로서, 수동 지성은 질료적이다.
· 가능 지성은 이미 학문의 획득에 필요한 원리들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 실체와 그 우유가 하나이듯 사실상 지성과 그 학문은 하나다. 그런데 지성과 학문은 알려진 사물과 더불어 하나다.
· 지성이 질료로부터 추상한다고 말할 때, 이 말은 구체적인 질료에 대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 이 실천적 지성은 먼저 선 일반으로 향한다. 이 선 일반은 행위와 활동의 질서에서 제 1시동자다.
*하나님
· 형이상학은 지혜의 능력으로 ‘제일 철학’이며 그 궁극적 목적은 존재하는 모든 것의 제일 원인을 확증하는 것이다.
· 신학의 본질 속에 그리고 따라서 신학의 정의에 경건을 포함시킨다. 그가 보기에 경건은 신학을 향한다.
· 전체가 그 형상 혹은 실존과 일치하는 존재가 오직 하나 있다. 그것은 하느님이다.
· 알베르트에게 실존과 무엇의 구별은 창조된 존재가 자신의 실존의 원인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전문적 표현으로 남아 있다.
· 오직 하나님만 단순하므로, 다른 모든 존재는 복합적이다.
· 하나님의 불변성은 그의 단순성으로부터 나오는 또 하나의 결론이다.
· 영원은 단순하고 순수한 실존에 고유한 실존 양태다.
로저 베이컨
* 대철학자
· 기독교 지혜가 언제나 그의 첫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관삼사로 남아 있었다.
· 사람들은 수학을 모른다. 그러나 이 수학이 없이는 자연과학은 성취할 수 없다.
· 사람은 본질적으로 ‘배우는’ 동물이다.
· 질료는 실체적이든 우유적이든 모든 형상과 본질적으로 다른 본질이다.
· 질료는 모든 복합적 존재에서 동일한 본성을 갖고 있다.
· 질료의 수동적 가능성과 하나님의 능동적 가능성 사이에는 비슷한 것이 전혀 없다.
· 본질적으로 질료는 하나라는 사실을 분명히 말한다.
· 보편적 가능성이라는 개념은 어떤 실체 일반의 질료라는 개념과 동일하다.
· 질료들이 구체적으로 구별되듯이 자연스럽게 그들의 형상들도 구체적으로 부별된다.
· 질료가 모든 곳에서 모든 물리적 물체에서 하나의 동일한 것이라면 뚜렷히 구별되는 물리적 실체는 있을 수 없으며 따라서 발생이나 소멸도 있을 수 없다.
· 자연적 존재들은 형상과 질료와 결여로 구성되어 있다.
· 결여는 질료 속에서 오래된 형상을 파괴하고 새로운 형상을 얻으려고 하는 갈망 혹은 맹목적 욕구이다.
· 본질적으로 질료는 씨앗이다. 이 질료가 완전해 지고 현실화하려고 갈망하는 한, 그것은 ‘씨앗 이성’이다.
· 실체적 형상을 각 존재 속에서 그 본질에 포함된 모든 열등한 형상을 보존하는 것으로 본다.
· 형상들은 다소 보편적이지만 그 자체로는 추상적 보편자는 아니다.
· 하나님은 보편적 인간을 위하여 지복의 전망을 마련한 것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택한 어떤 사람들을 위하여 마련했다.
· 종의 증식 혹은 번식 이론은 ‘종’이라는 개념은 베이컨은 이 개념에 과학적 의미를 주려고 했다.
· ‘종’을 어떤 능동인에 의하여 산출된 첫번째 결과라고 부른다.
· 종의 개념은 모든 본성적 행위의 매개물을 가리키므로 모든 물리적 세력에게 확대된다.
· 베이컨의 세계는 능동인으로 가득 찬 우주였다. 베이컨에게 종의 능동인은 형상이며 형상이 순수할수록 이 형상은 더욱 작용을 발휘한다.
* 사람
· 인간의 실체적 단일성을 파괴하지 않고서 영혼의 이런 실체적 독자성을 주장하는 것이다.
· 지적 영혼만이 하나님이 직접 창조한 것이다. 생장적 영혼과 감각적 영혼은 능동인이 질료의 가능성으로부터 이끌어 낸 다른 형상들과 비슷하다.
· 영혼은 신체의 개별 시동자가 아니다. 신체의 능동인 한 신체의 시동자다.
· 합리적 영혼은 천사처럼 질료와 형상으로 구성된다고 주장한다.
· 합리적 영혼은 복합적인 인간 태아의 궁극적 완전이다. 이 영혼은 복합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그 형상은 태아의 형상을 완전하게 할 것이며, 반면에 그 질료는 태아의 질료를 완성한다.
· 베이컨은 영혼의 다양한 이름을 갖고 있는 다양한 활동을 하나의 단일한 실체라고 주장한다.
· 선택 의지는 영혼의 능력이며 그 활동들은 다양하지만 서로에 대하여 질서를 갖추고 있다.
· 영혼의 지적 활동은 신체의 형상으로 신체에 속하지 않고 신체와 별개의 것으로 신체에 속한다.
· 영적 실체로서 영혼은 본질적으로 불변이다.
· 능동 지성이 환영에 빛을 비추고 이 환영을 물질적 조건으로부터 정화시킨 후에는 이 환영을 가능 지성에게 줄 수 있다.
* 존재
· 존재는 동일 하게가 아니라 앞섬이나 뒤섬에 의하여 존재하는 모든 것에 속하기 때문에 유비적이다.
· 형이상학자들의 고유한 활동은 존재에 대하여 모든 사물의 앞섬과 뒤섬 관계를 규정하는 것이다.
· 존재는 하나라고 말하는 것은 존재하는 한 존재는 자신으로부터 구별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 형이상학자는 의지 곧 능동인을 논증한다.
· 형이상학자는 모든 논증은 궁극적으로 하나님 곧 최고의 능동인에 이른다.
· 보편자에 대하여 말하면 보편자는 개별자 속에 그리고 개별자와 함께 창조 된다.
· 보편자는 엄밀한 의미에서 ‘본성’이 아니다
· 보편자는 형이상학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즉 모든 존재의 완전한 실재인 본질이기 때문이다.
· 모든 형상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의지와 능력을 통하여 신적 이데아로부터 나온다.
· 존재는 하나라고 말하는 것은, 존재하는 한 존재는 자신으로부터 구별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 개혁자
· 그러므로 철학은 학문과 예술에 의하여 신적 지혜를 열어 보이는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성격 속에는 하나의 완전한 지혜가 담겨 있고 그것은 하나님이 성인에게 주신 것이다. 하지만 교회법은 물론 철학이 그것을 열어 보아야 한다.
· 하나는 내적이며 영적인 실험으로 이 실험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실험은 우리로 하여금 내면 생활과 신비주의의 정점에 이르게 한다. 다른 실험은 외적이고, 우리는 감각에 의하여 이 실험을 얻는다.
· 실험은 완전한 확실성을 낳는다.
· 이 과학이 다른 각 학문이 끝나는 지점에서 출발하여 이 학문들이 자신의 방법으로 얻을 수 없었던 결론을 논증할 수 있다는 점이다.
· 다른 학문에 관계없고, 이 실험 과학이 자연의 비밀을 훔쳐 보고 과거와 미래를 발견하고 많은 놀라운 결과를 산출하여 이 과학을 소유하는 자들에게 능력을 보장 할 수 있도록 하는 그 고유한 능력에 있다.
보나벤투라
* 하느님
· 전체 우주는 삼위일체를 모든 페이지에서 읽게 하는 유일한 책이다.
· 제일 원인은 자신을 드러내기 위하여 세상을 만들었기 때문에 조명의 방법은 사물들이 표현하는 하나님에게 오르기 위하여 사물의 과정을 거술러 갈 것이다.
· 감각적 세계에서 하나님의 그늘과 흔적을 발견하는 데 있다.
·우리 영혼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하는 데 있다.
· 창죄된 사물을 넘어서 하나님의 대한 지식과 경배의 신비적 즐거음으로 이끈다.
· 보나벤투라의 교리는 ‘하나님을 향한 영혼의 순례’ 혹은 하나님에게로 이르는 영혼의 순례로 그 특징을 말할 수 있다.
· 영혼의 순례의 변증론은 몇 안 되는 통로를 통하여 하나님에게 이르도록 우리를 제한하지 않고 하나님을 파악하는 우리의 관점을 증식하는 경향을 갖는다.
· 보나벤투라에게는 하나님의 형상 곧 우리 영혼이 우리에게 주는 좀더 결정적인 증거에 대하여 생각할 때의 지성의 발휘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 하나님이 영혼의 원인일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 대상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 우리의 지성은 순수하고 총체적이고 절대적인 존재 개념 덕택에 그 대상을 겨우 파악할 뿐이다.
· 하나님은 우리에게 탁월하게 현존해 있으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안다.
·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갖고 있는 개념은 그의 실존을 함축한다.
· 하나님은 하나님이라 말하거나 하나니은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은 같은 하나의 말이다.
· 우리의 말과 글에 거의 양보하지 말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선물 즉 성령에게 넘겨야 한다.
* 영혼
· 영혼은 본질적으로 하나이지마, 그 기능 혹은 능력은 영혼이 적용되는 대상의 본성에 따라 다르다. 영혼은 신체가 완전한 가지적 실체이며 동시에 자신이 생기를 불어넣는 유기체의 형상이므로 전술한 사실이 가능하다.
· 보나벤투라는 인간 혼합체가 겪은 정념으로 파악되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감각 교리를 영혼의 행위로서 파악된 아우구스티누스주의와 플라톤주의의 감각 이론과 조화시키기를 바라는 것 같다.
· 추상 작용이란 이상들에게로 방향을 틀어서 이 구체적인 자료들의 공통적이고 보편적인 요소만을 가지려고 필연적 활동을 수행하는 가능 지성의 일이다.
· 추상 활동을 순수 심리학에서만 살피는 것으로 보인다.
· 능동 지성의 기능은 가능 지성에 빛을 비추고 가능 지성이 추상작용을 실제로 할 있게 하는 것이다.
· 가능 지성은 감각적인 것 속에서 가지적인 것을 동화하려고 노력하는 동일한 한 영혼의 근본적ㅇ로 구별되는 두 기능이다.
·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즉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종합하려고 하는지를 충분히 알고 있다.
· 신적 이데아들은 즉각적인 접촉에 의하여 인간 지성에 작용을 미치지만, 단순하게 규제적인 행위를 인간 지성에게 행사한다.
· 우리가 진리를 보는 것은 단순히 영원한 진리에 의하여가 아니라 영원한 이성 속에서이다.
· 지식의 원리들이 분명하다면 영원한 이데아는 여기 아래 우리의 관심사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 영혼의 그 아래 있는 것으로부터는 상대적인 확실성을 얻고 그 위에 있는 것으로부터는 절대적 확실성을 얻는다.
* 세계
· 우리는 신앙에 의하여뿐만 아니라 이성에 의해서도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피조 우주를 가정 할 수 없다.
· 그 자체로 실존에 대한 충분한 이유가 되는 피조물은 전혀 없기에 각 피조물은 창조주의 작용을 필요로 한다.
· 질료는 받아들이는 형상에 따라서만 물질적으로도 되고 영적으로도 된다.
· 천사와 인간 영혼은 실체이므로 영적 질료와 그 질료를 규정하는 형상으로 이루어진다.
· 오직 그 질료를 규정하는 형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 오직 그 질료는 형상에 의하여 규정되기에 그 사물은 바로 그것이다.
· 영혼은 이미 그 자체에서 완전한 한 형상으로 자신의 형상과 질료로 이루어져 있고 신체와 독립적으로 있으며 이 신체를 완전하게 한다.
· 모든 존재는 다양한 속성을 갖고 있는 만큼 많은 형상을 취하고 있다.
· 하나는 모든 몸에 일반적이고 공통적인 빛의 형상으로 이 형상은 모든 사물이 공유하고 있다. 다른 것은 다양한 존재에 따라 다른 것으로 복합적 형상 혹은 요소들이다.
· 보나벤투라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교리 속에 있는 철학적 요소로부터 신 개념에 관한 원리들을 자신의 인간 지식과 사물의 본성에 대한 개념과 더불어 빌린 것으로 보인다.
보나벤투라 학파
· 인간 지식의 목적은 사변이 아니라 사랑이다.
· 빛의 학문을 빛의 형이상학과 신적 조명 신학과 결합하는 것보다 더 자연스러운 것은 없었다.
· 영혼은 위계적 질서로 배열되고 동일한 영적 질료와 공통적인 관계로 서로 얽혀 있는 서너 형상으로 구성된 복합적 단일체다.
· 페테르에게도 추상 작용은 형이상학적인 문제라기 보다 심리학적 문제 였다.
* 해체와 부흥
· 모든 본질은 그 본질이 존재한다는 사실로부터 실재한다.
· 비탈은 여기서 영혼이 자신에 대하여 그리고 자신의 활동에 대하여 갖는 직관적 지식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교리를 주장하고 있다.
· 비탈은 신적 조명을 영혼이 하나님의 빛과 밀접하게 연합함으로 인식한다.
· 하나님은 어떤 형상 없이 질료를 창조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 다른 질료는 순수 가능성이다. 그러니 이 질료는 무가 이니다.
· 인간보다 열등한 실체에서는 개연적으로 그리고 인간 복합체에서는 확실하게 형상의 다원성을 인정한다.
· 질료라는 용어의 이중적 의미는 상당한 개연성을 갖고서 가비롤이 발전시킨 질료 개념으로 거슬러 올라 갈 수 있다.
· 수많은 신학자들로 하여금 기독교 하나님의 전능함 때문에 전통적으로 사물의 본성상 불가능하다고 여겨진 과학적 혹은 철학적 입장을 할 수 잇는 대로 확언할 수 있는 담력을 키웠다.
· 그리스 철학이 말하는 세계의 본성적 필연성으로부터 논증하면서 기독교 하나님의 자유의지와 무한한 능력에 제한을 가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 철학자는 아무도 없다고 선언한 것이다.
· 하나님은 그리스 철학의 우주와 다른 우주를 창조 하실 수 있다는 사실이 분명하다.
· 리처드는 한 시기를 끝맺는다. 보나벤투라 학파의 마지막 대표자로서 그는 사려깊게 새로운 종합을 시도했다. 그는 이 종합에서 사람들이 이해되고 완성된 위대한 보나벤투라의의 입론들과, 그가 보기에 토마스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와 신학에서 가장 뛰아난 점들을 통합 했다.
· 창조된 세계는 세상을 창조한 삼위 일체가 기록되어 얽히는 일종의 책과 같다.
토마스 아퀴나스
* 토마스주의적 개혁
· 영혼을 영적 실체로서 규정하는 정의다.
· 토마스 이전의 신학자들 가운데서 가능 지성과 능동 지성의 구분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이 교리를 때때로 묘하게 해석하면서 인간의 능동 지성말고도 초능동성 지성을 가정하는 데 만장 일치로 동의한다.
· 질료는 하나님이 만든 것이므로 아니다. 그래서 질료가 갖고 있는 최소한도의 존재에 비례한 최소한도의 본래적 현실성을 질료에 귀속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 변화 가능성이 창조된 존재의 뚜렷한 표시이므로, 질료는 변화의 순수 가능성과, 즉 존재하는 모든 것에 본래적으로 있는 바로 그 변화 가능성과 일치해야 한다.
· 질료는 ‘창조될 수 있게’ 즉 형상으로 변할 수 있게 지음받았다.
· 질료는 형상에 의하여 규정될 수 있는 순수 변화 가능성으로 창조되었다.
· 신학에서 구원 얻는 진리의 설명과 개념에 부적합한 모든 학문을 제거하고 그 다음에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택한 어떤 입장을 개혁하고 어떤 철학 원리를 다시 해석하는 일이 필요할지라도 신학에 적합한 학문을 통합하려는 것이었다.
· 신학이 철학에 의존한다면, 신학이 사용하는 철학은 참된 철학이어야 한다.
·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룩한 철학 개혁은 형이상학의 역사에서 이룩한 개혁이기 이전에 신학의 역사에서 중요한 시기다.
· 순수 철학적 수준에서도 그의 교리는 라틴 사람에 의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점진적 발견에 따라 나타나는 좀더 깊은 단계로 이해할 수 없다.
· 토마스주의는 진화에 의하여 아리스토텔레스주의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혁명에 의하여 나왔다.
· 철학으로서 토마스주의는 본질적으로 형이상학이다.
· 첫째 원리 곧 ‘존재’에 대한 형이상학적 해석사에서 하나의 혁명이다.
* 신학과 철학
· 우리는 신앙과 이성을 아주 조심스럽게 구별하는 신학자를 만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신학에 담겨 있는 철학적 요소는 신학에서 추출할 수 있으며 성격이나 내용에서 어떤 변화를 거치지 않고서 별도로 고찰될 수 있기 때문에 철학자는 신학자의 작품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 하나님이 전체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자유 의지를 가정할 때 인간 구원에 필요한 지식은 반드시 인간에게 계시되어야 한다고 확언한다.
· 신학은 철학적으로 알 수 있는 몇몇 진리들 즉 인간 구원을 위하여 필요한 지식의 진리를 다루어야 한다.
· 신학은 거룩한 가르침의 구원을 주는 일을 장려하기 위하여 필요한 철학적 내용을 세운다.
· 우리가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진리의 설명에 적용할 수 있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 저술은 하나도 없다.
·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은 우리가 그의 합리적인 세계관을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곳으로 남아 있다.
* 하나님
· ‘존재’라는 낱말의 가장 깊은 뜻은 ‘있다’는 동사가 지시하는 능동성이 될 것이다.
· 토마스 아퀴나스의 교리에서 존재는 그 실존적 의미를 충분히 받았다고 말할 수 있다.
· 능동성은 존재하는 것인 한 존재하는 모든 것의 핵심 즉 존재다.
· 하나님은 전체 본성이 그런 실존하는 능동성인 존재이다.
· 하나님의 본질은 하나님의 존재라고 말하기를 좋아한다.
· 모든 속성은 그의 이름의 이런 참된 의미에서 연역될 수 있거나 그 참된 의미에 의하여 규정된다.
· 하나님에게는 실존을 귀속시킬 무엇이 전혀 없으므로, 그의 존재는 정확하게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 우리늬 전체 경험은 실존을 갖고 있는 사물들에 대한 것이므로 우리는 그 유일한 본질이 ‘있음’인 존재가 무엇인지 이해 할 수 없다.
· 하나님은 그 피조물의 어느 하나와도 같지 않다.
· 하나님은 적어도 피조물들의 원인이 되기 위하여 마땅히 무엇이 되어야 한다.
· 우리의 신 지식은 ‘유비적’이라고 한다.
· 하나의 원인을 요구하는 감작적 실재의 실존
· 이 감각적 실재의 실존이 유한한 인과 관계열과 따라서 제일 원인 즉 소위 하나님을 요구한다는 사실에 대한 논중이다.
· 매개항과 죄종항이 있기 위해서는 계열의 첫번째 능동인이 있어야 한다. 첫번째 능동인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 무엇이 있다면 그 실존이 필연적인 어떤 존재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 하나의 최초의 필연적 존재가 있고 모든 가능한 존재는 이 첫째의 필연적 존재 때문에 실존하며, 모든 사람은 이를 일러 하나님이라 한다.
· 제일의 예지적 존재는 우리가 하나님이라 부르는 존재이다.
· 하나님은 단순하다. 그의 단순서은 많은 결과를 갖고 있다.
· 하나님은 물질적일 수 없다. 같은 이유로 하나님은 순수한 능동성으므로 질료와 형상으로 이루어 지지 않는다.
· 전체 본질이 ‘있음’인 유일한 존재는 완전히 단순하므로 그 본질은 곧 그 존재다.
· 하나님은 참으로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있음’이라고 부르는 것의 그 능동성다.
· 하나니은 순수 실존 작용이다. 즉, 일자나 선이나 사유와 같이 어떤 본질이 아니다.
· 하나니은 완전하다.
· 그는 주권적으로 불변하며 영원하다.
· 절대적 실존 작용이 무한하다면 존재의 질서에서 무한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완전하다.
· 그는 무한하며 우리의 지성은 유한하다.
· 절차는 신적 본질에 대하여 말하지만 그것에 속할 수 없는 모든 것을 부인하느 데 있다.
· 피조물 속에는 그 그림자를 발견하는 모든 완전을 하나님에게 귀속 시킨다.
· 우리는 하나님은 완전하고 가장 선하고 독특하고 지적이고 전지학 자발적이고 자유롭고 전능하다고 말하며 그와 동시에 이 속성들을 가가 결구 하나님 곧 순수 능동성의 무한하고 완벽하게 단일한 완전의 한 측면으로 환원시키고 있다.
*창조
· 하나님은 절대적이고 무한하므로, 사실상 자신 안에서 모든 피조물의 존재이며 완전이다.
· 창조 개념은 이 개별자 혹은 저 개별자의 실존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의 총체성을 설명하는 것이다.
· 창조는 실존의 선물일 수 있을 따름이다.
· 창조는 무로부터 창조다.
· 정의상 창조가 아무런 질료가 없음을 전제한다면, 창조는 역시 정의상 존재의 순수 능동성이므로 유한한 존재를 존재하게 할 수 있는 창조하는 존재를 전제한다.
· 창조는 존재하는 모든 것의 실존을 산출함이며, 무로부터 산출함이며, 그 산출의 원인은 존재의 신적 능동성의 완전 속에 있다. 창조로부터 생기는 피조물과 창조주의 관계를 일러 분유라고 한다.
· 분유함은 한 존재를 다른 존재로부너 이끌어내어 받아들임이며, 하나님으로부터 존재를 받아들이는 사실은 그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이 하나님이 아니라는 가장 좋은 증거다.
· 창조는 무한히 창조주 아래 있으며, 그렇게 아래 멀리 있으므로 하나님과 사물 사이에는 실제적 관계는 없고 사물과 하나님 사이라는 간격만 있다.
· 하나님은 모든 결과를 산출하기 전에 그 모든 것을 안다.
· 결과들을 알기 때문에 그것들을 산출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그것들을 의욕하였기 때문이다.
· 하나님은 바로 자신으로서가 아니라 피조물에 의하여 분유될 수 있는 자신으로서 자신을 알 때 이데아를 안다.
· 피조물의 이데아는 하나님이 갖고 있는 지식이며 피조물이 하나님의 완전을 흉내낼 수 있는 모방에 대한 지식이다.
· 하나님이 신앙의 근거인 계시로 자신의 뜻을 우리에게 명백하게 나타냈다는 것이다.
· 실제로 맨 처음부터 창조는 하나님과 사물들의 무한한 간격에 다리를 놓았지만, 그 간격을 없애 버린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 간격은 없어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 인간
· 창조의 정점에는 천사가 있다. 천사들은 비물질적이며 심지어 비질료적 피조물이다.
· 토마스는 피조물의 상태와 양립 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완전을 천사에게 기꺼이 허용하려고 한다.
· 천사는 모든 피조물처럼 본질과 실존으로 구성된다.
· 사람은 여전히 영혼을 통하여 비질료적 존재 계열에 속하지만, 그의 영혼은 천사처럼 순수 예지는 아니다. 그것은 지적 활동의 원리이며 어떤 유형의 가지적인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지성이다.
· 인간 영혼은 지적 실체이지만, 이 지적 실체에게는 신체의 형상이 되고 실체와 더부렁 질료와 형상의 모든 구성물과 같은 본성을 가진 물리적 구성물 곧 ‘사람’을 구성하는 거싱 본질적인 일이다.
· 인간 지성은 가장 높은 형상적 능동성이다.
· 실존을 형상의 능동성으로 가정하자 마자, 다른 형상들을 제거하는 일이 가능해졌고 또 필요해 졌다.
· 지적 영혼은 여전히 ‘자존’할 수 있다.
· 그 자체로서 형상인 우리의 지성은 감각적 형상을 살린다.
· 인간 지식은 질료적 사물들, 감관, 그리고 지성 사이의 협력으로부터 나온다.
· 질료와 형상의 복합물인 인간은 엄청나게 맣은 본성들 즉 각가 자신의 형상을 갖고 있는 질료적 몸체들 가운데 하나의 본성에 불과하다.
· 감각 기관에서 감각적 종들은 개별 존재들을 그 개별적 속성과 아울러 인식되게 한다.
· 합리적 영혼 속에는 감각적 종들의 개별적 규정에서 추상된 받아들이는 종에 대한 수동적 경향 즉 가능지성이 있다.
· 추상 활동은 지성의 첫번째 활동이다. 추상 활동은 단순한 파악 혹은 개념을 산출한다.
· 판단 활동은 계사 즉 동사 이다 에 의하여 단순한 파악을 연합하거나 구별하는 데 있다.
· 판단은 추론에 결합되고 추론은 논증으로 결합되며 이 논증의 결론은 과학적으로 인식된다.
* 인간의 목적
· 형상은 지식이 없는 존재 속에서 오직 그 존재의 완전한 실현을 향하는 경향이 있다.
· 인간은 지성을 올바로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행동을 규율하며, 여기서 이 지성의 사변적 기능은 참된 것을 아는 것이며 그 실천적 기능은 선을 아는 것이다.
· 우리는 선한 것을 의욕하고 악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 자연법은 바로 합리적 피조물이 영원법을 분유함이다.
· 인간의 가장 높고 가장 완전한 활동 속에서 즉 사변적 학문의 연구를 통하여 진리를 고찰하면서 행복을 구하는 것 이것이 불완전해도 참된 지복이다.
요한네스 둔스 스코투스
* 형이상학과 그 대상
· 둔스 스코투스는 아비센나에 찬성하고 아베로에스에 반대하여, 신학의 대상은 하나님이며 철학의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철학의 왕인 형이상학의 고유한 대상은 존재로서 존재라고 파악한다.
· 존재 그 자체는 절대자로서, 규정된 존재의 어떤 양태로 제한되는 규정을 전혀 같고 있지 않다.
· 인간 지성은 존재에 대하여 감각 자료로부터 추상할 수 있는 것만 안다.
· 궁극적인 추상 수준에서 존재는 하나의 동일한 의미로 존재하는 모든 것에 적용될 수 있다.
· 실존을 증명하는 것이 물리학의 역할이라면, 물리학이 실존한다고 증명하는 그 하나님은 물리적 질서를 넘어서지 못한다.
· 존재로서 존재의 일의적 개념은 물리학을 초월하는 학문이 있을 수 있는 조건이며 형이상학의 필수 불가결한 출발점이다.
· 우리 개념이 술어가 될 수 있는 성격과 조건은 논리적 속성이다.
· 형이상학자가 고찰하는 존재는 구체적 물리적 실재도 논리적 일반성에서 파악된 보편자도 아니다. 그것은 존재로서 존재의 본성인 가지적 실재다.
· 존재는 존재하는 모든 것에 관하여 그 논리적 술어가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파악할 때 형상 가운데서도 가장 텅 빈 형상이다.
· 형이상학자의 존재는 하나의 실재이다.
· 존재의 두 가지 일차적인 양태는 유한자와 무한자이다.
· 형이상학자에게 신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무한한 존재’가 존재하는지 혹은 실존하는지 입증하는 것이다.
*
·제일 존재가 존재의 질서에 실존하는 것을 입증하고 그 다음에 이 제일 존재가 무한하다는 것을 입증할 것이다.
· 첫번째 증명은 존재의 다음과 같은 상보적 속성들 즉 ‘원인성’과 ‘산출 가능성’ 혹은 산출하고 산출되고 경향에 근거를 두고 있다.
· 추론은 절대적으로 제일인 원인에서 멈추게 될 것인데, 이것은 논증되어야 할 것이다.
· 제일 원인, 궁극적 목적, 제일 존재는 동시에 첫째로 가정되어야 한다.
· 형이상학적 논증은 문제가 되는 존재의 본성에 의존해야 한다.
· 존재는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다. 이 두 가지 가설은 모순적이며, 두 가지 모순적 명제가 있을 때 하나는 거짓이다.
· 실재로 야기되지 않은 한 제일 원인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스스로의 의하여 가능하다.
· 제일 존재가 가능하다면, 그것은 존재한다.
· 둔스 스코투스는 우리가 산출되는 운동과 야기되는 결과가 있다는 경험적 사실로부터 출발할 수 있음을 안다.
· 현실 실존으로부터 이끌어 낸 증명들은 충분히 결론이 될 수 있지만, 그것들은 계속 우연적인 것으로 남아 있고, 반면에 가능적 존재로부터 이끌어 낸 증명들은 필연적인 논증을 준다.
· 첫째이며 따라서 야기된지 않은 한 원인은 그 원인성에서 아무것도 제한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무한하다. 게다가 완전의 질서에서 첫째인 이 필연적 존재는 예지적이다.
· 사실상 무한한 존재의 개념은 우리에게 모순적으로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가지적인 것의 유형인 것으로 보인다.
· 우리가 결론에서 실존한다고 확언한 제일 존재는 무한한 존재임에 틀림없다.
· 하나님의 무한성이 지니는 중요성을 공통적으로 예민하게 느낀다.
· 모든 신적 속성은 하나이니, 각 속성들은 신적 존재의 무한성에 참여함으로써 모두 무한하기 때문이다.
· ‘본성’들은 나름대로의 가지적 유성이 있으므로, 하나님의 다양한 속성에 상응하는 본질들 상에는 형상적 차이가 있다.
· 둔스 스코투스는 필연적 존재를 존재하는 모든 것의 첫째 원인으로 가정 한다.
· 스코투스주의에서 하나님의 의지는 무한한 존재의 필연적 존재와 유한한 존재의 기능적 존재 사이에 있는 존재론적 틈을 이으려고 개입한다.
· 둔스 스코투스의 우주에서 첫째 존재는 무한하므로, 나머지 모든 것은 우연적이다.
· 필연적 존재가 우연적 사물을 의욕했던 유일한 이유는 그의 의지다.
· 하나님의 의지는 모순율을 배제하고 그 자체로 파악된 가지적 형상의 내재적 필연성을 배제하므로, 창조될 본성의 선택과 구성에 대한 결정과 창조하지 않을 결정을 내리는 절대적 주인이다.
· 본질은 하나님의 지성과 그의 의지 사이에 있는 형상적 구분에 놓여 있다.
· 일단 본질을 신적 지성 속에서 가정하면, 둔스 스코투스는 토마스가 한 것보다 더 엄밀하고 구별되는 유성을 형상에 귀속시킨다.
· 스코투스의 형상적 구분을 떠받치는 기초는 사실상 형상적으로 구별되는 유성의 현실적 현존이다.
· 스코투스가 형상적 유성들 사이에 이끌어들이는 구분은 사물 속에서 그 토대를 갖는다.
· 둔스 스코투스는 개별자의 가능성을 설명하면서 보편적이지도 개별적이지도 않은 ‘본성’ 혹은 ‘공통 본질’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 스코투스주의의 유명한 ‘개별적 본성’은 한 종의 형상을 그 종의 개별자의 개별성에 제한시키는 궁극적 능동성이다.
· 지성은 의지의 원인이다. 지성에 의한 대상의 인식은 우리 의지의 우연적 원인일 뿐이다.
· 사람에게서 의지가 지성보다 더 고상하다는 점에 대한 이런 확언은 자유에 대한 주지주의적 개념보다 주의주의적 개념을 선언하며, 바로 이것이 우리가 둔스 스코투스의 교리에서 발견하는 것이다.
· 그는 자발적인 것의 총체적 인과성을 오직 인간 의지에 귀속시킨다.
· 본성상 지적 직관을 할 수 있어야 하는 우리 지성은 추상적 인식에 국한되어 있다.
· 감각적 존재의 학문은 자연스럽게 보편적 필연성이라는 형이상학적 교리에 이른다. 반면에 순수 존재로서 존재에 대한 고찰은 유한한 존재의 근본적 우연성에 대한 형이상학에 이른다.
·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전능하다. 하나님은 창조하거나 창조하지 않을 자유가 있고 부차적 원인 통하여 활동하거나 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
오캄의 윌리엄(William of Ockham)
· 토마스 아퀴나스와 둔스 스코투스와 같이 오캄은 기독교 신안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설명하기 위하여 철학 교리를 사용한 최초이자 마지막 신학자 였다.
· 오캄주의의 결과가 스콜라주의의 황금 시대에 나타났던 신앙과 이성의 적극적 협력을 대신한다.
* 직관과 추상작용
· 감각 지각의 명증을 귀속시키기 위하여 그는 과학과 지혜의 개념들과 ‘명증’의 개념을 구별하였다.
· 오캄의 교리에서 감각 지각의 명증은 감각이 직관이라는 사실 때문에 명증에 속한다.
· 교리에서 직관적이거나 추상적이라는 것은 그 자신의 본성 때문에 어떤 지식에 속하는 특성이다.
· 인식들은 자신의 대상 때문이 아니라 감각의 본성 때문에 직관적이거나 추상적이다.
· 직관은 대상과 무관한 인식이므로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 무엇에 대한 직관을 창조할 수 있다.
·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은 개별자다.
· 한 직관과 그 대상을 두 개의 독립적 실재로 파악하는 것은 실존하지 않는 것의 직관에 대한 가능성을 정당화한다.
· 영혼 바깥에서 실존하는 모든 긍정적 존재는 바로 그 사실에 의하여 개별자다.
* 표시
· 개별자는 복수성을 가리키는 한 표시는 될 수 있지만, 그런 때에도 이 개별자는 개별자로 남아 있다.
· 보편자는 다름 아닌 지성의 작용의 실재를 갖는다.
· 개념은 다름 아니라 자연적으로 많은 것을 표시하는 경향이 있는 개별적 정신 작용인 보편자다.
· 하나의 관념은 개념을 지성에 의하여 만들어진 사물의 유사로서 해석하는데, 이것은 일종의 사물의 모방적 표상이다. 다른 하나의 개념은 개념을 주관적 지적 활동 혹은 ‘직관’과 같은 것으로 본다.
· 마치 신음이 병들고 슬픔 혹은 고통스러운 표시이듯이 내가 사람으로 이해하는 지적 활동은 사람의 자연적 표시다. 그리고 마치 한 낱말이 말로 된 명제로 사적 활동은 사람의 자연적 지표다. 그리고 마치 한 낱말이 말로 된 명제로 사물들을 표시 할 수 있듯이 그런 표시는 심정 명제로 사람을 표시할 수 있다.
· 오캄에게는 영혼 바깥에서 모든 구분은 실제적 구분이다.
* 가정과 표
· 오캄은 세 가지 가정의 고전적 구분을 갖고 있다. 질료적 가정, 개별적 가정, 단순한 가정이다.
· 한 명제의 주어나 술어가 표시된 사물을 나타내어 지시적인 것으로 사용되는 때는 언제나, 가정은 개별적 가정이다.
· ‘단순한 가정’은 지성 속에 있는 의도 혹은 개념을 가정하지 그 개념이 표시하는 것을 가정하지 않는다.
· 표시적인 가정은 개별적 가정이므로 모든 표시는 개별자에 대한 것이다.
· 우리는 지성이 지적 활동을 산출하기 위하여 질료적 대상의 현존을 요구한다고 말할 권리를 확실히 갖는다.
· 지적인 것이든 감각적인 것이든 어떠한 직관적 지식에도, 인식되는 사물과 그것을 인식하는 지성 사이에 어떤 매개자를 상상할 근거는 전혀 없다.
· 한 원인이 주어진 대상의 산출에 참으로 필요할 때, 경험은 우리로 하여금 그 원인의 실존을 확언할 수 있게 한다.
존재와 원인
· 오캄의 존재 개념에 그의 보편자 교리가 영향을 미친 데 있다.
· 오캄주의에서 일의성은 이름의 술어에 나타나는 논리적 일의성이다.
· 존재에 속하는 일의성은 존재의 개념을 가정하는 명사의 일의적 술어화 가능성이다.
· 오캄의 단순 경험론은 감각 지식의 경우에서만큼 여기서 분명하다.
· 피조물은 순수 개별자이므로 그들 사이에는 인과성의 본래적으로 필연적인 관계가 전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 오캄은 먼저 직관 적 인식이 없었던 곳에서 추상적 인식이 있을 수 없음을 설명할 때, 동시에 하나님에 고유하게 적용할 수 있는 어떤 통성 원리적 개념 특히 스코투스주의의 ‘무한 존재’ 개념을 제거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