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중앙일보가 지난 4월12일 제19회 로또복권 추첨에서 407억원(실수령액 317억원)에 당첨된 강원지방경찰청 소속 박모 경사 형제를 3개월간의 끈질긴 노력끝에 밀착 인터뷰했다.
■ 당첨 뒤 아이들 서울 전학가자 "너희 로또지?"
week& 취재진은 일주일여의 추적과 설득 끝에 1등 당첨자인 박모씨의 친동생 박운재(가명.37) 경사부터 만났다. 강원지방경찰청 소속 현직 경찰관인 박경사를 만나는 일도 첩보작전을 연상케 할 만큼 어려웠다. 인터뷰는 로또 당첨자인 형 박운성(40.가명)씨의 허락을 받아 이뤄졌다. 형제 경찰관이던 이들은 우애가 남달라 보였다. 서울(국민은행 본점)에 당첨금을 받으러 갈 때도 동행했다.
형 박씨는 여전히 경계심을 늦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처음 취재를 시도하자 "언론에 노출되고 싶지 않다"며 부인과 함께 여행을 떠나버렸을 정도였다. 부부가 집으로 돌아온 것은 지난달 30일. 그날 저녁 취재진은 그와 어렵사리 전화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짧은 통화에서 박씨는 간단한 인사말과 함께 자신의 향후 계획 등을 밝혔다.
동생 박경사를 만난 곳은 그가 사는 강원도 A시의 한 카페. "오늘은 쉬는 날"이라며 사복 차림으로 나온 박경사는 사진기자까지 동행한 취재진을 무척 부담스러워했다. "큰 말썽 없이 주변의 이목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라며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러나 몇마디가 오가면서 그도 서서히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취재진은 이 때부터 박경사와 두차례 만났고, 10여회 통화하며 '대박 가족'의 꿈과 고민을 들었다.
"그날 일요일(4월 13일)에, 새벽 같이 전화벨이 울렸죠. 형한테서 온 전화였어요. 딱 한마디 하셨죠.'빨리 집에 왔으면 좋겠다'라고요. 저는'생일 잔치가 있어 가기 힘들 것 같다'고 했죠. 그래도 형이 무조건 오라고 채근하더라고요." 그 길로 형 집으로 달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다른 형제들은 물론 고향인 강원도 홍천에서 혼자 사는 어머니(62)까지 이미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어리둥절해하는 제 앞으로 형은 1등 번호가 적힌 로또 복권을 내미셨죠. 그런데 이상하죠. 그냥 덤덤하기만 하더라고요. 다른 식구들도 그런 표정이었어요. '우리에게 정말 엄청난 일이 생겼구나'라고 실감이 난 건 몇시간이 지나서부터였지요. 그날 모인 식구들은 모두 뜬눈으로 밤을 새웠어요."
다음날인 14일. 가족들은 당첨 소식이 퍼지면 크게 시달릴 것이라고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형 박씨와 박경사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정상적으로 직장에 출근해 일을 봤다.
그렇게 이틀이 지났다.
"수요일 형님과 함께 로또 상금을 찾으러 가는 차 안에서도 아무 말도 못했죠. '아, 뭔가 착각하셨군요'라는 말과 함께 당첨금이 연기처럼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짓눌린 거죠."
그런 형제가'기적'을 실감한 것은 당첨금이 입력된 통장을 건네받을 때였다고 한다.
"통장 맨 윗줄에 3백17이라는 숫자와 동그라미 8개가 선명하게 찍혀 있더라고요. 세금을 뗀 당첨금이었죠. 그제서야 긴장이 탁 풀렸죠. 형의 얼굴에 옅은 웃음이 번진 것도 그때였어요."
(박씨 형제는 당첨금을 관리하는 국민은행 측에 당초 17일(목)에 돈을 찾아가겠다고 통보했다. 그러나 그들은 생각을 바꿔 하루 전날인 16일, 아무 연락 없이 은행 영업이 끝날 무렵인 오후 4시30분 당첨금을 조용히 찾아갔다.)
형은 당첨금을 받은 직후 사표를 냈다.
이야기가 길어지자 박경사는 다소 긴장이 풀렸는지 묻지도 않은 로또 당첨 뒷얘기도 풀어놓았다.
"형이 경찰서의 의경을 심부름 보내 로또를 산 것은 맞아요. 그 때문에 그 친구에게 사례금조로 몇억원을 챙겨줬다는 소문도 났지요. 그러나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아마 형이 따로 고마움을 표시할 생각은 하시고 있는 것 같아요."
관심을 끈 것은 형이 태어난 집에서 로또 2등 당첨자도 출생했다는 이야기였다. 그 집은 강원도 홍천군 두촌면에 있다.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이에요. 형보다 앞서 2등 당첨금을 탄 사람도 이전에 저와 형이 태어났던 집에서 출생해 자랐지요(그 2등 당첨자는 지금 박경사 모친의 집 뒷집에 살고 있다).
"덕분에 전국 각지에서 풍수학자와 지관들이 구름처럼 몰려왔죠. 그 집의 지세가 복조리 같은 모양이라고 하더군요. 돈이나 복을 가득 담을 그런 형세라나 뭐라나요."
1등 당첨을 예고하는 징조 같은 것은 없었다고 한다.
박경사는 "형은 물론 식구들 누구도 복권 당첨을 연상할 수 있는 꿈을 꾼 사람은 없다"고 전했다. 이쯤에서 정말 묻고 싶던 질문을 했다.
"로또에 당첨된 뒤 가족들이 돈을 얼마나 펑펑 써 보셨나요?"
"어머니와 우리 형제 등 가족들이 모두 모여 일식집에 간 적이 있어요. 여덟명이 먹었는데 30만원쯤 나왔나. 가족끼리 그렇게 비싸게 먹어본 건 처음이죠."(답변이 조금 실망스럽다).
"한턱 내라는 주변 사람들 성화에 한번 술을 샀어요. 생각보다 비싼 곳에 가더라고요. 술값만 한 50만~60만원 나왔어요. 하루 건너 야근하며 챙기는 월급이 기껏 2백만원 정도인데…."
■ 두려웠던 석달..모친 강도 당할까 파출소 대피
당첨금을 받은 며칠 뒤 형 박씨와 형수, 그리고 두 조카는 뉴질랜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예고없이 들이닥친 엄청난 행운, 그리고 갑자기 몰려드는 사람들이 부담스러웠던 거다. 그들은 20여일 동안을 그 곳에 머물렀다. 가족들은 물론 '4백억원의 사나이' 박씨에게도 해외 나들이는 처음이었다. 쫓기듯 나간 여행이었기 때문에 생각만큼 즐기지 못한 것 같다고 박경사는 말했다.
"국제전화로 넘어오는 형의 목소리가 그리 밝지 않았어요. '빨리 집으로 가고 싶다. 그쪽은 좀 잠잠해졌냐'라는 말만 계속 하더라고요."
생각보다 길어진 외유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이전의 삶을 찾기엔 이미 세상이 달라져 있었다. 무엇보다 조카들이 흔들렸다. 혹시나 하는 걱정 때문에 보름 이상 학교를 가지 못하면서다. 며칠 간의 고민 끝에 형 박씨는 끝내 20여년간 정을 붙여온 A시를 등졌다.
그리고 서울의 한 최고급 아파트로 거처를 옮겼다.
"형은 저와 친지들이 있는 이 도시에 머물고 싶어했어요. 그러나 그 다짐도 며칠 만에 무너졌지요. 이사간 곳은 외부인의 접근이 쉽지 않은 곳이라고 하더군요."
그런 형이 며칠 전에도 약간 술 취한 목소리로 하소연하더라고 했다. 이젠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고.
"형은 친구들이랑 어울려 삼겹살에 소주 한 잔 기울이는 걸 무척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그 재미를 못느끼죠. 외로움을 참다 못한 형이 친한 친구라고 생각해 전화했는데, 돈 얘기부터 꺼내는 사람들도 있고. 형이 그런 거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그의 말대로 로또는 그의 가족들에게 엄청난 부(富)를 선물했지만 대신 평범한 삶과 조촐한 행복, 그리고 주변 친구들과 지인들을 대가로 빼앗아간 듯했다.
첫댓글 열심히 일한 댓가로 얻어진 거라면 저렇게 힘들진 않을거예요...쉽게 큰액수의 금액이 들어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