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박지선 모녀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면서>
[1] 월요일인 오늘은 오전 12시부터 밤 10시 10분까지 강의를 하는 날이다. 강의를 마치고 비로소 핸드폰을 들고 페이스북이나 카톡이나 인터넷 뉴스를 뒤져본다. 그런데 또 안타까운 소식이 올라왔다. ‘개그맨 박지선, 모친과 함께 자택서 숨진 채 발견.’ 충격적이었다. 평소 아주 좋아하고 크게 관심을 가지진 않았지만, 참 선하고 성실하게 보이던 개그맨이었다. 천하보다 소중한 한 영혼이 모친과 함께 세상을 떠났다면 정말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2] 그동안 유명인들의 자살을 지켜볼 때마다 아픈 가슴을 억제하기 힘들었는데, 이번엔 모친까지 딸과 동반으로 세상을 등졌다는데서 더욱 마음이 아파왔다. 평소 우울증을 앓아왔다고 하는데, 직접적인 이유는 피부병 때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인터넷을 찾아보니 악플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던 면도 있어서 안타깝다. 거기 박지선에 대한 어떤 이의 댓글이 하나 올라와 있었다. 내용을 읽고 있는데 속에서 분노가 솟구침을 느낄 수 있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3] “박지선 진짜 여자예요????
다들 여자라는데 저는 남자 같아요!!
제발 알려주세여^^”
단 세 줄로 된 내용인데, 마치 이 글 때문에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느낄 정도로 분노가 치미는 글이었다. 별 생각 없이 던지는 돌에 개구리의 생사가 좌우 된다하지 않던가.
[4] 저 댓글을 쓴 자는 자신의 행위가 상대방에게 그리 큰 상처나 피해가 되리라 생각 못했으리라. 하지만 저런 내용을 접한 당사자의 마음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그것도 만인에게 공개된 온라인에 남겨진 내용이라면 더욱 그러했으리라 생각한다. 피부병 때문에 모친이 딸과 공반으로 새상을 떠났음은 못내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다. 오죽했으면 딸의 지속적인 고통을 참다못한 어머니가 딸의 마지막 길을 함께 동반해서 떠났을까? 자식의 고통보다 부모에게 더 큰 고통은 없다.
[5]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으면 사랑하는 딸이 더는 고통당하지 않도록 함께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겠는가? 자식을 둔 부모의 심정에서 터져 나오는 눈물을 금할 수 없다. 내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하고 눈물을 더 솟구치게 한 것은 위의 댓글 바로 옆에 달린 답글 내용 때문이다. 그것은 박지선 씨에 대한 자랑과 미담과 칭찬과 격려의 내용이었다. 거기 적힌 긴 내용들 중 마지막 부분을 소개한다.
[6] “버스 기사님께 인사하는 개그맨. KBS 본관, 별관 경비 아저씨께 인사 잘하는 개그맨 박지선은 개그맨 선후배 사이에서도 좋게 평가받고 있을 것이다. 내가 아는 박지선은 속이 깊고 겸손하고 남을 많이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 문장에 내 가슴은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눈물이 폭포수같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바로 이 내용이다.
[7] “내 딸 박지선의 건강과 무궁한 발전이 함께하길 바란다. 그렇게 아픔을 겪고도 좋은 대학교를 갔던 것처럼 어떤 역경이 닥쳐온다고 해도 박지선은 헤쳐나가리라 본다.
아, 박지선 씨의 아버지가 쓴 글이었다. 행여 딸이 보고 상처 입을까봐, 딸의 마음이 찢어질까봐,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봐 속상하지 말라고 아파하지 말라고 용기를 내게 하기 위해 딸을 칭찬하고 자랑하고 격려하는 글을 길게 적어놓은 것이었다.
[8] 부친은 딸이 힘들어하지 않도록 댓글에 대한 답글을 올림으로써, 모친은 딸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동행함으로 딸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신 것이다. 이게 바로 자식에 대한 부모의 마음이다. 직접적인 원인이 피무병이라 하더라도 함부로 상처가 되는 글을 올라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한다. 글을 쓰는 동안에도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다. ‘그 딸이 내 딸이었다면 어땠을까?’ ‘사력을 다해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도록 용기를 북돋워주며 답글까지 올린 아버지의 마음은 어땠을까?’
[9] ‘그런 아버지가 사랑하는 딸과 함께 아내마저 동반으로 세상을 떠난 것을 확인했을 때 그 마음이 어땠을까?’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보내고 홀로 남은 아버지는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프고 쓰려온다. 왜 이런 일들이 자꾸만 생겨나는 걸까? 하루에 코로나로 죽는 수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자살하는 이들이 많다.
[10] 하루 평균 37.5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코로나에 기울이는 관심과 주의에 1/100이라도 신경 쓴다면 그 수를 더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천하보다 소중한 영혼들이 매일 저리도 많은 숫자가 자기 생명을 포기하고 있음에도 조금도 도움이 되지 못하는 내 모습이 너무 밉고 속상하다.
수년 전 북한에서 탈출한 노크 귀순병사 임금학이 내 교수실에 와서 던진 질문이 지금도 생생하다.
[11] “교수님, 저는 신앙을 가지고 나서 하나님과 성경에 대해서는 조금도 의심해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한국 교회와 신자들은 심히도 의심스러워요.” 그래서 이유를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왜 한국의 유명인들이 자살하면 다 기독교인인지요? 기독교가 자살하지 못하게 하진 못할망정 오히려 자살하는 이들의 본산지가 되어버렸잖아요.”
한동안 나는 대답을 하지 못한 채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12] 오늘은 너무도 슬프고 기분이 우울한 날이다. 나마저 우울증이 생길 것만 같다. 분명 한국 기독교와 크리스천들은 달라져야 한다. 병으로든 무엇으로든 자살자에게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무력한 교회의 모습이 아니라, 자살하려는 이들을 완전히 새롭게 뒤바꿔놓는 교회의 모습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그런 교회 그런 성도가 되어야겠다. 오늘 나부터 그런 그리스도인, 그런 목사, 그런 교수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