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이름 찾아 떠나는 여행 26>
밀면
밀면의 유래에는 3가지 설이 전해오고 있습니다. 첫째, 6.25전쟁 당시 이북 출신 피난민들이 고향에서 먹던 냉면을 구하기 힘들어 메밀 대신에 미군 구호품인 밀가루로 만들어 먹었다는 설. 둘째, 진주 밀국수 냉면에서 유래 되었다는 설입니다. 예전부터 진주에는 멸치로 국물을 낸 밀국수 냉면이 있었는데, 1925년 4월 경남도청이 진주에서 부산으로 이전 해오면서 진주의 밀국수 냉면이 부산에 정착하면서 밀면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셋째, 함흥 출신의 모녀가 부산 우암동 이북 피란민촌에서 냉면집을 열면서 밀면이 탄생했다고 하는 설입니다. 가장 유력한 설은 셋째입니다.
부산시 남구 우암동 내호냉면이 부산 밀면의 역사가 시작된 곳입니다. 제1대 이영순, 2대 정한금-. 모녀 사이였던 이들은 1950년 흥남철수 때 고향을 등지고 남쪽으로 피난 와 부산에서 냉면집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식당의 역사는 피난 오기 전으로 더 거슬러 올라갑니다. 1919년 10월, 함경남도 흥남 내호리(內湖里) 내호시장 입구 흥남부두 앞에서 처음 문을 열었을 때는 ‘동춘면옥’이란 간판을 달고 문을 열어 농마국수(‘함흥냉면’의 이북 이름)를 팔았습니다. 나중에는 1925년에 태어난 맏딸 정한금 씨와 함께 했고, 오늘날까지 한 가족 4대가 음식 하나만으로 100년을 맞이한 집입니다.
1953년 3월부터 이영순, 정한금 모녀는 흥남에서처럼 물냉면과 비빔냉면을 팔았는데 생각만큼 팔리지가 않았습니다. 메밀로 만드는 평양냉면은 손이 많이 갔고 면을 뽑아낸 뒤 얼마 되지 않아 모양이 흐트러지기 일쑤였습니다. 게다가 전쟁 시기에 미국으로부터 원조 받은 밀가루의 부드러운 맛에 길들여진 부산 사람들이 질긴 냉면을 선호하지 않았고 면발의 주재료였던 메밀과 전분은 물량이 크게 달렸습니다. 그러나 당시 미군부대에서 나누어 준 밀가루는 풍족했습니다. 그래서 고안해 낸 것이 밀가루로 만든 냉면이었습니다. 밀가루 국수에 맛들인 이들을 유혹하기 위해 몇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밀가루와 전분을 3:1로 섞은 면을 개발, 1959년부터 부산사람들 입맛에 맞는 밀면을 만들어 팔았습니다.
밀가루 냉면(당시엔 경상도 냉면이라 불렀다)은 금세 부산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습니다. 알게 모르게 밀면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서 지금의 별미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부드럽고, 배고픈 사람 금세 배부르고, 가격도 저렴하고 ... ’ ‘맵고 새콤하고 ... 부산 사람의 성향을 닮은’ 밀면은 서민의 허기를 채워주던 ‘싸구려 음식’으로 출발했습니다. ‘짝퉁냉면’이었기에 그 당시 냉면 한 그릇 값이 20-40원이었던 데 비해 밀면은 10-20원이었습니다. 맨 처음 ‘밀냉면’이라고 이름 지었는데, 성질 급한 부산 사람들이 밀면이라고 줄여 부르는 바람에 밀면이 됐습니다.
부산의 유명한 밀면 전문점이 서울에서 개업했다가 손님이 없어 철수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부산 아닌 다른 지방 사람들은 밀면이 뭔지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국어사전이나 백과사전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밀면은 부산 사람들만 먹는 음식이기 때문입니다. 서울 사람들이 냉면을 먹을 때 부산 사람들은 밀면을 먹었습니다. 예전엔 냉면집으로 상호를 걸고 냉면과 밀면을 함께 파는 집이 60-70%였고 나머지가 밀면 집이었습니다. ‘싸구려음식’이라는 편견 탓에 식당들이 밀면 간판 내걸기를 꺼리기도 했고 정식과 짜장면을 팔면서 밀면을 끼워 넣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추세가 바뀌어 밀면이 부산 음식으로서 대표성을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 2000년대엔 부산을 벗어나 외지로 활발하게 진출했고, 2009년엔 부산시의 대표 향토음식으로 지정됐습니다. 레토르트 식품으로 만들어져 대형 마트 매장에도 진출했습니다. 밀면을 주 메뉴로 하는 집도 많아졌습니다. 현재 부산의 밀면 집은 340여 곳이며 냉면 집은 80여 곳입니다. 밀면이 냉면을 밀어낸 셈입니다.
우암동 소막마을에 있는 좁은 골목 안 앞뒤 옆집 7채의 건물이 모두 다 내호냉면 한 집입니다. 전쟁 직후 현재의 건물 인근에 있는 동항성당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밥을 줬는데, 어느 날 신부님이 배급 나온 밀가루로 ‘삯국수’를 해달라고 했습니다. 집에서 감자 전분을 갖고 식당에 와서 반죽하고 기계를 눌러 국수를 만들어 달라고 하면 삯만 받고 국수를 뽑아 준다고 해서 삯국수라 했습니다. 성당에서 준 밀가루로는 면이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실패하면 식구들이 다 먹었습니다. 시행착오 끝에 밀가루와 고구마 전분을 7:3 비율로 면을 만들어 밀면이 탄생됐다는 것입니다. 밀면 탄생의 또 다른 유래설입니다.
<부산의 유명 밀면집>
*내호냉면: 냉면과 같은, 3-4시간 달인 한우 사골육수를 급랭시킨 냉면육수를 그대로 사용한다. 쇠고기 사골에 쇠심줄, 사태 등을 넣고 육수를 센불로 빨리 끓이고 한번 끓이면 바로 끈다. 오래 끓이면 육수가 텁텁해지기 때문이다. 고명도 냉면과 똑 같다. 가오리를 쓰는데, 생가오리를 숙성한 뒤 양념을 넣고 다시 숙성한다. 051-635-2295
*사철밀면: 먼저 내주는 온육수부터 거무스름한 색깔의 한방 약재육수다. 돼지뼈에 시원하라고 닭뼈를 넣고, 맛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 한약재를 넣어 이틀 정도 육수를 끓인다. 이 육수가 대여섯 가지 재료를 넣은 양념과 어우러져 맛의 조화를 부린다. 양념의 맛이 다른 집보다 얼큰하면서 깔끔하다. 옛 송월타올에서 사직운동장 방향으로 좌회전, 첫 신호대에서 우회전하면 첫 블록 긑 모퉁이에 있다. 051-504-1609
*가야할매밀면: 옥수수 전분이 들어간 면발이 매우 독특하고 밀가루도 우리밀이다.’(1969년 개업) 굵은 면발이 미끄러지면서 빚어내는 입속 느낌이 괜찮다. 달착지근한 옥수수의 맛이 희미하게 감도는 게 독특하다. 육수는 돼지뼈, 소뼈를 넣고 각종 야채와 12가지 한약재를 넣어 하루 이상 끓여낸다. 남포동 할매회국수 골목. 원산면옥 옆. 051-246-3314
*개금밀면: 부산 밀면계에서 ‘개금식’으로 통하는 밀면의 원조집이다. (1966년 개업) 맑고 투명한 육수가 깔끔하다. 육수를 끓일 때 닭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지하철 개금역 1번 출구 나와 서면 방향으로 200m. 개금골목시장 15m쯤 들어서 왼쪽 첫 골목 안. 전화 안 받음.
*영남밀면: 동대신동 서여고에서 신호등을 건너 맞은편 골목에 있다. 3대에 걸쳐 44년 전통을 자랑한다. 창업 당시 현 위치 맞은편에서 '영분식'이란 이름으로 시작하여 현재의 밀면 전문점으로 성장하였다. 적지 않은 양에 단맛이 나는 듯해 입에 착 감긴다. 051-243-99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