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여, 오늘은 실상사작은학교 졸업식 이야기를 하고 싶네.
이야기 하자면,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겠구먼.
평소 얼굴 정도 알고 지내던 젊은 친구가
대안학교를 하고 싶다며 도와달라고 찾아왔더군.
신문을 통해 학교교육 문제와 대안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긴 했지만,
그런가보다 하고 지낼 때였지.
좋은 일 하겠다는 데 거절하기도 그렇고 하여 엉거주춤하게 해보자고 그랬지.
그때부터 대안학교를 만들어갈 선생님들이라며
꾀죄죄한 젊은이들 몇 사람이 실상사를 들락거리더군.
인사 소개를 받기는 했지만,
곁에서 지켜보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어디에서 뭘 하다 온 친구들인지는 아는 바가 별로 없었지.
‘그래, 모여서 뭘 하는가’ 하고 들여다 보니 명상하고,
공부하고, 토론하고, 그러더군.
그렇게 1년쯤 되었을 때,
중등과정의 실상사작은학교를 열겠다고 하는 거야.
제 멋에 겨워 사는 게 인생이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참으로 대책이 없고 겁도 없는 친구들이라는 생각이 들더군.
그때 실제 상황을 사실대로 소개하겠네.
절옆에 초라한 대안학교
▲학교 터는 실상사 울타리 너머에 있는 100여평 규모의 논
▲학교 교실과 교무실용의 9평짜리 컨테이너 2동
▲운동장 30여평, 텃밭 30여평
▲기숙사는 마을집 두 채
▲재정은 근근이 굶지 않고 생활할 정도
▲옆에는 실상사와 마을과 큰 품의 지리산.
이것이 전부였네.
어때, 학교가 될 만한가.
여하튼 눈보라치는 2001년 봄날에 입학식을 했다네.
선생 8명, 학생 15명으로 학교 문을 연 셈이지.
실제 그 안에서 뭘하는지 세세하게 알지는 못하네.
목격한 바에 의하면 문 열고 처음 하는 일이 자기책상을 만드는 일이더군.
그러니까 처음 하는 학교공부라는 게 학생 스스로
자기책상을 만드는 작업인 게지.
상상해보게나.
이제 막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이
낫과 톱과 망치로 책상을 만들고 있는 그 현장이 어떨 것 같은가.
난리법석이고 아수라장이 안 되었다면 이상하지 않겠나.
그렇게 시작하고 운영해온 실상사작은학교 졸업식이 오늘 있었다는 말일세.
어떤가. 대단하고 놀랍지 않은가.
졸업식장에 함께 한 학생, 선생, 학부모, 하객들이
온통 눈물바다를 이루었다네.
물론 옛날에도
‘빛나는 졸업장을…’ 하는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흘렸었지.
하지만 이번에 지켜본 눈물바다의 졸업식은 내용도,
맛도 전혀 달랐다네.
하고 싶은 이야기의 본질이 바로 이 점이라네.
교육이라는 살림을 꾸려가기엔 시베리아 벌판 같은 조건에서
선생, 학생, 학부모가 함께하여 일궈낸 결과라는 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네.
더더욱 감동적인 것은 선생도, 학생도, 학부모도, 지켜보는 우리들도
보다 좋고 나은 방향으로 삶이 변화했고,
아울러 서로에게 진한 고마움을 느끼게 되었다는 사실일세.
지금은 주지가 아니지만 학교를 시작할 때 주지였다는 명분으로
축하의 말을 하라고 해서 한마디 했네.
“나라 덩치 키우고,
돈 많이 모으고,
군대무장하고,
무기개발해서 선진강대국을 따라가려고 하는 한
영원히 뒤따라가는 신세를 벗어날 길이 없다.
혹시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 과정과 결과는 삶을 황폐화시키는 갈등과 대립,
모순과 혼란, 살상과 파괴의 악순환으로 가기 때문에
옳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
렇다면 어떻게 하란 말인가.
선진강대국들이 생각하지도 않고,
잘 할 줄도 모르는 것, 그
러면서도 옳고 바람직한 것을 통해서만 선진강대국을 넘어서고
우리 모두에게 희망이 될 수 있다.
그 길이 어떤 길인가?
바로 달관과 청빈의 삶의 문화를 가꾸는 일이다.
독점과 지배를 버리고 공존과 나눔을,
강함과 공격을 버리고 부드러움과 평화로움을,
인간중심의 이기심을 버리고 자연과의 조화로움을,
즉 작은학교가 모색해온 문제의식과 논리와 방법들이다.
한걸음에 선진강대국을 넘어서고 21세기 인류의 희망이 될 길을 고민하는,
대단한 학교를 졸업하는 여러분들의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이제보니 진리깨친 요람뭐, 이런 식이었네.
비록 꿈같은 이야기를 진담반, 농담반으로 하긴 했지만
사실은 나의 확신이기도 하고 바람이기도 하다네.
이 길을 잘 가꾸어가는 게 진정 생명평화의 꽃을 피우는 길임을 믿네.
이 길을 함께 갈 수 있길 진심으로 빌고 또 빌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