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회의 예배모범
고린도전서 14장 26-33절 / 26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꼬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27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다 불과 세 사람이 차서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28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거든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및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29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변할 것이요 30만일 곁에 앉은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거든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 31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32예언하는 자들의 영이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33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루터의 종교개혁(1517년)에 의해 시작되고 칼빈에 의해서 완성되었다고 평가되는 교회개혁은 크게는 둘로 구분되는데 신앙의 개혁과 예배의 개혁입니다.
신앙의 개혁 : 루터에 의해서 시작된 종교개혁에 있은 교회개혁이 어떤 것인지는 1517년에 그가 비텐베르크 성당 정문에 내 걸은 ‘95개조 논제’에서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보는 하나하나에서 당시 시대의 로마카톨릭교회 실정이 고발되며 교회개혁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데, 교회의 면죄부(속죄부) 판매에 의한 ‘선행(돈)으로 속죄를 받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선행(돈)으로 속죄의 구원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이러한 교회의 가르침에 따를 수 없었으며, 이를 침묵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에 루터는 자신이 가르치고 돌보는 많은 사람들에 대한 목회적 양심과 책임에 따라 설교에서 면죄부 판매의 부당함에 의한 비신앙을 비판하였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교황청은 루터의 설교에 눈을 감고 귀를 닫음으로써 아무런 개선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루터는 개선의 여지가 전혀 가망이 없음을 깨닫고 마침내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교회의 문 앞에 ‘95개 논제’를 내 걸고 기존 교회와의 논쟁에 본격적으로 들어감으로써 종교개혁의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95개조 논제의 원제목은 “면죄부(免罪符)의 능력과 효용성에 관한 토론”입니다만, 우리에게는 ‘95개조 항의문’ 또는 ‘95개조 반박문’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에 의하여서 종교개혁의 원리인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오직 성경으로’,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가 개혁교회의 입을 통해 말해져 왔습니다.
이렇게 루터에 의해서 있어온 신앙의 개혁에 의한 교회개혁은 칼빈을 통해 더 큰 결실에 이르게 됩니다. 칼빈은 교회에서는 성경 강론에 의한 설교와 함께 신앙고백문답서를 작성하여 가르침에 힘썼으며, 제네바 아카데미(제네바신학교)를 세워 개혁교회를 세워나갈 목회자를 양성하였습니다. 그러한 것에서 칼빈의 교회개혁은 한 나라에서의 교회개혁에 국한되지 않고 유럽 전역으로, 그리고 후에는 아메리카 대륙으로, 그리고 아시아를 비롯하여 온 세상으로 확장되어 개혁교회가 지녀온 참된 신앙인 신지식에 있는 개혁주의 신앙에 교회가 있게 하였습니다.
예배의 개혁 : 종교개혁의 의한 교회개혁은 루터와 칼빈 모두 신앙의 개혁과 함께 예배의 개혁에 있은 것에서 큰 의미를 둘 수 있습니다. 그러한 두 사람 간의 개혁은 동일한 개혁에 있었으면서도 차이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차이를 갖는 두 사람에 의한 예배개혁에서 여기에서는 칼빈에 의해 있은 개혁교회의 예배의식을 보겠습니다. 예배의 개혁에 있어서, 칼빈이 가장 강조하고자 했던 부분은 경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에게 합당하게 공적인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감에 있는 경건이 실천에서 진보를 나타내는 가장 기본적인 길은 공적인 예배에 출석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례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분명히, 우리가 의로움을 얻는 가장 중요한 기초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만일 이것이 뒤집혀 버린다면, 마치 건물들이 서로 떨어져서 붕괴하듯이, 모든 의로움의 회중들이 파괴되고, 깨어지며, 산산조각이 나고 말 것이다.” 우리가 가져나가야 할 참된 예배는 사람의 정성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과 진리로 예배함에 있습니다.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진리를 깨달음에 있을 수 있도록 주님의 초청을 받아들여서 주님 앞에 나아감에 있으니, 하나님께서 먼저 죄인을 예배의 자리로 부르시고 그 자리에 친히 임재하셔서 복음의 설교로 다가오시고 구원을 선언하시면, 성령의 은혜로 그것을 깨달은 죄인은 하나님께 자신의 빈궁함을 고백하고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구속의 은혜로운 일들이 제공하는 진리의 지식과 믿음의 부요함으로 풍성히 잔치의 교제를 누립니다. 이것에 있어나가는 것이 외식의 위선에 있어왔던 잘못된 예배로부터의 개혁에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공교회의 예배는 말씀과 성령으로 사람이 매주일 개혁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성령님에 의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개혁되니, 이것이 예배에서 볼 수 있는 참된 개혁입니다.
개혁교회의 예배모범(예배의식) : 칼빈이 제네바에서 사용했던 예배순서(1542, 1545 예배의식 참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1)예배부름 (2)죄의 고백과 용서를 위한 기도 (3)사죄의 선포 (4)시편 찬송 (5)십계명 (6)성령의 임재와 조명을 위한 기도 (7)성경말씀 (8)설교 (9)성례(*칼빈은 매주 시행하기를 원했으나 매월 1회 실시 되었음) (10)헌금(*가난한 자를 위한 구제헌금. 예배의식에 헌금 순서에 의해서 행하기도 하였으며, 예배의식의 순서에서 헌금은 빼고 헌금함에 넣게 하기도 하였음) (11)회중을 위한 기도 (12)주기도문 암송과 해설 (13)사도신경(목사 혼자 하며, 성찬예식이 있는 주일에는 성도들과 다같이 함) (14)시편 찬송 (15)축도.
이 순서는 시대와 교회 상황에 의해서 변화 – 청교도의 예배의식,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예배 요소 - 를 갖기도 합니다만, “(1)예배부름을 통해 (2)회개기도와 중보기도에 있으며 (3)시편 찬송 : 마음에 감사를 품고 시편의 찬송에 있어야 한다 (4)성경읽기와 설교 : 성경을 읽을 때는 경건한 두려움을 가지고 읽어야 한다. 설교는 흠이 없게 순전함으로 하고 신자는 그 말씀을 정성껏 들어야 하니 하나님께 복종하는 마음을 가지고 이해력과 믿음과 경건한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 (5)그리스도께서 정하신 성례전을 합당하게 실시하고 또한 값있게 받아야 한다.”는 항상 포함되어 있으면서, 주기도문이나 사도신경고백은 성례식과 관련하여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헌금시간이 따로 명시되지 않았다는 것도 특이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칼빈은 가난한 자들을 위한 구제헌금을 순서에다 삽입하는 것을 용납하기는 했지만, 1549년 이후의 자신의 예배에는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도들이 헌금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예배당에 들어오면서 헌금함에 헌금하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헌금 방식에 대해 개혁교회는 통상 두 가지 방식의 헌금을 취해왔으니, 주일 예배의식의 순서에서 행하는 헌금은 가난한 자와 병약한 자를 돕는 구제헌금으로 하나님께 바치며 오직 이것에 한정해서만 사용합니다. 그리고 교회 예배실에 들어오면서 입구에 놓인 헌금함에 하는 헌금은 교회 유지를 위한 목적에서 하나님께 바쳐져 사용됩니다.
우리는 공교회의 예배모범을 어떤 형식에 의해서 가져나갈 것인지를 개혁교회의 예배모범을 따름에 있으면서 교회의 상황에서 통일성을 띤 기본형식을 가져나가되 순서에서 일부 달리할 수 있습니다. 예배의식을 어떻게 가져나갈 것인지를 정하는 것은 개교회의 자율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지라도 여기에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말한 바인 중요한 원칙에 의해서 행해져야 합니다. 그것은 예배의식에서의 각 순서 모두는 교회 전체에 유익을 가져와 예배하는 자들이 주님 안에서 성장하는데 유익하도록 질서 있게 행해져 화평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