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색소폰 연주자' 76세 정종섭씨
故 길옥윤씨 등과 활동 "40년전 노래시켜달라고 조영남씨도 찾아왔었죠"
지난 8일 오전 서울 노원구 상계 3·4동 주민센터 5층에 마련된 음악 연습장 무대에서 검은색 양복 차림의 70대 노인이 색소폰을 들고 줄을 목에 걸었다. "하나, 둘, 셋, 넷." 지휘자 구령에 맞춰 시작된 브라스밴드(관악대) 연주 속에 색소폰 소리가 구성지게 퍼졌다.
연주자들은 '노원 실버악단'이다. 오는 17일 노원구 노인들을 위한 '봄맞이 공연'을 위해 맹연습 중이었다. 색소폰 주자 정종섭(76)씨는 2시간 동안 머리와 다리를 흔들며 신나게 색소폰을 불었다.
정씨는 벌써 55년째 '색소폰 인생'을 살고 있다. 16살이던 6·25 때 학도병으로 입대해 맹호부대와 1군 사령부 군악대에 들어가 클라리넷을 연주했다. 1956년 6년 군생활을 마쳤지만 먹고 살 길이 막막했다. 그해 가을 친구 소개로 경기도 의정부 미군 악단에 들어갔다.
"마침 악단에 색소폰 자리가 비어있더군요. 불어보니 소리가 마음에 들어 당장 하겠다고 했어요. 그때는 몰랐죠. 그 악기를 평생 끼고 살 게 될지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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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일 서울 노원구 상계동 주민센터에 있는 음악 연습장에서 55년째 색소폰을 연주한 정종섭(76)씨가 공연을 앞두고 연습을 하고 있다. 정씨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일주일에 2번 연습하고 한 달에 1~2번씩 무료 음악공연을 다닌다. / 오진규 인턴기자
정씨는 미군에게 빌린 책과 악보를 손으로 베껴 색소폰을 연습했다. 10평(33㎡)도 안 되는 좁은 방에 10명의 악단 멤버들이 옹기종기 모여 5~6시간씩 합주를 했다. 실력이 쌓이자 의정부 미군 부대의 장교·하사관클럽에서 매일 밤 댄스곡을 연주할 수 있게 됐다.
그렇게 10년이 흐른 1965년 서울의 미8군 악단에서 입단 제의가 왔다. 한국 대중음악 1세대인 고(故) 길옥윤씨와 작곡가 겸 트럼펫 연주가 김인배(78)씨 등 기라성같은 멤버들이 있던 곳이었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정씨는 "한 달에 10번 남짓 연주를 했는데 당시 장관 월급보다 많은 40만원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1969년과 1970년에는 월남에 파병된 미군과 한국군 위문공연도 다녀왔다.
"한 번은 조영남씨가 기타를 메고 와서 노래를 부르게 해달라고 하더군요. 음색이 좋아 무대에 서게 해줬어요. 그런데 하루는 얼굴이 퉁퉁 부어 왔어요. 서울대 음대 재학생이던 조영남씨가 '딴따라' 음악을 한다고 선배들한테 맞은 것 같더라고요."
그러나 마흔을 넘기면서 아무리 연습해도 실력이 늘지 않았다. 나이 생각 않고 '딴따라한다'는 주변 사람들의 핀잔도 들었다. 정씨는 당시 악단장이었던 길옥윤씨에게 "가게나 차리겠다"고 했다가 "늙어서도 할 수 있는 장사에 한눈을 팔면 어떡하느냐"고 꾸지람을 듣고 다시 색소폰을 잡았다고 한다.
그 뒤 그는 관현악단을 만든 방송사 색소폰 연주자로 들어갔다. KBS와 MBC에서 5년씩 관현악단 일원으로 일했다. 음악과 예능프로그램의 가수 이미자씨나 코미디언 이주일씨 뒤에서 색소폰을 연주하는 그의 얼굴이 TV에 비치기도 했다.
알아주는 색소폰 주자였지만 악단 수입으로는 나날이 커가는 두 아들 뒷바라지하기에 부족했다. 1984년 관현악단을 그만두고 호텔과 유람선에서 연주생활을 했다.
그렇게 18년이 흘렀다. 68세 되던 2002년 둘째 아들을 결혼시키고 난 뒤 그는 색소폰을 놨다. 할 일은 다했다는 생각이었다.
1년쯤 쉬었을까. 평생 색소폰을 걸었던 목이 근질거렸다. 2003년 무료 연주봉사를 하는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의정부 윈드 오케스트라'에서 색소폰 주자를 구하고 있다는 소식에 눈이 번쩍 띄었다. 곧바로 악단에 들어가 지체장애인 시설과 노인 복지시설 등을 다니면서 무료 연주봉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70대 중반 나이에도 불구하고 일주일에 2번 빠짐없이 연습하고, 한 달에 1~2번씩 공연을 다닌다.
노원실버악단에서 함께 활동 중인 오만곤(76) 씨는 "요즘 색소폰 좀 분다는 젊은이들보다 음색이나 테크닉 면에서 훨씬 나은 것 같다"고 했다. 트럼본 주자 김용철(74)씨는 "왕년에 연주자들 사이에선 정씨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실력파였다고 들었다"고 했다.
정씨는 "나이 들어서 그런지 이제 숨이 차오르지만 아직도 내 연주에 기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디든지 가고 싶다"며 "공연 마치고 박수갈채를 받을 때면 죽을 때까지 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