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구(熙久) 대종회 전 상임고문 별세
희구[熙久 字 여익(汝益) 1921.10.27.∼2011.12.12.]
대종회 창립이래 대종회 상임부회장과 상임고문을 역임하면서
대종회 창립에 헌신하신 희구(熙久) 고문께서 향년90세로
12월12일 서울 목동 이화대학부속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하셨습니다.
대종보 창간호(1995.4.20)에
無에서 有를 창조하는 심정의 글을 남기신
희구 고문의 글 ‘대종회 운영에 대한 소고’를
다시 읽으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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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회 운영에 대한 小考
희구(熙久) 상임부회장
해방후 반세기 동안 국내 수많은 각 문중들은 제각기 뿌리 찾기에 열을 올리고 자기 조상의 현창(顯彰)사업의 일환으로 족보, 문집, 유고 등을 간행하여 세상에 널리 반포하고 있습니다.
이에 발맞추어 우리 瑞興金門도 그동안「국역경현록」 및 「한훤당선생의 생애와 사상」을 편찬한 바 있으며, 대동보(大同譜)도 간행하여 반포하는 등 종족간에 소원함을 다소나마 좁히고자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경향각지에 화수회, 친목회, 등 각종 명칭의 단체모임을 갖고 있으나 전국을 총괄하고 대외기관 단체에 대표될만한 차원 높은 대종회를 구성치 못하였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이에 약 15년 전부터 재경화수회와 서흥회에서는 대종회의 창립이 절실하였으나 인원예산 모두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게 되어 좌절의 고배를 맛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대종회구성이 절실한 만큼 듯을 같이하는 몇몇 종인들이 초지일관 無에서 有를 창조하는 심정으로드디어 94년 5월5일 어린이날을 택하여 고고지성(呱呱之聲)을 올렸던 것입니다. 특히 판영(判永), 철식(喆埴), 효영(孝永) 성주(成珠) 종친과 그이외 서흥회 여러 종친의 노고가 지대하였던 것입니다.
그 간의 시간과 노력 예산 등은 지면상 다 기술할 수 없으나 년래현안(年來懸案)인 소망을 달성함에는 전국 각 지역 종인들의 절대적인 협조와 성원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고 자부하여 이제 그 운영의 묘를 찾아야 할 시점입니다.
거년(去年) 5월5일 대종회가 결성된 이후 지난 연말까지 서울 서초동에 임차한 아담한 사무실의 운영비문제로 입주하지 못하고 매월 관리비만 지불하고 허송세월 하던 중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명언과 같이 몇몇 종인들이 뜻을 모아 운영자금을 마련, 특히 성주(成珠) 사무차장과 서울화수회장 윤식(允埴) 사장이 주축이 되어 약간의 예산을 마련, 금년 1월9일을 기하여 유급여직원을 두고 업무를 개시하였습니다. 사무실내 일부 집기 비품은 사무처장의 주선으로 이루어졌으나 각 종인들의 십시일반식의 성의로 부족함을 충당할 예정입니다.
당면과제로 각종사업계획을 수립 실시코자 하여 첫 사업으로 종보(宗報)를 발간함이 급선무이기에 이 방면에 무뢰한인 제가 동분서주하여 사업등록 원고청탁 인쇄소계약 등 어려운 가운데 창간호를 마련한 것입니다.
대종회를 원활히 운영하자면 우선 각 지역 화수회가 적극적으로 협조하여야 되리라고 믿으며 연락사항도 실기(失機)치 않고 유기적으로 움직여야만 하겠습니다. 이제 대종회가 구성되었으나 모든 종인들께서 뜻을 모아야 할 줄 압니다.
타종문(他宗門)에 뒤지지 않기 위하여 우리 모두가 분발하여 운영에 참여하여 발전을 도모할 것을 기대하는 바입니다. 실무를 잠시나마 맡고 있는 저로서는 예산을 최대한 절약하는 정신으로 일관하여 불요불급한 예산은 집행을 보류하는 등 온갖 제약을 가하고 있습니다.
각 지역화수회는 회원중에 사무실유지가 가능한 곳을 설정하여 사무처리가 될 수 있도록 조처(措處)하여야 하겠습니다. 지역내에서 발생하는 사업을 신속정확히 파악하여 대종회에 보고하여야 하면 특히 효행자, 우등장학생, 경조사, 종중행사, 인사동정 등 빠짐없이 육하원칙에 의하여 알려주어야 대종회로서 가능한대로 조처 할 수가 있으리라고 사료됩니다. 중앙에서는 지방에서 일어나는 사항을 일일이 알 수가 없기에 말입니다.
대종회는 항상 문이 열려 있습니다. 우리 종인중에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남보다 먼저 생각하고 고락을 함께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여야 될 것으로 압니다. 지역화수회의 성격은 시도의 행정단위로 하고 어려우시더라도 소집단에 까지 관할권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장차 행정구역이 변경될 경우에는 분할이 가능하겠지만 현재로서는 애로가 있더라도 연락망을 구축하여야 될 것입니다.
이번 대종보 창간호를 발간함에도 제반여건이 충족되지 못하고 다음 호부터 좀 더 알차게 꾸며 볼 예정으로 있습니다만 각 지방 각계각층에서 활약하고 있는 종인께서 부담 없는 기고와 함께 격려의 말씀 등 적극적으로 참여를 기대해 마지않습니다.
끝으로 우리는 훌륭한 가문을 자랑하면서도 타 문중에 비하여 단결이 미흡함도 사실이며, 재정도 빈약한 탓으로 목적한 사업도 수행이 힘든 실정입니다. 천신만고 끝에 사무실은 확보하였지만 찾는 종인들이 드물고 이해관계가 아니면 종인을 만날 수 없는 아직은 삭막한 형편입니다. 열린 사무실을 이용하여 친목도 도모하고, 사랑방처럼 종종 들러 종사원에게 격려해주시면 더욱 고무될 것으로 여겨집니다.
첫 사업으로 대종보를 발간하여 경향각지에 계시는 여러 종친에게 소식을 전하여 더욱 친목과 단결을 공고히 하고 따라서 종친여러분의 참여와 고견 그리고 중지를 모아 보다 내실 있고 알찬 대종보가 되도록 노력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의 기탄없는 충고와 제언을 바라며, 창간호에 이어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는 대종보를 펴낼 예정입니다. 대종보 창간을 축하하면서 소회(所懷)의 일단을 외람되이 피력합니다. 감사합니다.
경북 청도가 고향. 아호는 덕산(悳山). 현 대조오히 상임부회장 고위관료 출신, 전 재경화수회장,
라이온스클럽회장, 대종회 창립을 위해 年初부너 헌신, 3개월만에 완전 체계화하심.
■출처 : 서흥김씨대종보 창간호(1995년 4월20일)
첫댓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