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노는 물이 달라'.
멸치 얘기다. '멸치'라고 다 같은 멸치가 아니다. 작은 멸치에도 엄연히 품격과 서열이 있다. 국물을 우려내는 데 쓰이는 게 있는가 하면 임금님 수라상에 올랐던 '귀족 멸치'도 있다.
요즘 경남 남해군에 가면 '멸치의 지존(至尊)'을 만날 수 있다. 남해군 삼동면 창선교 인근 지족해협에서 전통 어로법으로 생산되는 '죽방(竹防)멸치'가 바로 그것이다.
해협의 물살세기가 진도 '울돌목' 못지 않다는 지족 앞바다에는 참나무 말목을 갯벌에 박고 대나무를 주렴처럼 엮어 만들어 놓은 죽방렴(竹防簾)이 여럿 있다.
죽방렴은 물살이 빠른 좁은 물목에 조류가 흘러 들어오는 쪽을 향해 부채꼴 모양으로 '나무 그물'을 쳐 고기를 잡는 함정어장으로 '대나무 어사리'라고도 부른다.
지족해협의 빠른 물살을 타고 이동하는 멸치떼가 죽방렴에 갇히고, 이후 물이 빠지면 원통형 대발통에서 놀고 있는 멸치를 건져 내는 방식으로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한 어로법이다.
특히 죽방렴 멸치는 일반 그물로 잡아 올리는 멸치잡이 방식과는 달리 비늘이 덜 상해 일반 멸치보다 비싼 값을 받는다. 뿐만아니라 빠른 물살을 터전으로 삼아 육질이 졸깃하고 잡히는 순간까지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 맛도 좋다는 게 통설이다.
수백년 전통의 죽방렴이 유독 남해 지족 앞바다에서 성행하고 있는 것은 지형적 이유 때문이다. 빠른 유속과 조수 간만의 차가 큰데다 수심이 10m 내외로 너무 깊지도, 얕지도 않는 등 까다로운 조업 여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8월 중순, 지족해협의 물때는 오후 3시30분 쯤에 물이 가장 많이 빠졌다. 죽방렴 조업에 최적의 시간이다.
지족 앞바다에서 죽방렴을 운영하고 있는 김경식씨를 따라 나섰다. 지족의 빠른 물살을 가르며 배에 오른지 10여분, 죽방렴에 도착했다.
능숙한 솜씨로 원통형 대나무 그물, '죽방통'에 배를 댄다. 조업을 시작할 차례.
"쫌 들었어야 할낀데…" 막상 카메라를 들이대고 취재를 한다하니 이왕이면 멸치가 많이 잡혔으면 하는 눈치다.
김씨는 가슴까지 올라오는 장화를 신고 죽방통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6m직경의 죽방통에는 나무 다리(등판)가 두어줄 걸쳐 있고, 아래 맑은 바닷물에는 해초 등속 사이를 크고 작은 멸치떼가 잡어와 어울려 바쁘게 유영한다. 성과가 신통치 않다. 실망하는 눈치다.
물속으로 들어간 김씨는 족대와 같은 휴대용 그물, '후리'를 펴서 멸치를 몰기 시작했다. 죽방통 한바퀴를 도는 것으로 고기를 말끔히 걷어 올렸다. 나무다리에 후리를 고정시켜 놓고는 뜰채로 멸치떼를 뜨기 시작하자 파닥파닥 은빛 멸치떼가 몸부림 친다. 요즘은 중멸치가 잡히는 시기로 빙어보다는 작고 비늘은 은빛에 더 가깝다.
이날 김씨가 건져 올린 멸치는 플라스틱 한 상자, 2㎏들이 2포 남짓이다. 50상자씩 잡히는 날에 비하면 엄청 저조한 결과다.
김씨는 서둘러 뱃머리를 돌렸다. 싱싱한 상태에서 삶아야 상품이 되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잡은 멸치는 10분 이내에 부두로 돌아와 가마솥에 삶는다. 곧게 뻗은 몸통에 은빛 비늘이 온전한 잘생긴 죽방멸치의 고급 품질을 담보하는 결정적 요인이다.
펄펄 끓는 물에 5분 정도 삶은 멸치를 건져 살을 다치지 않게 햇볕에 널어 말린 뒤 선별과정을 거치면 '귀하신 몸'으로 변신한다.
산지가격만 2㎏들이가 3만~30만원으로 정말 '노는 물이 다른 멸치'가 아닐 수 없다. < 남해=글ㆍ사진 김형우 기자 hwkim@>
남해군에는 전통 죽방렴이 지족에 23개, 다른 지역에 3개소 등 모두 26개가 운영되고 있다. '정치망 어업의 죽방렴 면허'를 얻어야 조업을 할 수 있으며, 죽방렴 1개의 가격은 어장의 위치에 따라 다르지만 1억원을 호가 한다. 연소득은 1개소에서 5000만원 이상. 한번 면허 취득으로 10년을 조업할 수 있고, 이후 연장이 가능하다.
대체로 3~4월부터 11월까지 멸치잡이를 하며 생산 시기마다 품종이 다르다. 4~6월에는 도시락 반찬용으로 사용되는 작은 멸치, 6~8월에는 가장 고급품으로 치는 중멸치, 9~11월에는 큰 멸치가 많이 잡힌다.
이밖에 국내 멸치잡이의 2/3 이상은 권현망(權現網)어업이 차지하고 있다. 권현망은 끌그물의 일종으로, 선단조업을 한다. 2척의 끌배, 1척의 어탐선, 1척의 가공선, 2∼3척의 보조선으로 구성돼 있다. 남해 미조항, 선구마을 등에 멸치 선단들이 멸치를 부린다.
▶숙박& 레저=남해의 대표적 숙박지로는 남해스포츠파크텔(055-862-8811)을 꼽을 수 있다. 남해 스포츠파크는 90여개의 객실을 갖춘 가족호텔로 레스토랑, 연회장, 해수사우나 등 부대시설에 테니스장, 축구장, 야구장 등 메머드급 스포츠-레저 공간을 갖추고 있다. 또 스포츠파크텔내의 잔디구장에서 가족별로 미니축구를 즐길 수 있고, 넓은 정원에서는 인라인스케이트와 가까운 바다에서는 해수욕과 낚시를 즐길 수 있다. 배낚시는 인근 부성횟집(055-862-5096)에서 낚싯배를 빌려준다.
▶먹을거리=이른 새벽 항구를 떠난 멸치잡이 배들이 오전 10시가 넘으면 멸치를 싣고 들어온다. 싱싱한 멸치회는 남해 미조항, 지족(죽방렴횟집) 등 주요 항포구 주변 식당에서 맛볼 수 있다. 2만, 3만, 4만원선.
▶가는 길=대진고속도로~사천시(옛 삼천포시) 대방동~창선연육교~창선도~지족해협~남해도.