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터키를 가다
떠나는 날은 몹시 피곤하였다.
낯선 사람들과 낯선 곳을 향하여 가기 때문에 불안감과 호기심에 의한 기대감으로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가기 전에 이지상의 「길위의 천국」도 읽어 두었다. 그러나 터키는 석회암 때문에 식수와 목욕에 적당하지 않았고, 저주받은 땅처럼 산이 헐벗고 있었다.
인천공항으로 가는 도중에 공항버스 안에서, 박사과정에 있는 이탈리아 출신의 R(나이가 40대)씨가 바로 옆에 앉아서, 독서삼매에 빠져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슬쩍 보니 문화(culture)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 왔다. 하는 수 없이 답답한 사람이 샘을 판다고, 두 시간 정도 지나서 R씨와 대화를 시작하였다.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가 궁금하다고 물었다.
레이몬드 윌리암의 「문화와 사회(culture and society)」였다. 어떤 내용인지를 묻기도 하고, 나의 관심사인 상징학(symbology)를 제시하면서, 인천공항으로 가는 나머지 두 시간을 토론으로 보냈다. 가끔 웃기도 하면서 영어로 토론을 계속했다. 혹시 미국에서 공부하는가를 물었으나, 이탈리아에서 공부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 박사 후 과정(Post-Doc)은 미국에서 공부하려는지도 물었으나, 역시 미국보다는 조국(이탈리아)이 낫다고 하였다.
나는 책을 많이 사서, 집사람이 싫어한다고 하였더니, 자신의 부인도 그렇다고 하여 한 바탕 웃었다. 가는 도중에 심한 피로감으로 뒷골이 당겼다. 혈압을 조심해야 하였는데, 토론을 중지하지 못하여, 괴로움이 가중되어서 건강이 걱정되었다. 공항에서 만난 가이드는 40대의 말없고 애교와 호감이 가지 아니한 건장한 신체의 처녀였다.
이스탐불까지 도착하는 데는 새벽 5시에 기상하여, 인천공항을 거쳐서 호텔에 체크인 하기까지는 20시간 정도 소모되었다. 가는 도중에 그리스의 아테네로 가서 잠을 잔다고 들었기 때문에 더 고통스러웠다. 다행히 이스탐불에서 하루 밤을 보내고 아테네로 간다고 하였다. 비행기 속에서도 영화를 5편 감상하여, 눈이 아프고 온몸도 괴로웠다. 하루 단잠을 청하고 난 다음날, 아테네로 갔다. 현지 가이드가 친절하게 아테네의 가까운 에게 해의 에기나섬(Aegina)에서, 삼각형을 이루는 아페아 신전과 성당을 관광하였다. 세계 3대 신전인 파르테논과 포세이돈과 아페아 신전이 높은 곳에서 보면 삼각형을 이룬다고 하였다.
아테네 시내 관광 후에, 아크로폴리스으로 갔다. 여기서 파르테논 신전(주신은 아테네 여신)과 디오니소스 극장과 에렉티온 신전 그리고 니케(승리의 여신)와 소크라테스 감옥을 관람하였다. 다시 해안도로를 따라서 수니온곶으로 갔다. 여기서 포세이돈 신전을 구경하였다. 파괴된 거대한 기둥들이 주로 남아있는 아크로폴리스와 수니온곶에서, 가이드는 그리스가 400년간 야만인 터키에 지배당하 때문에 파괴된 그리스의 문화유산을 아쉬워했다.
그리스에서 가장 먼저 놀란 것은 문화유산의 웅장함이 아니라, 그리스의 크기(13만 평방 킬로미터)였다. 적어도 한반도의 수십 배의 크기라고 막연하게 생각한 그리스가, 남한 정도(11만 평방 킬로미터)의 크기라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 압도되고, 마케도니아의 세계 정복을 이룬 장소라는 것에, 이미지가 가려져 있었던 나는 굉장히 허탈하였다. 여행은 터키로 이어지기 위해서, 히오스(그리스에서는 Chios)에서 호텔 체크인 하였다. 저녁은 한식인데 실망스런 소찬이었다.
풍랑이 약간 있던 에게 해를, 배(페리호)를 타고 터키(항구도시 체스메)로 향하여 가다가 일행 중 한 여성이 심한 배멀미를 하였다. 나도 약간 속이 메스커울 정도로 한 시간 가량을 보냈다. 공항과 마찬가지로 검색대를 통과하였다. 호텔에 체크인 하였다. 다음날 에페소에서 유적들을 감상하였다. 규모가 거대한 유물들인 대극장과 셀수스 도서관 그리고 하드리아누스 신전과 사도요한의 교회를 감상하였다. 성모 마리아를 모신 사도요한의 교회는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멀리 떨어져 있었다. 로마의 5현제 중의 하나인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지은 거대한 교회였고, 사도요한 의 묘가 있었다. 호텔에 체크인 하였다.
파묵깔레에서 석회붕와 노천 온천을 경험하고, 히에라폴리스의 노천극장을 구경하였다. 점심식사후에 콘야(Konya)로 5시간 이동하였고, 체크인 하였다. 다음날 카파토키아에서 기암괴석을 보았다. 괴레메 야외박물관과 우치사르(비둘기 계곡)에서 낙타모양의 괴석을 구경하였고, 데브란트 계곡과 파샤바 계곡에서 버섯 모양의 바위가 스모프(어린이 환상 영화)의 배경이란 설명을 들었다. 지하도시 데린구유에서 약간의 폐쇠공포증은 느꼈으나, 극복하였다.
카파도피아에서 이스탐불로 가기 위해서 카이세리 공항을 통과하였다. 성소피아(혹은 아야소피아) 사원과 지하궁전인 예라바탄 사라이를 관광하였다. 여기는 유명한 메두사(거꾸로 매단 메두사와 옆으로 눌러놓은 메두사 2명)를 구경하였다. 메두사와 포세이돈의 부적절한 관계에 분노한 아테네 여신이, 예쁜 메두사릐 머리카락을 뱀으로 쳐다보는 눈이 마주치면 돌로 변하는 벌과 함께, 기독교에서는 기둥의 아랫단에 메달아 기를 꺽어 놓았다.
오스만 터키의 마지막 궁전이며, 초대 대통령이 사용한 돌마 바흐체 궁전을 관광하고, 이스탐불의 유럽(3%의 땅임)과 아시아를 잇는 보스포러스 해헙을 배로 건넜다. 프랑스 해군 장교 피에르롯티와 터키여인 아지아데(유부녀)의 사랑이 담긴, 피에르롯티 찻집(공동묘지. 한국은 조선의 9대 성종때 서민들이 묘지를 사용하도록 허락하였음)에서 차를 마셨다. 대한한공을 타기 위해서 공항으로 이동하였다.
평상시처럼 여행 중에도, 가는 곳마다 현지 가이드의 해설을 빠짐없이 적었고, 나름대로 연구하고 있는 상징학도 계속 연구하여, 상징학과 비상징학의 차이점도 발견하여 연구논문의 주석에 첨가하였다. 두 번째로 가장 놀란 것은 서양학문의 비조들 즉 문학과 철학과 역사와 과학 그리고 과학의 비조들이 소아시아인 터키(turkey)의 서남부 특히 에게해(Aegean Sea) 지역과 관련이 있다. 예를 들면 문학의 호머(Homer)와 역사의 헤로도투스(Herodotus)와 철학의 피타고라스(Pythagoras)와 신학의 아버지 바울과, 더 나아가 철학의 아버지 탈레스(Thales.)도 소아시아 즉 터키 출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