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분 언니 친정집에 가는 길,
송화가루 날려 하늘이 부예도
이만하면 좋은 날씨,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정산면에서 아산 가는 길로 접어들어
애경유지 공장을 지나
첫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해남리.
상분 언니 고향집은 마을에서도 높은 자리.
발 아래 펼쳐진 논밭 풍경과
멀리 겹겹의 산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볕 잘 들고 바람 잘 통하는 집.
지난해 친정 어머니 돌아가시고 나서
지금은 빈집,
한동네 사는 올케가
아침저녁 강아지밥 주고
텃밭 돌보러 오는 것 말고는
바람과 햇볕만 놀다 가는 집.
집 둘레엔
아름드리 은행나무 감나무 호두나무 살구나무.......
구색 맞추어 자라고
흙담엔 담쟁이덩굴이 우거졌다.
마당엔 강낭콩과 마늘, 양파가 자라고
뒷뜰 장독대 옆으로 애기똥풀꽃과
별꽃이 무더기로 피어
천연 꽃밭을 이루었다.
내 눈엔 그 꽃밭이 어여쁘기만 한데
상분 언니에겐 다른 감회가 일어나나 보다.
"울 엄니 계실 땐 뒤꼍에 풀 하나 없었는디."
밭두렁에서 머위와 돌나물을 뜯는다.
대문간 그늘에다 돗자리 펴 놓고 앉아
뜯어온 나물을 다듬는다.
집 앞 고추밭에는 스프링쿨러(?)가 돌아가며
물을 주고 있다.
워낙 날이 가물어 저렇게 주어도 금방 마른단다.
토란을 심은 지 한참 되었는데도
싹이 나오지 않는다 했더니
상분언니 하는 말.
"토란은 아무리 일찍 심어도
보리타작하는 소리 들어야 싹이 나온디야."
"그때가 원젠디?"
"5월말쯤일껴, 아매두.
농사두 사램 혼자스는 못 져.
다 때가 있는 벱이여."
나물 다 다듬고
가지고 간 간식 다 먹고
바람 실컷 쐬고,
그제서야 뒤꼍 장독간으로 가서
김치독을 열어 본다.
위에는 골마지가 앉았으나 속은 멀쩡하다.
한 줄기 쭉 찢어 주기에 먹어 보니
우왕~ 맛있다.
물에 씻어 꼭 짠 다음
쏭쏭 썰어 들기름에 달달 볶아서
마른 김 구운 것에다 싸 먹어도 맛있고
물에 담갔다가 꼭 짜서
쌈으로 먹어도 맛있고
김치국 끓여 먹어도 맛있단다.
귀하디 귀한 묵은 김치 얻어 집에 온다.
돌나물 씻어 초고추장에 무치고
머위 데쳐서 껍질 벗겨
된장에 무치고
묵은 김치 헹궈서 꼭 짠 다음 쏭쏭 썰어
들기름에 달달 볶고
마른 김 굽고
김치국 끓여 저녁상을 차려 낸다.
한꺼번에 반찬을 몇 가지씩 만들려니
힘이 쭉 빠진다.
.....................
그래도 저녁 먹고 나서
할 일이 있다.
물 한 바게쓰 들고
호미와 조리 들고 밭에 나간다.
옥수수씨를 부은 자리에 싹이 소복이 나왔다.
물을 듬뿍 준 후 모종을 파서
옮겨 심는다.
한 구덩이에 서너 포기씩 열 구덩이에 심는다.
나머지 모종은 차차 옮겨 심기로 한다.
밭일을 하는 동안
달이 점점 떠오른다.
달 보며 밭일하니 이 또한 색다른 맛,
달이 하도 좋아 그냥 집에 들어가기가 아깝다.
물통이랑 호미와 조리를 밭가에 두고
밤길을 걷는다.
정안천으로 하여 금강변까지 갔다가 온다.
하늘엔 열나흘 밝은 달,
길이 달빛으로 훤하다.
왕복 꼬박 한 시간 반이 걸린다.
이렇게 강행군을 했으니
눕자마자 골아떨어지겠다.
2009. 홍차 |
첫댓글 글도 잘 쓰시고,한문은 어디서 배웟어요? 이승엽 야구 보다가 홍차 생각이 나서 왔는데..다음에 한잔 얻어 먹을께요
이승엽과 홍차가 이렇게 만나는군요.~ 차 식기 전에 오소서.~
여름 까지 두세요.한국에 더우니 식은 차도 좋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