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自畵像)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甲午年)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니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罪人)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天痴)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틔워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詩)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詩 서 정 주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기란 쉽지 않다 문호 미당은 자신의 출생 내력에 대해서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런 것들이 후날 문학의 가장 큰 밑거름이었을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시종 일관 변명을 늘어놓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솔직히 용서를 구하는 것이 옳은 일일 것이다. 친일과 독재정권을 찬양했던 미당은 자신의 잘못을 변명하지 않고 용서를 구했다.
이야기가 다른 방향으로 흐른 것 같다. 훌륭한 예술 작품이란, 그것이 작가의 개인적 진실로부터 나오는 것이면서 동시에 그가 살고 있는 사회 현실의 움직임과 발전 경향을 놀랄 만큼 정확히 반영한 것일 것이고, 그렇게 해야할 것이다.
자화상은 두 번 세 번 읽어보아도 서정주에 대한 개인적인 솔직한 감정을 깊이 느낄 수가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