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사법정의(司法正義)를 조속히 바로잡아야
일찍이 국법(國法)이 엄중하게 실행되지 못하면 이리저리 돌아보며 아부하는 무리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날 것이고, 결국은 국가의 기강(紀綱)이 해이해져서 정의로운 정권은 물러나고 나라가 위태롭게 된다는 교훈이 있었으니, 이 시대에 반드시 경계로 삼아 무너진 사법정의(司法正義)를 조속히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숙종 20년(1694년) 10월7일 한포재 이건명(李健命) 선생이 국법준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상소하였다.
국법(國法)이 엄중하지 못하고 국가의 기강(紀綱)이 해이해져, 한편으로는 죄를 용서하자는 논의가 앞질러 나오고 한편으로는 징계하고 토죄(討罪)하는 법이 행해지지 아니하여, 악역(惡逆)들을 버젓이 천지 사이에 숨 쉬게 하고 있으니, 장차 어떻게 천하 만세에 할 말이 있겠습니까? 지난날 뭇 소인들이 화심(禍心)을 품고서 진신(搢紳)들을 어육(魚肉)을 만들었는데, 이런 음모(陰謀)를 주장해 온 적괴(賊魁)인 자도 또한 천주(天誅)를 면하고 있으니, 그렇다면 보절(甫節)이 당인(黨人)들을 마구 베인 것이나 주전충(朱全忠)이 청류(淸流)를 도륙(屠勠)한 것도 또한 용서할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하물며 자신이 ‘서문(西門) 밖에서’란 말을 지어내어, 감히 모해(謀害)할 수 없는 자리를 모해하려 했으니, 용서하자는 의논은 신(臣)이 진실로 알 수 없습니다. 지나치게 의심하고 우려하여 사은(私恩)을 펴게 되었고, 관대(寬大)하게 용서하시기에만 힘써 국법(國法)이 굽혀지게 되었으니, 전하께서 의리를 붙잡아 세우고 호오(好惡)를 분명히 하심이 처음보다 해이해진 것으로, 이리저리 돌아보며 아부하는 무리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날 것입니다.
<숙종 20년(1694년) 10월7일 한포재 이건명(李健命) 선생 상소문에서>
숙종실록 27권, 숙종 20년 10월 7일 신축 1번째기사
1694년 청 강희(康熙) 33년
교리 이건명이 국법 준수와 언로 등 국정에 관해 상소하다
교리 이건명(李健命)이 상소하기를,
"재이(災異)가 누차 겹쳐 나타나고, 기강(紀綱)이 무너져 민생이 곤궁에 시달리며, 당화(黨禍)가 잇달아 사(邪)와 정(正)이 서로 배척하고 있습니다. 조정은, 위에는 공경(公卿)·대부(大夫)가 있고 아래에는 온갖 집사(執事)가 있어 등급이 매우 분명하고 체통이 문란하지 않아야 하는 것인데, 지금은 쓰거나 버리기를 너무 졸급하고 형살(刑殺)이 뒤따르고 있으므로, 관부(官府)에 몸 담고 있는 것이 마치 전사(傳舍)에 있는 것과 같고, 귀중한 금자(金紫)470) 를 도거(刀鋸)471) 처럼 보니, 명위(名位)가 어찌 가벼워지지 않을 수 있고, 대중이 어찌 무시받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임금은 신하에게 있어서 의심스러우면 임용(任用)하지 말아야 하고, 임용했으면 의심하지 말아야 하는 법이니, 반드시 심정과 뜻이 서로 유통(流通)하고 성의로 서로 믿는 다음에야 지혜스러운 사람은 생각을 다하고 용맹스러운 사람은 용력(勇力)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민중은 굳은 의지가 없고, 선비는 항심(恒心)이 없으며, 외방(外方)에 있는 사람은 깊이 숨는 것을 지혜로 여기고 조정에 있는 신하들은 말없이 따라가기만을 상책으로 여기면서, 당시에 용납받고 뒷날 모면할 것을 도모하느라 자신의 일도 계획하지 못하는데, 어느 겨를에 나라일을 담당하고 세상의 도의를 만회(挽回)하겠습니까? 곤위(坤位)가 다시 바로잡히고 대의(大義)가 밝아졌으니 사직(社稷)과 만백성이 마침내 반드시 힘을 입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왕법(王法)이 엄중하지 못하고 국가의 기강(紀綱)이 해이해져, 한편으로는 죄를 용서하자는 논의가 앞질러 나오고 한편으로는 징계하고 토죄(討罪)하는 법이 행해지지 아니하여, 악역(惡逆)들을 버젓이 천지 사이에 숨쉬게 하고 있으니, 장차 어떻게 천하 만세에 할 말이 있겠습니까? 지난날 뭇 소인들이 화심(禍心)을 품고서 진신(搢紳)들을 어육(魚肉)을 만들었는데, 이런 음모(陰謀)를 주장해 온 적괴(賊魁)인 자도 또한 천주(天誅)를 면하고 있으니, 그렇다면 보절(甫節)이 당인(黨人)들을 마구 베인 것이나 주전충(朱全忠)이 청류(淸流)를 도륙(屠勠)한 것도 또한 용서할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하물며 자신이 ‘서문(西門) 밖에서’란 말을 지어내어, 감히 모해(謀害)할 수 없는 자리를 모해하려 했으니, 용서하자는 의논은 신(臣)이 진실로 알 수 없습니다. 지나치게 의심하고 우려하여 사은(私恩)을 펴게 되었고, 관대(寬大)하게 용서하시기에만 힘써 왕법(王法)이 굽혀지게 되었으니, 전하께서 의리를 붙잡아 세우고 호오(好惡)를 분명히 하심이 처음보다 해이해진 것으로, 이리저리 돌아보며 아부하는 무리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날 것입니다. 바라건대 성상께서 반성하시고 두렵게 생각하시면서 국법이 시행될 수 있게 하신다면 어찌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엊그제의 간신의 상소는 의리가 명백한 것이었으니, 대신은 옳다고 하고 간관(諫官)은 그르다고 하며 서로 가부(可否)를 조정해야 할 것인데, 말하는 자를 경계하고 책망하는 것으로 대신을 위로하여 안정시키는 방도로 삼았으니, 신의 생각에는 대신의 뜻은 갈수록 더욱 불안해지고, 언로(言路)가 막히는 것이 오늘부터 시작될 듯합니다. 국가의 사세가 마치 큰 병을 앓고 난 사람과 같은데, 무엇보다도 탐심을 부리는 것이 대소(大小) 간의 풍습이 되어 안팎이 똑같습니다. 지난날 대신이 제도(諸道)를 안렴(按廉)하기를 청하고, 또한 체대(遞代)할 때의 문부(文簿)를 고사(考査)해야 한다는 의논도 있었으니, 연하(輦下)의 모든 군문(軍門)의 재화(財貨)의 간수를 반드시 먼저 실수를 점열(點閱)하도록 하여 근본을 맑게 하고, 말단을 다스리는 길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경덕궁(慶德宮)의 영선(營繕)은 역사가 두 해를 넘겼고, 비빈(妃嬪)들의 제택(第宅)은 값이 수천 금을 넘고 있는데, 이는 모두 그만둘 수 있는 것이나 그만두지 않고 있습니다. 한(漢)나라 명제(明帝)가 말하기를, ‘짐(朕)의 아들들을 어찌 선제(先帝)의 아들들과 같게 할 수 있겠는가?’하고, 모두 그 절반으로 하도록 했습니다. 지금 전하께서 반드시 선조(先祖)의 대군(大君)의 제택을 비빈에게 돌리시는데, 【이 때 능원 대군(綾原大君)의 옛 집을 사서 최 숙의(崔淑儀)의 제택으로 하였다.】 혹은 깊이 생각해 보지 않으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 주가(主家)에 사연(賜宴)하는 것은 성상께서 친족과 돈목(敦睦)하려는 뜻에서 하시는 일일 것입니다마는, 이처럼 천재(天災)를 만나 써야 할 데가 있는 때를 당하여 그만 풍형 예대(豊亨豫大)472) 하는 일을 하는 것은 이른바 경천(敬天)하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하지 않을 듯합니다. 내려 준 물건들은 비록 되돌릴 수 없지만, 선온(宣醞)과 사악(賜樂)은 또한 마땅히 정지해야 합니다."하니,
답하기를,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정성을 내가 매우 아름답게 여긴다. 당초에 짐작하여 내린 처결은 뜻을 둔 데가 있고, 대신이 아뢴 말은 말한 사람을 경계하고 책망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으니, 옳다고 하고 그르다고 해야 한다는 말이 합당한지 알지 못하겠다. 아아, 귀주(貴主)는 나이가 많아 성대한 자리를 다시 마련하기가 어려운 처지이다. 선온과 사악은 또한 은덕과 영광으로 사치스럽게 해 주기 위한 것인데 어찌 폐할 수 있겠느냐?"하였다.
[註 470]금자(金紫) : 높은 벼슬.
[註 471]도거(刀鋸) : 형구(刑具).
[註 472]풍형 예대(豊亨豫大) : 풍형(豊亨)은 모두 64괘(六十四卦)의 하나. 풍은 성대(盛大)한 모양. 예(豫)는 화락(和樂)한 모양. 곧 천하가 태평하여 백성들의 향락이 극도에 이름을 뜻함.
○辛丑/校理李健命上疏曰:
災異之作, 疊見層出, 紀綱頹廢, 民生困悴, 黨禍相仍, 邪正互斥, 朝廷者, 上有公卿大夫, 下有百執事, 等威甚明, 體統不紊, 而今也用舍太遽, 刑戮隨至, 官府之居, 如處傳舍, 金紫之貴, 視若刀鉅, 名位安得以不輕, 衆庶安得以不侮哉? 君之於臣, 疑則勿任, 任則勿疑, 必使情志流通, 誠意交孚然後, 智者殫其慮, 勇者竭其力。 而今也民無固志, 士無恒心, 在外之人, 以深藏爲智, 在朝之臣, 以循默爲計, 取容於當世, 圖免於後時, 其身之不自謀, 何暇擔當國事, 挽回世道哉? 坤位復正, 大義斯明, 社稷靈長, 終必賴之。 然王章不嚴, 國綱解紐, 原恕之論, 徑發於前, 懲討之法, 不行於後, 至使惡逆, 偃息於覆載之間, 將何以有辭於天下萬世乎? 向者群壬, 包藏禍心, 魚肉搢紳, 而賊魁之主張其謀者, 亦逭天誅, 然則甫節之芟刈黨人, 全忠之屠戮淸流, 亦有可恕耶? 況自做西門外之說, 謀害不敢害之地, 則容貸之議, 臣實未曉, 過於疑憂而私恩伸, 務於寬大而王法屈, 殿下所以扶義理明好惡者, 有懈於初, 而顧瞻依附之徒, 接迹而起矣。 願聖上, 反顧惕慮, 使國法得行, 豈不休哉? 日昨諫臣之疏, 義理明白, 大臣曰是, 諫官曰非, 可否相濟, 而以警責言者, 爲慰安大臣之具, 則臣恐大臣之意, 轉益不安, 而言語杜塞, 自今日始也。 國勢如人之經大病, 最是貪饕之風, 大小成習, 內外同然。 頃日大臣, 以按廉諸道爲請, 且有考其遞代文簿之議, 則輦下諸軍門財貨之藏, 必須先使閱實, 可爲澄本治末之道, 慶德宮營緝, 役逾兩歲, 妃嬪第宅, 價溢數千, 此皆得已而不已者也。 漢 明帝之言曰: ‘朕子豈得與先帝子比? 皆令半之。’ 今殿下, 必以先朝大君之宅, 歸之於妃嬪, 【時買綾原大君舊宅, 爲崔淑儀之第。】 或未深思耶? 且主家賜宴, 出於聖上敦親之意, 而當此遇災有費之時, 乃有豐亨豫大之擧, 所謂敬天者, 恐不如是, 錫與之物, 雖不可還, 宣醞賜樂, 亦宜停止。"
答曰: "忠愛之誠, 予甚嘉尙, 當初酌處, 意有所在。 大臣之奏, 非是警責言者, 而曰是曰非之說, 未知其恰當也。 噫! 貴主高年, 盛筵難再, 宣醞賜樂, 亦所以侈恩光也, 烏可廢乎?"
【조선왕조실록태백산사고본】 29책 27권 52장 A면【국편영인본】 39책 35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