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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11-19 19:02:49 수정 : 2015-11-23 12:50:44
식물만큼 운명에 충실한 생명체는 없다. 땅이 비옥하든 척박하든, 바위틈이든 지붕 기왓장 틈새이든 뿌리를 내릴 수 있으면 터를 잡고 생애를 다한다. 그래서 식물이 뿌리를 내린 곳은 일생의 터전이자 무덤이다. 앉은뱅이나 다를 바 없는 식물이 어떤 생존 비책을 지녔길래,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무려 30만 종이 살아남아 지구생태계를 지배할 수 있었을까?
식물의 생존 비책은 대충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버티기, 즉 인내력이다. 씨앗의 꼭지에 붙은 작은 씨눈에는 주변 환경이 살아가기에 적합한지 아닌지를 가늠하는 센서가 있다. 이 센서가 감지하는 것은 기온과 수분인데, 놀랍게도 두 요소가 유전자에 입력된 생존 조건과 맞지 않으면 적합할 때까지 수십 수백 년, 길게는 수천 년을 버틴다.
유대민족의 성지인 이스라엘 마사다 요새 유적에서 발견한 대추야자 씨는 무려 2천 년을 견딘 끝에 2008년 새싹을 틔워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다. 씨눈을 가진 겉씨식물이 식물생태계를 군림하는 이유를 알만하다.
둘째는 적응력이다. 씨앗은 씨눈 센서의 판단에 따라 뿌리를 내리지만, 식물이 살아가는 환경은 천차만별이다. 운 좋은 녀석은 볕 바른 평지에 터를 잡지만, 상당수는 골짜기나 큰 나무 아래 응달에서 생을 다한다. 식물은 환경이 좋든 나쁘든 불평하지 않고 오로지 살아남는데 몰두한다.
한반도에 서식하는 토종 솔의 족보를 따져보면 식물의 경이로운 적응력을 쉽게 이해할 법하다. 토종 솔을 이름으로 헤아리면 열 손가락으로도 모자란다. 적송·홍송·해송·곰솔·흑송·미인송·금강송·대왕송·춘향송·황장목 등등. 실은 적송이라 부르는 육송과 곰솔 혹은 흑송이라 말하는 해송 두 으뜸 종이, 생존 환경에 따라 적응하다 변이하였거나 자연교배를 통해 아종(亞種)을 탄생해 생긴 사촌들이다.
예를 들면 같은 해송이라 해도 가파른 해안 바위틈에서 자란 녀석은 뒤틀리고 납작 엎드린 모습이지만, 갯마을 방풍림으로 자란 녀석은 평지에 모여 자란 덕에 훤칠한 몸매를 뽐낸다.
끝으로 대응력이다. 한국 토종 솔은 모두 뒤틀리고 굽은 게 본디 모습인 양 알려졌지만 그렇지 않다.
육송이든 해송이든 햇빛과 통풍 그리고 배수가 좋은 곳에서 끼리끼리 모여 자라면 곧게 자란다. 햇빛과 바람을 서로 많이 차지하려 또래끼리 경쟁하다 보니 엇비슷하게 곧게 자라서 그렇다. 대표적인 보호 송림인 강원도 원주 치악산의 금강송과 경북 울진의 적송은 물론 충남 안면도 해송이 모두 쭉쭉 뻗은 이유이다.
그런데 보호림으로 지정되지 않은 백두대간 솔 대부분은 왜 굽고 뒤틀렸을까? 인간이 쭉쭉 뻗은 솔을 주로 베 쓰다 보니 못난 녀석만 남은 탓이라 흔히 말한다. 그게 아니다. 보호받지 못하는 솔은 쭉쭉 뻗은 솔을 탐하는 인간의 톱날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몸을 뒤튼 통에 백두대간 솔이 하나같이 굽게 되었다고 보는 게 옳다.
아무튼 식물의 생명력은 참 경이롭다. 이쯤이면 더는 식물을 하찮게 여기지 않을 성싶다. 다음 회(11월 27일)는 종을 잇기 위한 식물의 자기 헌신을 소개한다.
박중환/'식물의 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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