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이 흘러 갔어도 잊혀지지 않는길 지난 세월과 사랑을 기억하며 걸어 보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배낭에는 우산. 생수. 음료. 를 챙기고 김밥 집에서 김밥 2줄을 챙겨 넣었다.
출발시각.10:44
인천역.
차이나타운.
인천지하철2호선을 타고 주안역 에서 환승 인천역 까지갔다.
인천역 광장에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부여로 수학여행을 가려고 새벽에 모였던 장소다.
인천역 맞은편 차이나타운 그리고 월미도 순환열차 은하철도역
(코로나4단계 운행중지) 을 지나 대한제분 옆 북성포구 까지 왔다.
월미도 은하철도는 친구 허후동이가 작업한 작품이다.
월미 은하철도역.
북성포구. 대한제분 입구.
대한제분.(곰표)
인천상륙작전 기념비.
다그라스 맥아더장군이 상륙해 첫발을 딛은 장소라 한다.
북성포구.
북성포구 바닷길.
북성포구 어시장.
북성포구는 고기배가 들어오는 시간에는 바로 배에서 판매하는 선상파시를 하는것으로 알려져 있다.
요즘은 꽃게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 (1kg 에 만원에 거래 되고 있다.)
꽃게가 팔리고 있다.(1kg~만원)
북성포구 횟집골목을 통과하자 만석동 굴어판장이 보였다.
옛날 대성목제 자리였다. 대성목제. 동일방직. 농촌 아가씨들이 집안 살림을 돕기위해 일하며 생활하던 터전이었다.
사연도 많다 지난세월이 머리속에 활동사진 처럼 추억이 되어 돌아간다.
바로 앞에 대흥주물공장 자리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북성포구 횟집골목길.
만석동 굴 직판장.
전. 동일방직.
대흥주물자리.(원룸)
대흥주물 기계공장자리.(교회)
동일방직 자리 모습은 그대로인데....
동일방직옆 바다로 이어진 길.(복개천)
바다개천길 복개된 길을 따라가면 내가 살던 옛동네 마을이 나온다.
연백상회. 옹진가게. 남포가게. 모두가 북한땅 지명이다.
피난민이 모여 어울어지던 곳이다.
좁은 골목을 들어서자 한쪽편이 철거되였다. 상원네집은 겨우 흔적 만 남아있고 철거된 상태
그리고 우리가 살던집은 남아 있었다.
만석동비치타운 고층아파트.
연백상회자리엔 진천토종순대(음식점)
그때 그집 나란히 3집.(제호네. 돼지네. 우리집)
앞집은 사라지고 괭이부리 소공원.
괭이부리부두(만석부두)
만석부두 입구.
작약도. 영종도. 배가 다니던 괭이부리 부두.
만석동 옛집터 자리에서 석씨 (石根植氏) 아주머니를 만났다.
반가워 하며 사흘전에 형님이 친구 와 다녀 갔다고 한다.
점심으로 라면이라도 끓여 먹고 가란다.
말만 이라도고마웠다. 이런것이 고향에 정이아닌가 한다.
두분이 90대. 80대. 삶이라고 한다.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어 좋아 보였다.
만석부두를 돌아보고 쉼터에 앉아 물을 마시고 시계를 보았더니 13:30 이다.
자리를 잡고 김밥. 생수. 음료를 내 놓고 시장기를 때웠다.
이곳 툇마루에서 점심을 먹었다.
김밥 한줄을 다먹고 두줄째 먹는데 옆에 누군지 앉는다.
먹을것을 다 먹고난후에 물었다.
이 동네서 얼마나 살았냐고 ?
물었더니 하는말이 70년 살았다고 하며 1.4후퇴때 피난와서 아직 산다고 한다.
축현초 14회 졸업 남중.남고. 졸업한 48년생 이었다.
안면이 있는것 같아 더물어 보려 했지만 잘 돌아보고 가라는 말을 남기고 급히 사라져버렸다.
반가우면서도 아쉬웠다.
해방촌 간판문구.
집주인은 해방촌의 의미를 알고 있는 것같다.
피난민들이 모여 판자집 하꼬방에 가족과 이웃이 기대고 연명 하는데 때.
갑자기 들어닥친 철거반 행동대와 기마경찰이 말을타고 때려 부셔대던
무서운 기억 아비규환 속에 울부짓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린나이에 충격적인 악몽이라 지금까지 트라마가 남은것 같다.
집에서 뒷동네 언덕 마루에 있던 만석교회 크리스마스 때면 떡하고 과자 사탕 얻어 먹기위해
형님따라 갔던 교회 지금은 웅장한 모습에 만석교회 그때를 추억하며 들러 보았다.
만석교회 웅장함.
만석초교.
화수부두(화수조합)
부평 삼진아파트 살던때 20년이 지나 30여년 전에 일이다.
인천 바다물 만조시간에 마춰 대나무 낚시대를 챙겨 차에 실고 두 딸과 망둥어 낚시를 왔다.
딸 들은 아빠가 망둥어를 많이 잡을 것을 기대 했는데 생각처럼 잡지를 못했다.
겨우 3마리를 잡아 들고 돌아 서려는데 배를 타고 멀리가서 잡아온 우럭 7마리를 싸게 줄테니
사라고 유혹을 한다. 두말 할 것 없이 퍼덕거리는 우럭을 받아 들고 집으로 왔다.
딸 들보고는 엄마한테 아빠가 잡은 걸로 약속을 하고는 기세 등등하게 큰소리 치며 들어간 일이
있다. 아내가 깜짝 놀라며 우럭을 잡았냐고...믿을수가 없었는지 딸들에게 물어보는 아내였다.
결국에는 거짓말이 들통나고 웃음이 터진일이 기억 된다.
웃음이 난다.
화수부두
한국기계 중공업(두산중공업)시절에
육군대장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 으로 방문했을때 박정희 대통령을
처음 보았다.
천주교 화수동 성당.(대건 중.고 터)
영풍아파트 화수동성당.
(대건 중.고교 자리.)
화도진.
화도진.
화도진.
화도진을 돌아보고 옛 인천극장 자리를 지나치려니 인천극장 앞 호떡집 생각이 나서 주변을 돌아봐도 호떡집은 없다.
호떡속 설탕 꿀물이 질질 흘리며 먹던 호떡이었다. 구름다리 언덕 고개에 올라서면 만석동 집동네가 바라 보이면
집을 향해 다름박 치던 어린시절이 떠오른다.
인일여고 정문지나 해군병원이 있었는데 보이질 않고 우측 으로 가면 홍여문. 제물포고교. 자유공원.
이지만 직진해 가다 보니 고등어 생선구이 거리다.
조금 더 가면 내가 다니던 모교 (축현초교)도 이전하고 그 자리엔 흔적도 없다.
동인천 고등어. 생선구이.거리
내리교회 웅장한 모습
웅장한 내리교회(영화초교 터) 형님이 다닌 초등학교 자리.
신포동 맛집 (닭강정)
동인천역 으로 가려다 신포동시장 닭강정 1통(18.000원) 사들고 집으로 향했다.
동인천역에서 출발해 주안역 에서 환승해 석남역을 지날때 형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형님네는 오늘 무우 파종 한단다.
텔레파시가 통한 것 같다.
신포 닭강정.
◁인천역→북성포구→동일방직 →만석동옛집 →만석부두 →만석교회 →화수부두 →화수동성당→ 화도진 →구름다리 →인일여고→
고등어생선구이길 →축현초교자리 →내리교회 →신포시장 →동인천역▷
2021년8월26일 택균이 추억으로 가는길
첫댓글 잘 걷고 구경 한번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