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전에서 꽃이 핀다. 눈부시게 고운 생명의 꽃. 햇빛과 바람이 오랜 세월 다독이고 다독여 천천히 피워 올린 가장 '순정한 결정(結晶)'의 꽃, 소금.
소금은 세상에서 가장 신성시되는 광물이자 음식재료이다. 하여 예로부터 아주 귀한 대접을 받았던 물질이기도 하다. 이는 모든 생물이 삶을 이어가는 데 가장 필수적인 요소이기도 하거니와, 주술과 철학적 의미도 담고 있었기에 그렇다.
바둑판 같은 '천일염전' 곳곳에서
자연과 사람이 빚어 낸 '하얀 알갱이'
서해 칠산 앞바다 조기와 만나
최고의 음식 '굴비'를 우려내
보리굴비·굴비구이·굴비전…
가는 곳마다 구수한 맛의 향연 성경을 살펴보면 예수가 제자들에게 '세상의 소금이 되라'고 당부하는 구절이 있다. 형형하게 깨어있는 정신으로, 세상을 지키고 구원하라는 뜻이겠다. 그리고 부정 타는 일에는 소금으로 주위를 물리치는 '정화(淨化)의 작용'과 좋은 일에 '액운이 들지 말라'는 뜻의 '방부(防腐)의 의미'도 깃들어 있는 것이 소금이다.
이처럼 소금은 음식의 기본바탕을 제공하는 일 외에도, 인간 삶에 있어서 가장 본질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특히 염전에서 생산되는 천일염은 태양의 충만한 '생명의 기운'을 고스란히 품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영광의 천일염전. 바둑판처럼 반듯하게 펼쳐진 소금밭에, 새하얀 소금이 눈처럼 눈부시다. 바야흐로 햇볕은 갯물을 다독이고 바람은 결정을 북돋워, 가장 맛있는 한 톨의 알갱이를 탄생시키는 '고귀한 생산지'가 염전인 것이다.
느릿느릿 갯물에서 쌀알처럼 돋아나는 소금은, 온전히 자연이 만들어주는 '신의 한 수.'염부들도 대자연이 하는 일을 옆에서 거들뿐 욕심부리지 않는다. 자연과 사람의 정성으로 소금은 익어가고, 소금은 속으로 삭여온 절절한 마음을 숭고한 사랑으로 하얗게, 하얗게 토해내며 그 결실을 보는 것이다.
영광 법성포. 굴비의 원산지로 모든 것이 굴비와 관련되는 곳이다. 전국에 유통되는 굴비 대부분을 생산하는 법성포는 굴비 공장, 굴비 판매장, 굴비 전문음식점 등으로 시가지를 이루고 있다. 한때 법성포에 파시가 서면 충청도와 전라도 일대의 어물상이 떼 지어 물려와 북새통을 이루던 전라도 최고의 포구였다.
조기는 '생명의 기운을 증진시킨다'고 조기(助氣)이다. 바다의 충만함을 내포한 조기가 대자연의 기운을 품고 있는 소금과 함께, 오랜 시간 어우러지고 뒤섞이면서 최고의 음식으로 탄생한 것이 굴비이다.
서해 칠산 앞바다의 조기와 영광 염전의 천일염이 합일하여 만들어낸 음식이 '굴비'라 하겠다. 하여 '굴비'에는 변하지 않는 가치, 귀하게 오래 보존하고자 하는 인간의 열망이 숨어있다. 그러하기에 예부터 우리네 밥상의 최고 반열이 '굴비밥상' 아니던가?
간수를 뺀 소금에 알이 통통한 조기를 켜켜이 쟁여 말리기를 수차례, 그리고는 보리 뒤주에 넣어두었다가 여름철 입맛 없을 때 두고두고 꺼내먹는 귀한 음식이 '굴비'였다. 특히 법성포 앞 칠산바다에서 4∼5월경 산란 직전 알배기 조기를 잡아 만든 굴비는, 임금의 수라상 정중앙을 차지할 정도로 '인기 진상품'이었다.
서해를 돌고 돌다 저물녘 법성포에 닿았기에 시장기가 돈다. 법성포에서 유일한 '굴비로만정식'을 차려주는 식당으로 간다. 보리굴비, 고추장굴비, 굴비 매운탕, 굴비구이, 굴비조림, 굴비전, 굴비젓갈…. 굴비로 내는 음식은 죄다 나왔다.
법성포 굴비전문식당 대부분의 '굴비한정식'은, 굴비 외에도 남도의 다양한 음식들이 한상 차려진다. 때문에 비교적 저렴하게 굴비밥상을 차려 먹고 싶은 이들에겐 큰 부담인 것이 사실이다. 하여 오랫동안 굴비밥상을 차려왔던 허춘희(52)씨가 법성포를 찾는 이들의 속내를 알아차리고, 1년 전쯤 차려낸 식단이 바로 '굴비로만정식'이다.
깔끔하게 굴비로만 차린 정식의 찬이 열댓 가지. 40여 가지의 찬이 나오는 '굴비한정식'에 비해 단출(?)하기도 하지만, 적당한 가격으로 굴비의 참맛을 접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다양한 굴비음식을 맛본다. '시간이 만든 음식'들이라 맛의 깊이가 여느 음식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고추장굴비'는 보리굴비를 찢어 고추장에 버무린 것으로, 들큰한 첫맛과 함께 씹을수록 고소함이 기껍다.
'보리굴비'는 짭조름하면서도 끝 간데없는 구수함이 일품이다. 여름날 냉수에 밥을 말고 보리굴비 한 점 올려 먹으면 최고의 호사이기도 했다. '굴비구이'는 입에 넣자마자 고소함이 넘쳐난다. 씹을수록 그 고소함이 아련해진다.
굴비살을 발라 전으로 구운 '굴비전'은 살의 툭툭함이 좋다. '굴비매운탕'은 짭조름하면서도 콤콤해, 술꾼들 술안주나 해장국으로도 좋겠다. 입맛 없을 때 한 술 떠도 안성맞춤이겠다. 찌개 속의 굴비도 부드럽고 간간한 게 참 좋다.
나그네가 너무 잘 먹자 인심 쓰듯 '굴비젓갈' 두어 마리 상에 올린다. 굴비를 통째로 2년여 숙성시켰다는데 그 맛의 깊이가 끝이 없다. 그 외의 반찬도 맛깔스럽다. 제철에는 간장게장, 간장대하도 내는데, 아릿하면서도 구수한 맛의 조화가 그저 그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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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득꾸득 잘 익은 법성포 굴비. |
찐 장대(양태)는 꾸덕꾸덕 간간하면서 맛이 들큰하다. 병치(병어)회는 부드럽게 씹히다가 그 고소함이 그윽하게 밀려온다. 김치도 속잎만으로 생김치를 내는데, '황석어 젓갈'을 사용하기에 진한 감칠맛이 그저 그만이다. 김치만으로도 술안주가 되겠다.
어느 때부터인지 나이 지긋한 여인이 홀로 들어와 막걸리 한 잔 기울이고 있다. 곱상한 얼굴에 옛날 '화려했던 호시절'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막걸리 한 잔과 보리굴비 한 점으로 그의 얼굴이 화사해진다. 술잔 몇 순배에 거나해진 여인이 노랫가락 한 줄 흥얼거린다.
"돈 실로 가자~ 돈 실로 가자~ 칠산 바다에 돈 실로 가자." 조기 어부들이 부르던 뱃노래다. 주인장에 의하면 "봄에 파시가 서면 조기 어부들 주머니가 두둑해져, 나라 안의 작부는 죄다 법성포로 모이고, 강아지들도 돈을 물고 다녔다"고 한다.
그 시절의 여인이었을까? 길 따라 물 따라 법성포로 흘러들어와, 한시절을 조기와 어부들 사이에서 울고 웃으며 한 세월을 지냈던 것일까? 여인의 흥이 고조되면서 노랫가락은 더욱 구성지고 걸쭉해진다. 나그네의 마음속도 노을지듯 쓸쓸해진다. 그렇게 타지의 밤은 익을 대로 익어가며 깊어져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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