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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북측위 임원 명단 |
○위원장: 안경호 조국통일범민족련합 북측본부 의장 ○부위원장: 강련학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의장, 김경호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중앙위원회 1비서, 렴순길 조선직업총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 강창욱 조선농업근로자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 박순희 조선민주녀성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 장재언 조선종교인협의회 회장, 강영섭 조선그리스도교련맹 중앙위원회 위원장, 박태화 조선불교도련맹 중앙위원회 위원장, 김정호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 김성국 조선기자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 전금진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정운업 조국통일범민족련합 북측본부 부의장, 김유호 조국통일범민족련합 북측본부 부의장, 리충복 민족화해협의회 부회장, 유영선 민족화해협의회 부회장 ○분과위원장* : 노동자분과 렴순길, 농업근로자분과 강창욱, 청년학생분과 김경호, 여성분과 박순희, 교직원분과 김성철, 학술분과 리종혁, 문학예술분과 송석환, 체육분과 정인철, 보건분과 김인국, 환경분과 안병소, 언론분과 김성국, 종교분과 장재언 ○위원: 성자립, 김응렬, 홍선옥, 송석환, 리명원, 김성철, 김명철, 리영희, 전영애, 김덕철, 주화일, 조충한, 박진식, 주진구, 문병록, 강철원, 안병소, 박길우, 최성룡, 강철호, 박영철, 김인옥, 리의하, 홍동철, 리우룡, 최성익, 정덕기, 정치건, 김수조, 김동수, 리 진, 원철운, 정명순, 한웅히, 장혜명, 최룡덕, 김구식, 박문철, 리학수, 박영희, 김인호, 최창만, 렴윤학, 강지영, 신상호, 심상진, 허일진, 김 혁, 문영호, 한석봉, 궁정옥, 허종호, 김광철, 안철웅, 홍서헌, 리원길, 오정훈, 문영근, 박성숙, 홍응표, 리억세, 김명현, 장금숙, 명준섭, 리현옥, 김동실, 오명희, 정성옥, 최창수, 김정화, 오영재, 홍석중, 남대현, 조청미, 배길수, 계순희, 황호영, 전응렬, 리관익, 김지선 ○사무국 국장: 리창덕 |
그러나 상임대표의 인선 문제 등을 둘러싸고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2005년 1월 31일에서야 프레스센터에서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인사 3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해외공동행사 남측준비위원회'가 발족했다.
6.15남측위는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를 상임대표로 선출하고 박용길 장로를 명예대표로 추대하는 등 조직체계를 갖췄으며, 기존의 종단, 민화협, 통일연대 외에도 시민단체가 새로운 한 축으로 참여했다. 이에따라 집행위원장도 종단, 민화협, 통일연대, 시민단체 4곳에서 공동으로 맡았다.
6.15남측위는 발족 과정에서 상임대표 선출문제를 두고 결성식 일정을 두차례나 미루는 등 진통을 겪었으며, 사무처장단은 단일 사무처장과
협동사무처장제 등에 대한 논의를 마무리하지 못해 결성식 당일에는 발표하지 못했다.
이후 6.15남측위는 북측의 12개분과 체계에
조응하는 노동, 농민, 청년학생, 여성 등 각 부문본부와 광역지자체별 각 지역본부를 구성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6.15남측위 임원 명단 |
○고문 (36인) 강만길, 강문규, 강원룡, 강희남, 권오창, 권오헌, 권정달, 김민하, 김선적, 김성수, 김성훈, 김우전, 김을수, 김준기, 김중배, 박영숙, 박정기, 박정숙, 박형규, 배다지, 백기완, 변형윤, 서영훈, 손봉호, 손장래, 신경림, 오재식, 이세중, 이소선, 이영희, 이창복, 이천재, 임기란, 임재경, 전창일, 정경희, 조만제, 조영건, 주종환, 한승헌, 한완상, 홍창의, 황건 ○상임고문 고 은, 김희중, 박상증, 박순경, 백도웅, 법 장, 신창균, 윤경빈, 이돈명, 이수성, 이종린, 이철기, 이혜정, 이효재, 임동원, 최근덕, 한양원 ○명예대표 : 박용길 (통일맞이 상임고문) ○상임대표 :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공동대표 추천인 명단 김삼렬(독립유공자유족회 회장), 김상근(목사), 김숙임(평화를만드는여성회 공동대표), 김용태(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부이사장), 김익석(대한불교청년회 회장), 김일중(환경정의 공동대표), 김재완(민족종교), 김정헌(문화연대 공동대표), 김종림(흥사단민족통일운동본부이사장), 김종수(신부), 김형준(한국영화제작자협회 회장), 김흥현(전국빈민연합 의장), 나창순(범민련남측본부 상임대표), 명진(스님), 문경식(전농 의장), 문상주(한국직능단체총연합회 회장), 박남수(천도교 동학민족통일회 상임의장), 박영신(녹색연합 상임대표), 박원순(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박재승(대한변호사협회 회장), 서정의(한농연 회장), 송효원(한총련 의장), 어약(성균관 부관장), 염무웅(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 오종렬(전국연합 상임의장), 윤금순(전국여성농민회장), 윤재철(대한민국상이군경회고문), 윤종건(한국교총 회장), 은방희(한국여성단체협의회장), 이명순(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이사장), 이명신(교무), 이병웅(남북이산가족교류협의회 상임대표), 이상기(한국기자협회 회장), 이석태(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회장), 이성림(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회장), 이수일(전교조 위원장), 이수호(민주노총 위원장), 이용득(한국노총 위원장), 이장희(통일교육협의회 상임대표), 이학영(YMCA 총무), 이해학(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상임의장), 이행자(YWCA 회장), 임헌영(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정광훈(전국민중연대 상임대표), 정숙자(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대표), 정재돈(전국농민연대 상임대표), 정지영(영화감독), 정현백(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조성우(민화협 상임의장), 최 열(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한국염(NCC여성위원장), 한상렬(통일연대 상임대표 의장), 한양수(민족통일중앙협의회 회장), 홍근수(평통사 대표), 정당별 1인 ○운영위원 김삼렬, 김상근, 김용태, 김익섭, 김종수, 나창순, 명 진, 문경식, 서정의, 오종렬, 윤재철, 윤종건, 은방희, 이석태, 이성림, 이수일, 이수호, 이용득, 이학영, 정재돈, 정현백, 조성우, 최열, 한상렬 ○집행위원장 김제남, 이승환, 정인성, 한충목 ○사무처장단* 정현곤 사무처장, 김태현, 이경원, 이성원, 이태호, 최영옥 협동사무처장 *사무처장단은 6.15남측위 결성식에서 발표하지 않고 추후 선임됨 |
해외측은 3월 1일 중국 심양의 칠보산호텔에서 '6.15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해외 공동행사 해외준비위원회'(6.15해외위) 결성식을 가졌다.
61.5해외위는 과거 해외에서 통일운동에 공헌해 온 원로 인사들로 명예위원장 12명, 위원장 1명, 부위원장 16명, 위원 58명, 사무국장과 6명의 부국장을 호명하여 만장일치로 선출하였다.
이에 앞서 각 지역별로 6.15일본위(2005.2.26, 도쿄, 의장 곽동의), 6.15중국위(2005.1.26, 심양, 위원장 양영동), 6.15재미위(2005.2.23, 뉴욕.시카고.LA, 상임위원장 문동환), 6.15유럽위(2005.2.11, 베를린, 위원장 박소은), 6.15캐나다위(2005.1.10), 6.15독립국가연합위(2005.1.25, 모스크바, 위원장 조윤해), 6.15오세아니아주위(2005.2.4, 위원장 장진민) 등이 결성된 바 있다.
그러나 6.15해외위는 일본의 최대 동포조직인 재일대한민국거류민단(민단)과 미주한인회총연합회 등을 포괄하지 못한 점과 곽동의 위원장이 전체 해외동포를 대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6.15남측위 일부에서 제기됨으로써 이후 문동환 미주지역 상임위원장을 공동위원장으로 추가하게 된다.
6.15해외위 임원 명단 |
○위원장 : 곽동의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 상임고문) ○부위원장 (16명) ○위원 (58명) ○사무국 (7명) |
2005년 3월 4일 금강산호텔에서 '6.15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해외공동행사 준비위원회'(6.15공동위) 결성식이 남북해외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우여곡절 끝에 치러졌다.
1990년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발족 이후 15년만의 남북해외 3자연대 조직의 결성이자, 최초의 합법적 3자연대 조직의 탄생이었고 6.15 공동선언 이후 민간 공동행사 5년만의 조직적 결실이었다.
125명의 남측 대표단에는 이규재 범민련남측본부 의장을 비롯해 한총련 조국통일위원장 등 기존에는 방북 승인을 받지 못했던 인사들도 포함됐으며, 5년여 민간 공동행사상 처음으로 방북 불허자가 없는 행사로 기록됐다.
그러나 6.15공동위 결성식은 심각한 진통을 겪어야 했다. 문제의 핵심은 3월 1일 중국 심양에서 결성된 6.15해외위가 폭넓게 구성되지 못했고 선출된 곽동의 위원장이 남북해외를 아우르는 공동위원장으로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6.15남측위 일부에서 제기된 것이다.
이같은 문제제기를 받은 6.15해외위 대표단 18명은 3일 금강산에 도착해 전체회의를 갖고 이 자리에서 곽동의 위원장과 함께 6.15미주위의 문동환 상임위원장을 6.15해외위 공동위원장으로 추대함으로써 상황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15남측위 내부에서는 남북측 위원장과 해외측 두 명의 공동위원장 등 4명을 6.15공동위의 공동위원장으로 선임하자는 의견과 남북측 위원장만 공동위원장으로 선임하고 해외측은 보류해두자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4일 오전으로 예정된 결성식을 미룬 채 남북 대표단은 부문별 상봉모임을 가졌으며, 6.15남측위 백낙청 상임대표와 6.15해외위 곽동의 위원장이 단독 회합을 갖는 등 의견조율에 나섰고, 6.15남측위는 운영위회의, 전체회의 등을 통해 지속적인 의견수렴에 나섰다.
결국 4일 밤 9시 30분경이 돼서야 남북해외위 대표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금강산호텔 1층 세미나실에서 6.15공동위가 공식 발족했으며, 힘든 과정을 거쳐 열린 결성식이니만큼 남북해외 대표단 모두 벅찬 감격과 만장일치로 남북해외 준비위 위원장 4명을 6.15공동위의 공동위원장으로 승인했다.
이들은 '6.15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해외 공동행사 준비위원회 결성선언문'을 통해 "공동준비위는 공동선언에 기초하여 나라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이룩하기 위해 분열이후 처음으로 남과 북, 해외의 각계층 정당, 단체, 인사들을 가장 폭넓게 망라하여 결성된 상설적인 전민족적 통일운동연대기구이다"고 선언했다.
또한 결성선언문은 "전민족적인 공동행사준비위원회가 결성됨으로써 우리 겨레는 공동선언 발표이후 지난 5년간 통일운동에서 거둔 성과를 계승하여 겨레의 통일지향과 의지를 하나로 모아 나갈 수 있는 민족대단결의 모체, 강력한 추동력을 가지게 되었다"며 "우리는 그 어떠한 군사적 행동도 반대하고 이 땅에서 전쟁위협과 군사적 대결과 긴장을 걷어내며 항구적 평화를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고 선언하고 "역사적인 6.15 공동선언발표 5돌, 조국광복 60돌이 되는 뜻깊은 올해를 자주통일의 전환적 국면을 여는 해로 만들자"고 호소했다.
6.15공동위는 결성식을 치른 다음날인 5일 오전 제 1차 회의를 갖고 5개항의 공동보도문과 '독도문제에 대한 특별 결의문'을 발표했다. 1차 회의는 안건토의 없이 약 30분간 간략히 진행됐다.
공동보도문에서 발표한 5개항의 합의사항은 △6.15 공동선언을 활동지침으로 삼는다 △6.15 5돌 8.15 60돌 등 중요한 계기들에 통일운동기간을 설정하고 다양한 형태의 통일운동을 활발히 벌여 나간다 △6.15 행사는 평양에서 민족통일대축전으로, 8.15행사는 남측 지역에서 광복 60주년 공동기념행사 및 민족통일대회로 진행한다 △부문별, 계층별 단체들의 통일행사를 적절한 시기에 진행한다 △백두-한라 민족통일대행진 등을 비롯한 다양한 통일행사를 진행하는 문제에 대해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 등이다.
특히 6.15공동위는 독도문제에 대한 특별 결의문을 채택해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남북해외 전민족의 이름으로 규탄했다. 6.15공동위가 발족하자마자 이같은 특별 결의문을 통해 민족의 의사를 천명한 것은 민간차원의 남북해외 민족공조의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사례라 평가할 수 있다.
2. 6.15통일대축전
3월 4일 6.15공동위 결성식에서 이미 6.15 5주년 기념행사를 평양에서 개최하기로 합의한 바 있어 6.15남측위는 615여명의 대규모 대표단 방북을 추진 중이었으나 북측이 미국의 스텔스 F-117기 남측 배치 등을 이유로 대표단 규모를 190명으로 줄여줄 것을 요청하다가 남측과의 조율을 통해 최종 300명으로 확정했다.
이에따라 6월 14일 6.15남측위 대표단 295명이 서해직항로를 통해 평양으로 향했다. 이번 역시 3월 4일 결성식에 이어 범민련남측본부 의장과 한총련 의장, 비전향장기수들의 모임인 통일광장 공동대표 등이 대표단에 포함됐으며, 방북 불허자가 한 명도 없었고 현대아산 현정은 회장 등 현대아산 관계자 4명도 함께 방북했다.
특히 '6.15공동선언 5주년기념 민족통일대축전'(6.15통일대축전)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남북의 당국 대표단이 참석키로 했으며, 남측 당국 대표단은 단장인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박병원 재경부 차관 등 대표 8명, 임동원, 박재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등 자문단 6명, 홍흥주 지원단장을 비롯한 지원인원 17명등으로 구성돼 별도의 비행기편으로 평양땅을 밟았다.
2004년 7월 초 고 김일성 주석 10주기 조문문제를 시작으로 경색되기 시작한 남북관계가 민간 공동행사를 계기로 민간과 당국차원에서 동시에 10개월여만에 재개되는 순간이었다.
당국대표단은 당초 숙소였던 주암.흥부초대소가 아닌 국빈급 사절단의 영빈관으로 사용되는 백화원초대소로 안내돼 여장을 풀고 북측 대표단 단장인 김기남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과 환담을 나눴다.
14일 오후 남북해외의 대표단은 천리마동상에서 김일성경기장까지 2km구간을 행진하는 '민족통일대행진'을 벌였으며, 연도에는 6만여 평양시민들이 쏟아지는 폭우에도 불구하고 "민족자주", "반전평화"를 연호하며 열렬히 환영했다.
이어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개막식에는 남북해외 민간대표단은 물론 남북의 당국 대표단이 나란히 자리했으며, 5만여 평양시민들이 "조국통일"을 연호하며 기립박수를 보냈다.
6.15북측위 안경호 위원장과 6.15남측위 백낙청 상임대표, 6.15해외위 김수식 부위원장 등이 개막식에서 연설했으며, 6.15북측위 명예위원장인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부위원장과 6.15남측위 명예대표인 법장 총무원 원장이 축하연설을 했다.
6.15통일대축전은 무엇보다도 그간 민간대표끼리 개최해온 6.15공동선언 기념행사를 장관급을 단장으로 하는 남북 당국대표단이 함께 함으로써
5년만에 제대로 된 명실상부한 전민족적 통일행사로 치렀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부여할 수 있다.
개막식은 곧바로
경축야회로 이어져 북측 예술단의 화려한 집단체조와 무도회가 펼쳐졌으며, 이어 만수대 예술극장에서 열린 환영만찬에서는 북측의 박봉주 내각총리가
만찬사를 통해 "6.15공동선언 리행의 직접적인 담당자인 우리 쌍방 당국은 온 겨레의 통일념원을 실현해 나가는데서 자기의 의무와 책임을 반드시
훌륭히 수행하여야 할 것"이라고 남북 당국의 역할을 강조한 환영사를 했다.
15일 오전 남북해외, 민간과 당국 대표단을 비롯해 평양시민 6천여명이 모두 모인 가운데 6.15공동위원회는 평양 4.25문화회관에서 민족통일대회를 개최하고 '민족통일선언'을 통해 '6.15공동선언 발표 기념일=우리민족끼리의 날'을 제정키로 하는 등 5개항의 합의사항을 발표했다.
민족통일선언은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조국통일의 력사적 위업을 성취할 것 △6.15공동선언이 발표된 날을 '우리민족끼리의 날'(6 .15 공동선언발표 기념일)로 정하고 민족공동으로 기념할 것 △우리는 민족공동의 리익을 첫 자리에 놓고 당국사이, 민간사이의 공동보조를 도모하고 련대를 강화하며 다방면적인 협조를 강화해 나갈 것 △온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이 땅에서 핵전쟁의 위험을 제거하고 평화로운 삶의 터전을 가꾸어 나갈 것 △6.15공동위원회를 가장 폭넓고 위력한 통일애국 운동기구로 강화발전시켜 나갈 것을 내용으로 담았다.
북측은 이전의 '민족공조'를 강조하던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민족끼리'를 이념으로 공식화시켰고, 6월 15일을 '우리 민족끼리의 날'로 제정하자는 주장으로 이어갔다. 북측은 바야흐로 제2의 6.15통일시대를 '우리 민족끼리의 시대'로 특정지은 것으로 보인다.
민족통일대회를 마친 남북해외 대표단은 4.25문화회관 2층 복도에 마련된 남북해외 공동사진전을 관람했으며, 12개 부문별 상봉모임을 가졌다.
특히 부문별 상봉모임은 각 부문별로 특색있는 장소를 방문해 노동부문 대표단은 평양 평천구역에 위치한, 전선을 만드는 '3.26공장'을, 교육부문 대표단은 미군장갑차에 치여 숨진 미선.효순양이 명예학생으로 있는 모란봉 제1중학교를, 농민부문은 순안공항 근처에 위치한 평안남도 평원군 원화리 협동농장을, 청년학생부문은 청년중앙회관을, 통일연대와 지역본부들은 1948년 제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가 열린 쑥섬을 각각 방문했다.
특히 청년학생들은 토론회를 갖고 '6.15공동선언 실천, 반전평화운동기간 선포문'을 채택해 올해 6.13-11.17을 '6.15공동선언 반전평화운동기간'으로 정하기도 했다.
종교부문은 6.15남측위 명예대표 자격으로 방북한 법장 조계종 총무원장은 대성산 열사릉 밑에 위치한 광법사에서 북측 조선불교도연맹(조불련, 위원장 박태화) 관계자들과 합동법회를 가졌으며, 한민족운동단체연합(한단연, 상임대표 김삼열 등)은 천도교청우당(위원장 류미영) 회관을 방문 10월 개천절 행사를 논의했다.
남북의 당국대표단은 15일 오후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1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6.15 5주년 기념행사를 역사상 처음으로 함께 가졌으며, 이후 민간대표단과 별도로 평양 지하철도와 만수대 창작사를 참관한 뒤 청년중앙회관에서 열리는 북측 가극 춘향전을 민간대표단과 함께 관람하는 등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남측 민간대표단 주석단(의전단)은 16일 오전 만수대의사당을 찾아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을 전격 예방했다. 주석단 16명과 집행위원장단 4명 및 취재단 4명 등 모두 24명으로 구성됐다.
앞서 남북해외 민간대표단은 16일 오전에 평양관광과 고구려 문화유산 답사를 마치고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체육오락경기와 폐막식을 진행했다.
폐막식에는 남북해외 민간대표단과 남북 당국대표단을 비롯해 평양시민 등 1만여명이 참석했으며, 폐막식 후 남북해외 대표단은 봉화예술극장에서 남측 공연단의 가극 '금강'을 관람하고 인민문화궁전에서 환송만찬을 갖고 이별의 잔을 들었다.
남측 당국대표단은 민간대표단과 별도로 오후 8시 목란관에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주최하는 환송만찬에 참석했으며, 만찬에 앞서 김영남 상임위원장과의 면담에서 김영남 위원장과 정동영 장관은 자리를 옮겨 기자들을 물리치고 약 25분동안 단독 면담을 진행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17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 50분까지 4시간 50분 동안 대동강 영빈관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하고 오찬을 함께 했다. 특히 정 장관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 30분까지 2시간 30분간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단독 면담했다.
김정일 위원장과의 오찬에는 고 문익환 목사의 미망인 박용길 6.15남측위 명예대표와 6.15남측위 고문 강만길 상지대 총장, 김민하 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등 민간대표 3명도 자리를 함께 했다.
김정일 위원장과 정동영 장관의 면담 내용에 대해서는 정동영 장관이 이날 남쪽으로 돌아와 공개했으며, △핵문제가 해결되면 NPT(핵무기비확산조약)에 복귀하고 동시에 IAEA(국제원자력기구) 등 국제적 사찰을 모두 수용해서 철저하게 검증받을 용의가 있다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다. 한반도 비핵화 선언은 여전히 유효하다 △7월중이라도 6자회담에 복귀할 수 있다 △서울에서 준비하고 있는 8.15행사에 북측의 정부대표단을 비중있는 인사로 꾸려서 보내겠다 △이산가족 상봉을 8.15를 계기로 금강산에서 실시하도록 하고 8.15에 첫 화상상봉을 실시한다 △장관급 회담과 함께 수산회담도 개시한다 △장성급회담을 통해서 군사적 긴장완화 특히 서해에서의 평화정착을 하자는 전격적인 내용이 포함됐다.
남측 언론은 정 장관의 김정일 위원장 면담 등 정부대표단 활동에 지면을 할애하면서도 상대적으로 민간이 주최한 민족통일대축전에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보였으며, 심지어 유홍준 문화재청장의 '북한 가요' 해프닝을 부각시키기는 구태를 되풀이하기도 했다.
백낙청 상임대표는 도착 성명에서 "남북간의 신뢰와 협력의 기운이 높아졌고, 향후 다방면의 민간교류활동이 활성화 될 토대가 마련되었다"며 "무엇보다도 민간의 협력이 평화를 여는 교량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입증되었다"고 말하고 "이것이야말로 이번 민족통일대축전의 가장 큰 성과"라고 평가했다.
한편 평양에서 6.15공동선언 5주년 기념 '민족대축전'이 열리고 있는 가운데 15일 서울에서도 6.15남측위가 주최하는 자체 기념행사가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7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조촐하게 열렸다.
3. 8.15민족대축전
평양 6.15통일대축전에 이어 '자주.평화.통일을 위한 8.15민족대축전'(이하 8.1민족대축전)이 서울에서 남북해외 민간대표단과 남북 당국대표단이 참석한 가운데 전국민적 관심속에 성대하게 열렸다.
민간 대표단은 남측 400여명, 북측 163(통일축구 선수단 포함)명과 해외대표단 230여명으로 구성됐으며, 북측 당국대표단은 김기남 조평통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대표단 5명, 림동옥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 등 자문위원 3명, 지원인원 9명들 17명으로 구성됐다.
남측 당국 대표단은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단장으로 박병원 재정경제부 차관 등 5개 부처 차관 등 대표단 12명과 임동원, 박재규, 정세현 등 자문단 8명 등 22명으로 구성됐다.
14일 오후 북측 민간.당국 대표단 32명은 서울 도착 첫 행사로 분단 역사상 처음으로 국립현충원 현충탑을 방문, 참배했으며, 남측 언론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어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 앞에서 남북해외 민간대표단과 남북 당국 대표단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남측 한라산과 북측 백두산에서 채화된 성화 합화를 시작으로 대형 단일기를 앞세우고 민족대행진이 시작됐다.
상암월드컵경기장에 입장한 남북해외 민간.당국 대표단은 8.15민족대축전 개막식을 가졌으며, 6.15남측위 백낙청 상임대표와 북측 당국대표단 김기남 단장, 6.15해외위 문동환 공동위원장의 개막사와 남측 당국대표단 단장인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축사가 이어졌다.
특히 정동영 장관은 "이제부터 우리는 본격적으로 분단과 정전상태를 청산하고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막식에 남북 남자 통일축구경기가 진행됐으며, 경기장을 가득 메운 6만여 관중들은 남북을 가르지 않고 멋진 장면이 나올 때마다 환호를 보내고 파도타기를 하며 열띤 응원을 펼쳤으며, '조국통일', '오! 필승 코리아' 구호 등으로 통일 열기를 드높였다.
15일 오전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광복 60돌을 맞아 남북해외 당국과 민간대표단 등 2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자주평화통일을 위한 8.15민족대회'가 열려 평화와 민족화합을 갈망하는 '7천만겨레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호소문은 △분단의 벽을 허물고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통일하자 △전쟁위협과 군사적 대결을 반드시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를 실현하자 △다방면적인 협력을 발전시켜 나가자 △6.15공동위원회를 중심으로 자주, 평화, 통일을 향해 나아가자고 호소했다.
815민족대회 직후 남.북.해외 민간대표단 1400여명은 120여명의 선수들을 뽑아 두 조로 나눈 뒤 각각 '우리'와 '자주'라는 이름을 붙이고 발통굴리기, 통천릴레이, 오작교 건너기, 풍선탑세우기 등 오락경기를 진행해, 남북이 하나되는 가슴 뭉클한 광경을 연출했다.
15일 오후에는 6.15공동위 대표단 450여명은 서대문 형무소를 둘러보고 '일제패망 60년에 즈음한 특별성명'을 발표했다. 특별성명은 패전 60년을 계기로 평화헌법을 개정하고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노리는 일본을 질타했다.
민간대표단들과 함께 8.15민족대회에 참석한 당국대표단은 15일 오후 백범기념관에서 당국차원으로는 처음으로 8.15공동기념행사를 진행했다.
15일 밤, 남북해외 민간.당국 대표단들은 숙소인 워커힐호텔로 돌아와 만찬 축하연회를 가졌으며, 이 자리에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비무장지대 상 선전물 철거가 완성된 것 △남북간 군사직통전화 개통 △북 민간선박 제주해협 통과 △이산가족 화상상봉 시작 △북측대표단의 국립현충원 참배 등을 '역사적 사건'으로 꼽았다.
16일 부문별 상봉모임이 열린 뒤 국회의장 초청 환영오찬과 겨레말편찬위 공동회의가 열렸고 경기도 '고양종합운동장'에서 폐막식과 남북 여자 통일축구가 진행됐다.
부문별 상봉모임은 남북 노동자 400여명이 16일 오전 9시, 서울 올림픽파크텔에서 노동부문 상봉모임을 개최했으며, 6.15 남측위 농민본부와 6.15북측위 농민분과위도 서울 서대문 농협중앙회에서 상봉 행사를 열었다.
경희대 평화의 전당에서는 남북해외대표단 40여명을 포함한 한총련, 한청 등 2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청년학생 상봉모임이 열려 '민족통일선언'을 채택했으며, 남북의 여성대표 100명은 오전 9시30분 한국여성개발원에서 '8.15 남북해외여성연대모임'을 열고 한반도 평화통일에 기여할 것을 다짐했다.
북측 대표단의 숙소인 워커힐호텔에서는 정치, 언론, 환경시민, 종교, 지역 등 다양한 부문별 상봉모임이 진행됐다.
16일 오전 김기남 단장 등 북측 당국 및 민간대표단 20명은 헌정사상 최초로 국회를 방문 김원기 국회의장과 면담했으며, 이어 북측 당국 및 민간 대표단 50여명과 남측 및 해외 대표단 150여명, 국회의원 50여명 등 총 2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오찬을 나눴다.
이어 북측 대표단 일부는 신촌 세브란스 병원 입원실로 찾아가 김대중 전대통령을 면담하고 김정일 위원장의 안부를 전했다. 김기남 비서는 김 전 대통령과의 환담에서 "좋은 계절에 평양에 오시라고 요청했는데 지금도 유효하다"고 초청 의사를 재차 전했다.
남북해외와 민간.당국간의 공식적인 행사 외에도 14일 '8.15민족대축전' 개막식에 앞서 상암월드컵 경기장 인근 난지 잔디광장에서 민주노총(위원장 이수호)과 한국노총(위원장 이용득) 양대 조합원 1만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6.15남측위원회' 노동본부 발족식을 가졌다.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8.15민족대축전' 개막식 행사를 마친 참가자 등 노동, 농민, 청년, 여성, 학생 등 각계 단체 1만5천여명은 경희대 노천극장에서 '조국광복 60주년 자주평화통일을 위한 결의의 밤' 행사를 개최했으며, 이어 민주노총과 전국농민회총연맹 공동으로 '주한미군 철수, 민족공조를 위한 전국 노동자.농민 통일 한마당'이 열렸고 통일연대 여성위원회(위원장 윤금순) 주최로 '여성이 행복한 통일 5회 여성통일한마당'와 범민련남측본부와 범청학련남측본부, 한총련, 한국청년단체협의회 등이 참가한 범민련 결의대회도 열렸다.
이들은 15일에도 1만 2천여명이 다시 대학로에 모여 '8.15 반전평화 자주통일 범국민대회'를 갖고 "미군철수"와 "자주통일"을 연호했으며, 이어 광화문 방면으로 '8.15범국민대행진'을 펼쳤다.
한편 이날 오후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반핵반김국민협의회' 회원 2천여명이 '북핵폐기, 북한해방 국민대회'를 갖고 "북한의 김정일 정권이 붕괴될 때만이 '북핵' 폐기와 '인권문제'가 해결된다"고 주장했다.
북측 대표단은 16일 폐막식에 참석에 이어 17일 창덕궁과 행주산성 등을 참관했으며, 당국 대표단 일부는 경주시내를 참관한데 이어 노무현 대통령을 면담하고 북으로 돌아갔다.
8.15민족대축전은 평양 6.15통일대축전에 이어 또다시 남북해외 민간과 남북 당국대표단이 나란히 참가했으며, 특히 북측 대표단의 현충원 참배와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6만여 관중들과 함께 개막식과 축구경기를 진행하는 등 화제를 몰고 와 6.15통일대축전 이후 새로운 단계에 접어든 민간 공동행사가 남쪽 사회에서도 되돌릴 수 없는 대세로 되었음을 확인했다.
4. 민족문학작가대회
평양 6.15통일대축전의 성공적 개최 이후 처음으로 열린 대규모 민간 공동행사는 남북의 작가들이 함께 한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였다.
당초 2004년 8월에 치를 예정이었던 작가대회는 고 김일성 주석 10주기 조문 불허와 대규모 탈북자 입국 등으로 남북관계가 경색돼 무기한 연기되고 이후 몇 차례의 일정조정에도 불구하고 11개월 가량이 순연된 뒤 6.15통일대축전 이후에서야 열리게 된 것이다.
7월 20일부터 25일까지 평양과 백두산 등에서 열린 최초의 대규모 남북 문인들의 상봉인 민족작가대회에는 남측 시인 고은, 신경림, 소설가 송기숙, 황석영, 현기영, 평론가 백낙청 등 98명이, 북측은 시인 오영재, 동기춘, 소설가 홍석중, 남대현 등 100명이, 해외 문인 10여명이 참가했다.
20일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개회식에는 북측 로두철 내각 부총리, 김정호 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장, 김병훈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장과 남측 고은 민족문학작가회의 통일위원장, 김정수 재일본 조선문학예술가동맹 중앙상임위원장, 한길수 재중국 조선인총연합회 국장 등 남북해외 문인 200여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공동선언문을 채택하고 "민족문학과 민족정서가 상봉한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는 온겨레의 축복과 전 세계의 기대 속에 통일문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며 5개항의 합의사항을 발표했다.
합의 내용은 △6.15 공동선언을 견결히 옹호하고 끝까지 고수할 것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 아래 민족자주, 반전평화, 통일애국의 정신으로 문학 창작에 매진할 것 △사상과 신앙, 출신 지역과 입장을 넘어 굳게 단합하며 민족문학 활동에서 연대와 연합을 더욱 활성화해 나갈 것△국내외 민족문학인들의 공동의 조직으로서 '6.15 민족문학인협회.를 결성하고 협회 기관 잡지 '통일문학'을 편집발행 할 것 △'6.15 통일문학상'을 수여할 것 등이었다.
6.15민족문학인협회 결성과 기관지 통일문학 발행, 6.15통일문학상 시상 등은 남북 민간교류 역사상 획기적인 일이며, 구체적인 실행방안은 추후 협의를 통해 모색키로 했다.
남측 문인들은 21일 평양 용성구역 용궁1동에 위치한, 납.월북 인사 62명의 유해가 안치된 재북인사릉 현장을 처음으로 공식 방문했다.
7월 23일 새벽에는 백두산에서 '통일문학의 새벽' 행사를 갖고 벅찬 감동을 나누었으며, 고은 시인, 북의 소설가 홍석중, 미국 동포문인 이언호, 박세옥, 남의 소설가 송기숙, 일본 평론가 김학렬, 북 박경심 시인, 남의 시인 안도현, 북 소설가 안도현, 남 소설가 현기영, 남 정지아, 북 시인 오영재 등이 나서 시를 낭송하거나 발언했다. 이들은 "백두산 만세", "민족문학 만세", "조국통일 만세"를 3창했다.
참가자들은 23일 묘향산으로 이동한 뒤 '민족문학의 밤' 행사를 갖고 24일 묘향산 국제친선전람관과 보현사를 참관한 뒤 평양으로 돌아와 폐막연회를 갖고 24일 평양 순안공항을 통해 돌아왔다.
대회 기간동안 남북의 문인들은 한데 어울려 문학과 통일을 논했으며, 남과 북의 대표적 소설가인 황석영씨와 홍석중씨는 장르에 관계없이 공동창작을 하기로 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남측 대표단은 귀국에 앞서 평양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으며, 고은 단장은 "이번 대회는 두 개의 문학에서 하나의 문학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라며 "분단시대의 문학을 이질화로만 평가할 것이 아니라 다채로운 문학이자 풍요로운 문학의 시대로 여겨야 한다"고 말해다. 또한 "분단시대에 남과 북의 문학이 서로의 문학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자기 문학에 대한 신념이 충돌하는 과정을 거쳐서 장차 통일 시대에 다채로운 문학을 형성할 것을 예감한다"고 말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김형수 사무총장은 "이르면 내년 6월 서울.광주.제주 등을 순회하는 제2차 남북작가대회를 열 계획"이라며 "2차 대회에는 북측 작가의 참가 규모가 50명 수준은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입장"이라고 밝혔다.
대회를 마치고 돌아온 작가들은 각종 언론 매체에 기고나 인터뷰 등을 통해 작가대회의 소식과 감동을 알렸으며, 이후 자신들의 작품활동에 이를
반영하겠다고 다짐했다.
김치관
기자
첫댓글 마지막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종아니님^^
종아니님의 열정에 박수...짝짝짝 ^^
박수까지 받다니요...쑥스럽습니다...^^ 관촌중학교 친구들의 통일편지 쓰기와 6.15공동선언 이후 5년 동안의 남북관계 사정을 아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