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여한이 없으려면
인생의 가치는 사람이 걸어가야 할 참다운 도(道)를 알아내고, 그 도에 따라 모든 것을 걸고 혼신(渾身)의 힘을 다해 살아가는 데에 달려있다. 인간은 그래야만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고 참다운 영혼의 만족을 느낄 수가 있는 신령(神靈)한 존재이다.
『아침에 도(道)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참된 이치를 깨달았으면 죽어도 여한(餘恨)이 없다.> 도(道)에 뜻을 두면서도 누추한 옷과 거친 음식을 부끄러워하는 선비와는 함께 도를 논할 수 없다.[조문도 석사가의.(朝聞道 夕死可矣.) 사지어도 이치악의악식자 미족여의야.(士志於道 而恥惡衣惡食者 未足與議也.)]』 <논어(論語) 제4편 이인(里仁) 8-9장>.
생각건대, 우리 인생길에서 가장 의미 깊은 시간은 이 세상 나그네 길을 마치고 저 세상으로 떠나갈 때에 내세(來世)에 대한 확신을 품고 잔잔한 미소(微笑)를 띠며 이 세상을 떠나갈 수 있는가 아니면 그렇지 못한가 하는 것이다.
『복(福)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律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黙想)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亨通)하리로다.』(시편 1편 1-3절).
우리가 이런 참다운 도(道)를 알아내고 ,비록 작은 과오(過誤)가 있을지라도, 그 도를 따라 마음과 정성을 다해 살아간다면 눈앞에 다가오는 세상의 숫한 고난과 역경은 작아 보이고 우리는 이들을 능히 이겨낼 힘과 능력을 얻게 된다. 이때에 우리는 저녁에 죽어도 여한이 없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사랑하시고 돌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이런 사람을 향한 사랑은 결코 변하지 않으며 우리를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 하신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솔로몬은 ‘아가서(雅歌書, Song of Solomon)’에서 남녀 간의 깊은 사랑으로 비유하여 말하기를 “너는 나를 인(seal)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같이 팔에 두르라,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질투(嫉妬)는 음부(Sheol) 같이 잔혹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氣勢)가 여호와 하나님의 불과 같으니라. 이 사랑은 많은 물이 끄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삼키지 못하나니(아가서 8장 6-7절)” 라고 하였다.
2025. 7. 3. 素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